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3:1-56

23  그리하여 군중이 모두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갔다.+  그들은 그분을 이렇게 고발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 민족을 선동하고,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지 못하게 하고,+ 자기가 그리스도 왕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그분에게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빌라도가 수제사장들과 무리에게 말했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겠소.”+  그러나 그들은 끈질기게 주장했다. “그는 갈릴리에서 시작해서 이곳에 이르기까지 유대 전역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며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빌라도는 예수가 갈릴리 사람인지를 물었다.  빌라도는 그분이 헤롯의 관할 구역에+ 속한 것을 알고 그분을 헤롯에게 보냈다. 그 무렵 헤롯도 예루살렘에 있었다.  헤롯은 예수를 보자 크게 기뻐했다. 예수에 관한 소문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꽤 오래전부터 그분을 보고 싶어 했으며,+ 그분이 행하시는 표징을 보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헤롯은 그분에게 많은 질문을 했으나, 그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0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거듭 일어서서 그분을 격렬하게 고발했다. 11  헤롯은 자기 군인들과 함께 그분을 모욕하고,+ 그분에게 화려한* 옷을 입혀 조롱한 뒤에+ 빌라도에게 돌려보냈다.+ 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서로 적의를 품고 있었지만, 바로 그날 서로 친구가 되었다. 13  빌라도는 수제사장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14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이 사람이 백성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자라고 해서 나에게 데려왔소. 그런데 내가 여러분 앞에서 이 사람을 심문해 보았지만, 여러분이 고발하는 죄목에 대해 아무 근거도 찾지 못했소.+ 15  사실, 헤롯이 이 사람을 우리에게 돌려보낸 것을 보면 그도 아무런 잘못을 찾지 못한 것이오. 이 사람은 사형당할 만한 일을 전혀 저지르지 않았소. 16  그러니 이 사람에게 벌을 준 다음+ 놓아주겠소.” 17  —— 18  그러나 무리가 모두 외쳤다. “그자를 죽이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주시오!”+ 19  (그는 도시에서 일어난 폭동과 살인으로 감옥에 갇힌 사람이었다.) 20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고 싶어서 다시 그들에게 외쳤다.+ 21  그러자 그들은 소리를 지르며 “기둥에 다시오! 기둥에 다시오!”* 하고 말했다.+ 22  빌라도는 세 번째로 그들에게 말했다. “이유가 무엇이오?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짓을 했소? 나는 그에게서 사형에 처할 죄를 전혀 찾지 못했소.+ 그러니 그에게 벌을 준 다음 놓아주겠소.” 23  그러나 그들은 큰 소리로 그분을 처형하라고* 끈질기게 요구했고, 그들의 목소리가 이겼다.+ 24  그래서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대로 하기로 결정했다. 25  빌라도는 그들이 요구하던 사람 곧 폭동과 살인으로 감옥에 갇혀 있던 자를 놓아주고 예수는 그들의 뜻대로 하게 내주었다. 26  그들은 그분을 끌고 가다가, 시골에서 오던 키레네의 시몬이라는 사람을 잡아 형주를 지우고 예수의 뒤를 따르게 했다.+ 27  매우 많은 사람이 그분을 뒤따랐다. 그 가운데는 그분 때문에 비탄에 잠겨 가슴을 치고 통곡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28  예수께서 그 여자들을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이여, 더는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우십시오.+ 29  사람들이 ‘임신하지 못하는 여자와 출산하지 않은 태와 젖 먹이지 않은 가슴이 행복하다!’ 하고 말할 날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30  그때에 그들은 산에게 ‘우리 위에 무너져라!’, 언덕에게 ‘우리를 덮어라!’ 하고 말할 것입니다.+ 31  나무에 물기가 있을 때에도 그들이 이렇게 한다면, 나무가 말라 버릴 때에는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32  다른 두 죄수도 그분과 함께 처형당하러 끌려가고 있었다.+ 33  ‘해골’이라는 곳에 이르자,+ 거기서 그들은 그분을 기둥에 못 박고 죄수들을 하나는 그분의 오른편에, 하나는 그분의 왼편에 달았다.+ 34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그분의 옷을 나누어 가지려고 제비뽑기를 했다.+ 35  사람들은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비웃으며 “저자가 남들을 구했으니, 만일 하느님의 그리스도, ‘선택된 자’라면 자기도 구해 보라지” 하고 말했다.+ 36  군인들도 그분에게 다가가 신 포도주를 주고+ 조롱하면서 37  “네가 유대인의 왕이라면, 너 자신을 구해 보아라” 하고 말했다. 38  그분 위에는 “이는 유대인의 왕이다”라고 적힌 패가 있었다.+ 39  기둥에 달린 죄수 중 하나가 그분에게 “당신은 그리스도가 아니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해 보시오!” 하고 모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40  그러자 다른 하나가 그를 꾸짖으며 말했다. “네가 같은 판결을 받고서도 하느님이 조금도 두렵지 않으냐? 41  우리가 이렇게 된 건 당연하다.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으셨다.” 42  그리고 그는 말했다. “예수여, 주의 왕국에 들어가실 때에+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43  그러자 그분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오늘 당신에게 말하는데,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 44  제6시쯤 되었을 때에, 어둠이 온 땅을 덮어 제9시까지 계속되었다.+ 45  해가 빛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신성한 곳의 휘장+ 한가운데가 찢어졌다.+ 46  예수께서는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셨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의 손에 맡깁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분은 숨을 거두셨다.+ 47  그러자 장교가 그 일을 보고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며 “참으로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었다” 하고 말했다.+ 48  구경하러 그곳에 모였던 무리도 일어난 일을 보자 모두 가슴을 치며 집으로 돌아갔다. 49  그분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멀리 서 있었다. 또한 갈릴리에서부터 그분을 따르던 여자들도 그곳에서 이러한 일들을 보았다.+ 50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의회 의원이며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다.+ 51  (이 사람은 그들의 계략과 행동을 지지하는 투표를 하지 않았었다.) 그는 유대 사람들의 도시인 아리마대 출신으로 하느님의 왕국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52  이 사람이 빌라도 앞에 가서 예수의 시신을 달라고 했다. 53  그리고 시신을 내려+ 고운 아마포로 싼 다음,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에 그 시신을 뉘었다.+ 그것은 아직 아무도 누인 적이 없는 무덤이었다. 54  그날은 준비일이었으며,+ 안식일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55  갈릴리에서 그분과 함께 왔던 여자들이 뒤따라가 무덤을 보고, 그 시신이 어떻게 뉘어져 있는지 보았다.+ 56  그리고 돌아가서 향료와 향유를 준비했다. 물론, 그들도 안식일에는 계명에 따라 쉬었다.+

