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3:1-25

3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았다면+ 위에 있는 것들을 계속 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여러분의 정신을 땅에 있는 것들이 아니라+ 위에 있는 것들에 고정시키십시오.+  여러분은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하느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숨겨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적 부도덕, 더러움, 무절제한 성욕,+ 해로운 욕망, 탐욕과 관련해 땅에 속한 여러분의 몸의 지체를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하느님의 진노가 내립니다.+  여러분도 이전의 생활 방식을 따르던* 때에는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것 곧 격분, 분노, 악,+ 모욕적인 말,+ 그리고 입에서 나오는 음탕한 이야기를+ 여러분에게서 없애 버려야 합니다.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옛 인간성을 그 행위와 함께 벗어 버리고+ 10  새 인간성을 입으십시오.+ 새 인간성은 그것을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정확한 지식을 통해* 새로워져 갑니다. 11  거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대인도 없고, 할례도 무할례도 없고, 외국인도 스키타이 사람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거룩하고 사랑받는 사람들로서, 동정심 어린 부드러운 애정,+ 친절, 겸손,+ 온화,+ 참을성을+ 입으십시오. 13  누군가 다른 사람에 대해 불평할 이유가 있더라도+ 계속 서로 참고 서로 기꺼이 용서하십시오.+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14  이 모든 것에 더해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한 연합의 띠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그 평화를 누리도록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또 감사하고 있음을 나타내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모든 지혜와 더불어 여러분 안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시와+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과 감사하며* 부르는 영적 노래로 계속 서로 가르치고 격려하며 마음으로 여호와께 노래하십시오.+ 17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하십시오.+ 18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 이것이 주 안에서 합당한 일입니다. 19  남편 여러분, 아내를 계속 사랑하고+ 아내에게 심하게 화를 내지* 마십시오.+ 20  자녀 여러분, 모든 일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21  아버지 여러분, 자녀가 분한 마음을 갖게 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낙심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22  종 여러분, 모든 일에서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단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주인이 볼 때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과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으로 순종하십시오. 23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호와를 위해 하듯 영혼을 다해+ 하십시오. 24  여러분이 여호와로부터 상속 재산을 상으로 받을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섬기십시오. 25  그릇된 일을 행하는 사람은 자기가 한 그릇된 일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각주

또는 “그렇게 살던”.
또는 “걸었습니다.”
또는 “지식 안에서”.
또는 “은혜롭게”.
또는 “거칠게 대하지”.

연구 노트

위에 있는 것들: 바울은 골로새의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가진 희망에 정신을 집중하라고 권고한다. 그는 빌립보서에서도 “위로 부르시는 상” 즉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통치할 전망으로 주의를 이끌었다. (빌 3:14; 골 1:4, 5) 정신을 고정시키십시오라는 명령은 계속되는 행동을 나타내는 현재 시제로 되어 있다. 그들이 위에 있는 것들에 정신을 고정시킨다면, 세상 철학이나 헛된 전통과 같은 땅에 있는 것들로 인해 주의가 산만해지거나 약해져 귀중한 희망을 잃게 되는 일이 없을 것이었다.—골 2:8.

성적 부도덕: 성경에서 그리스어 포르네이아는 하느님의 표준에 위배되는 모든 성행위를 두루 일컫는 용어이다. 한 사전에서는 포르네이아를 “매춘 행위, 음란 행위, 음행”으로 정의하면서 이 단어가 “온갖 불법적인 성교”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고 설명한다. 그러한 불법적인 행위 가운데는 매춘 행위, 간음, 미혼끼리의 성관계만이 아니라 동성애와 수간도 포함되는데 성경에서는 이러한 모든 행위를 정죄한다. (레 18:6, 22, 23; 20:15, 16; 고전 6:9. 용어 설명 참조) 예수께서는 성적 부도덕을 살인, 도둑질, 모독과 함께 언급하심으로 그것이 악한 것임을 보여 주셨다.—마 15:19, 20; 막 7:21-23.

더러움: 또는 “불결함; 타락; 음란”. 이 구절에서 “육체의 일”로 가장 먼저 언급된 세 가지 가운데 “더러움”(그리스어 아카타르시아)이 가장 의미 폭이 넓다. 그리스어 아카타르시아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10번 나온다.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더럽거나 불결한 것을 가리킨다. (마 23:27)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면 온갖 종류의 불결함을 포괄하는 단어로 쓰이는데, 그 가운데는 성 문제, 말과 행동, 그리고 거짓 신을 숭배하는 것과 같은 영적으로 맺는 관계 등이 포함된다. (롬 1:24; 6:19; 고후 6:17; 12:21; 엡 4:19; 5:3; 골 3:5; 살전 2:3; 4:7) 따라서 “더러움”에는 여러 종류의 잘못된 행동이 포함되며, 그러한 행동들은 더러움의 정도가 각기 다를 수 있다. (엡 4:19 연구 노트 참조) “더러움”은 잘못된 행동이나 상태가 갖는, 도덕적으로 불쾌감을 주는 측면을 강조하는 표현이다.—용어 설명 “부정함; 더러움” 참조.

온갖 더러운 일: “더러운 일”(그리스어 아카타르시아)이라는 표현은 의미 폭이 넓은 단어이다. 여기서 이 단어는 온갖 종류의 불결함을 포괄하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쓰였는데, 그 가운데는 성 문제, 말과 행동, 영적으로 맺는 관계 등이 포함된다. (고전 7:14; 고후 6:17; 살전 2:3 비교) 이 단어는 잘못된 행동이나 상태가 갖는, 도덕적으로 불쾌감을 주는 측면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갈 5:19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사람들이 그러한 더러운 일을 탐욕으로 행했다고 말한다. “탐욕”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플레오넥시아는 더 갖고 싶어 하는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을 뜻한다. 바울은 “탐욕으로”라는 표현을 덧붙임으로, “더러운 일”에 해당하는 행동들이 그 심각성의 정도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롬 1:29 연구 노트 참조.

