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1-52

2  그 무렵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포고령을 내려서 등록을 하게 했다. 2  (이 첫 번째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 시행되었다.) 3  그래서 모든 사람이 등록을 하러 각자 자기 고향으로 갔다. 4  요셉도+ 갈릴리의 도시 나사렛을 떠나 유대로 들어가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도시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의 집과 가문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5  그는 약속대로 아내로 맞은 마리아와+ 함께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해산할 때가 가까웠다.+ 6  그들이 그곳에 있는 동안 마리아가 해산할 때가 되었다. 7  그 여자는 첫아들을 낳아+ 천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숙박하는 곳에는 그들이 묵을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8  그 지방의 목자들은 집 밖에서 지내면서 밤에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 9  그런데 갑자기 여호와의 천사가 그들 앞에 서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 주위를 비추자, 그들은 매우 두려워했다. 10  천사가 그들에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될 큰 기쁨에 관한 좋은 소식을 내가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11  오늘 다윗의 도시에서+ 구원자인 주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12  여러분은 천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것인데, 그것이 여러분을 위한 표입니다.” 13  그때에 갑자기 수많은 하늘의 군대*+ 그 천사와 함께하여 하느님을 이렇게 찬양했다.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선의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 평화.”+ 15  천사들이 그들을 떠나 하늘로 가자, 목자들은 서로 이렇게 말했다. “어서 베들레헴으로 가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일을 보도록 합시다.” 16  그들이 서둘러 가서 보니 마리아와 요셉이 있었고 구유에는 아기가 누워 있었다. 17  그들은 이것을 보고 나서, 그 어린아이에 대해 자기들이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18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목자들이 전해 준 말에 놀라워했으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간직하며 마음속에 곰곰이 되새겼다.+ 20  목자들은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찬양하면서 돌아갔다. 그것은 그들이 앞서 들은 대로였다. 21  8일 후, 아이에게 할례를 행할 때가+ 되자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고 했다. 그것은 아이를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알려 준 이름이었다.+ 22  또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하게 하는 때가+ 되자, 그들은 아이를 여호와께 바치려고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23  그것은 “처음 난 남자*는 모두 여호와께 거룩한 자로 불려야 한다”고 기록된 여호와의 율법대로 한 것이었다.+ 24  그들은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라고+ 되어 있는 여호와의 율법대로 희생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의롭고 독실한 사람으로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성령이 그 위에 있었다. 26  하느님께서 그가 여호와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성령을 통해 계시해 주신 일이 있었다. 27  그는 영의 힘에 의해 성전에 들어갔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려고 어린 예수를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이를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양했다. 29  “주권자인 주여,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제 주의 종을 평안히 떠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주의 구원의 수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31  이는 주께서 모든 민족 앞에 마련하신 것으로,+ 32  이방 사람들에게서+ 베일을 벗기는 빛이며+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입니다.” 33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가 아이에 대해 하는 말에 계속 놀라워했다. 34  또한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아이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이 아이로 인해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이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비난을 받는 표징이 될 것입니다.+ 35  (당신은 긴 칼에 꿰찔릴 것입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의 마음에 있는 생각이 드러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36  그리고 여예언자 안나가 있었는데, 바누엘의 딸로서 아셀 지파에 속해 있었다. 이 여자는 나이가 많았는데, 결혼한 뒤* 7년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가 되어 이제 84세였다. 그는 빠지지 않고 성전에 나왔으며, 단식하고 간구하며 밤낮으로 신성한 봉사를 드렸다. 38  그때에 그가 가까이 와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예루살렘의 구출을 기다리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그 아이에 대해 말했다. 39  그들은 여호와의 율법에 따라 모든 일을 행하고 나서,+ 갈릴리에 있는 자기들의 도시인 나사렛으로 돌아갔다.+ 40  그 어린아이는 자라면서 강해지고 지혜로 충만해져 갔으며, 하느님의 은혜가 계속 그에게 있었다.+ 41  그의 부모는 유월절을 위해 해마다 예루살렘에 갔다.+ 42  그가 열두 살이 되었을 때에, 그들은 축제의 관례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43  축제 기간이 끝나 그들이 돌아올 때에,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는데 그의 부모는 그것을 몰랐다. 44  그들은 그가 일행 중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뒤에야 친족과 친지들 가운데서 그를 찾기 시작했다. 45  그러나 그가 보이지 않자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그를 부지런히 찾았다. 46  마침내 3일 뒤에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교사들 가운데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다. 47  그리고 그의 말을 듣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이해력과 대답에 계속 크게 놀라고 있었다.+ 48  부모는 그를 보자 몹시 놀랐다. 어머니가 그에게 말했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했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 얼마나 애태웠는지 모른다.” 49  그가 부모에게 말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제가 제 아버지 집에 있을 줄을 모르셨습니까?”+ 50  그러나 그들은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51  그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사렛으로 돌아갔으며, 부모에게 계속 복종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했다.+ 52  예수는 계속 지혜가 자라 가고 신체적으로 성장하면서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더욱더 호의를 얻게 되었다.