각주

또는 “밝게 빛나는”.
또는 “그를 기둥에 달아 처형하시오! 그를 기둥에 달아 처형하시오!”
또는 “기둥에 달아 처형하라고”.

연구 노트

카이사르: 또는 “황제”. 예수께서 땅에서 봉사하시던 기간에 로마 황제는 티베리우스였지만, “카이사르”라는 말은 티베리우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이 말은 로마의 세속 권위 즉 국가와 국가에 의해 정식으로 임명된 대표자들을 가리킬 수 있는 표현이었다. 바울은 그들을 “위에 있는 권위”라고 불렀으며, 베드로는 “왕”과 “총독들”이라고 불렀다.—롬 13:1-7; 벧전 2:13-17; 딛 3:1. 용어 설명 참조.

카이사르: 마 22:17 연구 노트 참조.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빌라도의 말이 맞다고 인정하는 표현인 것 같다. (마 26:25, 64 연구 노트 비교)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자신이 왕임을 인정하기는 하셨지만, 그분의 말씀은 빌라도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였다. 그분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으므로 로마에 위협이 되지 않았다.—요 18:33-37.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네 복음서 필자 모두 빌라도가 한 질문을 기록했는데, 네 명 다 동일한 표현을 사용했다. (마 27:11; 막 15:2; 눅 23:3; 요 18:33) 로마 제국 내에서는 카이사르의 승인을 받아야만 왕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할 때 그분이 왕인지를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 같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 27:11 연구 노트 참조.

헤롯: 헤롯 대왕의 아들인 헤롯 안티파스를 가리킨다. 안티파스는 갈릴리와 페레아의 지역 통치자(분봉왕)였다. 복음서 필자 가운데 누가만이 예수께서 헤롯에게 보내지셨다는 점을 언급한다.—눅 3:1. 용어 설명 참조.