치욕스러운 성욕: 그리스어 파토스는 강한 욕구, 절제되지 않은 욕망을 가리킨다. 문맥을 볼 때 성적 욕망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그러한 강한 욕망을 “치욕스럽다”(그리스어 아티미아, “불명예; 수치”)고 한 이유는 그러한 욕망이 사람에게 치욕 즉 불명예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탐욕: 또는 “탐심”. 그리스어 플레오넥시아의 문자적 의미는 “더 갖고 있는 것”이며, 더 갖고 싶어 하는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을 뜻한다. 이 그리스어 단어는 엡 4:19; 5:3에도 나온다. 바울은 골 3:5에서 “탐욕”에 대해 언급한 다음 “탐욕은 우상 숭배”라고 덧붙인다.

탐욕스러운 자 곧 우상 숭배자: 탐욕스러운 사람은 자신이 갈망하는 것을 신으로 삼는다. 즉 여호와께 드리는 숭배보다 앞자리에 둔다. 그의 삶의 주된 목표는 자신의 탐욕스러운 욕망을 채우는 것이다. (롬 1:24, 25; 골 3:5) 탐욕은 흔히 돈이나 물질에 대한 과도한 사랑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먹을 것이나 마실 것, 권력, 불법적인 성, 그 밖에 하느님과의 관계에 방해가 되는 것들에 대한 지나친 욕망을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롬 1:29 연구 노트 참조.

성적 부도덕: 그리스어 포르네이아는 성경에서 불법으로 규정하는 모든 성행위를 두루 일컫는 용어이다. 여기에는 간음, 미혼끼리의 성관계, 동성애, 그 밖의 성과 관련된 죄가 포함된다.—용어 설명갈 5:19 연구 노트 참조.

더러움: 또는 “불결함; 타락; 음란”. “더러움”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아카타르시아)가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면 온갖 종류의 불결함을 포괄하는 단어로 쓰이는데, 그 가운데는 성 문제, 말과 행동, 영적으로 맺는 관계 등이 포함된다. (고전 7:14; 고후 6:17; 살전 2:3 비교) 따라서 “더러움”에는 여러 종류의 잘못된 행동이 포함되며, 그러한 행동들은 더러움의 정도가 각기 다를 수 있다. “더러움”은 잘못된 행동이나 상태가 갖는, 도덕적으로 불쾌감을 주는 측면을 강조하는 표현이다.—용어 설명 “부정함; 더러움” 및 갈 5:19; 엡 4:19 연구 노트 참조.

무절제한 성욕: 롬 1:26 연구 노트 참조. 창 39:7-12; 삼하 13:10-14 비교.

탐욕 …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여기서 “탐욕”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플레오넥시아는 더 갖고 싶어 하는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을 뜻한다. (롬 1:29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탐욕이 사실상 우상 숭배라고 말한다. 탐욕스러운 사람은 자신이 갈망하는 것을 신으로 삼기, 즉 여호와께 드리는 숭배보다 앞자리에 두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을 삶의 주된 목표로 삼는다.—엡 5:5 연구 노트 참조.

죽이십시오: 바울은 이러한 생생한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그릇된 육적인 욕망을 없애기 위해 강력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갈 5:24) “죽이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문자적으로 “죽이다”, “없애다”를 의미한다.—마 5:29, 30; 18:8, 9; 막 9:43, 45, 47 비교.

격분하더라도: 바울은 여기서 시 4:4을 인용한 것이다. 이것을 볼 때 그리스도인이 분노를 느끼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여호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악과 불공정에 대해 분노를 표현하신다. 하지만 그러한 분노는 항상 의와 완벽한 판단력에 따른 것이다. (겔 38:18, 19. 막 3:5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인들도 의로운 분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다 하더라도 죄를 짓지 말라고 말한다. 그들은 분노에 사로잡혀 화를 터뜨리거나 모욕적인 말을 하거나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엡 4:31) 시 4:4에서는 하느님의 종들에게 자신이 무엇 때문에 분노하게 되었는지 여호와께 개인적인 기도로 말씀드리라고 권한다.

해가 질 때까지 화난 상태로 있지 마십시오: 유대인의 하루는 해가 질 때 시작되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바울은 다음 날까지 화를 계속 품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것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다른 사람에 대해 계속 분을 품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셨다. (마 5:22) 화를 계속 품으면 상대에게 반감이나 앙심을 갖게 되고 그와의 관계에 금이 가고 회중에 분열이 생길 수도 있다. (레 19:18; 시 36:4; 갈 5:19-21) 바울은 상대방과의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라고, 가능하다면 그날이 지나가기 전에 해결하라고 권한 것이다.—롬 12:17-21; 엡 4:2, 3.

입에 담지도 마십시오: 에베소 사람들은 저속한 말이나 “음탕한 농담”을 해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엡 5:4) 이 도시의 극장에서 상연되는 연극에서도 음탕한 말이 사용되었다. 심지어 그리스의 여신 데메테르를 위한 테스모포리아와 같은 종교 축제에서도 음탕한 말이 사용되었다. 사람들은 그런 음탕한 농담을 하면 여신이 재미있어 한다고 생각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그런 부도덕한 내용의 대화를 즐겨서는 안 될 뿐 아니라 그러한 말을 입에 담아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 표현은 그리스도인이 부도덕한 행동을 결코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엡 5:3-5.

썩은 말: “썩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부패된 과일이나 생선이나 고기를 가리키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마 7:17, 18; 12:33; 눅 6:43) 이 구절에서 이 단어는 불건전하거나 모욕적이거나 음탕한 말을 가리키는 생생한 표현으로 쓰였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금으로 맛을 낸” 단어들을 사용하여 ‘세워 주고 유익을 주는 말’을 해야 한다.—골 4:6연구 노트.

