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0:1-42

10  그 후에 주께서는 다른 70명을 임명하여, 자신이 가시려는 모든 도시와 모든 곳으로 자신보다 앞서 둘씩 보내셨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습니다. 그러므로 수확하는 주인에게 수확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십시오.+  가십시오! 내가 어린양을 이리들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여러분을 보냅니다.+  돈주머니나 식량 자루나 신발을 가져가지 말고,+ 길을 가다가 그 누구와도 인사하지 마십시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하십시오.+  평화의 벗이 거기 있다면 여러분의 평화가 그에게 머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 평화가 여러분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그 집에 머물러+ 그들이 주는 것을 먹고 마시도록 하십시오.+ 일꾼이 자기 품삯을 받는 것이 합당합니다.+ 이 집 저 집으로 계속 옮겨 다니지 마십시오.  또한 여러분이 어느 도시에 들어가든지 사람들이 여러분을 받아들이면, 여러분 앞에 차려 주는 것을 먹고  거기에 있는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왕국이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십시오.+ 10  그러나 여러분이 어느 도시에 들어가든지 사람들이 여러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시의 큰길로 나가 이렇게 말하십시오. 11  ‘여러분의 도시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도 여러분에게 털어 버립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왕국이 가까이 왔습니다.’ 12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그날에 소돔이 그 도시보다 더 견디기 쉬울 것입니다.+ 13  고라신아, 네게 화가 있다! 벳새다야, 네게 화가 있다! 너희 가운데서 행한 기적*+ 티레와 시돈에서 행했더라면, 그들이 벌써 자루천을 걸치고 재 가운데 앉아 회개했을 것이다.+ 14  그러므로 심판 때에 티레와 시돈이 너희보다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 15  그리고 너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높여지겠느냐? 무덤까지 내려갈 것이다! 16  여러분의 말을 듣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무시하는 사람은 나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무시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도 무시하는 것입니다.”+ 17  그 후 70명이 기뻐하며 돌아와서 “주*여, 주의 이름을 사용하니 악귀들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 하고 말했다.+ 18  그러자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사탄이 이미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진 것을 보고 있습니다.+ 19  내가 여러분에게 뱀과 전갈을+ 짓밟고 적의 모든 힘을 제압할 권한을 주었으므로+ 아무것도 여러분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20  그렇지만 영들이 여러분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십시오.”+ 21  바로 그때에 그분은 성령 안에서 기쁨에 넘쳐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 이러한 것들을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들에게는 주의 깊이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알려 주셨으니, 제가 아버지를 공개적으로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그렇게 하는 것을 아버지께서 승인하셨기 때문입니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넘겨주셨습니다.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또한 아들 외에는 그리고 아들이 기꺼이 밝혀 주려고 하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알지 못합니다.”+ 23  그리고 그분은 제자들을 돌아보며 그들에게 따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합니다.+ 24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많은 예언자와 왕이 여러분이 보고 있는 것을 보기 원했으나 보지 못했으며,+ 여러분이 듣고 있는 것을 듣기 원했으나 듣지 못했습니다.” 25  율법에 정통한 어떤 사람이 그분을 시험하려고 일어서서 “선생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6  그분은 그에게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읽었습니까?”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가 대답했다. “‘네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신을 다해 너의 하느님 여호와를 사랑해야 한다.’+ 또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28  그분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올바로 대답했습니다. 계속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29  그러나 그 사람은 자기가 의롭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어서+ “그러면 누가 제 이웃입니까?” 하고 예수께 말했다. 3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그가 가진 것을 다 빼앗고 그를 때려 반쯤 죽게 된 채로 버려두고 갔습니다.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길 반대편으로 지나갔습니다. 32  그와 같이, 한 레위 사람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는 길 반대편으로 지나갔습니다. 33  그러나 그 길로 여행하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그를 자기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봐 주었습니다. 35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이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36  당신은 이 셋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합니까?” 37  “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당신도 그렇게 하십시오.”+ 38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분이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런데 마르다라는+ 여자가 그분을 손님으로 집에 맞아들였다. 39  그에게는 마리아라는 자매가 있었는데, 그는 주의 발치에 앉아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계속 듣고 있었다. 40  한편, 마르다는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분에게 와서 말했다. “주여, 제 자매가 저 혼자 일하게 두는데도 아무렇지 않으십니까? 제 자매에게 저를 거들어 주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41  그러자 주께서 말씀하셨다. “마르다, 마르다, 당신은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42  하지만 필요한 것은 몇 가지 또는 한 가지뿐입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했으니,+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각주

