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47

20  어느 날 예수께서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며 좋은 소식을 전하고 계실 때에,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와서  그분에게 말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말해 보시오.”+  그분이 대답하셨다. “나도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할 테니 대답해 보십시오.  요한의 침례*는 하늘에서 온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입니까?”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끼리 이렇게 의논했다. “만일 우리가 ‘하늘에서 왔다’고 하면,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말할 것이오.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확신하고 있으니+ 우리를 돌로 칠 것이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여러분에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경작자들에게 세놓고 오랫동안 외국에 가 있었습니다.+ 10  포도 철이 되자, 그는 포도원의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경작자들에게 종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경작자들은 그 종을 때린 뒤 빈손으로 보냈습니다.+ 11  그는 다시 다른 종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그 종도 때리고 모욕을 주어* 빈손으로 보냈습니다. 12  그래도 그는 세 번째로 또 종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그 종도 상처를 입혀 쫓아냈습니다. 13  그러자 포도원 주인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사랑하는 내 아들을 보내야겠다.+ 그들이 내 아들은 존중하겠지.’ 14  경작자들은 그를 보자 서로 의논하며 ‘저자는 상속자다. 그를 죽이자. 그러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15  그래서 그들은 그를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어 죽였습니다.+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그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16  그는 와서 그 경작자들을 죽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런 일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17  그러자 그분은 그들을 똑바로 보시며 말씀하셨다. “그러면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주된 모퉁잇돌이 되었다’라고+ 기록된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18  누구든지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산산조각이 날 것입니다.+ 이 돌이 누구에게든 떨어지면 그를 으스러뜨릴 것입니다.” 19  서기관들과 수제사장들은 그분이 자기들을 염두에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즉시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했지만 사람들을 두려워했다.+ 20  그래서 그들은 그분을 지켜본 후에, 비밀리에 매수한 사람들을 보내어 의로운 사람인 척 행동하게 했다. 그것은 그분이 하는 말로 그분을 책잡아+ 정부 당국자와 권한을 가진 총독에게 넘기려는 것이었다. 21  그들은 그분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올바로 말하고 가르치며 편파적이 아니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신다는 것을 압니다. 22  우리가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쳐도 됩니까, 안 됩니까?” 23  그분은 그들의 속셈을 간파하고 말씀하셨다. 24  “나에게 데나리온 한 닢을 보여 주십시오. 거기에 누구의 초상과 글이 있습니까?” 그들이 “카이사르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25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십시오.”+ 26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그분이 하는 말로 그분을 함정에 빠뜨릴 수 없었으며, 그분의 대답에 크게 놀라 아무 말도 못 했다. 27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두개인+ 중 몇 사람이 그분에게 와서 물었다.+ 28  “선생님, 모세의 기록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아내를 남겨 두고 죽었는데 그에게 자녀가 없으면, 그의 형제가 그 아내를 맞아들여 죽은 형제를 위해 자손을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29  그런데 7형제가 있었습니다. 첫째가 아내를 맞아들였지만 자녀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7형제가 모두 그렇게 했지만 자녀를 하나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결국에는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7형제가 모두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니 말입니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제도의 자녀는 장가가고 시집가지만, 35  오는 세상 제도를 얻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되기에 합당하다고 여겨진 사람들은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습니다.+ 36  사실, 그들은 다시는 죽을 수도 없으며, 천사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자녀이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37  그리고 죽은 사람이 일으켜진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덤불 대목에서+ 밝혔는데, 그는 여호와를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불렀습니다.+ 38  그분은 죽은 사람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사람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에게는 그들이 모두 살아 있습니다.”+ 39  그러자 서기관 중 몇 사람이 “선생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고 말했다. 40  그들은 그분에게 감히 더 이상 묻지 못했다. 41  이번에는 그분이 그들에게 물으셨다. “어째서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아들이라고 합니까?+ 42  다윗 자신이 시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셨다. 43  “내가 너의 적들을 너의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44  이처럼 다윗이 그를 ‘주’라고 부르는데, 어떻게 그가 다윗의 아들이 되겠습니까?” 45  모든 사람이 듣고 있는 가운데 그분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6  “서기관들을 조심하십시오. 그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며 장터에서 인사받는 것과 회당의 앞자리와 만찬의 윗자리를 좋아합니다.+ 47  그들은 과부의 집*을 삼키며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합니다. 그들은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각주

또는 “물에 잠기는 것; 몸을 담그는 것”.
또는 “수치를 주어”.
또는 “재산”.
또는 “더 무거운”.