진홍색 외투: 왕이나 행정관, 군대 장교들이 입던 긴 옷을 가리킨다. 막 15:17과 요 19:2에서는 이 옷이 자주색이라고 알려 준다. 고대에는 빨강과 파랑이 섞인 색은 어느 색이든 “자주색”이라고 불렀다. 또한 각도나 빛의 반사, 배경 때문에 옷 색깔이 다르게 보였을 가능성도 있다. 복음서 필자들이 이처럼 색을 다르게 묘사한 것을 볼 때 그들이 단순히 다른 사람의 기록을 베껴 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분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예수와 그분의 왕권을 조롱하기 위해 한 행동이다. 마태복음(27:28)에서는 군인들이 예수에게 왕이나 행정관, 군대 장교들이 입던 긴 옷인 “진홍색 외투”를 걸치게 했다고 말한다. 마가복음과 요한복음(19:2)에서는 이 옷이 자주색이었다고 말한다. 고대에는 빨강과 파랑이 섞인 색은 어느 색이든 “자주색”이라고 불렀다. 또한 각도나 빛의 반사, 배경 때문에 옷 색깔이 다르게 보였을 가능성도 있다. 복음서 필자들이 이처럼 색을 다르게 묘사한 것을 볼 때 그들이 단순히 다른 사람의 기록을 베껴 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화려한 옷: 명목상의 유대인이자 갈릴리와 페레아의 지역 통치자이던 헤롯 안티파스가 예수를 빌라도에게 돌려보내기 전에 자신이 가진 화려한 왕복, 아마도 흰색이었을 왕복을 내주어 예수에게 입히도록 했을 수 있다. 헤롯은 예수를 유대인의 가짜 왕으로 조롱하려는 의도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여기서 “옷”으로 번역된 그리스어(에스테스)는 일반적으로 장식이 화려한 긴옷이나 옷을 가리킨다. 천사들은 그러한 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눅 24:4. 또한 약 2:2, 3 참조) 이 그리스어 단어는 헤롯 아그리파 1세가 입은 “왕복”을 묘사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행 12:21) 여기서 “화려한”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람프로스)는 “빛나다”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가 옷과 관련하여 사용되면 좋은 옷을 가리키며 빛나는 옷이나 흰색 옷을 가리키기도 한다. 헤롯이 입힌 옷은 나중에 빌라도의 군인들이 총독 관저에서 예수에게 입힌 진홍색 외투 또는 자주색 옷과는 다른 옷이었음이 분명하다. (마 27:27, 28, 31; 요 19:1, 2, 5. 마 27:28; 막 15:17 연구 노트 참조) 헤롯과 빌라도와 로마 군인들은 모두 같은 의도로, 즉 예수를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조롱하려는 의도로 이 두 옷을 입혔던 것 같다.—요 19:3.

일부 사본에는 이 구절에 다음과 같은 말이 들어 있다. “그런데 그는 축제 때마다 한 사람을 그들에게 놓아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몇몇 권위 있는 초기 사본들에는 이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 말은 누가복음의 원문의 일부가 아닌 것 같다. 다른 몇몇 사본들에는 이 말이 19절 뒤에 나온다.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말이 마 27:15과 막 15:6에 나오는데, 그 구절들의 경우에는 그 말이 원문의 일부라는 점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필사자들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나오는 평행 기록을 근거로 누가복음의 이 구절에 설명하는 말을 추가한 것으로 여겨진다.

죄수 하나를 ··· 놓아주는 관례: 복음서 필자 네 명 모두 이 일을 언급한다. (막 15:6-15; 눅 23:16-25; 요 18:39, 40)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런 관례의 근거나 사례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 시대에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이런 전통이 지켜지고 있었던 것 같다. 로마인들도 이 관례를 생소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증거에 따르면 그들도 민심을 달래기 위해 죄수들을 풀어 주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죄수 하나를 놓아주곤 했다: 복음서 필자 네 명 모두 이 일을 언급한다. (마 27:15-23; 눅 23:16-25; 요 18:39, 40)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런 관례의 근거나 사례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 시대에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이런 전통이 지켜지고 있었던 것 같다. 로마인들도 이 관례를 생소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증거에 따르면 그들도 민심을 달래기 위해 죄수들을 풀어 주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사람을 놓아주는 관례가 있소: 죄수를 놓아주는 이러한 관례는 마 27:15과 막 15:6에도 언급된다. 빌라도가 한 말의 원문 표현을 직역하면 “여러분에게는 내가 여러분에게 ··· 관례가 있소”이다. 그가 유대인들에게 ‘여러분에게는 관례가 있소’라고 한 것을 보면 이것은 유대인의 관례였던 것 같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런 관례의 근거나 사례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 시대에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이런 전통이 지켜지고 있었던 것 같다. 로마인들도 이 관례를 생소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증거에 따르면 그들도 민심을 달래기 위해 죄수들을 풀어 주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주시오: 복음서 필자 네 명 모두 눅 23:16-25에 묘사된 일을 언급한다. (마 27:15-23; 막 15:6-15; 요 18:39, 40) 마태와 마가와 요한은 총독이 축제 때 죄수 한 명을 놓아주는 관례가 있었다는 점을 덧붙인다.—마 27:15; 막 15:6; 요 18:39 연구 노트 참조.

