누가복음 7:1-50

7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실 말씀을 마치신 뒤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때에 어떤 장교가 소중히 여기는 종이 심한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되었다.+  그 장교는 예수에 관해 듣고서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그분에게 보내어, 오셔서 자기 종을 낫게 해 달라고 청했다.  그들이 예수께 다가와 간청했다. “그는 선생님이 그런 일을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하며, 우리의 회당도 지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가셨다. 그런데 그분이 그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 때에, 그 장교가 보낸 친구들이 그분에게 그의 말을 전했다. “선생님, 수고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제 집에* 모실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선생님에게 가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저 말씀만 하셔서 제 하인을 낫게 해 주십시오.  저도 상관이 있고, 제 밑에도 군인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오고, 또 종에게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말을 듣고 그 사람에 대해 크게 놀라시며 자신을 따라오는 무리를 향해 말씀하셨다.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나는 이스라엘에서도 이렇게 큰 믿음을 본 적이 없습니다.”+ 10  장교가 보낸 사람들이 집에 돌아와 보니 그 종이 건강해져 있었다.+ 11  얼마 후에 그분이 나인이라는 도시로 가셨는데, 제자들과 많은 무리도 함께 갔다. 12  그분이 성문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죽은 사람이 들려 나오고 있었다. 그는 외아들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과부였다. 도시에서 나온 많은 무리도 그 여자와 함께 있었다. 13  주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불쌍히 여겨+ 그 여자에게 “그만 우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14  그리고 가까이 가서 운구대*를 만지시자, 나르던 사람들이 멈추어 섰다. 그분은 “젊은이, 당신에게 말하는데, 일어나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15  그러자 죽은 사람이 일어나 앉아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예수께서는 그를 어머니에게 넘겨주셨다.+ 16  그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기 시작하며, “우리 가운데 위대한 예언자가 나오셨다”고 말하기도 하고+ “하느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주의를 돌리셨다”고 말하기도 했다.+ 17  그분에 관한 이 소식이 온 유대와 주위에 있는 모든 지방으로 퍼져 나갔다. 18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요한에게 알렸다.+ 19  그러자 요한은 자기 제자 가운데 두 사람을 불러 주께 보내며 “오실 분이 당신이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어보게 했다. 20  그 사람들이 그분에게 와서 말했다. “침례자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오실 분이 당신이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21  그때에 예수께서는 크고 작은 병과 악한 영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으며,+ 많은 눈먼 사람이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22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여러분이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십시오. 눈먼 사람이 보고,+ 저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사람이 일으켜지고, 가난한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23  나로 인해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24  요한이 보낸 사람들이 떠나자, 예수께서는 무리에게 요한에 대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여러분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습니까?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입니까?+ 25  아니면 무엇을 보려고 나갔습니까?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입니까?+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스럽게 사는 사람들은 왕궁에 있습니다. 26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보려고 나갔습니까? 예언자입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예언자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입니다.+ 27  그 사람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할 것이다.’+ 28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 중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왕국에서는 작은 자라도 그 사람보다 더 큽니다.”+ 29  (이 말씀을 듣고 모든 사람과 세금 징수원들은 하느님이 의로우시다고 말했다. 그들은 요한의 침례를 받았던 것이다.+ 30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율법에 정통한 자들은 그에게 침례를 받지 않고 자기들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무시했다.)+ 31  “그러므로 이 세대 사람들을 누구에 비하겠습니까? 그들은 누구와 같습니까?+ 32  그들은 마치 장터에 앉아 서로 외치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해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통곡을 해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33  이처럼 침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여러분은 ‘저자는 악귀가 들렸다’ 하고 말합니다. 34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여러분은 ‘저자는 탐식하고 술에 빠진 자이며, 세금 징수원과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합니다.+ 35  그렇지만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에 의해 의롭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36  한 바리새인이 그분에게 함께 식사하자고 계속 청했다. 그래서 그분은 그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식탁에 앉으셨다.+ 37  그때에 그 도시에서 죄인으로 알려진 한 여자가 그분이 그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향유가 담긴 설화 석고 병을 가지고 왔다.+ 38  그리고 그분의 뒤쪽 발치에서 울면서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았다. 또한 그분의 발에 부드럽게 입 맞추며 향유를 부었다. 39  그것을 보고, 그분을 초대한 바리새인이 속으로 말했다. ‘이 사람이 정말 예언자라면 자기를 만지고 있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그 여자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 텐데.’+ 40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당신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그는 “선생님, 말씀하십시오!” 하고 말했다. 41  “어떤 채권자에게 빚진 사람 둘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500데나리온을, 다른 사람은 50데나리온을 빚졌습니다. 42  그들에게 갚을 것이 없었으므로 그는 둘 다 기꺼이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들 중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습니까?” 43  시몬이 대답했다. “그에게 더 많이 용서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올바로 판단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44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이 여자를 보고 있습니까? 내가 당신의 집에 들어왔는데, 당신은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습니다.+ 45  당신은 내게 입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온 시간부터 내 발에 부드럽게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46  당신은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주었습니다. 47  그러므로 당신에게 말하는데, 이 여자의 죄가 많기는* 하지만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 여자가 많이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합니다.” 48  그리고 그분은 그 여자에게 “당신은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49  그러자 그분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이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를 용서해 주기까지 하는가?” 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50  그러나 그분은 그 여자에게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습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각주