격분, 분노: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두 단어는 의미가 매우 비슷하다. 일부 학자들은 처음에 나오는 오르게는 원래 속으로 분노를 느끼는 것에 초점을 맞춘 단어이고, 그다음에 나오는 티모스는 그 감정을 겉으로 터뜨리는 것과 관련이 있는 단어라고 말한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에는 그러한 구분이 불분명해졌을 수 있다. 바울은 두 단어를 모두 사용함으로 분노를 마음속에 품는 경향과 그러한 감정을 터뜨리는 것에 대해 경고한 것이다.—엡 4:31. 엡 4:26 연구 노트 참조.

악: 여기서 “악”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카키아는 앙심, 악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려는 경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다.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엡 4:31에서 바울은 “모든 해로운 것”이라는 표현 가운데 동일한 그리스어를 사용한다. (또한 롬 1:29; 고전 14:20 참조) 한 참고 문헌에서는 이 문맥에서 악이 “사람들 간의 유대를 망쳐 놓는 악한 영향력”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모욕적인 말: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그리스어는 블라스페미아인데, 이 단어는 하느님에게 하는 불경스러운 말을 가리킬 경우 “모독” 또는 “신성을 모독하는 것”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계 13:5, 6) 하지만 원래 이 말은 하느님에게 하는 불경스러운 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사람에게 하는 악한 말이나 중상하는 말을 가리킬 수도 있으며, 문맥을 보면 여기서 바울이 그런 의미로 이 말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엡 4:31 참조) 다른 번역판들에서는 이 구절에 “중상”이나 “비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한 참고 자료에서는 이 단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 단어는 다른 사람을 깎아내려서 평판이 안 좋아지게 하거나 나쁜 평판을 갖게 만들려고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음탕한 이야기: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에만 나온다. 이 단어는 지저분하고 저속하고, 때로는 모욕적인 말을 가리킨다. 부도덕을 주제로 한 연극이나 희극에서는 음탕한 말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일부 사람들은 그러한 말을 재미있게 여겼다. 사람들은 분노를 표출할 때 음탕한 말을 하기도 했는데, 바울은 분노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이 구절에 나오는 격분, 분노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분명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받지 않도록 돕기 위해 이러한 경고를 했을 것이다. (엡 5:3 연구 노트 참조) 엡 4:29(연구 노트 참조)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 구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썩은 말은 입 밖에 내지 말라”고 권한다.

없애 버려야: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 동사는 낡은 옷과 같은 것을 “없애는” 것 또는 “치우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바울은 9, 10, 12, 14절에 나오는 부적합한 옷을 벗고 적합한 옷을 입는 것에 관한 비유를 여기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울은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이 구절에서 열거한 다섯 가지를 그리스도인이 기꺼이 벗어 버려야 하는 더럽고 혐오스러운 옷처럼 여기기를 바랐다. (이 구절에 나오는 격분, 분노; 악; 모욕적인 말; 음탕한 이야기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이 부분(골 3:8-10, 12, 13)은 엡 4:20-25, 31, 32과 여러 가지로 비슷한 점이 많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이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기록했다는 점을 뒷받침해 준다.—엡 6:21; 골 4:7-9.

없애 버려야: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 동사는 낡은 옷과 같은 것을 “없애는” 것 또는 “치우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바울은 9, 10, 12, 14절에 나오는 부적합한 옷을 벗고 적합한 옷을 입는 것에 관한 비유를 여기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울은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이 구절에서 열거한 다섯 가지를 그리스도인이 기꺼이 벗어 버려야 하는 더럽고 혐오스러운 옷처럼 여기기를 바랐다. (이 구절에 나오는 격분, 분노; 악; 모욕적인 말; 음탕한 이야기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이 부분(골 3:8-10, 12, 13)은 엡 4:20-25, 31, 32과 여러 가지로 비슷한 점이 많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이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기록했다는 점을 뒷받침해 준다.—엡 6:21; 골 4:7-9.

우리의 옛 인간성: 또는 “우리의 옛 자아; 예전의 우리”. 직역하면 “우리의 옛 사람”. 그리스어 안트로포스는 기본적으로 남자든 여자든 “사람”을 가리킨다.

그분과 함께 기둥에 못 박힌: 복음서에서 그리스어 동사 신스타우로오는 문자적으로 예수와 함께 처형된 사람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마 27:44; 막 15:32; 요 19:32) 바울이 자신의 편지들에서 예수께서 기둥에 달려 처형되신 일을 여러 차례 언급한 것은 사실이다. (고전 1:13, 23; 2:2; 고후 13:4) 하지만 이 구절에서 바울은 이 그리스어를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처형되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자신들의 옛 인간성을 죽였다고 설명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도 이 단어를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여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기둥에 못 박혀 있습니다”라고 썼다.—갈 2:20.

옛 인간성을 … 벗어 버리고: 바울은 이 구절에서도 옷을 입고 벗는 것에 관한 비유를 계속 사용한다. (골 3:8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에서 “인간성”으로 번역된 단어는 문자적으로 “사람”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사람”이라는 표현을 비유적으로 사용한 것인데, 한 참고 문헌에서 이렇게 설명한 것과 같다. “여기서 ‘옛 사람’이라는 표현은 롬 6:6과 엡 4:22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죄의 지배를 받을 때 갖는 인간성 전체를 가리킨다.” (롬 6:6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의 말은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깊이 뿌리박힌 경향과 죄가 되는 행동까지도 “벗어 버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새 인간성: 직역하면 “새 사람”. 그리스도인은 “옛 인간성”(직역하면 “옛 사람”)을 그 행위와 함께 벗어 버려야 한다. (엡 4:22) 그에 더해, “새 인간성”을 입음으로 진정한 변화를 해야 한다. 그러한 새 인간성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창조된” 것으로, 여호와 하느님의 성품의 형상 즉 그분의 성품을 반영하는 것이다. (골 3:9, 10)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그분의 형상에 따라 변화하고 갈 5:22, 23에 언급된 것과 같은 아름다운 특성들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갈 5:22; 엡 4:23 연구 노트 참조.

