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1-71

22  유월절이라고도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없앨 적당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때에 사탄이 열두 제자 중 하나인 가룟이라고 하는 유다에게 들어갔다.+  그는 수제사장들과 성전 대장들에게 가서, 그분을 배반하여 넘겨줄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들은 기뻐하며 그에게 은전을 주기로 합의했다.+  그는 이에 동의하고, 주위에 사람들이 없을 때에 그분을 배반하여 넘겨줄 적당한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유월절 제물을 바쳐야 하는 무교절 날이 되자+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서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그분에게 “어디에다 준비할까요?” 하고 물었다. 10  그분이 말씀하셨다. “도시로 들어가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것입니다. 그 사람이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십시오.+ 11  그리고 그 집의 주인에게 전하십시오. ‘선생님이 “내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할 방*이 어디입니까?”라고 말씀하십니다.’ 12  그러면 그 사람이 잘 갖추어진 큰 위층 방을 보여 줄 것입니다. 그곳에 준비하십시오.” 13  그래서 그들이 가서 보니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유월절을 준비했다. 14  시간이 되자, 그분이 사도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15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 여러분과 함께 이 유월절 식사를 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16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이것이 하느님의 왕국에서 성취될 때까지 내가 다시는 이 식사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7  그분은 잔을 받으신 뒤 감사를 드리고 말씀하셨다. “이 잔을 받아 차례로 돌리십시오. 18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이제부터 나는 하느님의 왕국이 올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겠습니다.”+ 19  또 빵을+ 들어 감사를 드리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며 말씀하셨다. “이것은 여러분을 위해 주는+ 내 몸을 의미합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일을 계속 행하십시오.”+ 20  또 그들이 만찬을 나눈 후에 그분은 잔을 들어 그와 같이 하며 말씀하셨다. “이 잔은 여러분을 위해 쏟는+ 내 피에 의한+ 새 계약을+ 의미합니다.+ 21  그러나 나를 배반하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식탁에 있습니다.+ 22  사실, ‘사람의 아들’은 정해진 대로 자기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를 배반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23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 중에 대체 누가 그런 일을 하겠는가 하고 서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24  그런데 그들 중에 누구를 가장 큰 자로 볼 것인가에 대해 그들 사이에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25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라의 왕들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사람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은인’이라 불립니다.+ 26  하지만 여러분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여러분 중에서 가장 큰 자는 가장 어린 자와 같이 되고,+ 인도하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27  누가 더 큰사람입니까? 식사를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시중드는 사람입니까? 식사를 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나 나는 시중드는 사람으로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28  여러분은 내가 시련을 받는 동안+ 내 곁에 머물러 온 사람들입니다.+ 29  내 아버지께서 나와 계약을 맺으신 것처럼 나도 왕국을 위해 여러분과 계약을 맺습니다.+ 30  그리하여 여러분은 내 왕국의 내 식탁에서 먹고 마시며,+ 왕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31  시몬, 시몬, 사탄이 여러분 모두를 밀처럼 체질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32  그러나 나는 당신의 믿음이 없어지지 않도록 당신을 위해 간구했습니다.+ 당신이 돌아오거든, 당신의 형제들을 강하게 하십시오.”+ 33  그러자 그는 “주여, 저는 감옥이든 죽음이든 주와 함께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34  그러나 그분은 말씀하셨다. “베드로, 당신에게 말하는데,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당신은 나를 안다는 것을 세 번 부인할 것입니다.”+ 35  그분은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분을 돈주머니와 식량 자루와 신발 없이 보냈을 때에+ 여러분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까?” 그들은 “없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36  그러자 그분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제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가고 식량 자루도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칼이 없는 사람은 겉옷을 팔아서 사십시오. 37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그는 불법한 자들 중 하나로 헤아려졌다’라고+ 기록된 말씀이 나에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말씀이 나에게 성취되고 있습니다.”