또는 “강력한 일”.
또는 “주인”.
또는 “그분의 가르침을; 그분이 전하시는 소식을”.

연구 노트

그 후에: 눅 10:1에서 18:14에 기록된 사건들은 다른 복음서들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장들에서 다루는 주제들 가운데 일부는 다른 복음서 필자들도 기록했는데, 예수의 봉사 기간 중 더 이른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을 묘사하면서 기록한 것 같다. 눅 10:1에서 18:14에 언급된 사건들은 기원 32년 가을 장막절(초막절) 이후에 일어난 일들일 것이다. (부록 가7 참조) 그 시기에 예수께서는 자신의 활동의 중심지를 남쪽으로 옮겨, 예루살렘과 그 인근 그리고 유대와 페레아 지역에서 활동하신 것으로 보인다. 그분은 지상 봉사의 마지막 6개월 동안 그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전파 활동을 하셨다.

다른 70명: 이보다 앞서 훈련받아 보냄을 받은 12사도를 제외한, 다른 70명의 제자를 가리키는 것 같다.—눅 9:1-6.

70명: 몇몇 초기 사본들에는 “72명”으로 되어 있으며, 일부 성경 번역판에서는 그러한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여러 권위 있는 초기 사본들에는 “70명”으로 되어 있는데, 그러한 사본들 중에는 기원 4세기에 만들어진 시나이 책자본과 5세기에 만들어진 책자본들인 알렉산드리아 책자본과 에프라임 시루스 재생 책자본이 있다. 이러한 사본상의 차이에 대해 성경 학자들은 다양한 설명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소한 차이는 전반적인 의미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현존하는 수많은 고대 사본들과 번역판들은 기본적인 점에서는 모두 일치한다. 즉 예수께서 많은 무리의 제자들을 둘씩 짝 지어 전파하도록 보내셨다는 점이다.

신발: 또는 “샌들”. 예수께서 신발을 가져가지 말라고 하신 것을 보면 여분의 신발을 의미하는 것 같다. 당시 사람들은 긴 여행을 떠날 때 여분의 신발을 가져가곤 했다. 바닥이 닳거나 끈이 끊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예수께서 이와 비슷한 지시를 하셨을 때 그분은 제자들에게 신은 “신으라고[또는 “묶어 신으라고”]” 즉, 원래 가지고 있던 신은 신으라고 말씀하셨다. (막 6:8, 9) 마 10:9, 10의 기록에 따르면, 그때 예수께서는 신발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다시 말해 이미 신고 있는 것에 더해 여분의 신발을 구해서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지시하셨다.

그 누구와도 인사하지: 또는 “그 누구와도 포옹하며 인사하지”. 일부 경우에, 여기서 “인사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 아스파조마이는 단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 이상을 의미할 수 있다. 이 단어에는 친구를 만났을 때 할 수 있는 포옹과 긴 대화가 포함되기도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무례하게 행동하도록 지시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제자들이 불필요한 일에 주의를 빼앗기지 말고 시간을 잘 사용하라고 강조하신 것이었다. 예언자 엘리사도 수종인 게하시에게 그와 비슷한 지시를 한 적이 있다. (왕하 4:29) 예수와 엘리사가 비슷한 지시를 한 두 경우 모두, 맡겨진 임무가 긴급한 것이었고 따라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평화의 벗: 직역하면 “평화의 아들”. 이 그리스어 표현은 평화를 사랑하거나 다른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는 사람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관용구에서 가져온 표현인 것 같다. 이 문맥에서는 하느님과 화해하기를 바라고, 하느님과 평화를 누리게 해 주는 “평화의 좋은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식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가리킨다.—행 10:36.