옛 인간성을 … 벗어 버리고: 바울은 이 구절에서도 옷을 입고 벗는 것에 관한 비유를 계속 사용한다. (골 3:8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에서 “인간성”으로 번역된 단어는 문자적으로 “사람”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사람”이라는 표현을 비유적으로 사용한 것인데, 한 참고 문헌에서 이렇게 설명한 것과 같다. “여기서 ‘옛 사람’이라는 표현은 롬 6:6과 엡 4:22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죄의 지배를 받을 때 갖는 인간성 전체를 가리킨다.” (롬 6:6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의 말은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깊이 뿌리박힌 경향과 죄가 되는 행동까지도 “벗어 버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바울은 이 말을 하기에 앞서 친절, 동정심, 용서와 같은 하느님의 특성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엡 4:32) 그리고 이 구절을 “그러므로”라는 표현으로 시작함으로, 그리스도인이 그러한 훌륭한 특성들을 생각해 보면 그 특성들을 가장 잘 나타내시는 하느님을 본받고 싶어진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 103:12, 13; 사 49:15; 엡 1:3, 7) 바울이 “본받는 사람”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을 완벽하게 본받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바울은 “사랑받는 자녀로서” 여호와를 본받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어린 자녀가 부모를 완벽하게 똑같이 본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부모는 자녀가 자신을 본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해한다.—시 147:11 비교.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겉사람이 “쇠약해질지라도” 여호와께서는 “날마다” 계속 자신의 종들을 새롭게 해 주신다는, 다시 말해 그들에게 영적인 새 힘을 주신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 92:12-14) “우리의 속사람”은 우리의 내면에 있는 영적인 성향, 특성, 힘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입는 “새 인간성”과도 관련이 있다. (골 3:9, 10)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 즉 미래의 상에 대한 하느님의 웅대한 약속에 초점을 맞추도록 권한다.—고후 4:18 연구 노트 참조.

새 인간성: 바울은 여기서 “옛 인간성”을 대신할 비유적인 옷을 언급한다. (엡 4:24; 골 3:9 연구 노트 참조) 이 “새 인간성”은 하느님께서 나타내시는 것과 같은 훌륭한 특성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여호와 하느님의 성품의 형상 즉 그분의 성품을 닮은 모습이다. 바울이 사용한 “형상”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칠십인역」창 1:26에도 나온다. 따라서 바울은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인간이 불완전하다 해도 하느님의 고귀한 특성들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 것이다.—엡 5:1 연구 노트 참조.

새로워져 갑니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는 그의 편지들이 쓰여지기 이전에 기록된 고대 그리스어 문헌에는 나오지 않는 단어이다. 이 그리스어 동사는 새롭게 되는 단 한 번의 동작이 아니라 계속되는 과정을 나타내는 형태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이 새 인간성을 기르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다가 그렇게 하기를 중단하면 옛 인간성이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창 8:21; 롬 7:21-25) 따라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알게 된 그리스도인 성품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계속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들은 바울이 12-15절에 언급한 특성들을 기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후 4:16 연구 노트 참조.

외국인: 또는 “비그리스인”. 일부 오래된 성경 번역판은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바르바로스를 “미개인; 야만인”을 뜻하는 단어로 번역한다. 이 그리스어에 들어 있는 “바르 바르”라는 표현은 말을 더듬거나 옹알거리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원래 그리스어 바르바로스는 그리스인들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인을 가리키는 데 사용하던 말이었다. 이 단어에는 미개하거나 교양이 없거나 예의가 없다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았으며, 경멸하는 느낌도 담겨 있지 않았다. 바르바로스는 단지 그리스인이 아닌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요세푸스와 같은 일부 유대인 저술가들은 자신이 바르바로스로 불린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일 때까지 자신들을 바르바로스라고 불렀다. 따라서 바울이 모든 사람을 포괄하여 ‘그리스인과 외국인 모두에게’라고 말했을 때 그가 사용한 그리스어 바르바로스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지 않았다.

외국인: 직역하면 “야만인”.—롬 1:14 연구 노트 참조.

스키타이 사람: 바울 시대에 “스키타이 사람”이라는 말은 사납고 야만적인 사람들을 뜻했다. 스키타이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주로, 고대의 저술가들이 일반적으로 흑해의 북쪽 및 동쪽 지역과 연관 짓는 유목 민족을 가리켰다. 증거에 의하면, 그들은 시베리아 서부의 몽골 국경 근처까지 옮겨 다녔던 것 같다.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스키타이”라는 표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을 열거한다. 그는 그리스인과 유대인을 함께 언급하고, 할례받은 사람과 할례받지 않은 사람, 외국인과 스키타이 사람, 종과 자유인을 함께 언급한다. 바울은 그러한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함으로, 새 인간성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이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에 따라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겸손히: 겸손은 교만하거나 오만하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겸손은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보는지로 나타난다. 겸손은 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정신 상태이다. 진정으로 겸손한 그리스도인들은 연합하여 함께 일할 수 있다. (엡 4:2; 빌 2:3; 골 3:12; 벧전 5:5)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나오는 타페이노프로시네(“겸손”)는 “낮추다”라는 의미인 타페이노오와 “정신”을 의미하는 프렌에서 나온 말이다. 따라서 문자적 의미는 “자기를 낮추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타페이노스는 “겸손하다”(마 11:29)나 “겸손한 사람들”(약 4:6; 벧전 5:5)로 번역되었다.—마 11:29 연구 노트 참조.

없애 버려야: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 동사는 낡은 옷과 같은 것을 “없애는” 것 또는 “치우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바울은 9, 10, 12, 14절에 나오는 부적합한 옷을 벗고 적합한 옷을 입는 것에 관한 비유를 여기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울은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이 구절에서 열거한 다섯 가지를 그리스도인이 기꺼이 벗어 버려야 하는 더럽고 혐오스러운 옷처럼 여기기를 바랐다. (이 구절에 나오는 격분, 분노; 악; 모욕적인 말; 음탕한 이야기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이 부분(골 3:8-10, 12, 13)은 엡 4:20-25, 31, 32과 여러 가지로 비슷한 점이 많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이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기록했다는 점을 뒷받침해 준다.—엡 6:21; 골 4:7-9.