+ 38  그때에 그들이 말했다. “주여, 여기 칼 두 자루가 있습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그만하면 충분합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39  그분은 거기서 떠나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 가셨으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40  그곳에 이르자, 그분은 그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계속 기도하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리고 그들을 떠나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하셨다. 42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신다면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렇지만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43  그때에 한 천사가 하늘에서 그분에게 나타나 힘을 북돋아 주었다.+ 44  그분이 몹시 괴로워서 더욱 간절히 계속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 땅에 떨어졌다. 45  그분이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 제자들에게 와 보시니, 그들은 슬픔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 46  그분은 그들에게 “왜 자고 있습니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 계속 기도하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47  그분이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유다라는 사람이 그들을 이끌고 왔다. 그가 예수께 입 맞추려고 가까이 오자+ 48  예수께서 그에게 “유다, 당신은 입맞춤으로 ‘사람의 아들’을 배반합니까?” 하고 말씀하셨다. 49  그분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아차리고 “주여, 우리가 칼로 칠까요?” 하고 말했다. 50  그 사람들 중 하나가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그의 오른쪽 귀를 잘라 버렸다.+ 51  그러자 예수께서 “그만하십시오” 하고 말씀하시고, 그의 귀를 만져 낫게 해 주셨다. 52  그리고 예수께서는 자신을 잡으러 그곳에 온 수제사장들과 성전 대장들과 장로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강도를 잡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왔습니까?+ 53  내가 날마다 성전에서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는+ 여러분이 나에게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분의 때이며 어둠이 권세를 떨칠 때입니다.”+ 54  그들은 그분을 붙잡아 끌고 가서+ 대제사장의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베드로는 멀리서 따라가고 있었다.+ 55  사람들이 뜰 한가운데에 불을 피워 놓고 함께 앉아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들 가운데 앉았다.+ 56  그런데 어떤 하녀가 불가에 앉아 있는 그를 보고는 자세히 살피더니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어요” 하고 말했다. 57  그러나 베드로는 “여보시오, 나는 그를 모르오” 하고 부인했다.+ 58  얼마 후에, 다른 사람이 베드로를 보고 “당신도 그들과 한패요”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여보시오, 나는 아니오” 하고 말했다.+ 59  한 시간쯤 지난 뒤, 또 다른 사람이 “이 사람이 갈릴리 사람인 걸 보니 그와 함께했던 것이 틀림없소!” 하고 강력히 주장했다. 60  그러나 베드로는 “여보시오,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하고 말했다. 그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곧 닭이 울었다. 61  그때에 주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똑바로 바라보셨다. 베드로는 주께서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당신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입니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62  밖으로 나가 몹시 울었다. 63  예수를 지키던 사람들이 그분을 조롱하며+ 때리기 시작했다.+ 64  그들은 그분의 얼굴을 가리고 “알아맞혀 보아라! 누가 너를 쳤느냐?” 하고 물었다. 65  그들은 그 밖에도 온갖 말로 그분을 모독했다. 66  날이 밝자, 백성의 장로의 회 곧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함께 모여+ 그분을 산헤드린 회의실로 끌고 가 말했다. 67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우리에게 말하시오.”+ 그러나 그분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해도 여러분은 결코 믿지 않을 것입니다. 68  또 내가 여러분에게 질문해도 여러분은 대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69  하지만 이제부터 ‘사람의 아들’은+ 하느님의 권능의 오른편에 앉을 것입니다.”+ 70  그러자 그들 모두가 “그러면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오?” 하고 말했다. 그분은 그들에게 “내가 그라고 여러분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71  그들이 말했다. “우리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을 직접 들었으니, 우리에게 무슨 증언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각주