연구 노트

수제사장들: 그리스어 원어가 단수이고 하느님 앞에서 백성을 대신하는 최고 대표자를 가리킬 경우에는 “대제사장”이라고 번역된다. 여기서는 원어가 복수 형태이므로 제사직을 수행한 주요 인물들을 가리키는데, 그 가운데는 전직 대제사장들이 포함되며 24개 제사장 조의 우두머리들도 포함되었을 수 있다.

서기관들: 원래 성경 필사자들을 가리키는 단어이지만 예수 시대에는 율법에 능통하고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장로들: 직역하면 “연로자들”. 성경에서 그리스어 프레스비테로스는 지역 사회나 나라에서 권위와 책임을 가진 지위에 있는 사람을 주로 가리킨다. 이 단어가 눅 15:25에 나오는 “큰아들”과 행 2:17에 나오는 “노인”의 경우처럼 나이와 관련이 있을 때도 있지만, 반드시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 구절에서는 유대 민족의 지도자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흔히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함께 언급된다. 산헤드린은 이 세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마 21:23; 26:3, 47, 57; 27:1, 41; 28:12. 용어 설명 “장로; 연로자” 참조.

수제사장들: 마 2:4 연구 노트 참조.

서기관들: 마 2:4 연구 노트 참조.

장로들: 마 16:21 연구 노트 참조.

비유: 그리스어 원어 파라볼레는 문자적으로 “곁에(함께) 두는 것”을 의미하는데, 잠언이나 비유를 가리킬 수 있다. 예수께서는 어떤 것을 설명하실 때 다른 비슷한 것에 비하는 방법 즉 ‘곁에 두는’ 방법을 자주 사용하셨다. (막 4:30) 그분은 대개 자신이 지어낸 짧은 이야기를 비유로 들어 도덕적•영적 진리를 이끌어 내셨다.

세놓고: 경작지를 세놓는 것은 1세기 당시 이스라엘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이 구절에 나오는 주인은 세를 놓기 전에 준비 작업을 많이 했으므로, 그가 소출을 받기를 기대한 것은 전혀 비합리적인 일이 아니었다.

비유: 마 13:3 연구 노트 참조.

세놓고: 마 21:33 연구 노트 참조.

오랫동안: 복음서 필자 가운데 누가만이 살인을 저지른 포도원 경작자들에 관한 비유에 이 표현을 사용한다.—평행 기록인 마 21:33; 막 12:1 비교.

주된 모퉁잇돌: 또는 “가장 중요한 돌”. 시 118:22에 나오는 히브리어 표현과 이 구절에서 사용된 그리스어 표현은 문자적으로 “모퉁이의 머릿돌”을 의미한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이 표현은 두 벽이 만나는 곳 위에 얹어 두 벽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돌을 가리키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이 예언을 언급하면서 “주된 모퉁잇돌”이라는 표현을 자신에게 적용시키셨다. 건물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돌이 돋보이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기름부음받은 자들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인 회중의 맨 위에 놓인 돌로서 돋보이는 분이신데, 이 회중은 영적 성전에 비유된다.

주된 모퉁잇돌: 마 21:42 연구 노트 참조.

카이사르: 또는 “황제”. 예수께서 땅에서 봉사하시던 기간에 로마 황제는 티베리우스였지만, “카이사르”라는 말은 티베리우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이 말은 로마의 세속 권위 즉 국가와 국가에 의해 정식으로 임명된 대표자들을 가리킬 수 있는 표현이었다. 바울은 그들을 “위에 있는 권위”라고 불렀으며, 베드로는 “왕”과 “총독들”이라고 불렀다.—롬 13:1-7; 벧전 2:13-17; 딛 3:1. 용어 설명 참조.

카이사르: 마 22:17 연구 노트 참조.

초상과 글: 당시에 널리 사용되던 데나리온 주화의 앞면에는 월계관을 쓴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재위 기간: 기원 14-37년)의 초상과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신이 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이라는 뜻의 라틴어가 새겨져 있었다.—또한 부록 나14 참조.

데나리온: 카이사르의 초상이 새겨진 로마 은화. 로마는 유대인들에게 “인두세”로 이 은화를 징수했다. (마 22:17, 19; 눅 20:22) 예수 시대에 농사일을 하는 일꾼들은 보통 하루에 12시간을 일하고 1데나리온을 받았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금전적 가치를 계산하는 기준으로 데나리온이 자주 사용된다. (마 20:2; 막 6:37; 14:5; 계 6:6) 이스라엘에서는 구리나 은으로 만든 다양한 주화가 사용되었는데, 티레에서 주조된 은화는 성전세를 내는 데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로마에 세금을 낼 때는 카이사르의 초상이 있는 데나리온 은화가 사용되었던 것 같다.—용어 설명부록 나14 참조.