이 집 저 집으로 계속 옮겨 다니지 마십시오: 이보다 앞서 예수께서는 12사도에게 이와 비슷한 지시를 하셨다. (마 10:11; 막 6:10; 눅 9:4) 이제 그분은 70명의 전파자들에게 어느 마을에 가든지 후대를 베푸는 집이 있으면 그 집에 머물라고 지시하신다. 더 편안한 거처를 제공하거나 더 많은 즐길 거리나 물질적인 것을 제공하는 집을 찾아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않음으로, 제자들은 전파할 사명을 그러한 것들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나타내야 했다.

더 견디기 쉬울 것입니다: 예수께서 과장법을 사용하여 하신 말씀인 것 같다. 이 표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의도하신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 5:18; 눅 16:17; 21:33과 같은 구절들에 나오는 예수의 다른 생생한 과장법들과 비교) 그날에 즉 심판날에 (마 10:15; 11:22, 24; 눅 10:14) “소돔이 ··· 더 견디기 쉬울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은 소돔 사람들이 그날에 존재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유 7과 비교) 그분은 단순히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 같은 도시에 살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잘못이 매우 크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 수 있다. (눅 10:13-15) 유의할 만한 점으로, 고대 소돔에 닥친 일은 당시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하느님의 분노와 심판과 관련하여 자주 쓰였다.—신 29:23; 사 1:9; 애 4:6.

티레와 시돈: 지중해 연안의 페니키아에 있던 비유대인들의 도시들.—부록 나10 참조.

하늘: 매우 큰 은혜를 받는 상태를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

무덤: 또는 “하데스”. 인류의 공통 무덤을 가리킨다. (용어 설명 참조) 여기서는 가버나움이 매우 비천해질 것임을 의미하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하늘: 마 11:23 연구 노트 참조.

무덤: 마 11:23 연구 노트 참조.

70명: 몇몇 초기 사본들에는 “72명”으로 되어 있으며, 일부 성경 번역판에서는 그러한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여러 권위 있는 초기 사본들에는 “70명”으로 되어 있는데, 그러한 사본들 중에는 기원 4세기에 만들어진 시나이 책자본과 5세기에 만들어진 책자본들인 알렉산드리아 책자본과 에프라임 시루스 재생 책자본이 있다. 이러한 사본상의 차이에 대해 성경 학자들은 다양한 설명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소한 차이는 전반적인 의미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현존하는 수많은 고대 사본들과 번역판들은 기본적인 점에서는 모두 일치한다. 즉 예수께서 많은 무리의 제자들을 둘씩 짝 지어 전파하도록 보내셨다는 점이다.

70명: 눅 10:1 연구 노트 참조.

나는 사탄이 이미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진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언적인 말씀이었음이 분명하다. 예수께서는 사탄이 아직 하늘에서 추방되지 않았는데도 그 일이 이미 일어난 일인 것처럼 말씀하신다. 계 12:7-9에서는 하늘에서 벌어진 전쟁을 묘사하면서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을 메시아 왕국의 탄생과 연관시킨다. 예수께서 이 구절에서 하신 말씀은 불완전한 인간에 불과한 70명의 제자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 악귀들을 쫓아냈으므로, 미래에 있을 그 전쟁에서도 사탄과 그의 악귀들이 패배할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강조하신 것이다.—눅 10:17.

뱀과 전갈: 이 문맥에서는 해를 입히는 것을 상징하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었다.—겔 2:6 비교.