또는 “손님방”.
또는 “식탁에 앉아 있는”.
또는 “식탁에 앉아 있는”.

연구 노트

유월절이라고도 하는 무교절: 엄밀히 말하면, 니산월 14일에 지키는 유월절과 니산월 15일부터 21일까지 계속되는 무교절은 서로 다른 것이었다. (레 23:5, 6; 민 28:16, 17. 부록 나15 참조) 하지만 유월절과 무교절이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 시대에는 니산월 14일을 포함하여 8일 전체가 하나의 축제로 여겨졌다. 요세푸스는 “무교절이라고 불리는 8일간의 축제”에 대해 언급했다. 눅 22:1-6에 나오는 사건들은 기원 33년 니산월 12일에 일어났다.—부록 나12 참조.

가룟: 또는 “이스가리옷”. “그리옷 출신의 사람”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유다의 아버지인 시몬도 “가룟”이라고 불렸다. (요 6:71) 이 표현은 일반적으로 시몬과 유다가 유대 지방의 성읍인 그리옷헤스론 출신이라는 의미인 것으로 이해된다. (수 15:25) 그렇다면 유다는 열두 사도 중 유일하게 유대 지방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갈릴리 지방 사람이었다.

가룟: 마 10:4 연구 노트 참조.

성전 대장: 그리스어 원문에는 이 표현이 “대장”으로만 되어 있다. 하지만 눅 22:52에는 “성전 대장”으로 되어 있어서 그들이 어떤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 준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도 의미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성전 대장”이라는 번역 표현을 사용했다. 복음서 필자 가운데 오직 누가만 이 관리들을 언급한다. (행 4:1; 5:24, 26) 그들은 성전 경비병들을 지휘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유다와 모의하는 자리에 포함된 것은 예수를 붙잡으려는 계획이 합법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은전: 직역하면 “은”. 화폐로 사용되던 은을 가리킨다. 마 26:15에 따르면, 유다가 받은 돈은 “은 30닢”이었다. 복음서 필자 중 마태만이 유다가 예수를 배반하는 대가로 얼마를 받았는지를 언급한다. 은 30닢은 아마도 티레에서 주조된 은 30세겔이었을 것이다. 율법 시대에 그 액수는 종의 몸값이었으므로, 수제사장들이 이 액수를 제시한 것은 예수를 경멸한다는 표시였던 것 같다. (출 21:32) 이와 비슷하게, 예언자 스가랴가 불충실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기가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서 예언자로 일한 것에 대한 삯을 달라고 하자 그들은 “은 30닢”을 달아 주어 스가랴를 종에 불과한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을 내비쳤다.—슥 11:12, 13.

유월절이라고도 하는 무교절: 엄밀히 말하면, 니산월 14일에 지키는 유월절과 니산월 15일부터 21일까지 계속되는 무교절은 서로 다른 것이었다. (레 23:5, 6; 민 28:16, 17. 부록 나15 참조) 하지만 유월절과 무교절이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 시대에는 니산월 14일을 포함하여 8일 전체가 하나의 축제로 여겨졌다. 요세푸스는 “무교절이라고 불리는 8일간의 축제”에 대해 언급했다. 눅 22:1-6에 나오는 사건들은 기원 33년 니산월 12일에 일어났다.—부록 나12 참조.

무교절 날이 되자: 눅 22:1 연구 노트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유월절(니산월 14일)과 무교절(니산월 15-21일)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 시대에는 니산월 14일을 포함하여 8일 전체를 “무교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부록 나15 참조) 이 구절에 언급된 날은 니산월 14일을 가리킨다. 그날이 유월절 제물을 바쳐야 하는 날이라고 이 구절에서 말하기 때문이다. (출 12:6, 15, 17, 18; 레 23:5; 신 16:1-7) 7-13절에 묘사된 사건들은 니산월 13일 오후에 있었던 일인 것 같다. 그때 제자들은 저녁에 있을, 즉 해가 져서 니산월 14일이 시작되고 난 뒤에 있을 유월절 식사를 준비했다.—부록 나12 참조.

시간이 되자: 니산월 14일이 시작되는 저녁이 되었다는 의미이다.—부록 가7나12 참조.

잔을 받으신: 예수 시대에는 유월절을 기념할 때 여기서 언급하는 것처럼 포도주 잔을 돌렸다. (눅 22:15) 성경에는 이집트에서 유월절을 기념할 때 포도주가 사용되었다는 언급이 없다. 또한 유월절 축제 때 포도주를 사용하라고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적도 없다. 따라서 유월절 식사 때 포도주 몇 잔을 돌리는 관습은 나중에 생긴 것임이 분명하다. 예수께서는 유월절 식사를 하면서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정죄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뒤에 사도들과 함께 유월절 포도주를 마시셨다. 나중에 그분은 주의 만찬을 제정할 때 그들에게 포도주 한 잔을 건네주면서 마시라고 하셨다.—눅 22:20.