키레네: 북아프리카 해안 근처의 도시로, 크레타섬 남남서쪽에 있었다. (부록 나13 참조) 시몬은 키레네에서 태어났지만 후에 이스라엘에 정착한 사람이었을 수 있다.

형주: 또는 “고통의 기둥”.—용어 설명 “기둥(2)”; “형주” 참조. 또한 이 단어가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된 눅 9:23; 14:27 참조.

나무에 물기가 있을 때 ··· 나무가 말라 버릴 때: 예수께서는 유대 민족을 가리켜 이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유대 민족은 죽어 가고 있지만 아직 물기가 조금 남아 있는 나무와 같았다. 예수와 그분을 믿는 소수의 유대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곧 처형당하실 것이었으며, 충실한 유대인들은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영적 이스라엘의 일부가 될 것이었다. (롬 2:28, 29; 갈 6:16) 그러면 육적 이스라엘 나라는 말라 버린 나무처럼 영적으로 죽은 상태가 될 것이었다.—마 21:43.

죄수: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카쿠르고스)는 문자적으로 “나쁜 일이나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평행 기록인 마 27:38, 44과 막 15:27에서는 이 사람들을 “강도”로 언급하는데,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레이스테스)는 폭력을 휘둘러 물건을 강탈하는 사람을 가리킬 수 있으며 때로는 혁명을 꾀하는 사람을 의미할 수도 있다. 레이스테스는 바라바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었는데, (요 18:40) 눅 23:19에 따르면 그는 “폭동”과 “살인”으로 감옥에 갇힌 사람이었다.

골고타: “해골”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굴골레트에서 유래했다. (요 19:17 참조. 굴골레트가 “두개골”로 번역된 삿 9:53 비교) 예수 시대에는 이 장소가 예루살렘 성벽 밖에 있었다. 하지만 그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부록 나12 참조) 성경은 골고타가 언덕에 있었다고 언급하지는 않지만, 일부 사람들이 예수께서 처형되시는 것을 멀리서 볼 수 있었다고 알려 준다.—막 15:40; 눅 23:49.

‘해골’: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크라니온은 히브리어 이름 골고타에 해당한다. (요 19:17마 27:33 연구 노트 참조) 일부 영어 성경 번역판은 이 구절에서 “갈보리”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표현은 “해골”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칼바리아에서 나온 말로, 「불가타」에서 사용되었다.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문맥에서는 예수께서 누구를 위해 이러한 요청을 하셨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아마도 그분은 자신의 처형을 요구했던 무리를 염두에 두고 이러한 요청을 하신 것 같다. 얼마 후에 그들 중 일부는 회개했다. (행 2:36-38; 3:14, 15) 또한 예수를 기둥에 못 박았던 로마 군인들은 예수가 누구이신지를 몰랐기 때문에 자신들이 얼마나 심각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거나 깨닫지 못했다. 한편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책임이 있는 수제사장들을 용서해 달라고 아버지께 요청하셨을 리는 없다. 그들은 예수를 죽이기로 모의할 때 자신들이 어떤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시기심 때문에 그분을 넘겨주었다. (마 27:18; 막 15:10; 요 11:45-53) 또한 예수께서 그분 옆에서 처형된 죄수들을 용서해 달라고 아버지께 요청하신 것도 아닐 것이다. 그들은 둘 다 그분의 죽음에 대해 책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 모릅니다: 이 구절의 앞부분은 몇몇 고대 사본에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권위 있는 초기 사본들에 이 말이 나오기 때문에 「신세계역」을 비롯한 많은 성경 번역판에는 이 말이 들어 있다.