각주

또는 “무리”.
직역하면 “태를 여는 수컷”.
또는 “주께서 구원을 가져오실 방법을; 주의 구원을”.
또는 “처녀로 결혼하여”.

연구 노트

카이사르: 또는 “황제”. 그리스어 카이사르(Καῖσαρ)는 라틴어 카이사르(Caesar)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용어 설명 참조) “존엄자”를 의미하는 라틴어 이름인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의 초대 황제인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에게 처음으로 사용된 칭호이다. 그는 기원전 27년에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이 칭호를 받았다. 그리하여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포고령으로 인해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되었으며, 그렇게 해서 성경 예언이 성취되었다.—단 11:20; 미 5:2.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 ‘사람이 거주하는 땅’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오이쿠메네)는 넓은 의미로 사용될 경우 사람이 사는 땅 전체를 가리킨다. (눅 4:5; 행 17:31; 롬 10:18; 계 12:9; 16:14) 1세기에 이 단어는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았던 광대한 로마 제국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었다.—행 24:5.

등록을 하게 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이 포고령을 내린 이유는 인구 조사를 하면 세금을 징수하고 군 복무 대상자들을 징집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우구스투스는 그러한 포고령을 내림으로써 “영화로운 왕국에 세금 징수관을 다니게 할” 통치자에 관한 다니엘의 예언을 성취시킨 것이 분명하다. 계속되는 다니엘의 예언에 따르면, 그 통치자의 후계자 즉 “멸시받는 자”의 재위 기간에 “계약의 지도자”인 메시아가 “부러지는” 즉 죽임을 당하는 중대한 일이 일어날 것이었다. (단 11:20-22) 예수께서는 아우구스투스의 후계자인 티베리우스의 재위 기간 중에 처형당하셨다.

퀴리니우스 ··· 시리아 총독: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는 저명한 로마 원로원 의원이었다. 그는 성경에 한 번밖에 언급되지 않는다. 처음에 학자들은 퀴리니우스가 로마 속주 시리아의 총독 직위를 수행한 것은 인구 조사로 인해 반란이 일어났던 기원 6년경이 유일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들은 퀴리니우스가 총독이었던 때는 기원 6년이나 7년이었는데 예수는 그 이전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 구절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누가복음의 기록에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1764년에,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레가투스) 직위를 두 차례 수행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비문이 발견되었다. 또한 다른 비문들을 근거로 일부 역사가들은 퀴리니우스가 그보다 이른 시기인 기원전의 기간에도 시리아 총독의 직위를 수행했다고 인정한다. 바로 이 임기 중에 이 구절에 언급된 첫 번째 등록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더욱이, 비평가들의 논리는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첫째로, 누가는 “첫 번째 등록”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 인구 조사가 한 번 이상 있었음을 인정한다. 누가는 그 후 기원 6년경에 있었던 등록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사도행전(5:37)에서 그 등록에 대해 언급했으며, 요세푸스도 그 등록에 대해 기록했다. 둘째로, 성경 연대는 예수가 퀴리니우스의 두 번째 임기 중에 태어났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다. 하지만 기원전 4년에서 기원전 1년 사이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퀴리니우스의 첫 번째 임기 중에 예수가 태어났다고 보는 것은 성경 연대와 조화를 이룬다. 셋째로, 누가는 세심한 역사가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가 기록한 많은 사건들은 그의 생애 중에 일어났다. (눅 1:3) 그뿐만 아니라 그는 성령으로 영감을 받았다.—딤후 3:16.