빵을 ··· 떼어: “떼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문자적으로 “부서뜨리다”를 의미한다. 고대 근동에서 흔히 먹는 빵은 납작했으며, 누룩이 들지 않은 경우 바삭했다. 예수께서 빵을 부서뜨려 조각내신 것은 영적인 의미가 들어 있는 행동이 아니라, 이런 종류의 빵을 나누는 일반적인 방법이었다.—마 14:19 연구 노트 참조.

의미합니다: 그리스어 원어 에스틴은 문자적으로 “~이다”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상징하다; 대표하다; 뜻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도들은 이 말의 뜻을 분명히 이해했을 것이다. 그들 앞에 예수의 완전한 몸도 있었고 그들이 곧 먹게 될 누룩이 들지 않은 빵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빵이 예수의 실제 몸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했다. 유의할 만하게도, 같은 그리스어 단어가 마 12:7에도 사용되었는데, 여러 성경 번역판에서 이 단어를 “뜻하다”로 번역한다.

빵을 ··· 떼어: 마 26:26 연구 노트 참조.

의미합니다: 마 26:26 연구 노트 참조.

만찬: 예수께서 주의 만찬을 제정하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하신 유월절 식사를 가리키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해서 예수께서는 당시에 받아들여지던 관습에 따라 유월절을 기념하셨다. 그분은 유월절 관습에 새로운 것을 도입하여, 그 관습을 변형시키거나 도중에 중단시키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그분은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지키셨다. 하지만 모세 율법에 따라 유월절을 지키신 다음에는, 동일한 유월절 날에 자신의 다가오는 죽음을 기념하도록 새로운 만찬을 제정하실 수 있었다.

내 피에 의한 새 계약: 복음서 필자 가운데 누가만이 예수께서 이때 “새 계약”을 언급하셨다고 기록했다. 그분은 렘 31:31을 염두에 두고 그 표현을 사용하신 것이다. 여호와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새 계약은 예수의 희생을 통해 유효하게 되었다. (히 8:10) 예수께서 “계약”과 “피”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방식은 시나이산에서 이스라엘이 맺은 율법 계약이 발효될 때 중개자인 모세가 그 표현들을 사용한 방식과 비슷하다. (출 24:8; 히 9:19-21) 수소와 염소의 피가 하느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의 율법 계약을 유효하게 한 것처럼, 예수의 피는 여호와께서 영적 이스라엘과 맺으시는 새 계약을 유효하게 했다. 새 계약은 기원 33년 오순절에 발효되었다.—히 9:14, 15.

··· 새 계약을 의미합니다: 19절의 일부 표현(“여러분을 위해 주는”과 “나를 기억하여 이 일을 계속 행하십시오”)과 20절 전체는 일부 사본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권위 있는 초기 사본들에는 이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그리스어 본문을 확립하는 데 어떻게 고대 사본들이 사용되었는지 알아보려면, 부록 가3 참조.

그러나 나를 배반하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식탁에 있습니다: 21-23절의 내용은 엄격한 시간 순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마 26:20-29과 막 14:17-25요 13:21-30과 비교해 보면, 유다가 떠난 때가 예수께서 주의 만찬을 제정하시기 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시련을 받는 동안 곁에 머물러’ 온 데 대해 사도들을 칭찬하실 무렵에는 유다가 이미 떠나고 없었음이 분명하다. 유다는 그런 칭찬을 받기에 적합하지 않았으며, ‘왕국을 위한 계약’ 안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눅 22:28-30.

자기 길을 가고: 일부 학자들은 이 표현이 곧 죽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완곡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은인’: 그리스어 에우에르게테스(직역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는 사람”)는 통치자들이나 탁월한 사람들, 특히 사회에 공헌한 바를 인정받은 사람들에게 영예를 돌리는 칭호로 자주 사용되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서 “인도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은인”이라고, 다시 말해 동료 신자들이 어떤 식으로인가 자신에게 빚지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이 세상의 통치자들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된다.—눅 22:26.