초상과 글: 마 22:20 연구 노트 참조.

돌려주고 ··· 돌려 드리십시오: 당시 주화는 카이사르가 주조한 것이었으므로 그에게는 그 일부를 요구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자신을 위해 생명을 바치거나 헌신할 것을 요구할 권리는 없었다.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신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행 17:25) 따라서 사람은 전적인 정성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신 분인 하느님께만 생명과 정성을 “돌려 드릴” 수 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하느님의 것”에는 마음을 다한 숭배, 영혼을 다한 사랑, 온전하고 충성스러운 순종이 포함된다.—마 4:10; 22:37, 38; 행 5:29; 롬 14:8.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같은 사건에 관해 기록한 마 22:21과 막 12:17에도 이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기록상 예수께서 로마 황제를 언급하신 유일한 경우이다. “카이사르의 것”에는 세속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에 대해 납부해야 하는 세금뿐 아니라, 세속 권위에 대해 나타내야 하는 존경심과 상대적인 복종도 포함된다.—롬 13:1-7.

돌려주고 ··· 돌려 드리십시오: 마 22:21 연구 노트 참조.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마 22:21 연구 노트 참조.

부활: 그리스어 아나스타시스는 문자적으로 “일으킴; 일어남”을 의미한다. 이 표현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죽은 사람의 부활을 가리키는 말로 약 40회 사용되었다. (마 22:23, 31; 눅 20:33; 행 4:2; 24:15; 고전 15:12, 13) 「칠십인역」사 26:19에 나오는 “너의 죽은 자들은 살아날 것이며”라는 표현에서 “살아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를 번역할 때 아나스타시스의 동사형을 사용했다.—용어 설명 참조.

사두개인: 누가복음에는 이 구절에만 사두개인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용어 설명 “사두개인; 사두개파” 참조) 사두개인이라는 이름(그리스어 사두카이오스)은 솔로몬 시대에 대제사장이 된 사독(「칠십인역」에서는 주로 사두크로 표기)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독의 후손들은 여러 세기 동안 제사장으로 일했을 것이다.—왕상 2:35.

둘째가 그 여자와 결혼했지만: 고대 히브리인들에게는 남자가 아들 없이 죽을 경우, 그의 가계를 이을 자손을 낳기 위해 죽은 남자의 형제가 그 과부와 결혼하는 관습이 있었다. (창 38:8) 후에 모세 율법에 포함된 이 마련은 시숙 결혼 혹은 형제 역연혼으로 알려졌다. (신 25:5, 6) 이 구절에서 사두개인들이 시숙 결혼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예수 시대에도 이 관습이 있었다. 율법에서 친족이 시숙 결혼을 거부하는 것을 허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기 형제의 집안을 세우려” 하지 않는 사람은 수치를 당했다.—신 25:7-10; 룻 4:7, 8.

그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막 12:21 연구 노트 참조.

세상 제도: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이온의 기본 의미는 “시대”이다. 이 단어는 특정한 기간이나 시대를 구분 짓는 상태나 특징을 가리킬 수도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세상 제도는 사탄이 통치하는 불경건한 현 세상 제도를 가리키며 (고후 4:4; 엡 2:2; 딛 2:12) 오는 세상 제도는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며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어 있는 세상 제도를 의미한다. (눅 18:29, 30) 예수께서는 성령을 모독하면 이 두 세상 제도 어디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용어 설명 “세상 제도(들)” 참조.

오는 세상 제도: 또는 “오는 시대”. 그리스어 아이온의 기본 의미는 “시대”이다. 이 단어는 특정한 기간이나 시대를 구분 짓는 상태나 특징을 가리킬 수도 있다.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앞으로 하느님의 왕국의 통치 아래 사람들이 약속된 대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때에 관해 말씀하신 것이다.—눅 18:29, 30. 용어 설명 “세상 제도(들)” 참조.

이 세상 제도: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이온의 기본 의미는 “시대”이다. 이 단어는 특정한 기간이나 시대를 구분 짓는 상태나 특징을 가리킬 수도 있다. 이 문맥에서는 현 세상 제도를 가리킨다.—마 12:32; 막 10:30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세상 제도(들)” 참조.