갈릴리의 도시 나사렛을 떠나 ··· 올라갔다: 나사렛에서 11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곳에 베들레헴이라는 도시가 있었지만 성경에서는 메시아가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나올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예언했다. (미 5:2) 다윗의 도시로 언급된 그 베들레헴은 남쪽에 있는 유대에 위치해 있었다. (삼상 16:1, 11, 13) 나사렛과 베들레헴 에브라다는 직선 거리로 약 11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오늘날의 길을 기준으로 계산해 볼 때 당시에 사마리아를 거쳐 베들레헴 에브라다까지 가는 실제 이동 거리는 최대 150킬로미터 정도까지 되었을 수 있다. 그 여행을 하려면 구릉 지대를 지나야 했으며 여러 날이 걸리고 힘이 많이 들었을 것이다.

첫아들: 이 표현은 마리아가 나중에 다른 자녀들을 낳았음을 시사한다.—마 13:55, 56; 막 6:3.

구유: “구유”로 번역된 그리스어 파트네는 “먹이를 주는 곳”을 의미한다. 이것은 가축의 먹이를 담는 길쭉한 통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어 파트네는 가축을 기르는 외양간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그리스어가 “외양간”으로 번역된 눅 13:15과 비교) 이 문맥에서는 구유를 가리키는 것 같다. 이 구유가 실내에 있었는지, 실외에 있었는지, 또는 외양간과 연결되어 있었는지는 성경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숙박하는 곳: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막 14:14(각주)과 눅 22:11(각주)에서처럼 “손님방”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목자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많은 수의 양들이 정기적으로 희생 제물로 바쳐졌다. 따라서 베들레헴 인근 지역에서 기르는 양들 중에는 희생 제물로 바칠 목적으로 기르는 양들도 있었을 것이다.

집 밖에서 지내면서: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은 아그로스(“들; 밭”)와 아울레(“위가 트여 있는 공간”)가 결합된 동사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이 표현은 “들에서 지내다, 야외에서 지내다”를 의미하며 바깥에서 밤을 보낸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양은 낮에는 연중 어느 계절이든 데리고 나가서 풀을 뜯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목자들은 양 떼와 함께 들에서 밤을 보내고 있었다. 이 점은 예수가 태어난 시기를 알려 주는 단서가 된다. 이스라엘의 우기는 10월 중순쯤에 시작되어 여러 달 동안 계속된다. 12월에 베들레헴은 예루살렘과 마찬가지로 밤에 서리가 자주 내린다.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밤에 들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 시기가 우기가 시작되기 전이었음을 보여 준다.—부록 나15 참조.

여호와의 천사: 눅 1:11 연구 노트부록 다3 소개; 눅 2:9 참조.

여호와의 영광: 누가복음의 처음 두 장에는 하느님의 이름이 나오는 히브리어 성경의 표현들이나 구절들을 직접적으로 혹은 암시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이 많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여기서 “영광”으로 번역된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이 테트라그람마톤과 함께 30회 이상 나온다. 그러한 예를 다음과 같은 구절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출 16:7; 40:34; 레 9:6, 23; 민 14:10; 16:19; 20:6; 왕상 8:11; 대하 5:14; 7:1; 시 104:31; 138:5; 사 35:2; 40:5; 60:1; 겔 1:28; 3:12; 10:4; 43:4; 합 2:14.—눅 1:6; 1:9 연구 노트부록 다3 소개; 눅 2:9 참조.

주 그리스도: 여기서 “주 그리스도”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크리스토스 키리오스, 직역하면 “그리스도 주”)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원문에서 이 구절에만 나온다. 천사는 “주”와 “그리스도”라는 칭호를 예언적 의미로 사용한 것 같으며, 따라서 이 부분은 “주 그리스도가 되실 분”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 구절에 나오는 그리스도께서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베드로는 영감을 받아 행 2:36에서 하느님께서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셨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주 그리스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 표현을 “기름부음받은 주”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두 가지 칭호가 결합된 이 표현이 “주의 그리스도”라는 의미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몇몇 라틴어와 시리아어 번역본에서는 실제로 눅 2:11에 “주의 그리스도”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일부 번역판(부록 다에 J5-8, 10으로 표기됨)에서도 이 그리스어 표현을 그와 비슷하게 이해하여, 마시아흐 예호와 즉 “여호와의 그리스도”로 번역한다. 이러한 이유들과 그 밖의 이유들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눅 2:11에 나오는 이 표현을 눅 2:26에서 “여호와의 그리스도”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께서: 천사는 이 칭호를 예언적 의미로 사용한 것 같다. 예수께서 실제로 메시아 즉 그리스도가 되신 시점은 침례를 받고 성령이 부어졌을 때였기 때문이다.—마 3:16, 17; 막 1:9-11; 눅 3:21, 22.