인도하는 자: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헤게오마이히 13:7, 17, 24에도 나오는데, 그 구절들에서 이 단어는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감독자들이 하는 일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섬기는: 또는 “봉사하는”.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 디아코네오의 명사형인 디아코노스(봉사자; 종)는 다른 사람을 위해 쉬지 않고 겸손하게 봉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그리스도(롬 15:8), 남자이든 여자이든 그리스도의 봉사자나 종(롬 16:1; 고전 3:5-7; 골 1:23), 봉사의 종(빌 1:1; 딤전 3:8)뿐만 아니라, 집안 하인(요 2:5, 9), 정부 관리(롬 13:4)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된다.

섬기는: 또는 “봉사하는”.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 디아코네오의 명사형인 디아코노스(봉사자; 종)는 다른 사람을 위해 쉬지 않고 겸손하게 봉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그리스도(롬 15:8), 남자이든 여자이든 그리스도의 봉사자나 종(롬 16:1; 고전 3:5-7; 골 1:23), 봉사의 종(빌 1:1; 딤전 3:8)뿐만 아니라, 집안 하인(요 2:5, 9), 정부 관리(롬 13:4)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된다.

시중드는: 또는 “섬기는”. 그리스어 동사 디아코네오는 이 구절에 두 번 나온다.—눅 22:26 연구 노트 참조.

나도 왕국을 위해 여러분과 계약을 맺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 디아티테마이(“계약을 맺다”)의 명사형은 디아테케(“계약”)이다. 행 3:25과 히 8:10; 10:16에 나오는 “계약을 맺다[또는 “계약을 체결하다”. 직역하면 “계약을 계약하다”]”라는 표현에서는 동사와 명사가 모두 사용되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두 가지 계약을 언급하신다. 하나는 그분과 아버지 사이의 계약이고, 다른 하나는 그분과 그분의 기름부음받은 제자들 즉 왕국에서 그분과 함께 다스리게 될 사람들 사이의 계약이다.

내 식탁에서 먹고 마시며: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와 친밀하고 평화로운 사이라는 의미였다. 따라서 왕의 식탁에서 정기적으로 함께 식사하는 특권을 받은 사람은 특별한 호의를 입은 것이었으며 왕과 매우 친밀한 유대를 즐겼다. (왕상 2:7)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충실한 제자들이 자신과 그런 관계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다.—눅 22:28-30. 또한 눅 13:29; 계 19:9 참조.

넉가래: 타작한 곡식을 공중에 던져 올려 지푸라기와 겨가 바람에 날아가게 하는 데 사용한 도구로서, 나무로 만들었을 것이다.

여러분 모두를 밀처럼 체질하게: 성경 시대에는 밀을 타작하고 넉가래질한 다음, 체질하여 즉 체에 담아 세게 흔들어서 낟알을 지푸라기와 겨와 분리해 냈다. (마 3:12 연구 노트 참조) 예수께서 겪으시게 될 시련으로 인해 제자들 역시 시험을 받게 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그 시험을 밀을 체질하는 것에 비하셨다.

돌아오거든: 또는 “돌이키거든”.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돌아오는 것 또는 회복되는 것을 언급하고 계신 것 같다. 베드로는 주로 과신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게 될 것이었다.—잠 29:25 비교.

동트기 전: 직역하면 “닭이 울 때”. 그리스•로마식 시간 체계에서 3경은 “닭이 울 때”라고 불렸다. 3경은 대략 자정부터 오전 3시까지를 가리킨다. (이 구절에 나오는 앞의 연구 노트들 참조) 아마 이 시간대에 ‘닭이 울었던’ 것 같다. (막 14:72)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에 따르면, 지중해 동쪽 지방에서는 오래전부터 닭이 우는 소리가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마 26:34; 막 14:30, 72 연구 노트 참조.