직역하면 “지붕 아래로”.
또는 “시신을 운반하는 들것”.
또는 “깨어나십시오!”
또는 “좋은 옷”.
직역하면 “네 얼굴 앞에”.
또는 “지시; 조언; 인도”.
또는 “옳다는”.
또는 “식탁에 앉아”.
또는 “크기는”.

연구 노트

가버나움: “나훔의 마을” 또는 “위로의 마을”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이름에서 유래했다. (나 1:1, 각주) 갈릴리 바다 북서쪽 연안에 있었던 이 도시는 예수의 지상 봉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마 9:1에는 그분 “자신의 도시”라고 되어 있다.

가버나움: 마 4:13 연구 노트 참조.

장교: 또는 “백인대장”. 백인대장은 약 100명의 군인을 거느린 로마군 지휘관이었다.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그분에게 보내어: 평행 기록인 마 8:5에는 “한 장교가 그분에게 왔다”고 되어 있다. 유대인 장로들이 이 장교를 위해 대신 부탁하려고 온 것 같다. 누가만이 이러한 세부점을 언급한다.

얼마 후에: 일부 고대 사본에는 “다음 날”로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본문에 사용된 표현이 사본상으로 더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

나인: 갈릴리의 도시. 가버나움에서 남서쪽으로 35킬로미터가량 떨어져 있었다. 예수께서는 가버나움에 계시다가 나인으로 오셨을 것이다. (눅 7:1-10)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나인은 이 구절에 단 한 번 언급된다. 이 도시는 네인이라는 오늘날의 마을과 같은 곳으로 여겨지는데, 네인은 나사렛에서 남남동쪽으로 1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고 ‘모레 언덕’의 북서쪽에 있다. 오늘날 이 마을은 매우 작지만 이 지역에 있는 유적들을 보면 이곳이 이전에는 훨씬 규모가 컸음을 알 수 있다. 이곳은 이스르엘 평야를 굽어보고 있으며,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신 기록이 세 번 나오는데, 나인은 그중 첫 번째 부활이 있었던 곳이다. 다른 두 번의 부활은 가버나움과 베다니에서 있었다. (눅 8:49-56; 요 11:1-44) 그보다 약 900년 앞서, 인근 마을인 수넴에서 예언자 엘리사가 수넴 여자의 아들을 부활시킨 적이 있다.—왕하 4:8-37.