어린아이들에게는: 또는 “아이 같은 사람들에게는”.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는 겸손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어린아이들에게는: 마 11:25 연구 노트 참조.

정신: 지적 능력을 가리킨다. 사람은 자신의 정신 기능을 사용해서 하느님을 알아 가고 그분에 대한 사랑을 키워야 한다. (요 17:3; 롬 12:1) 여기서 예수께서 인용하신 신 6:5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마음, 영혼, 힘’이라는 세 단어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리스어로 기록된 마가복음의 원문에는 마음, 영혼, 정신, 이라는 네 가지 개념이 언급된다. 이와 같이 다른 단어들이 사용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정신”이라는 단어가 추가된 것은 히브리어에서 그 세 단어들이 포괄하는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서였을 수 있다. 고대 히브리어에는 “정신”을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는 없지만 “마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에 그 개념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았다. “마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비유적으로 사용되면 생각, 감정, 태도, 동기를 포함한 속사람 전체를 가리킨다. (신 29:4; 시 26:2; 64:6. 이 구절에 나오는 마음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어 「칠십인역」에서는 히브리어 원문에 나오는 “마음”을 종종 “정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로 번역한다. (창 8:21; 17:17; 잠 2:10; 사 14:13) 마가가 정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또 다른 이유는 “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정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와 의미가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수 있다. (마 22:37 비교, 그 구절에서는 “힘”이 아니라 “정신”에 해당하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이처럼 단어들 사이에 의미가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서기관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이해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대답한 것일 수 있다. (막 12:33) 복음서 필자들이 신 6:5을 인용할 때 원문에 정확히 대응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수 있다.—이 구절에 나오는 에 대한 연구 노트 및 마 22:37; 눅 10:27 연구 노트 참조.

힘: 이 구절에 나오는 정신에 대한 연구 노트에서 언급되었듯이, 여기서 예수께서 인용하신 신 6:5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마음, 영혼, 힘’이라는 세 단어가 사용되었다. “힘[또는 “활력”, 각주]”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신체적 힘과 정신적·지적 능력을 둘 다 가리킬 수 있는 단어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성구가 인용될 때 “정신”이라는 개념이 추가된 또 다른 이유일 수 있다. 마 22:37에서 동일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힘”이 아니라 “정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수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리스어로 기록된 누가복음[10:27]에 따르면) 서기관은 동일한 히브리어 구절을 인용할 때 마음, 영혼, , 정신이라는 네 가지 개념을 언급한다. 이 점을 보면 예수 시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신 6:5의 원문에 나오는 세 히브리어 단어의 개념에 네 그리스어 단어의 개념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

이웃: 직역하면 “가까이 있는 사람”. 이 단어는 단지 가까이 사는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어떤 식으로든 교류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가리킬 수 있는 표현이다.—눅 10:29-37; 롬 13:8-10. 마 5:43 연구 노트 참조.

마음. . . 영혼. . . 힘. . . 정신: 여기서 율법에 정통한 사람은 신 6:5을 인용하여 대답한다. 그 구절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마음, 영혼, 힘이라는 세 단어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리스어로 기록된 누가복음에 따르면 이 사람은 마음, 영혼, 힘, 정신이라는 네 가지 개념을 언급한다. 그의 대답을 보면 예수 시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신 6:5의 원문에 나오는 세 히브리어 단어의 개념에 네 그리스어 단어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더 자세한 점을 알아보려면, 막 12:30 연구 노트 참조.

영혼을 다하고: 어떤 사람이 영혼을 다해 무엇을 한다는 말은 그의 전부를 다 바쳐서 또는 그의 생명 전체를 사용하여 그것을 한다는 의미이다.—용어 설명 “영혼” 참조.

여호와: 이 구절에서 인용한 신 6:5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부록 다 참조.

네 이웃: 마 22:39 연구 노트 참조.