자녀: 또는 “사람들”. 직역하면 “아들들”. 이 문맥에서 “아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단지 문자적인 아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자에게 사용되는 표현인 시집가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가 함께 사용된 것을 보면, 여기서 이 단어가 남자만 아니라 여자도 포함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문맥에서 “이 세상 제도의 자녀”라는 표현은 현 세상 제도의 특징을 반영하는 태도와 생활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하는 관용구인 것 같다.

세상 제도: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이온의 기본 의미는 “시대”이다. 이 단어는 특정한 기간이나 시대를 구분 짓는 상태나 특징을 가리킬 수도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세상 제도는 사탄이 통치하는 불경건한 현 세상 제도를 가리키며 (고후 4:4; 엡 2:2; 딛 2:12) 오는 세상 제도는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며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어 있는 세상 제도를 의미한다. (눅 18:29, 30) 예수께서는 성령을 모독하면 이 두 세상 제도 어디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용어 설명 “세상 제도(들)” 참조.

오는 세상 제도: 또는 “오는 시대”. 그리스어 아이온의 기본 의미는 “시대”이다. 이 단어는 특정한 기간이나 시대를 구분 짓는 상태나 특징을 가리킬 수도 있다.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앞으로 하느님의 왕국의 통치 아래 사람들이 약속된 대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때에 관해 말씀하신 것이다.—눅 18:29, 30. 용어 설명 “세상 제도(들)” 참조.

오는 세상 제도: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이온의 기본 의미는 “시대”이다. 이 단어는 특정한 기간이나 시대를 구분 짓는 상태나 특징을 가리킬 수도 있다. 이 구절에서는 하느님이 통치하시며 죽은 사람들부활이 있을 “오는 세상 제도”를 가리킨다.—마 12:32; 막 10:30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세상 제도(들)” 참조.

자녀: 또는 “사람들”. 직역하면 “아들들”. 이 문맥에서 “아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단지 문자적인 아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자에게 사용되는 표현인 시집가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가 함께 사용된 것을 보면, 여기서 이 단어가 남자만 아니라 여자도 포함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문맥에서 “이 세상 제도의 자녀”라는 표현은 현 세상 제도의 특징을 반영하는 태도와 생활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하는 관용구인 것 같다.

자녀: 직역하면 “아들들”. 이 구절에는 “아들”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단어가 두 번 나온다. 일부 문맥에서 이 단어는 단지 문자적인 아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눅 20:34 연구 노트 참조.

모세의 책: 사두개인들은 모세의 기록만을 영감받은 것으로 여겼다. 그들이 부활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모세 오경에 그러한 가르침에 대한 근거가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죽은 자가 살아날 것이라는 점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 26:19이나 단 12:13, 호 13:14 같은 구절들을 인용하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분은 사두개인들이 어떤 책들을 받아들이는지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하셨다.—출 3:2, 6.

모세도 ··· 밝혔는데: 막 12:26 연구 노트 참조.

그는 여호와를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라고 불렀습니다: 또는 “그는 ‘여호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족장들이 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모세가 여호와를 여전히 그들의 하느님으로 언급했다는 점을 설명하고 계신다.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출 3:6을 인용하신 것이다. 그 구절의 앞 구절들(출 3:4, 5)을 보면 6절에 나오는 말씀을 하신 분이 “여호와”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출 3:6에서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너의 아버지의 하느님,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아브라함이 죽은 지 329년, 이삭이 죽은 지 224년, 야곱이 죽은 지 197년이 지난 때였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었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눅 20:37)과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은 「신세계역」 성경 본문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한 한 가지 이유이다.—부록 다1다3 소개; 눅 20:37 참조.

그분에게는 그들이 모두 살아 있습니다: 또는 “그분의 관점에서는 그들이 모두 살아 있습니다”.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사람들은 살아 있어도 그분의 관점에서는 죽은 것이라고 성경은 알려 준다. (엡 2:1; 딤전 5:6) 그와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승인받은 종들은 죽더라도 그분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그들을 부활시키려는 여호와의 목적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롬 4:16, 17.