외아들: 직역하면 “독생자”. 그리스어 모노게네스는 “독생(한)”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 단어는 “그 종류에서 하나뿐인; 유일한”으로 정의된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눅 7:12; 8:42; 9:38 연구 노트 참조) 사도 요한의 기록에서 이 단어는 예수에게만 사용된다. (요 3:16, 18; 요1 4:9) 요한은 예수가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인간으로 존재한 일을 언급할 때는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 이전의 예수를 묘사할 때만 이 단어를 사용한다. 그분은 “세상이 있기 전”부터 계셨고 “시초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며” 로고스 즉 ‘말씀’이셨다. (요 1:1, 2; 17:5, 24) 예수는 여호와의 맏아들이고 그분이 직접 창조하신 유일한 분이므로 “독생자”이시다. 다른 영적 피조물들도 “참하느님의 아들들”이나 “하느님의 아들들”로 불리기는 하지만 (창 6:2, 4; 욥 1:6; 2:1; 38:4-7) 그 아들들은 모두 맏아들을 통해 창조되었다. (골 1:15, 16) 요약해 보면, 모노게네스는 예수께서 “단 하나뿐인; 유일한; 비할 데 없는” 분이라는 의미와 그분이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유일한 아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요1 5:18. 히 11:17 연구 노트 참조.

독생자: 그리스어 모노게네스는 “독생(한)”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 단어는 “그 종류에서 하나뿐인; 유일한”으로 정의된다. 사도 요한의 기록에서 이 단어는 예수에게만 사용된다. (요 1:14; 3:18; 요1 4:9. 요 1:14 연구 노트 참조) 하느님께서 만드신 다른 영적 피조물들도 하느님의 아들들로 불리기는 하지만, 예수만이 “독생자”라고 불리신다. (창 6:2, 4; 욥 1:6; 2:1; 38:4-7) 예수는 맏아들로서 아버지께서 직접 창조하신 유일한 분이므로, 하느님의 다른 아들들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였다. 하느님의 다른 아들들은 여호와께서 맏아들을 통해 창조하셨다. 바울은 그리스어 모노게네스를 비슷한 방식으로 사용하여, 이삭이 아브라함의 “독생자”라고 말했다. (히 11:17, 각주) 아브라함에게는 하갈이 낳은 아들 이스마엘과 그두라가 낳은 여러 아들이 있었지만 (창 16:15; 25:1, 2; 대상 1:28, 32) 특별한 의미에서 이삭이 그의 “독생자”였다. 이삭은 하느님의 약속에 의해 태어난 유일한 아들이었으며 사라가 낳은 하나뿐인 아들이기도 했다.—창 17:16-19.

성문: 직역하면 “도시의 문”. 그리스어 폴리스(“도시”)는 나인을 가리키는 데 세 번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주로 성벽이 있는 도시를 의미하지만, 나인 주위로 성벽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만약 나인 주위에 성벽이 없었다면 여기서 “성문”은 단순히 이 도시 안으로 들어가는 길의 초입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일부 고고학자들은 나인 주위에 성벽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경우이든, 예수와 제자들이 장례 행렬을 만난 곳은 나인의 동쪽 입구에 있는 “성문”이었을 것이다. 그 성문은 오늘날의 네인 남동쪽 경사지에 있는 묘지로 가는 방향에 있었다.

외아들: 직역하면 “독생자”. 그리스어 모노게네스는 “독생(한)”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 단어는 “그 종류에서 하나뿐인; 유일한; 어떤 부류나 종류 중에서 유일한”으로 정의된다. 이 단어는 아들이든 딸이든 부모와의 관계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이 문맥에서는 하나뿐인 자녀라는 의미로 쓰였다. 동일한 그리스어 단어가 야이로의 “외동딸” 그리고 예수께 고침을 받은, 한 남자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가리키는 데도 쓰였다. (눅 8:41, 42; 9:38) 그리스어 「칠십인역」은 입다의 딸에 대해 말할 때 모노게네스를 사용한다. 성경에서는 그 딸에 관해 이렇게 알려 준다. “그 딸은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었다. 입다에게는 다른 아들이나 딸이 없었다.” (삿 11:34) 사도 요한은 예수를 묘사할 때 모노게네스를 5회 사용했다.—이 단어가 예수에게 사용되었을 때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려면 요 1:14; 3:16 연구 노트 참조.