땅에서는 선의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 평화: 일부 사본에 따르면 이 부분을 “땅에는 평화, 사람들에게는 선의”라고 옮길 수도 있으며, 실제로 그와 같이 번역한 성경 번역판들도 있다. 하지만 「신세계역」에서 사용한 표현이 사본상으로 더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 천사들은 모든 사람들이 태도나 행동에 관계없이 하느님께 선의를 받는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니었다. 천사들은 하느님께 진정한 믿음을 나타내고 그분의 아들의 제자가 되기 때문에 선의를 받게 될 사람들에 관해 말한 것이었다.—이 구절에 나오는 선의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선의를 받은 사람들: 천사가 말한 “선의”는 사람이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선의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유도키아는 “호의; 기쁨; 승인”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동사 유도케오마 3:17; 막 1:11; 눅 3:22에서 사용되었는데, (마 3:17; 막 1:11 연구 노트 참조) 그 성구들에는 하느님께서 자신의 아들이 침례받은 직후 그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온다. 이 동사는 기본적으로 “승인하다; 매우 좋아하다; 호의적으로 여기다; 기뻐하다”를 의미한다. 이러한 용법에 비추어 볼 때 “선의를 받은 사람들”(안트로포이스 유도키아스)이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승인과 선의를 받은 사람들을 가리키며, “그분이 승인하시는 사람들; 그분이 매우 좋아하시는 사람들”로도 번역될 수 있다. 따라서 천사가 언급한 선의는 모든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느님께 진정한 믿음을 나타내고 그분의 아들의 제자가 됨으로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선의를 가리킨다. 그리스어 유도키아는 일부 문맥에서 사람이 가진 선의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롬 10:1; 빌 1:15) 많은 경우 하느님의 선의나 그분이 기뻐하시는 바, 그분이 승인하시는 방식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마 11:26; 눅 10:21; 엡 1:5, 9; 빌 2:13; 살후 1:11) 「칠십인역」시 51:18(50:20, LXX)에서도 이 단어가 하느님의 “선의”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소식을 전한 것은 천사들이었지만 목자들은 그 소식의 근원이 여호와 하느님이심을 인식했다. 여기서 “알려 주신”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가 「칠십인역」에서도 비슷한 의미의 히브리어 동사를 번역하는 데 사용되었는데, 여호와께서 자신의 뜻을 사람에게 알려 주시거나 사람들이 그분의 뜻을 알려고 하는 내용이 나오는 구절들에서 사용되었다. 대개의 경우 그러한 구절들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테트라그람마톤이 나온다. (시 25:4; 39:4; 98:2; 103:6, 7) 따라서 이 구절에 나오는 유대인 목자들의 말에 하느님의 이름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눅 1:6 연구 노트부록 다1다3 소개; 눅 2:15 참조.

예수: 마 1:21 연구 노트 참조.

정결하게 하는 때: 의식상 정결하게 하는 때를 가리킨다. 모세 율법에 따르면 여자는 남자아이를 낳은 뒤 40일 동안 정결 기간을 가져야 했다. (레 12:1-4) 이러한 규정은 여성과 출산을 경시하는 시각을 갖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영적 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즉, 출산 과정을 통해 아담의 죄가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는 것이다. 신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마리아도 그 점에 있어서 예외가 아니었다. (롬 5:12) 이 구절의 원문에는 “그들을 정결하게 하는 때”로 되어 있는데, 누가는 예수를 포함시켜 “그들”이라는 대명사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예수가 불완전한 인간 어머니의 죄 많은 상태를 유전받지 않도록 성령이 보호해 주었으므로 예수가 정결해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눅 1:34, 35) 요셉이 가족을 데리고 이 여행을 했고 가장으로서 제물이 바쳐지게 할 책임이 있었으므로, 누가는 예수의 양아버지 요셉을 포함시켜 “그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수 있다.