포도주: 또는 “포도주 식초”. 묽고 톡 쏘는 신 포도주를 가리키는 것 같다. 라틴어로 아케툼(식초)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이것을 물로 희석한 것은 포스카라고 불렀다. 이것은 로마 군인을 비롯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흔히 마시던 값싼 음료였다. 신 포도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 옥소스「칠십인역」시 69:21에서도 사용되었는데, 그 구절에서는 사람들이 메시아에게 “식초”를 줄 것이라고 예언한다.

신 포도주: 마 27:48 연구 노트 참조.

그분 위에는: 일부 사본에는 “그분 위에는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히브리어 글자로”로 되어 있다. 하지만 권위 있는 초기 사본들에는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히브리어 글자로”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필사자들이 이 구절과 요 19:20을 일치시키기 위해 이 표현을 삽입한 것으로 여겨진다.

기둥: 또는 “나무”. 이 구절에서 그리스어 크실론(직역하면 “목재”)은 그리스어 스타우로스(“형주; 고통의 기둥”으로 번역됨)의 동의어로 사용되었으며, 예수께서 못 박히신 처형 도구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누가와 바울과 베드로는 크실론을 이러한 의미로 총 다섯 번 사용했다. (행 5:30; 10:39; 13:29; 갈 3:13; 벧전 2:24) 신 21:22, 23에는 “그를 기둥에 매달았다면”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칠십인역」에서는 그 문장에 나오는 히브리어 에츠(나무; 목재; 나무토막)를 그리스어로 번역할 때 크실론을 사용했다. 갈 3:13에서 바울은 신명기의 그 구절을 인용하여 “기둥에 달린 사람은 누구나 저주받은 자다”라고 기록하면서 크실론을 사용했다. 이 그리스어는 「칠십인역」라 6:11(에스드라 1서 6:31, LXX)에서 히브리어 에츠에 해당하는 아람어 를 번역할 때도 사용되었다. 그 구절에는 페르시아 왕의 법령을 어기는 자들에 관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그의 집에서 들보를 뽑아 거기에 매달 것이다.” 크실론이 가로대 없는 곧은 기둥을 의미하므로, 성경 필자들이 크실론스타우로스의 동의어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예수께서 가로대 없는 곧은 기둥에서 처형되셨다는 한 가지 증거가 된다.

기둥에 달린: 직역하면 “달린”.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는 스타우로오(“기둥에 달아 처형하다”)가 아니라 크레만니미(“매달다”)이다. 이 동사는 예수께서 처형되신 일을 묘사할 때 에피 크실루(“기둥 혹은 나무에”)라는 표현과 함께 사용된다. (갈 3:13. 행 5:30 연구 노트 참조) 「칠십인역」에서 이 동사는 기둥이나 나무에 사람을 매다는 것을 묘사할 때 종종 사용된다.—창 40:19; 신 21:22; 더 8:7.