불쌍히 여겨: 또는 “동정심을 느껴”.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 스플랑크니조마이는 “창자”를 의미하는 단어(스플랑크나)와 관련이 있으며,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강렬한 감정을 나타낸다. 이것은 동정심을 매우 강하게 표현하는 그리스어 단어 중 하나이다.

자기 제자 가운데 두 사람: 평행 기록인 마 11:2, 3에는 침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을 보냈다고만 되어 있다. 누가는 제자의 수가 몇 명인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나병: 매우 심각한 피부병. 성경에서 말하는 나병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나병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나병 진단을 받은 사람은 병이 나을 때까지 따로 떨어져 살아야 했다.—레 13:2, 각주, 45, 46. 용어 설명 “나병; 나병 환자” 참조.

나병 환자: 마 8:2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나병; 나병 환자” 참조.

물로 침례를 줍니다: 또는 “물에 잠기게 합니다”. 그리스어 밥티조는 “담그다; 빠뜨리다”를 의미한다. 성경에 이 단어가 나오는 다른 사례들은 침례가 물에 완전히 잠기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요한은 살림 근처의 요르단 골짜기 어딘가에서 침례를 베푼 적이 있다. “그곳에 물이 많았기 때문이다.” (요 3:23) 빌립이 에티오피아 환관에게 침례를 베풀었을 때, 두 사람 모두 “물로 들어갔다.” (행 8:38) 또한 「칠십인역」 왕하 5:14에서는 나아만이 “요르단 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근” 일을 묘사할 때 동일한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회개의 상징인 침례: 직역하면 “회개의 침례”. 침례를 받는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요한에게 침례를 받는 것은 율법을 어긴 죄에 대해 공개적으로 회개함으로, 행실을 변화시키겠다는 결심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처럼 회개하는 태도를 나타내는 것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갈 3:24) 이와 같이 요한은 한 백성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을 볼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었다.—눅 3:3-6. 마 3:2, 8, 11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침례”; “회개” 참조.

침례: 그리스어 밥티스마는 “물에 잠기는 것; 몸을 담그는 것”을 의미한다.—마 3:11; 막 1:4 연구 노트 참조.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요한의 금욕적인 생활을 표현한 말인 것 같다. 그는 단식을 했으며 나실인에게 주어진 명령에 따라 술도 마시지 않았다.—민 6:2-4; 마 9:14, 15; 눅 1:15; 7:33.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마 11:18 연구 노트 참조.

세금 징수원들: 많은 유대인이 로마 당국을 위해 세금을 징수했는데, 그들은 사람들이 반감을 품고 있는 외국의 세력에 협조할 뿐 아니라 세금을 공식적인 세율보다 더 많이 거둬들였기 때문에 미움을 받았다. 세금 징수원들은 대체로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당했으며 죄인이나 매춘부와 같은 부류로 여겨졌다.—마 11:19; 21:32.

세금 징수원: 마 5:46 연구 노트 참조.

자녀에 의해: 또는 “그 결과로”. 이 구절에서는 지혜를 의인화하여 자녀를 가진 것으로 표현한다. 평행 성구인 마 11:19에서는 지혜가 “일”을 한다고 표현한다. 이 구절들에서 지혜의 자녀 또는 일은 침례자 요한과 예수의 의로운 일과 행실을 가리키며, 그러한 일과 행실은 그 두 사람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이 거짓임을 증명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셈이다. ‘우리의 의로운 일과 행실을 보십시오. 그러면 그러한 비난이 거짓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네 복음서 필자 중 누가만이 예수께서 바리새인들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으셨으며 그 초대를 받아들이셨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분이 그렇게 하신 다른 경우가 눅 11:37; 14:1에도 나온다.