닭: 네 개의 복음서 모두 닭이 울 것이라는 점을 언급하는데, 마가복음에만 닭이 두 번 울 것이라는 점이 나온다. (마 26:34, 74, 75; 막 14:30, 72; 눅 22:60, 61; 요 13:38; 18:27) 「미슈나」에서는 예수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닭을 길렀다고 알려 주며, 이 점은 성경 기록에 신빙성을 더해 준다. 닭이 운 때는 아마 이른 새벽이었을 것이다.—막 13:35 연구 노트 참조.

계속 기도하십시오: 복음서 필자 가운데 누가만이 예수께서 하신 이러한 권고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예수께서는 이 권고를 11명의 충실한 사도들에게 하신 것 같다. (평행 기록인 마 26:36, 37 비교) 예수께서 한 번 더 비슷한 권고를 하신 기록이 눅 22:46에도 나오는데, 그 내용은 마 26:41과 막 14:38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 두 번째 권고는 예수께서 동산에서 기도하러 갈 때 데려가셨던 세 명의 제자들에게만 하신 것이다. (마 26:37-39; 막 14:33-35) 누가가 이 두 번의 권고를 모두 기록했다는 점은 (눅 22:40, 46) 그의 복음서에서 기도를 강조한다는 점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예이다. 기도에 대해, 또는 예수께서 기도하신 일에 대해 누가만이 기록한 다른 예들을 눅 3:21; 5:16; 6:12; 9:18, 28; 11:1; 23:46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성경에서 “잔”은 흔히 어떤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뜻 즉 하느님께서 그에게 “정해 주신 몫”을 의미하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된다. (마 20:22 연구 노트 참조) 틀림없이 예수께서는 자신이 신성 모독 죄와 소요죄로 죽임을 당할 경우 하느님께 모독이 돌아갈까 봐 매우 염려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이 “잔”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하셨다.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막 14:36 연구 노트 참조.

한 천사: 네 명의 복음서 필자 가운데 누가만이 천사가 하늘에서 나타나 예수에게 힘을 북돋아 준 일을 언급한다.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 누가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땀이 핏방울처럼 맺혔다는 점을 알려 주거나 예수의 땀이 떨어지는 것이 상처에서 핏방울이 떨어지는 것과 비슷했다는 점을 묘사하기 위해 비유법을 사용한 것일 수 있다. 반면 일부 학자들은 예수의 피가 피부를 통해 스며 나와서 땀에 섞였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보고에 따르면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들에게 그런 증상이 나타난 사례가 있다. 혈구 누출이라고 불리는 증상의 경우, 혈액이나 혈액 성분이 상처가 없는 혈관 벽을 통과해 새어 나오며, 혈한증의 경우에는 혈액 색소나 혈액으로 물든 땀, 또는 혈액이 섞인 체액이 배출되어 ‘피땀’이 흐르게 된다. 물론 이러한 설명들은 예수의 경우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는 일들을 제시한 것일 뿐이다.

··· 땅에 떨어졌다: 43, 44절의 내용은 일부 초기 사본들에는 포함되어 있지만, 이 내용이 들어 있지 않은 사본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경 번역판이 이 내용을 포함시킨다.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네 명의 복음서 필자 모두 이 사건을 기록했으며 그들의 기록은 서로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한다. (마 26:51; 막 14:47; 눅 22:50) “사랑받는 의사” 누가만이 (골 4:14) 예수께서 “그의 귀를 만져 낫게 해 주셨다”는 점을 언급한다. (눅 22:51) 칼을 휘두른 사람이 시몬 베드로였으며 귀가 잘려 나간 종의 이름말고였다는 점을 언급한 사람은 요한뿐이다. 요한이 이 사람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이며 그의 집안 사람들과도 아는 사이였던 제자는 요한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 18:15, 16) 요한이 대제사장의 집안 사람들과도 아는 사이였다는 점은 요 18:26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요 18:26에서 요한은 베드로가 예수의 제자라고 말한 종이 “베드로가 귀를 잘라 버린 사람의 친족”이라고 설명한다.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네 명의 복음서 필자 모두 이 사건을 기록했으며 그들의 기록은 서로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한다. (마 26:51; 막 14:47; 눅 22:50) “사랑받는 의사” 누가만이 (골 4:14) 예수께서 “그의 귀를 만져 낫게 해 주셨다”는 점을 언급한다. (눅 22:51) 칼을 휘두른 사람이 시몬 베드로였으며 귀가 잘려 나간 종의 이름말고였다는 점을 언급한 사람은 요한뿐이다. 요한이 이 사람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이며 그의 집안 사람들과도 아는 사이였던 제자는 요한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 18:15, 16) 요한이 대제사장의 집안 사람들과도 아는 사이였다는 점은 요 18:26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요 18:26에서 요한은 베드로가 예수의 제자라고 말한 종이 “베드로가 귀를 잘라 버린 사람의 친족”이라고 설명한다.