진실로 오늘 당신에게 말하는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사본들은 대문자 형태의 그리스어 글자들로만 기록되어 있으며, 현대 언어들과는 달리 띄어쓰기나 문장 부호가 사용되지 않았다. 일부 서기관들이 문장 부호로 보이는 기호들을 본문에 사용한 경우도 있지만, 그런 기호들은 많이 쓰이지 않았으며 일관성 있게 사용되지도 않았다. 따라서 현대 성경 번역판들에 사용된 문장 부호들은 그리스어 본문의 문법과 해당 구절의 문맥에 근거해서 번역자가 추가한 것이다. 그리스어 본문의 문법은 이 구절에서 “오늘”에 해당하는 단어 앞에 쉼표(또는 콜론)를 넣는 것과 뒤에 넣는 것을 모두 허용한다. “오늘”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 앞에 쉼표를 넣을 경우 “당신에게 말하는데, 오늘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라는 의미가 되고, 쉼표를 뒤에 넣을 경우 “오늘 당신에게 말하는데,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라는 의미가 된다. 예수의 말씀에서 문장 부호를 어디에 넣을 것인지는 그 말씀을 번역자가 어떻게 이해하는지와 성경 전체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에 달려 있다. 웨스트콧과 호트, 네스틀레와 알란트 같은 학자들이 발행한 그리스어 본문이나 세계 성서 공회 연합회가 발행한 그리스어 본문은 “오늘”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 앞에 쉼표를 넣었다. 하지만 “오늘” 뒤에 쉼표를 넣는 것이 예수께서 이전에 하신 말씀들과 성경의 다른 부분에 나오는 가르침들과 조화를 이룬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는 자신이 죽게 될 것이고 셋째 날까지 “땅속” 즉 무덤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마 12:40; 막 10:34) 또한 그분은 자신이 죽임을 당했다가 셋째 날에 일으켜질 것이라고 적어도 두 번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눅 9:22; 18:33) 그에 더해, 성경은 예수께서 “죽어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로 부활되셨으며 40일 뒤에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알려 준다. (고전 15:20; 요 20:17; 행 1:1-3, 9; 골 1:18) 예수께서는 죽임을 당한 바로 그날이 아니라 죽으신 뒤 셋째 날에 부활되셨으므로, 예수 옆에 달린 죄수가 예수의 말씀을 들은 바로 그날에 그분과 함께 낙원에 있을 수는 없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이해와 일치하게, 쿠레토니아 시리아어 사본으로 알려진 기원 5세기 시리아어 역본의 누가복음에서는 예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아멘, 오늘 당신에게 말하는데 당신은 나와 함께 에덴동산에 있을 것입니다.” (F. C. 버킷, 「쿠레토니아 사복음서 역본」[The Curetonian Version of the Four Gospels] 제1권, 케임브리지, 1904년) 주목할 만한 또 한 가지 점은 이 표현을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견이 있다는 점을 초기와 후기의 그리스 저술가들과 주석가들이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기원 4세기와 5세기에 살았던 예루살렘의 헤시키우스는 눅 23:43과 관련하여 이렇게 썼다. “실제로 일부 사람들은 ‘진실로 오늘 당신에게 말하는데’ 뒤에 [그리스어로는 “오늘” 뒤에] 쉼표가 오고, 그다음에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가 이어지는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리스 교부학」[Patrologiae Graecae] 제93권, 1432-1433난에 나오는 그리스어 본문) 기원 11세기와 12세기에 살았던 테오필락투스는 “‘오늘’ 뒤에 문장 부호를 넣어서 ‘진실로 오늘 당신에게 말하는데’라고 한 다음,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라는 표현이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에 대해 기술했다. (「그리스 교부학」 제123권 1104난) G. M. 람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눅 23:43에 나오는 “오늘”이라는 단어의 용법에 대해 이렇게 썼다. “여기서 강조되는 단어는 ‘오늘’이며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이 이해해야 한다. ‘진실로 오늘 당신에게 말하는데,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 그 약속은 그날 맺은 것이며 나중에 이루어질 것이었다. 오리엔트 지역의 이러한 화법은 특정한 날에 그 약속을 했으며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복음의 빛—아람어와 동양 관습을 통해 바라본 예수의 가르침」[Gospel Light​—Comments on the Teachings of Jesus From Aramaic and Unchanged Eastern Customs] 303-304면) 따라서 눅 23:43에 나오는 그리스어 표현은 셈어에서 강조를 위해 사용하는 방식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약속이나 명령과 같이 엄숙함이 담긴 말을 할 때 “오늘”이라는 표현을 그와 같이 관용적 의미로 사용한 많은 예들이 나온다. (신 4:26; 6:6; 7:11; 8:1, 19; 30:15; 슥 9:12) 이러한 증거들을 고려해 볼 때, 예수께서 사용하신 “오늘”이라는 단어는 그 죄수가 낙원에 있게 될 때가 언제인지가 아니라 그 약속을 한 때가 언제인지를 밝혀 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영어로 된 로더럼 역과 람사 역(1933년판), 독일어로 된 L. 라인하르트 역과 W. 미하엘리스 역을 비롯한 많은 번역판들은 약속이 이루어지는 때가 아니라 약속을 한 때가 강조되는 방식으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한 번역판들은 눅 23:43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을 「신세계역」과 비슷한 형태로 번역한다.