아이를 여호와께 바치려고: 다음 구절에서 알려 주듯이, 예수가 태어난 뒤에 그를 성전으로 데려간 것은 출 13:1, 2, 12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과 일치한 것이었다. 그 구절들에는 부모가 ‘모든 맏아들을 여호와께 바쳐야 한다’는 명령이 들어 있다. 또한 “아이를 여호와께 바치려고”라는 표현은 삼상 1:22-28에 묘사된 것과 비슷한데, 그 구절들에는 어린 사무엘을 “여호와 앞에” 바쳐 그분을 위해 봉사하게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눅 1:6; 2:23 연구 노트부록 다3 소개; 눅 2:22 참조.

처음 난 남자: 눅 2:22-24에서는 마리아의 정결 기간이 끝났을 때 바쳤던 희생 제물만이 아니라, (눅 2:22; 2:24 연구 노트 참조) 맏아들이 태어난 경우 부부가 은 5세겔을 바쳐야 한다는 율법 규정도 언급하고 있다. 예수는 맏아들이었으므로 하느님께 성별되었으며, 그분의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에 규정된 대로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를 구속해야 했다. (출 13:1, 2; 민 18:15, 16) 구속하는 값은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 이상”이 되었을 때 바쳐야 했으므로, 요셉은 예수가 태어난 지 40일 뒤에 마리아가 정결 제물을 바칠 때 5세겔도 같이 바칠 수 있었을 것이다.

여호와: 여기에 인용된 문장은 출 13:2, 12에 근거한 것인데, 그 구절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부록 다 참조.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율법” 또는 “여호와의 법”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와 테트라그람마톤이 결합된 형태로 자주 등장한다. (예: 출 13:9; 왕하 10:31; 대상 16:40; 22:12; 대하 17:9; 31:3; 느 9:3; 시 1:2; 119:1; 사 5:24; 렘 8:8; 암 2:4) 기록된 ··· 대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히브리어 성경의 구절을 인용할 때 흔히 쓰이는 표현이다.—막 1:2, 3; 행 7:42; 15:15; 롬 1:17; 10:15. 눅 1:6 연구 노트부록 다3 소개; 눅 2:23 참조.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 율법에 따르면 형편이 어려운 여자들은 양 대신에 그보다 값이 훨씬 싼 새를 제물로 바칠 수 있었다. (레 12:6, 8) 당시 요셉과 마리아는 분명 형편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 점은 점성술사들이 온 것이 예수가 막 태어났을 때가 아니라 시간이 더 지난 뒤였음을 시사한다. (마 2:9-11) 만일 요셉과 마리아가 성전에 가기 전에 점성술사들로부터 이미 값비싼 선물을 받았다면, 그들은 희생 제물로 양을 바칠 수 있었을 것이다.

여호와의 율법: 눅 2:23 연구 노트부록 다3 소개; 눅 2:24 참조.

희생을 바쳤다: 모세 율법에 따르면, 여자는 아이를 낳은 뒤 일정 기간 동안 의식상 부정한 상태였다. 그 기간이 끝나면 그 여자를 위해 번제물과 속죄 제물이 바쳐져야 했다.—레 12:1-8.

시므온: “듣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에서 유래한 이름. 스가랴와 엘리사벳과 마찬가지로 시므온도 의롭다고 묘사되어 있다. (눅 1:5, 6) 그는 독실하다고도 언급되어 있는데, 이 표현은 그리스어 율라베스를 번역한 것이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단어는 숭배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주의 깊고 성실한 태도를 나타낸다는 의미로 사용된다.—행 2:5; 8:2; 22:12.

여호와의 그리스도: 현재 입수할 수 있는 그리스어 사본들에서는 이 부분이 “주의 그리스도”(톤 크리스톤 키리우)로 되어 있지만, 성경 본문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할 만한 타당한 이유들이 있다. 현존하는 「칠십인역」 사본들에서 이 표현은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마시아흐 YHWH)를 번역하는 데 사용되었는데, 이 히브리어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 11회 나온다.—삼상 24:6(2회), 10; 26:9, 11, 16, 23; 삼하 1:14, 16; 19:21; 애 4:20. 부록 다3 소개; 눅 2:26 참조.