어떤 사마리아 사람: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멸시했고 그들과 상종하려 하지 않았다. (요 4:9) 어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이라는 단어를 상대를 경멸하고 모욕하는 표현으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요 8:48) 미슈나에 따르면 한 랍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마리아인의 빵을 먹는 자는 돼지고기를 먹는 자와 같다.” (「셰비트」 8:10) 많은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의 증언을 신뢰하지 않았고 사마리아인에게서 어떤 편의나 도움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유대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그러한 멸시하는 태도를 잘 알고 계셨던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강력한 교훈을 베푸셨다. 이 비유는 주로 선한 사마리아인 또는 이웃다운 사마리아인의 비유라고 불린다.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 주었습니다: 의사였던 누가가 이 구절에서 예수의 비유를 자세히 기록하면서 묘사한 치료법은 당시 사람들이 상처를 치료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방법과 일치한다. 기름과 포도주는 가정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용도로 흔히 사용되었다. 기름은 때때로 상처 부위의 통증을 가라앉히는 데 사용되었던 것 같으며, (사 1:6 비교) 포도주는 소독제와 가벼운 살균제 역할을 했다. 누가는 상처가 악화되지 않도록 싸매 주었다는 점도 언급한다.

여관: 그리스어 원어는 문자적으로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거나 맞아들이는 곳”을 의미한다. 여행자들은 그런 곳에서 묵을 수 있었으며 그곳에는 그들이 데리고 온 동물을 둘 장소도 마련되어 있었다. 여관 주인은 여행자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제공했으며, 대가를 받고 사람들을 맡아서 돌보기도 했을 것이다.

데나리온: 용어 설명부록 나14 참조.

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율법에 정통한 이 사람은 “사마리아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를 꺼렸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을 수 있다. 그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이든, 이 사람의 대답과 예수의 마지막 말씀을 보면 이 비유에 담긴 교훈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진정한 이웃이란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3킬로미터쯤: 직역하면 “15스타디온쯤”. 그리스어 스타디온은 1로마마일의 8분의 1 즉 185미터에 해당하는 길이 단위이다.—부록 나14 참조.

어떤 마을: 베다니를 가리키는 것 같다. 베다니는 올리브산의 동남동 쪽 경사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예루살렘에서 약 3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이었다. (요 11:18 연구 노트 참조) 이 마을에는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가 사는 집이 있었다. 갈릴리에서는 가버나움이 예수의 집 즉 활동의 근거지였던 것처럼, (막 2:1) 유대에서는 베다니가 그분의 집이라고 할 만한 곳이었을 것이다.

마르다: 이 구절에서는 예수를 집에 맞아들인 사람으로 마르다만을 언급한다. 일반적으로 마르다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을 볼 때, (눅 10:40; 요 11:20) 마르다가 마리아의 언니였을 수 있다.—눅 10:39.

필요한 것은 몇 가지 또는 한 가지뿐입니다: 일부 고대 사본에는 “필요한 것은 한 가지입니다”로 번역할 수 있는 짧은 표현이 사용되었다. 일부 성경 번역판에서는 그러한 표현을 사용한다. 어떤 사본의 표현을 사용하든, 예수께서 하신 교훈의 전반적인 취지는 동일하다. 영적인 것을 첫째 자리에 두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다음, 영적인 것을 우선순위에 둠으로 “좋은 몫”을 선택한 마리아를 칭찬하신다.

좋은 몫: 여기서 “몫”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 메리스「칠십인역」에도 나오는데, 음식의 일부 또는 몫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며 (창 43:34; 신 18:8) 영적인 의미의 “몫”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된다. (시 16:5; 119:57) 마리아가 선택한 “좋은 몫”에는 하느님의 아들로부터 영적 양식을 얻는 것이 포함되었다.