‘낙원’: “낙원”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paradise, 파라다이스)는 그리스어 파라데이소스에서 유래했다. 이와 비슷한 단어를 히브리어(파르데스, 느 2:8; 전 2:5; 아 4:13)와 페르시아어(파이리다에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세 단어 모두 아름다운 정원 또는 정원 같은 동산이라는 기본 개념을 전달한다. 「칠십인역」 번역자들은 창 2:8의 “에덴동산”이라는 표현에서 “동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번역할 때 그리스어 파라데이소스를 사용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몇몇 번역판(부록 다에 J17, 18, 22로 표기됨)은 눅 23:43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을 “당신은 나와 함께 에덴동산에 있을 것입니다”로 번역한다. 예수께서는 자신 옆에 달린 죄수에게, 계 2:7에 나오는 “하느님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 아니었다. 계 2:7의 약속은 “이기는 사람” 즉 하늘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될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눅 22:28-30) 이 죄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이긴 사람이 아니었으며, “물과 영에서 난” 사람도 아니었다. (요 3:5; 16:33) 이 죄수는 그리스도께서 낙원이 된 땅을 천 년 동안 다스리실 때 왕국의 지상 국민으로 부활될 “불의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행 24:15; 계 20:4, 6.

제3시: 오전 9시경. 기원 1세기에 유대인들은 해 뜨는 시간인 오전 6시경부터 시작해서 낮을 12시간으로 나누었다. (요 11:9) 따라서 제3시는 오전 9시경, 제6시는 낮 12시경, 제9시는 오후 3시경이었을 것이다. 정확한 시계가 없었으므로, 많은 경우 사건이 일어난 시간을 대략적으로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요 1:39; 4:6; 19:14; 행 10:3, 9.

제3시: 오전 9시경. 기원 1세기에 유대인들은 해 뜨는 시간인 오전 6시경부터 시작해서 낮을 12시간으로 나누었다. (요 11:9) 따라서 제3시는 오전 9시경, 제6시는 낮 12시경, 제9시는 오후 3시경이었을 것이다. 정확한 시계가 없었으므로, 많은 경우 사건이 일어난 시간을 대략적으로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요 1:39; 4:6; 19:14; 행 10:3, 9.

제6시: 낮 12시경.—마 20:3 연구 노트 참조.

어둠: 이 어둠은 하느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에 의한 것이었으며, 일식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일식은 초승달이 뜨는 때에 일어나지만 이때는 유월절 기간이라 보름달이 뜨는 때였다. 그리고 이 어둠은 3시간 동안 계속되었는데, 개기 일식은 아무리 길어도 8분을 넘지 않는다. 누가는 이 일을 묘사하면서 “해가 빛을 잃었다”는 표현을 덧붙인다.—눅 23:45.

제9시: 오후 3시경.—마 20:3 연구 노트 참조.

신성한 곳: 여기서 그리스어 원어 나오스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던 성전의 중앙 건물을 가리킨다.

휘장: 성전에서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걸려 있던 아름답게 장식된 커튼. 유대인의 전통 문헌에 따르면 이 무거운 휘장은 길이가 18미터, 폭이 9미터, 두께가 7.4센티미터 정도 되었다. 여호와께서는 이 휘장이 둘로 찢어지게 하심으로 아들을 죽인 자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셨을 뿐 아니라 하늘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해졌음을 나타내셨다.—히 10:19, 20. 용어 설명 참조.

신성한 곳: 마 27:51 연구 노트 참조.

휘장: 마 27:51 연구 노트 참조.

자신의 영을 내주셨다: 또는 “숨을 거두셨다”. 이 표현에서 “영”(그리스어 프뉴마)이라는 말은 “호흡”이나 “생명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평행 기록인 막 15:37에서 그리스어 동사 엑프네오(직역하면 “숨을 내쉬다”. 이 구절에서는 “숨을 거두다”로 번역되었다)가 사용된 것을 보면 그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일부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내주셨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루어졌으므로 살아 있으려는 노력을 스스로 중단하셨음을 시사한다. (요 19:30) 그분은 기꺼이 “자기 생명을 내주어 죽음에 이르”셨다.—사 53:12; 요 10:11.

제 영을 ··· 맡깁니다: 예수께서는 여기서 시 31:5의 내용을 인용하신 것인데, 그 구절에는 다윗이 하느님께 자신의 영 즉 생명력을 지켜 주실 것을, 보살펴 주실 것을 청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자신의 생명을 하느님의 손에 맡긴다는 의미였다. 예수께서는 죽으실 때 자신의 생명력을 여호와께 맡기셨으며, 이제 그분의 장래 생명의 전망은 전적으로 여호와께 달려 있게 되었다.—용어 설명 “” 참조.