여호와: 이 구절에서 인용한 시 110:1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 하지만 부록 가5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성경 번역판들은 흔히 신약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며, 심지어 히브리어 성경을 인용한 구절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성경은 단지 “주(Lord)”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렇지만 부록 다에서 설명하듯이, 일부 성경 번역판들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본문에 여호와, 야베, 야훼, יהוה(YHWH, 테트라그람마톤), 그리고 (원문에는 하느님의 이름이 있었다는 점을 표시하기 위한) 대문자 형태의 주(LORD)나 아도나이(ADONAI)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17세기에 발행된 일부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시 110:1이 인용된 이 구절(눅 20:42)과 다른 세 구절(마 22:44; 막 12:36; 행 2:34)에 대문자 형태의 “주(LORD)”를 사용했다. 이후에 발행된 판들에서도 계속 그렇게 했다. 그 성경의 번역자들이 히브리어 성경에서 히브리어 원문에 하느님의 이름이 나오는 곳을 표시하기 위해 대문자 형태의 “주(LORD)”를 사용하고,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주(LORD)”를 사용했다는 점은, 그들이 이 표현이 여호와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음을 시사한다. 또 한 가지 유의할 만한 점은, 1979년에 초판이 발행된 「뉴 킹 제임스 성경」(New King James Version)에서는 히브리어 성경을 인용한 구절에서 “주”라는 표현이 하느님의 이름을 가리키는 모든 경우에 대문자 형태의 “주(LORD)”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장터: 또는 “집회 장소”.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 아고라고대 근동과 그리스•로마 세계의 도시와 마을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중심지이자 공공 집회 장소 역할을 한 광장을 가리킨다.

앞자리: 또는 “제일 좋은 자리”. 회당 책임자들과 명망 있는 사람들은 성경 두루마리들이 있는 곳 가까이에 앉았을 것이다. 그 자리는 회중 전체가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이 특별 좌석에는 그처럼 영향력 있는 사람들만 앉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장터: 마 23:7 연구 노트 참조.

앞자리: 마 23:6 연구 노트 참조.

미디어

회당의 앞자리
회당의 앞자리

이 영상은 갈릴리 바다에서 북동쪽으로 약 1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도시 가믈라에 있는 1세기 회당의 유적을 참고하여 회당의 모습을 그래픽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오늘날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1세기 회당이 없기 때문에, 회당의 모습이 정확히 어떠했을지는 알 수 없다. 이 영상을 통해 그 당시 많은 회당의 내부에 어떤 것들이 있었을지 볼 수 있다.

1. 회당의 앞자리 즉 제일 좋은 자리는 강단 위나 강단 근처에 있었을 것이다.

2. 성경을 낭독하는 강단. 강단의 정확한 위치는 회당마다 달랐을 것이다.

3. 벽을 따라 있는 좌석에는 사회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앉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바닥에 있는 깔개 위에 앉았을 것이다. 가믈라의 회당은 좌석이 네 줄로 되어 있었던 것 같다.

4. 거룩한 두루마리를 보관하는 함. 뒤쪽 벽에 있었을 것이다.

회당의 좌석 배치는 참석한 사람들에게 누가 지위가 더 높은지를 끊임없이 생각나게 했다. 예수의 제자들도 종종 이 문제로 논쟁을 벌였다.—마 18:1-4; 20:20, 21; 막 9:33, 34; 눅 9:46-48.

만찬에서의 윗자리
만찬에서의 윗자리

1세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식탁에 기대앉아 식사를 했다. 왼쪽 팔꿈치를 쿠션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으로 음식을 먹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관습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식당에는 높이가 낮은 식탁 주위에 세 개의 침상이 놓여 있었다. 로마 사람들은 이러한 종류의 식당을 트리클리니움(“세 개의 침상이 있는 방”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라틴어)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방에서는 원래 한 침상에 세 사람씩 총 아홉 사람이 앉아서 식사를 하게 되어 있었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더 긴 침상을 사용하는 일이 많아졌다. 관례적으로, 식당에 마련된 자리들은 영예롭게 여겨지는 정도가 각각 달랐다. 가장 낮은 자리로 여겨지는 침상(가), 그보다 높은 자리로 여겨지는 침상(나), 가장 높은 자리로 여겨지는 침상(다)이 있었다. 같은 침상에 있는 자리들도 위치에 따라 영예롭게 여겨지는 정도가 달랐다. 각 사람은 그의 오른편에 있는 사람보다는 높고 왼편에 있는 사람보다는 낮은 것으로 여겨졌다. 격식을 갖춘 연회에서는 대개 집주인이 가장 낮은 자리로 여겨지는 침상의 맨 왼쪽 자리(1)에 앉았다. 그럴 경우 가장 영예로운 자리는 가운데 침상에서 집주인과 붙어 있는 쪽 자리(2)였다. 유대인들이 이러한 관습을 어느 정도나 받아들였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겸손해야 할 필요성을 가르칠 때 이 관습을 염두에 두셨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