미디어

이리
이리

이스라엘에서 이리 즉 늑대는 주로 밤에 활동하는 포식 동물이다. (합 1:8) 이리는 사납고 식욕이 왕성하고 대담하고 탐욕스러워서, 양을 사냥할 때 보통 자기가 먹거나 끌고 갈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죽인다. 성경에서는 동물과 그 동물이 가진 특징이나 습성을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하여, 좋은 특성과 나쁜 특성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야곱은 죽기 직전에 말한 예언에서 베냐민 지파가 이리(Canis lupus)처럼 싸울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말했다. (창 49:27)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리는 사나움, 탐욕스러움, 악랄함, 교활함 같은 나쁜 특성들을 상징한다. 이리로 비유된 사람들 중에는 거짓 예언자들(마 7:15), 그리스도인의 봉사를 악랄하게 반대하는 자들(마 10:16; 눅 10:3),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 거짓을 가르쳐 회중을 위험에 빠뜨리는 거짓 선생들(행 20:29, 30)이 있다. 목자들은 이리가 어떤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도망치는” “품꾼”에 대해 말씀하셨다. “양들에게 관심이 없는” 품꾼과는 달리 예수께서는 “양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놓으신 “훌륭한 목자”이시다.—요 10:11-13.

지팡이와 식량 자루
지팡이와 식량 자루

지팡이 혹은 막대기는 고대 히브리인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었으며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몸을 지탱하고(출 12:11; 슥 8:4; 히 11:21), 자신을 방어하거나 보호하고(삼하 23:21), 곡식을 타작하고(사 28:27), 올리브 열매를 거두는 데(신 24:20; 사 24:13) 사용되었다. 식량 자루는 대개 가죽으로 만든 것으로 여행자, 목자, 농부와 같은 사람들이 어깨에 둘러메고 다녔다. 이것은 식량이나 옷 등을 담는 데 사용되었다. 예수께서는 전파 여행을 하도록 사도들을 보내실 때, 여러 가지 지시를 하면서 지팡이와 식량 자루에 관해서도 말씀하셨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던 차림 그대로 떠나야 했으며, 가외의 것들을 얻는 데 정신을 빼앗겨서는 안 되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필요를 돌보실 것이었기 때문이다.—예수께서 지시하신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려면 눅 9:310:4 연구 노트 참조.

가버나움,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 고라신, 벳새다

이 영상에 나오는 파노라마 사진은 갈릴리 바다 북동쪽 해안 근처에 있는 오피르 전망대에서 찍은 것으로, 세 도시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위치를 보여 준다. 고라신(2)은 가버나움(1)에서 3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가버나움은 예수께서 약 2년 동안 갈릴리에서 대대적으로 봉사할 때 활동의 근거지로 삼으신 곳이었을 것이다. 사도들인 베드로와 안드레는 가버나움에 살았으며 마태의 세무서도 가버나움이나 그 인근에 있었다. (막 1:21, 29; 2:1, 13, 14; 3:16; 눅 4:31, 38) 베드로와 안드레와 빌립은 원래 가버나움에서 가까운 도시인 벳새다(3) 출신이었다. (요 1:44) 예수께서는 이 세 도시와 그 인근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다.—부록 가7-ㄹ, 지도 3ㄴ 및 가7-ㅁ, 지도 4 참조.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는 길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는 길

이 짧은 영상에 나오는 길(1)은 고대에 예루살렘과 예리코를 잇던 길과 유사한 경로로 나 있는 것 같다. 길이가 20킬로미터 이상이었던 그 길은 예루살렘에서 고도가 약 1000미터 낮은 지점에 있는 예리코까지 구불구불하게 나 있는 내리막길이었다. 황량하고 인적이 드물어 강도가 빈번하게 출몰했기 때문에 여행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곳에 수비대가 주둔했다. 그 길을 따라 유대 광야를 지나면 로마 시대에 세워진 예리코(2)가 있었다. 로마 도시 예리코에서 거의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예리코 옛 도시(3)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