그리스도: 또는 “기름부음받은 자;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그리스어 크리스토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메시아”(히브리어 마시아흐에서 유래)에 해당한다. 둘 다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의미이다.—마 1:1 연구 노트 및 이 구절에 나오는 여호와의 그리스도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주권자인 주: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 데스포테스의 기본 의미는 “주; 주인; 소유자”이다. (딤전 6:1; 딛 2:9; 벧전 2:18) 이 구절과 행 4:24; 계 6:10에서와 같이 이 단어가 하느님을 부를 때 사용된 경우, 이 단어는 그분이 주로서 가지신 지위의 탁월함을 반영하는 표현인 “주권자인 주”로 번역되었다. 다른 번역판들에서는 “주”, “주재”, “주인”, “주권자”,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번역한 많은 번역판에서는 이 구절에 히브리어 아도나이(주권자인 주)를 사용하지만 적어도 두 번역판(부록 다에 J9, 18로 표기됨)에서는 하느님의 이름 여호와를 사용한다.

떠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떠날 수 있게 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의 문자적 의미는 “놓아주다; 석방하다; 내보내다”이다. 이 구절에서는 “죽게 하다”라는 말의 완곡한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사람이 평안히 죽는다는 말은 그가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거나 소중히 여기던 희망이 이루어지고 나서 평온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창 15:15; 왕상 2:6 비교) 시므온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이제 막 경험했다. 약속된 “여호와의 그리스도” 곧 하느님의 구원의 수단을 보았기 때문이다. 시므온은 이제 내적 평온함과 만족을 느끼는 가운데, 부활될 때까지 죽음의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눅 2:26.

이방 사람들에게서 베일을 벗기는 빛: 또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의 빛”. 여기서 “베일을 벗기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아포칼립시스는 “드러내는 것” 또는 “밝히는 것”을 의미하며, 주로 영적인 문제나 하느님의 뜻과 목적이 계시되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롬 16:25; 엡 3:3; 계 1:1) 연로한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이라고 부르면서, 유대인과 개종자뿐 아니라 이방 사람들도 영적 계몽을 받게 될 것임을 언급했다. 예언적 의미를 지닌 시므온의 말은 사 42:649:6 같은 히브리어 성경의 예언들과도 조화를 이룬다.

다시 일어나기도: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 아나스타시스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대개 “부활”로 번역된다. (마 22:23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에서 시므온이 한 말은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 서로 다른 반응을 나타내어 그들의 마음에 있는 생각을 드러낼 것이라는 의미이다. (눅 2:35)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분이 비난을 받는 표징 즉 조롱거리가 될 것이었다. 믿음이 없는 그런 사람들은 그분을 배척하고 그분 때문에 걸려 넘어질 것이었다. 예언된 대로 예수께서는 많은 유대인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되셨다. (사 8:14) 하지만 예수께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었다. (사 28:16) 그들은 “범죄와 죄 가운데 죽어” 있는 상태에서 비유적으로 말해 부활되어 즉 일으켜져서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신분을 누리게 될 것이었다.—엡 2:1.

당신: 또는 “당신의 영혼; 당신의 생명”.—용어 설명 “영혼” 참조.

긴 칼: 성경에는 마리아가 실제로 칼에 꿰찔렸음을 시사하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이 표현은 마리아가 자신의 아들이 형주에서 죽는 것 때문에 겪게 될 고통과 슬픔을 가리키는 것 같다.—요 19:25.

안나: “은혜; 호의”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이름 한나의 그리스어 형태. 안나는 예루살렘의 구출을 기다리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아기 예수에 대해 이야기함으로 여예언자 역할을 했다. “예언하다”라는 표현의 기본 의미는 하느님의 영감받은 소식을 선포하는 것, 하느님의 뜻을 밝히는 것이다.—행 2:17 연구 노트 참조.

빠지지 않고 성전에 나왔으며: 안나는 계속 성전에 있었다. 아마 아침에 성전 문들이 열릴 때부터 저녁에 닫힐 때까지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안나가 드린 신성한 봉사단식간구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볼 때, 그가 하느님의 다른 충실한 종들과 마찬가지로 당시 만연해 있던 상태에 대해 슬퍼했으며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라 10:1; 느 1:4; 애 1:16) 여러 세기 동안 유대인들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았으며, 종교의 타락은 성전과 제사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을 고려해 보면 안나와 그 밖의 사람들이 간절히 “예루살렘의 구출을 기다린”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눅 2:38.