숨을 거두셨다: 그리스어 동사 엑프네오(직역하면 “숨을 내쉬다”)는 여기서 “마지막 숨을 내쉬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마 27:50 연구 노트 참조) 성경은 예수의 영이 그분에게서 나갔을 때 그분이 하늘을 향해 떠나신 것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밝혀 준다. 그분은 숨을 거두신, 다시 말해 사망하신 것이었다. 예수께서 직접 예언하신 것처럼, 그분은 죽임을 당하고 “셋째 날”에 부활되실 것이었다. (마 16:21; 눅 9:22) 행 1:3, 9에서 알려 주듯이, 그분이 실제로 하늘에 올라가신 것은 부활된 지 40일이 지나서였다.

장교: 또는 “백인대장” 즉 약 100명의 군인을 거느린 로마군 지휘관. 마태와 마가의 평행 기록에 따르면, 이 사람은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는 점도 인정했다.—마 27:54; 막 15:39.

요셉: 복음서 필자들이 요셉에 대해 기록한 내용을 보면 각자의 특성이 드러난다. 세금 징수원이었던 마태는 요셉이 “부자”라고 알려 준다. 주로 로마인들을 염두에 두고 복음서를 기록한 마가는 그가 하느님의 왕국을 기다리던 “명망 있는 의회 의원”이라고 말한다. 동정심 많은 의사였던 누가는 그가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예수에 대한 의회의 음모에 찬성하는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알려 준다. 요한만이 그가 “예수의 제자였으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는 점을 밝힌다.—마 27:57-60; 막 15:43-46; 눅 23:50-53; 요 19:38-42.

산헤드린: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 최고 법원. “산헤드린”으로 번역된 그리스어(시네드리온)는 문자적으로 “함께 앉음”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회의나 모임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였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종교적인 사법 기관이나 법정을 가리키기도 했다.—마 5:22 연구 노트용어 설명 참조. 또한 산헤드린 회의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보려면 부록 나12 참조.

요셉: 막 15:43 연구 노트 참조.

의회 의원: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의 최고 법원인 산헤드린의 성원이었다는 의미이다.—마 26:59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산헤드린” 참조.

아리마대: 이 도시의 이름은 “높이; 높음”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했다. 눅 23:51에서는 이 도시를 “유대 사람들의 도시”라고 부른다.—부록 나10 참조.

아리마대: 마 27:57 연구 노트 참조.

무덤: 또는 “기념 무덤”. 천연 동굴이 아니라 무른 석회암을 파서 만든 방이었다. 그 안에는 대개 벽면을 깎아 파서 시신을 놓을 수 있게 만든 공간이 있었다.—용어 설명 “기념 무덤” 참조.

무덤: 마 27:60 연구 노트 참조.

준비일: 매주 지키는 안식일의 전날을 가리키는 명칭. 이날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킬 준비를 했다. 그들은 여분의 음식을 마련했으며 안식일 전에 꼭 해야 하는 급한 일을 끝마쳤다. 여기서 언급된 준비일은 니산월 14일이었다.—막 15:42. 용어 설명 참조.

준비일: 마 27:62 연구 노트 참조.

무덤: 또는 “기념 무덤”.—용어 설명 “기념 무덤” 참조.

미디어

못이 박혀 있는 발꿈치뼈
못이 박혀 있는 발꿈치뼈

사진에 나오는 것은 11.5센티미터 길이 쇠못이 박힌 사람의 발꿈치뼈를 복제한 모형이다. 1968년에 예루살렘 북부에서 발굴된 그 유골은 로마 시대 사람의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당시 죄수를 처형할 때 그를 나무 기둥에 매달기 위해 못을 사용했을 것임을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증거이다. 로마 군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형주에 매달 때도 이와 비슷한 못을 사용했을 수 있다. 못이 박힌 이 유골은 시신이 부패되고 남은 뼈들을 넣어 두는 석재 유골함에서 발견되었다. 이 사실은 형주에서 처형된 사람도 매장될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무덤
무덤

유대인들은 죽은 사람을 대개 동굴에 안치하거나 바위를 깎아 만든 방에 안치했다. 그러한 무덤은 왕의 무덤을 제외하고는 도시 밖에 있는 것이 관례였다. 현재까지 발견된 유대인들의 무덤은 단순한 것이 특징이다. 유대인의 종교가 죽은 자를 숭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사람이 사후에 영계에서 의식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사상을 조장하는 어떤 내용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