그 사람들 중 하나: 평행 기록인 요 18:10에 따르면 대제사장의 종을 친 사람은 시몬 베드로였으며 대제사장의 종의 이름은 말고였다.—요 18:10 연구 노트 참조.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요 18:10 연구 노트 참조.

낫게 해 주셨다: 네 복음서 필자 가운데 누가만이 예수께서 대제사장의 종을 낫게 해 주셨다는 점을 언급한다.—마 26:51; 막 14:47; 요 18:10.

때이며: 또는 “시간이며”. 여기서 그리스어 호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어둠이 권세를 떨칠: 또는 “어둠이 기세를 부릴”. 여기서 “어둠”은 영적 어둠 가운데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골 1:13 비교) 행 26:18에서는 “어둠”이 “사탄의 권세”와 함께 언급된다. 사탄은 자신의 인간 대행자들에게 영향을 미쳐, 예수가 처형되게 만들 어둠의 일을 하게 함으로 자신의 권세를 행사했다. 예를 들어, 눅 22:3에서는 “사탄이 ··· 가룟이라고 하는 유다에게 들어갔다”고 알려 준다. 유다는 그 후 예수를 배반했다.—창 3:15; 요 13:27-30.

닭이 두 번째 울었다: 네 개의 복음서 모두 이 일을 언급하는데, 마가복음에만 닭이 “두 번째” 울었다는 점이 나온다. (마 26:34, 74, 75; 막 14:30; 눅 22:34, 60, 61; 요 13:38; 18:27) 「미슈나」에서는 예수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닭을 길렀다고 알려 주며, 이 점은 성경 기록에 신빙성을 더해 준다. 닭이 운 때는 아마 동트기 전이었을 것이다.—막 13:35 연구 노트 참조.

닭이 울었다: 막 14:72 연구 노트 참조.

알아맞혀 보아라. 누가 너를 쳤느냐?: 여기서 “알아맞히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예언하다”로 번역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문맥에서는 앞으로 있을 일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누가 그분을 쳤는지 알아맞히는 것을 뜻한다. 막 14:65과 눅 22:64의 평행 기록에서는 예수를 박해하는 자들이 그분의 얼굴을 가렸다고 알려 준다. 그들은 그렇게 한 다음, 누가 그분을 쳤는지 맞혀 보라고 조롱조로 말한 것 같다.

알아맞혀 보아라!: “알아맞히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예언하다”로 번역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문맥에서는 앞으로 있을 일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알아맞히는 것을 뜻한다. 문맥을 보면 예수를 박해하는 자들이 그분의 얼굴을 가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예수의 눈을 가린 다음 누가 그를 쳤는지 맞혀 보라고 말했다.—마 26:68 연구 노트 참조.

최고 법정: 대제사장 그리고 장로와 서기관 70명으로 구성된 예루살렘의 사법 기관인 산헤드린을 가리킨다. 유대인들은 이 법정의 판결을 최종 판결로 여겼다.—용어 설명 “산헤드린” 참조.