신성한 봉사를 드렸다: 또는 “숭배했다”.—눅 1:75 연구 노트 참조.

하느님: 가장 오래된 그리스어 사본들에는 이 부분이 테오스(하느님)로 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그리스어 사본들 및 라틴어와 시리아어 번역본들에서는 “주”에 해당하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여러 번역판(부록 다에 J5, 7-17, 28로 표기됨)은 이 부분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며, 그 표현을 번역하면 “여호와께 감사를 드리며”가 된다.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율법” 또는 “여호와의 법”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와 테트라그람마톤이 결합된 형태로 자주 등장한다.—출 13:9; 왕하 10:31; 대상 16:40; 22:12; 대하 17:9; 31:3; 느 9:3; 시 1:2; 119:1; 사 5:24; 렘 8:8; 암 2:4. 눅 1:6; 2:23 연구 노트부록 다3 소개; 눅 2:39 참조.

나사렛으로 돌아갔다: 이 표현을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성전에서 예수를 바친 후 곧바로 나사렛으로 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누가의 기록은 매우 압축된 것이다. 마태의 기록(2:1-23)에는 점성술사들이 찾아오고, 예수를 죽이려는 헤롯왕의 음모를 피해 요셉과 마리아가 이집트로 도망하고, 헤롯이 죽고, 요셉이 마리아와 예수를 데리고 나사렛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은 세부점들이 더 들어 있다.

그의 부모는 ··· 해마다: 율법에는 여자가 유월절 축제에 참석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었다. 하지만 마리아는 요셉이 매년 유월절을 위해 예루살렘에 갈 때 늘 함께 갔다. (출 23:17; 34:23) 그들은 점점 늘어나는 식구들을 데리고 해마다 그러한 여행을 했다. 그것은 구릉 지대를 지나는, 왕복 약 300킬로미터에 달하는 여정이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언덕과 산이 많은 지역을 통과하여 올라가야 했다.—눅 2:4 연구 노트 참조.

그들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다: 예수의 말을 듣던 사람들이 나타낸 반응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질문들은 단지 어린아이가 호기심에서 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눅 2:47) 여기서 “질문을 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일부 문맥에서 사법적인 심문 과정에서 사용되는 질문이나 역질문을 가리키기도 한다. (마 27:11; 막 14:60, 61; 15:2, 4; 행 5:27) 역사가들에 따르면, 당시에는 축제가 끝난 뒤 일부 저명한 종교 지도자들이 성전에 남아 그곳의 넓은 현관들 중 한 곳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발치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질문을 하기도 했다.

계속 크게 놀라고 있었다: “놀라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의 형태를 볼 때, 계속해서 또는 반복적으로 놀랐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가 부모에게 말했다: 이 표현에 이어지는 말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가장 처음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소년 시절에는 자신의 인간 이전의 삶에 대해 온전히 알지 못하셨던 것 같다. (마 3:16; 눅 3:21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그분의 어머니와 양아버지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점을 예수에게 이야기해 주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이치적인 것 같다. 그들은 천사가 여러 경우에 나타나 전해 준 소식에 대해 그리고 예수가 태어난 지 40일 후에 가족이 함께 예루살렘에 갔을 때 시므온과 안나가 한 예언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다. (마 1:20-25; 2:13, 14, 19-21; 눅 1:26-38; 2:8-38) 예수의 대답을 보면, 그분이 자신이 기적에 의해 태어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여호와와 개인적으로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다.

제가 제 아버지 집에 있을 줄을: “제 아버지 집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을 직역하면 “제 아버지의 [것; 일]에”이다. 문맥을 보면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가 어디에 있는지 찾고 있었으므로, 이 표현을 위치나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 보아 “제 아버지 집[또는 “거처; 뜰]”으로 번역하는 것이 문맥상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다. (눅 2:44-46) 후에 예수께서는 지상 봉사 기간에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으로 구체적으로 언급하셨다. (요 2:16) 하지만 일부 학자에 따르면, 이 구절에 나오는 표현은 좀 더 넓은 의미로 생각해서 “제가 제 아버지의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줄을[또는 “제 아버지의 일을 바쁘게 수행해야 할 줄을”]”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내려가: 예루살렘은 해발 약 750미터에 위치해 있었다. 여기서 “내려가다”라는 표현은 예루살렘을 떠난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눅 10:30, 31; 행 24:1; 25:7. 마 20:17; 눅 2:4, 42 연구 노트 비교.