죄인으로 알려진 한 여자: 성경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알려 준다. (대하 6:36; 롬 3:23; 5:12) 따라서 여기서는 “죄인”이라는 단어가 좀 더 구체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 것으로 알려진 사람, 아마도 부도덕한 행동이나 범죄 행위를 일삼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 같다. (눅 19:7, 8) 이 여자는 아마도 매춘부였던 것 같다. 복음서 필자 가운데 누가만이 예수의 발에 기름을 부은 이 여자에 대해 기록했다. “~으로 알려지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은 문자적으로 “~이다”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 문맥에서는 어떤 사람의 두드러진 특성이나 특징 또는 어떤 사람이 속한 부류를 밝히는 데 사용된 것 같다.

죄: 직역하면 “빚”. 누군가에게 죄를 짓는 것은 그에게 갚아야 할 빚 즉 이행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과 같다. 따라서 그에게 반드시 용서를 구해야 한다. 하느님의 용서를 받는 것은 자신에게 빚을 진 사람들 곧 죄를 지은 사람들을 용서해 주었는지에 달려 있다.—마 6:14, 15; 18:35; 눅 11:4.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탕감하다”는 “용서하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빚”은 비유적인 의미로 죄를 가리키기도 한다.—마 6:12 연구 노트 참조.

우리에게 빚진: 또는 “우리에게 죄를 지은”. 누군가에게 죄를 짓는 것은 그에게 갚아야 할 비유적인 빚 즉 이행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과 같다. 따라서 그에게 반드시 용서를 구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산상 수훈 가운데서 모범 기도를 가르치실 때 라는 표현 대신 “빚”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마 6:12 연구 노트 참조) 용서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는 문자적으로 “떠나가게 하다”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빚을 갚을 것을 요구하지 않음으로 빚을 떠나가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빚진 사람 둘: 기원 1세기 당시 유대인들은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때때로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잘 아는 그러한 관계를 비유의 소재로 사용하셨다. (마 18:23-35; 눅 16:1-8) 복음서 필자 가운데 누가만이 두 명의 빚진 사람에 관한 이 비유를 기록했다. 이 비유에 나오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 비해 열 배나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는 그분을 초대한 바리새인 시몬이 자신의 집에 들어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자에 대해 가진 생각 때문이었다. (눅 7:36-40) 예수께서는 죄를, 너무 많아서 갚을 수 없는 빚에 비하면서 이러한 원칙을 강조하신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합니다.”—눅 7:47. 마 6:12; 18:27; 눅 11:4 연구 노트 참조.

데나리온: 로마의 은화. 무게가 약 3.85그램이며 한 면에 카이사르의 초상이 새겨져 있었다. 마 20:2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 시대에 농사일을 하는 일꾼들은 보통 하루에 12시간을 일하고 1데나리온을 받았다.—용어 설명부록 나14 참조.

발 씻을 물: 오늘날 세계의 여러 지역과 마찬가지로, 고대 사람들은 먼 거리를 이동할 때 주로 걸어다녔다. 일반 사람들 중에는 맨발로 다니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는 바닥에 가죽끈을 단 단순한 형태의 신발 즉 샌들을 신었다. 집에 들어갈 때는 샌들을 벗었다. 손님의 발을 씻겨 주는 것은 후대에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집주인이나 종이 직접 발을 씻겨 주거나, 적어도 발 씻을 물을 손님에게 주었다.—창 18:4; 24:32; 삼상 25:41; 눅 7:37, 38.