겸손: 또는 “자기를 낮추는 정신”.—행 20:19 연구 노트 참조.

입으십시오: 바울은 골 3:8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옷에 관한 비유를 이 구절에서도 계속 사용한다. (연구 노트 참조) 그는 이제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이 옷을 입듯이 입어야 하는 “새 인간성”을 이루는 특성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골 3:10) 그리스도와 같은 그러한 특성들은 마음에서 자라는 것이지만 겉으로도 나타나야 한다는 면에서 옷과 비슷하다. 여러 성경 참고 문헌에서는 바울이 사용한 “입으십시오”라는 명령문이 긴급성뿐만 아니라 지속성도 담고 있을 수 있는 형태라고 지적한다. 이 점을 볼 때 바울은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조언에 따라 신속하게 행동하고, 그 특성들을 길러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결코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

용서받고: 그리스어 아피에미는 기본적으로 “떠나가게 하다”를 의미하지만 (요 11:44; 18:8) “빚을 탕감하다”를 의미할 수도 있고 (마 18:27, 32)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죄를 “용서하다”를 뜻할 수도 있다. (마 6:12) (마 6:12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이 이 구절에서 인용한 「칠십인역」시 32:1(31:1, LXX)에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 대해 불평할 이유가 있더라도: 바울은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때때로 일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정당하게 “불평할 이유”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특성을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수 있다. 또는 어떤 사람이 실제로 잘못을 저질렀거나 그 사람의 행동을 오해하게 되어 감정이 상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를 본받아 기꺼이 용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마 5:23, 24; 18:21-35; 엡 4:32; 벧전 4:8.

계속 서로 참고: 바울은 여기서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참을성을 나타내고,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단점과 특성들에 대해 이해심을 보이라고 권고한다. 고전 4:12에서는 동일한 그리스어 동사가 “참을성 있게 인내하다”로 번역되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실수를 하기 때문에 (약 3:2) 서로에 대해 합리적인 기대를 가질 필요가 있다.—빌 4:5.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용서하신 것처럼: 성경에는 여호와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민 14:19, 20; 삼하 12:13; 시 130:4; 단 9:9) 성경은 그분을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 (느 9:17; 시 86:5) “너그러이[또는 “기꺼이”, 각주] 용서하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사 55:7)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기꺼이 용서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는 마 6:12, 14이나 롬 4:7(연구 노트 참조)에 나오는, “용서하다”로 번역되는 일반적인 단어와는 다르다. 여기 사용된 동사는 “과분한 친절”이나 “은혜”로 자주 번역되는 그리스어 카리스와 어근이 같은 단어이다. 이 단어는 용서한다는 의미로 사용될 경우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줄 때처럼 기꺼이 관대하게 그렇게 한다는 뜻을 전달한다. 바울은 골 2:13에서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범죄를 기꺼이 용서하셨다”고 말한다.—엡 4:32. 이 구절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면 부록 다3 소개; 골 3:13 참조.

입으십시오: 바울은 골 3:8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옷에 관한 비유를 이 구절에서도 계속 사용한다. (연구 노트 참조) 그는 이제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이 옷을 입듯이 입어야 하는 “새 인간성”을 이루는 특성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골 3:10) 그리스도와 같은 그러한 특성들은 마음에서 자라는 것이지만 겉으로도 나타나야 한다는 면에서 옷과 비슷하다. 여러 성경 참고 문헌에서는 바울이 사용한 “입으십시오”라는 명령문이 긴급성뿐만 아니라 지속성도 담고 있을 수 있는 형태라고 지적한다. 이 점을 볼 때 바울은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조언에 따라 신속하게 행동하고, 그 특성들을 길러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결코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

연합시키는 띠인 평화: “연합시키는 띠”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문자적으로 “함께 묶어 주는 것; 동여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골 2:19에서 문자적인 의미로 쓰였는데, 뼈와 뼈를 잇는 띠 모양의 튼튼한 조직을 가리키는 “인대”로 번역되었다. 평화는 인대처럼 회중의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로 결속시켜 주는 튼튼한 띠이다. 그러한 평화는 단지 분쟁이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평화는 사랑에 기초해 있으며 노력을 해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엡 4:2) 바울은 골 3:14에서도 동일한 그리스어를 사용했는데, 그 구절에서 그는 사랑이 “완전한 연합의 띠”라고 말했다.

완전히 하나가 되게: 또는 “온전히 일치 연합하게”.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완전한 연합을 아버지께 사랑받는 것과 연관 지으신다. 이러한 말씀은 골 3:14에 나오는 “사랑은 완전한 연합의 띠”라는 말씀과 조화를 이룬다. 그러한 완전한 연합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것은 능력, 습관, 양심과 같은 부면에서 개인 간의 차이가 모두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이 행동과 신앙과 가르침에 있어서 일치 연합되는 것을 의미한다.—롬 15:5, 6; 고전 1:10; 엡 4:3; 빌 1:27.

사랑을 입으십시오: 골 3:12 연구 노트 참조.