계속 복종했다: 또는 “복종하며 지냈다; 순종하며 지냈다”.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는 계속적인 동작을 나타내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이 점은 예수가 성전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으로 교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일이 있기 전에도,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에도, 겸손하게 부모에게 계속 복종했음을 뜻한다. 예수의 순종은 다른 어린이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있었다. 그분이 모세 율법을 세세한 점까지 성취시키신 것 가운데 부모에게 순종한 것도 포함되기 때문이다.—출 20:12; 갈 4:4.

말: 또는 “것; 일”.—눅 1:37 연구 노트 참조.

미디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이다. 정식 이름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옥타비우스)이다. 그는 기원전 44년에 암살당한 로마의 독재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아들이었다. 기원전 31년 9월에 옥타비아누스는 모두가 인정하는 로마 제국의 통치자가 되었으며, 기원전 27년 1월 16일에 로마 원로원은 그에게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기원전 2년에 아우구스투스는 제국 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 고향”에서 등록할 것을 요구하는 포고령을 내렸다. (눅 2:1-7) 이 포고령으로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성경 예언이 성취되었다. (단 11:20; 미 5:2) 아우구스투스는 기원 14년 8월 17일(율리우스력으로 8월 19일)에 사망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달인 8월에 사망한 것이다. 사진에 나오는 청동 조각상은 기원전 27년에서 25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베들레헴의 겨울
베들레헴의 겨울

예수께서 태어나신 때는 12월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베들레헴은 11월부터 3월까지 춥고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이다. 겨울에 눈이 내리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연중 이 시기에 목자들이 집 밖에서 지내면서 밤에 양 떼를 지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눅 2:8) 베들레헴은 유다의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고도가 해발 약 780미터이다.

구유에 있는 예수
구유에 있는 예수

눅 2:7에서 “구유”로 번역된 그리스어 파트네는 “먹이를 주는 곳”을 의미한다. 고고학자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석회암을 깎아서 만든 큰 통들을 발견했는데, 각각 길이가 약 0.9미터, 너비가 0.5미터, 높이가 0.6미터였다. 이 통들이 구유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좀 더 근래의 경우처럼, 동물을 넣어 두는 동굴의 바위 벽을 파내서 구유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모세 율법에 따르면, 출산한 여자는 번제물로 어린 숫양 한 마리와 속죄 제물로 어린 집비둘기나 산비둘기 한 마리를 바쳐야 했다. 숫양을 바칠 형편이 안 되는 경우에는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칠 수 있었는데, 마리아와 요셉의 경우가 그러했던 것 같다. (레 12:6-8) 사진에 나오는 산비둘기(Streptopelia turtur)(1)는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유럽에서도 발견된다. 이 새는 매년 10월에 더 따뜻한 남쪽 나라로 이동했다가 봄에 이스라엘로 돌아온다. 두 번째 사진에 나오는 새(2)는 집비둘기(Columba livia)이다. 이 종은 세계 전역에서 발견되며, 대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이스르엘 골짜기
이스르엘 골짜기

이 사진은 나사렛 근처의 한 절벽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찍은 것이다. 동서로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이 성경 기록에 자주 언급되는 비옥한 이스르엘 골짜기이다. (수 17:16; 삿 6:33; 호 1:5) 멀리 왼쪽에 모레 언덕이 솟아 있다. 그 언덕의 경사면에 네인이라는 마을이 있다. 네인은 고대 도시 나인과 같은 곳으로 여겨지는데, 예수께서는 나인에서 한 과부의 아들을 부활시키셨다. (삿 7:1; 눅 7:11-15) 더 멀리 지평선 가운데에는 길보아산이 보인다. (삼상 31:1, 8) 이처럼 이곳에서는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하는 중요한 장소들이 내려다보인다. 예수께서는 인근에 있는 나사렛에서 성장하셨으므로 이곳에 와 보셨을 수 있다.—눅 2:39,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