당신은 내게 입 맞추지 않았지만: 성경 시대에는 입을 맞추는 행동이 애정이나 존경심의 표현이었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입술(잠 24:26)이나 뺨, 드물게는 발(눅 7:37, 38)에 입을 맞추었던 것 같다. 입을 맞추는 일은 남자와 여자 친족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창 29:11; 31:28) 남자 친족 사이에서도 (창 27:26, 27; 45:15; 출 18:7; 삼하 14:33) 흔히 있었다. 가까운 친구 사이에도 그러한 행동으로 애정을 표현하곤 했다.—삼상 20:41, 42; 삼하 19:39.

미디어

왕궁
왕궁

예수께서 “왕궁”에 사는 사람들을 언급하셨을 때(눅 7:25; 마 11:8), 그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헤롯 대왕이 지은 호화로운 여러 궁전을 떠올렸을 것이다. 사진에 나오는 것은 헤롯 대왕이 예리코에 지은 겨울 궁전 건물 일부분의 유적이다. 이 건물에는 주랑(콜로네이드)이 있는, 길이 29미터 너비 19미터의 연회장이 있었다. 또한 많은 방으로 둘러싸여 있고 주랑이 있는 뜰도 있었으며, 냉난방 시설을 갖춘 목욕탕이 있었다. 궁전은 여러 층으로 된 정원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궁전은 침례자 요한이 봉사를 시작하기 몇십 년 전에 일어난 반란 중에 불탄 것 같으며, 헤롯의 아들인 아르켈라오스에 의해 다시 지어졌다.

장터
장터

일부 장터는 이 삽화에 묘사된 것처럼 길을 따라 형성되어 있었다. 상인들이 거리에 물건을 너무 많이 내어놓아서 통행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장터에서는 생활용품, 도기류, 값비싼 유리 제품과 싱싱한 농산물을 살 수 있었다. 당시에는 냉장 시설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필요한 것을 사러 매일 장터에 와야 했다. 장터는 상인들이나 그 밖의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곳이기도 했으며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일을 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예수께서는 장터에서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셨으며 바울은 장터에서 사람들에게 전파했다. (행 17:17) 그와는 대조적으로, 교만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터에서 주목을 받고 인사받는 것을 좋아했다.

뼈로 만든 피리
뼈로 만든 피리

성경 시대에 피리는 갈대나 식물의 줄기로 만들었으며 동물 뼈나 상아로 만들기도 했다. 피리는 매우 흔히 사용되는 악기였다. 연회나 결혼식과 같은 즐거운 행사 때 피리를 연주했으며(왕상 1:40; 사 5:12; 30:29) 아이들은 공공장소에서 이러한 관습을 흉내 내곤 했다. 또한 슬픈 일이 있을 때에도 피리를 연주했다. 애도하는 일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피리로 슬픈 곡조를 연주하는 사람들과 함께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에 나오는 피리는 예루살렘의 돌무더기 층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돌무더기는 로마군이 성전을 무너뜨릴 당시에 생긴 것이다. 이 피리는 길이가 약 15센티미터이고 소의 다리뼈로 만들어진 것 같다.

설화 석고 병
설화 석고 병

향유를 담는, 화병처럼 생긴 작은 용기의 명칭. 원래 이러한 용기는 이집트 알라바스트론 근처에서 발견되는 돌로 만들었다. 일종의 탄산 칼슘인 이 돌도 알라바스트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어, 앨러배스터 즉 설화 석고로 불린다. 사진에 나오는 병은 이집트에서 발견된 것으로, 기원전 150년에서 기원 1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다. 비슷하게 생긴 병을 석고와 같은 값이 더 싼 재료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한 병도 용도가 같았기 때문에 설화 석고 병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진짜 설화 석고로 만든 병은 더 값비싼 유액이나 향유를 담는 데 사용되었다. 예수께는 그런 값비싼 향유가 두 차례 부어졌는데, 한 번은 갈릴리에 있는 바리새인의 집에 계실 때였고, 또 한 번은 베다니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