완전한 연합의 띠: 직역하면 “완전함의 결속시키는 띠”.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회중을 연합시키는 평화의 힘을 강조한다. (엡 4:3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여기서는 가장 탁월한 특성인 사랑과 사랑이 가진 연합시키는 힘에 초점을 맞춘다. 사랑이 가진 연합시키는 힘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예는 여호와와 그분의 외아들 사이의 유대 관계이다. 그 관계는 이제껏 사랑으로 맺어진 그 어떤 유대 관계보다도 강한 것이다. (요 3:35) 예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밤에, 제자들 사이에도 그러한 연합이 있게 해 달라고 아버지께 간청하셨다.—요 17:11, 22. 요 17:23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 일부 고대 사본들에는 “하느님”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일부 번역판(부록 다4에 J7, 8로 표기됨)에서는 이 부분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사본상으로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

그리스도의 평화: 하느님의 아들의 제자가 됨으로 얻게 되는 평온함을 가리킨다. 하느님의 종들은 자신들이 여호와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의 사랑과 승인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때 그러한 평화를 누리게 된다.—시 149:4; 요 14:27; 롬 5:3, 4.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평화가 그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힘이 되게 하라고 권고한다. “다스리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고대 운동 경기에서 경기를 운영하고 상을 주는 일을 하던 심판에 해당하는 단어와 어근이 같다. 이 평화가 비유적으로 말해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서 심판 역할을 하면 즉 마음을 다스리는 원칙이 되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행동이 동료 그리스도인들과의 연합과 평화를 유지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지 생각하여 결정을 내리게 된다.

시와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과 영적 노래: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를 찬양할 때 영감받은 시들을 계속 사용했다. 이 구절에서 “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프살모스)는 눅 20:42; 24:44; 행 13:33에도 나오는데 히브리어 성경에 들어 있는 시편을 가리킨다. 그에 더해 당시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은 노래도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노래들 가운데는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 즉 찬송가와 “영적 노래” 즉 영적인 내용을 다루는 노래가 포함되었다. 바울은 골로새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와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과 영적 노래’로 서로 가르치고 격려하라고 말한다.—골 3:16.

찬양의 노래를 부른 다음: 또는 “찬송(시편)의 노래를 부른 다음”.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할렐 시들 가운데 처음 두 개의 시(시 113, 114)는 유월절 식사 중에, 그리고 나머지 네 개의 시(시 115-118)는 식사를 마칠 때 노래로 부르거나 낭송했다. 그 네 개의 시에는 메시아에게 적용되는 몇 가지 예언이 나온다. 시 118은 시작하는 말과 끝맺는 말이 모두 “여호와께 감사드려라. 그분은 선하시다. 그분의 충성스러운 사랑은 영원하다”이다. (시 118:1, 29) 이 표현은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전 밤에 충실한 사도들과 함께 부르신 찬양의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었을 수 있다.

훈계: 또는 “교훈; 인도; 훈련”. 직역하면 “생각을 심어 줌”.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누테시아는 “정신”을 의미하는 누스와 기본적으로 “놓다”를 의미하는 티테미가 결합된 것이다. 이 문맥에서 이 단어는 그리스도인 아버지가 자녀가 사물에 대한 하느님의 생각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렇게 함으로 아버지는 자녀에게 여호와 하느님의 생각을 심어 주어야 한다.

마음으로: 성경에서 “마음”이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속사람을 가리킨다. 속사람에는 생각, 의도, 특성, 느낌, 감정이 모두 포함된다. (시 103:1, 2, 22 비교) 이 구절과 골 3:16에 나오는 “마음으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은 여러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으며 소리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노래 부르는 것을 포함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반주에 맞춰 부르는 찬양의 노래에 담긴 영적 감성으로 마음과 정신이 가득 차 있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이 그리스어 표현은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온 마음을 다해 노래 부르는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

여호와께 노래하십시오: 이와 비슷한 표현들이 히브리어 성경에 자주 나오는데, 노래로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을 가리킨다. (출 15:1; 대상 16:23; 시 13:6; 96:1; 104:33; 149:1; 렘 20:13) 여호와께 드리는 숭배와 관련된 노래가 성경 전체의 약 10분의 1을 차지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시편과 솔로몬의 노래와 애가서를 들 수 있다. 예수 시대에 하느님의 종들도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마 26:30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이 고전 14:15에서 한 말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께 숭배를 드릴 때 일반적으로 노래를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행 16:25; 골 3:16. 이 구절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면 부록 다3 소개; 엡 5:19 참조.

그리스도의 말씀: 이 표현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에만 나온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려 주신 소식과 그분에 관한 소식을 가리킨다. 이 “말씀”에는 예수께서 지상에서 생활하고 봉사하면서 보이신 본이 포함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가르침 전체가 그들 안에 머무르게 해야 한다고, 다시 말해 그들의 일부가 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 진리의 소식을 묵상하고 그것에 열렬히 몰두함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바울이 한 말에 관해 한 참고 문헌에서는 이렇게 알려 준다. “그리스도교의 소식은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나 틀에 박힌 활동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핵심적이고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힘이 되어야 한다.”

시와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과 … 영적 노래: 엡 5:19 연구 노트 참조.

계속 서로 가르치고 격려하며: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감받은 성경의 내용을 다루는 노래들을 부름으로 서로 가르치고 격려하고 권고하라고 말한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숭배할 때 사용하던 노래 가운데는 영감받은 히브리어 성경에 들어 있는 시들이 있었다. 그러한 시들에는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를 드리고 그분 안에서 즐거워하라고 권고하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시 32:11; 106:1; 107:1. 마 26:30 연구 노트 참조.

격려하며: 또는 “권고하며”.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누테테오는 “정신”을 의미하는 누스와 기본적으로 “놓다”를 의미하는 티테미가 결합된 말로, “생각을 심어 주다”로 직역할 수 있다. 이 문맥에서 격려하는 것에는 성경에 들어 있는 위로가 되는 생각과 교훈을 서로에게 일깨워 주는 것이 포함될 수 있다.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명사가 엡 6:4(연구 노트 참조)에서 사용되었는데, “훈계”로 번역되었다.

마음으로: 엡 5:19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께 노래하십시오: 엡 5:19 연구 노트 참조. 또한 부록 다3 소개; 골 3:16 참조.