장로의 회: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프레스비테리온프레스비테로스(직역하면 “연로자”)와 어근이 같은 단어이다. 성경에서 그리스어 프레스비테로스는 주로 지역 사회나 나라에서 권위와 책임을 가진 지위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단어가 눅 15:25에 나오는 “큰아들”과 행 2:17에 나오는 “노인”의 경우처럼 나이와 관련이 있을 때도 있지만, 반드시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 구절에서 “장로의 회”는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의 최고 법원인 산헤드린을 가리키는 것 같다. 산헤드린은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로 구성되었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은 흔히 함께 언급된다.—마 16:21; 27:41; 막 8:31; 11:27; 14:43, 53; 15:1; 눅 9:22; 20:1. 용어 설명 “장로; 연로자” 및 이 구절에 나오는 산헤드린 회의실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산헤드린 회의실: 또는 “산헤드린”. 산헤드린은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의 최고 법원이었다. “산헤드린 회의실” 또는 “산헤드린”으로 번역된 그리스어(시네드리온)는 문자적으로 “함께 앉음”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회의나 모임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였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종교적인 사법 기관이나 법정을 가리키기도 했다. 이 그리스어 단어는 그 법정을 구성하는 사람들이나 법정이 열리는 건물 또는 장소를 가리킬 수도 있다.—마 5:22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산헤드린” 참조. 또한 산헤드린 회의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보려면 부록 나12 참조.

‘사람의 아들’: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하신 표현. 복음서에 약 80회 나온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실제로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점과 자신이 아담을 대신할 수 있는 적합한 사람으로서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속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이 표현을 사용하신 것 같다. (롬 5:12, 14, 15) 또한 이 표현은 예수가 메시아 즉 그리스도임을 밝혀 주었다.—단 7:13, 14. 용어 설명 참조.

권능의 오른편: 통치자의 오른편에 있다는 것은 통치자 다음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의미였다. (시 110:1; 행 7:55, 56) “권능”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는 이 문맥에서 하느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권능을 가진 분” 또는 “강력한 분”으로 번역할 수 있다. “권능의 오른편”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은 평행 성구인 눅 22:69에도 나오는데 그 구절에서는 “하느님”이라는 단어와 함께 나온다. 따라서 “하느님의 권능의 오른편”으로 번역되었다. 또한 “권능의 오른편”이라는 말에는 예수께서 권능을 가진 분인 하느님의 오른편에 계시기 때문에 권능 즉 권위를 받게 되실 것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을 수 있다.

‘사람의 아들’: 마 8:20 연구 노트 참조.

하느님의 권능의 오른편: 또는 “하느님의 강력한 오른편”. 통치자의 오른편에 있다는 것은 통치자 다음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의미였다. (시 110:1; 행 7:55, 56) “권능의 오른편”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은 평행 성구인 마 26:64과 막 14:62에도 나온다.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의 권능의 오른편”에 앉아 있다는 표현은 예수께서 권능 즉 권위를 받게 되실 것임을 암시한다.—막 14:62. 마 26:64 연구 노트 참조.

미디어

위층 방
위층 방

이스라엘의 일부 집들은 2층으로 되어 있었다. 집 안에 있는 사다리나 나무 계단 또는 집 밖의 돌계단이나 사다리를 통해 위층 방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아마 이 삽화에 묘사된 것과 비슷했을 큰 위층 방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고 주의 만찬 기념식을 제정하셨다. (눅 22:12, 19, 20) 기원 33년 오순절에 약 120명의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성령이 내린 곳도 예루살렘의 어느 집 위층 방이었을 것이다.—행 1:15; 2:1-4.

산헤드린
산헤드린

유대인의 최고 법원인 대(大)산헤드린은 7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산헤드린은 예루살렘에 있었다. (용어 설명 “산헤드린” 참조) 미슈나에 따르면, 산헤드린 법정에는 반원형으로 세 줄의 좌석이 배열되어 있었고 두 명의 서기가 참석하여 법원의 판결을 기록했다. 이 삽화에 묘사된 일부 특징은 1세기의 의회당으로 추정되는 예루살렘의 한 건물을 기초로 그려진 것이다.—부록 나12, “예루살렘과 주변 지역” 지도 참조.

1. 대제사장

2. 산헤드린 성원들

3. 피고

4. 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