이름: 성경에서 “이름”이라는 표현은 단지 다른 대상과 구별시켜 주는 말일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 24:9 연구 노트 참조) 여기서 하느님께서 예수에게 주신 “이름”은 예수께서 아버지에게서 받은 권위와 지위를 상징한다. 빌립보서 2장의 내용을 볼 때 예수께서는 부활되신 후에 그처럼 높여진 이름을 받으셨다.—마 28:18; 빌 2:8, 10, 11; 히 1:3,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성경에서 “이름”이라는 말은 때때로 그 이름을 지닌 사람 자신이나 그의 평판, 그가 대표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주 예수의 이름”은 인류를 죄로부터 구속하기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바치신 분으로서 그분이 가진 권위 그리고 하느님의 왕국의 왕으로서 그분이 가지신 지위와 관련이 있다. (마 28:18; 행 4:12; 고전 7:22, 23; 히 1:3, 4. 빌 2:9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인은 생활의 모든 부면에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즉 그분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복종하십시오: “복종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자기 자신을 복종시키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볼 때 여기서 말하는 복종이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엡 5:22-33에서 부부 사이의 복종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그리스도인 회중 전체에 복종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점을 언급한다. (히 13:17; 벧전 5:5 비교) 따라서 평화의 하느님께서 가정에서도 이 원칙이 지켜지기를 바라시는 것은 당연하다.—고전 11:3; 14:33; 엡 5:22-24.

장악하려고 곧 하느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또는 “하느님과 동등하게 되는 것을 장악해야(취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예수께서 나타내신 것과 같은 훌륭한 태도를 길러 나가도록 격려한다. 빌 2:3에서 바울은 그들에게 “남을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여기라”고 말한다. 5절에서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던 이러한 정신 태도를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하느님을 더 나은 분으로 여기신 예수께서는 결코 “하느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은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 순종하셨다.” (빌 2:8; 요 5:30; 14:28; 고전 15:24-28) 마귀는 예수와 전혀 다른 태도를 나타냈다. 마귀는 하와에게 하느님처럼 되라고, 즉 그분과 동등하게 되라고 부추겼다. (창 3:5) 바울이 여기서 강조한 요점, 다시 말해 겸손과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느님에 대한 순종의 중요성을 예수께서는 완벽하게 모범으로 보여 주셨다.—이 구절에 나오는 장악하려고 …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복종하십시오: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인 아내가 하느님께서 남편에게 주신 권위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리스도인 남편도 머리 직분을 행사하는 면에서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야 하며 그리스도의 권위에 기꺼이 복종해야 한다.—고전 11:3; 엡 5:22, 23. 엡 5:21 연구 노트 참조.

이것이 주 안에서 합당한 일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합당한”에 해당하는 표현은 “어울리는”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바울은 주 안에서라는 표현을 덧붙임으로, 그리스도인 아내가 성경에 규정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겸손하게 복종하는 면에서 완벽한 본을 보이셨다.—엡 5:22. 빌 2:6 연구 노트 참조.

계속 복종했다: 또는 “복종하며 지냈다; 순종하며 지냈다”.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는 계속적인 동작을 나타내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이 점은 예수가 성전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으로 교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일이 있기 전에도,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에도, 겸손하게 부모에게 계속 복종했음을 뜻한다. 예수의 순종은 다른 어린이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있었다. 그분이 모세 율법을 세세한 점까지 성취시키신 것 가운데 부모에게 순종한 것도 포함되기 때문이다.—출 20:12; 갈 4:4.

순종하십시오: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기본적으로 “듣다”를 의미하는 동사에서 나온 말이다. 이 문맥에서는 모든 일에서 부모의 지시를 듣고 그에 따른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모든 일”에 순종한다는 것은 당연히,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는 모든 일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바울은 하느님께 불순종하게 되는 일에서까지 순종하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바울의 편지를 읽는 사람들은 그러한 잘못된 순종이 “주를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눅 2:51연구 노트; 행 5:28, 29; 엡 6:1, 2 비교.

분한 마음을 갖게 하지 마십시오: “분한 마음을 갖게 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화나게 하다” 또는 “들볶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바울은 부모가 사랑에서 우러나와 베푸는 징계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잠 13:24 비교) 그런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비합리적이거나 거칠게 대할 때 미치는 해에 대해서 말한 것이다. 그처럼 자녀를 학대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균형 잡힌 방식으로 대하신 일(시 103:13; 약 5:11)이나 그분이 자신의 아들을 따뜻하게 대하신 일(마 3:17; 17:5)에 대한 성경의 내용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낙심하지: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단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에만 나온다. 일부 성경 번역판에서는 “낙담하다; 기가 꺾이다”와 같은 표현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이 단어는 부정적인 생각이 자녀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혀 행복한 삶을 누리는 데 방해가 될 정도로 깊이 상심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구절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부모가 자녀를 거칠게 대한 결과로 자녀가 그처럼 낙심하게 될 수 있다. 이 구절에 나오는 이 단어의 용법에 대해 설명한 여러 참고 문헌에 따르면, 바울이 언급한 “분한 마음을 갖게 하는” 일로 인해 자녀는 자신이 부모를 결코 기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되면 상심하고 심지어 절망에 빠질 수 있다.—이 구절에 나오는 분한 마음을 갖게 하지 마십시오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주인: 직역하면 “육체인 주인”. 여기서 바울은 종의 신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인”에게 순종하라고 권고한다. 종의 신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의 주인들은 하늘에 더 높은 주인이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했다.—엡 6:9.

단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누가 보고 있을 때에만 그렇게 하지 말고: 직역하면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인인 종은 주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그가 있을 때만 순종적으로 행동하거나 열심히 일해서는 안 되었다. 그는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영혼을 다해” 일해야 했다.—엡 6:5-8; 골 3:22-25.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두려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와 테트라그람마톤이 결합된 형태로 여러 번 등장한다. (그러한 예를 보려면 대하 19:7, 9; 시 19:9; 111:10; 잠 2:5; 8:13; 9:10; 10:27; 19:23; 사 11:2, 3 참조) 반면에 “주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의 본문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그리스어 사본들에서는 행 9:31의 이 부분이 “주에 대한 두려움”으로 되어 있지만 「신세계역」 본문에서는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가 부록 다1다3 소개; 행 9:31에 설명되어 있다.

주인: 직역하면 “육체인 주인”. 여기서 그리스어 키리오스(주)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가리킨다.—엡 6:5 연구 노트 참조.

단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주인이 볼 때만: 직역하면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엡 6:6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 표현은 하느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숭상심 그리고 그분을 불쾌하시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건전한 두려움을 가리킨다. 그러한 숭상심 어린 두려움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에서 생기며, 그분을 숭배하고 그분께 순종하려는 마음을 갖게 한다. 하느님을 두려워한다는 사상은 히브리어 성경에 자주 언급된다. 그러한 예로 신 6:13; 10:12, 20; 13:4; 시 19:9; 잠 1:7; 8:13; 22:4을 들 수 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두려워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는 하느님에 대해 숭상심 어린 두려움을 갖는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눅 1:50; 행 10:2, 35; 계 14:7. 행 9:31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 즉 골 3:22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면 부록 다3 소개; 골 3:22 참조.

영혼을 다해: “영혼을 다해”로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과 골 3:23에 두 번 나온다. 여기서 “영혼”은 신체적 능력과 정신적 능력을 포함한 사람 전체를 가리킨다. 일부 성경 번역판에서는 이 표현을 “마음을 다해”로 번역한다. 따라서 영혼을 다해 섬긴다는 것은 신체적, 정신적 기능과 힘을 최대한 사용해, 자신의 전부를 다 바쳐 또는 생명 전체를 사용하여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신 6:5; 마 22:37; 막 12:29, 30. 용어 설명 “영혼” 참조.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호와를 위해 하듯: 바울은 여기서 종의 신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여호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기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게 하는 것에는 “주인”에게 순종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포함된다. 그렇게 하면 “하느님의 이름”에 모독이 돌아가지 않게 될 것이었다. (골 3:22; 딤전 6:1) 바울은 골로새서와 거의 같은 시기에 쓰여진 에베소서에서도 종의 신분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교훈을 한다.—엡 6:6, 7. “골로새서 소개” 참조. 이 구절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면 부록 다3 소개; 골 3:23 참조.

영혼을 다해: 엡 6:6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 예수의 종: 일반적으로 “종”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둘로스는 남의 소유가 된 사람, 많은 경우 남에게 팔려 종이 된 사람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마 8:9; 10:24, 25; 13:27) 또한 이 단어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한 종을 가리키기도 한다. (행 2:18; 4:29; 갈 1:10; 계 19:10) 예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대속 희생으로 바치심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생명을 사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더는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며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종”으로 여긴다. (엡 6:6; 고전 6:19, 20; 7:23; 갈 3:13)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영감받은 편지의 필자들은 모두 회중들에게 교훈을 베풀 때 적어도 한 번 이상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언급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주이자 주인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한다는 것을 나타냈다.—롬 1:1; 갈 1:10; 약 1:1; 벧후 1:1; 유 1; 계 1:1.

여러분이 여호와로부터 상속 재산을 상으로 받을 것임을: 성경의 여러 구절에서는 여호와 하느님께서 그분의 충실한 종들이 선한 일을 하면 상을 주시는 분이라고 묘사한다. 그러한 예를 룻 2:12; 시 24:1-5; 렘 31:16에서 볼 수 있다. 예수께서도 자신의 아버지를 그런 분으로 묘사하신다.—마 6:4; 눅 6:35. 이 구절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면 부록 다3 소개; 골 3:24 참조.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섬기십시오: 또는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종이 되십시오”. 바울은 여기서 종의 신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진정한 주인은 그리스도이심을 기억하라고 일깨워 준다. 엡 6:5, 6에도 비슷한 교훈이 들어 있는데, 그 구절에서 바울은 종의 신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그렇게 하여 영혼을 다해 하느님의 뜻을 행하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힘겨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짐을 벗고 쉼을 얻게 된다.—마 11:28-30. 롬 1:1 연구 노트 비교.

하느님은 편파적인 분이 아니시기: 여기서 “편파적이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프로소폴렘프시아)의 문자적인 의미는 “얼굴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단어에 대한 설명을 보려면 행 10:34 연구 노트 참조) 이 표현은 히브리어 나사 파님을 따온 것인데, 나사 파님은 문자적으로 “얼굴을 들어 올리다”를 의미하며 레 19:15에서 “편을 들다”로 번역되었다. 오리엔트 지역에서는 윗사람에게 인사할 때 겸손하게 몸을 굽혀 얼굴을 땅으로 향하게 하곤 했다. 그러면 윗사람은 인사를 받아들인다는 표시로, 몸을 굽힌 사람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이 표현은 시간이 지나면서 경멸적인 의미로 쓰이게 되어, 부패한 사람이 이 관습을 이용하여 특정인을 우대하는 편파적인 행동을 가리키게 되었다. 바울이 한 말의 요지는 하느님께서 특정한 사람들의 얼굴만 들어 올리는 분이 아니라는, 다시 말해 편애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분은 유대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모두 받아 주신다. 이것은 바울의 편지들에 반복해서 언급되는 주제이다.—엡 6:9.

거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또는 “거기에는 편파성이 없습니다”. 이 구절에서는 종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주인을 비롯해 그릇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비슷한 내용이 들어 있는 롬 2:11과 엡 6:9에서는 하느님께서 그러한 사람들을 편파적으로 대하거나 편애하는 일 없이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알려 준다.—“차별” 또는 “편파성”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롬 2:11 연구 노트 참조.

미디어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께 찬양의 노래를 부르다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께 찬양의 노래를 부르다

골로새에 있는 다양한 연령대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찬양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리스도인들은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 수수한 개인 집에 모여 숭배를 드렸을 것이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그들에게 “시와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과 … 영적 노래로 계속 서로 가르치고 격려하라”고 권고했다. (골 3:16) 따라서 그들은 히브리어 성경에 들어 있는 시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주제로 새로 지은 곡들도 노래로 불렀을 것이다. (막 14:26) 바울은 “노래로 하느님을 찬양하”면 위로와 격려를 얻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행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