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후서 3:1-18

3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시 추천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어떤 사람들처럼 우리도 여러분에게 보일 추천서나 여러분이 주는 추천서가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바로 여러분이 우리의 추천서입니다.+ 그 추천서는 우리 마음에 새겨져 있으며 모든 사람이 알고 있고 또 읽고 있습니다.  분명히 여러분은 봉사자인+ 우리가 쓴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그것은 잉크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느님의 영으로 새겨진 것이며, 돌판이+ 아니라 육의 판 곧 마음에+ 새겨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자신에게 적합한 자격이 있어서 우리에게서 무엇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적합한 자격을 갖추는 일은 하느님에게서 나옵니다.+  그분은 참으로 우리가 새 계약의+ 봉사자로, 곧 법전의 봉사자가 아니라+ 영의 봉사자로 적합한 자격을 갖추게 해 주셨습니다. 법전은 사람을 정죄하여 죽게 하지만+ 영은 살게 해 줍니다.+  돌에 문자로 새겨진,+ 죽음을 가져오는 법전도+ 영광 중에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 없어질 그 영광 때문에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영을 가져오는 것에는+ 훨씬 더 큰 영광이 있지 않겠습니까?+  유죄 판결을 가져오는 법전이+ 영광스러운 것이었다면,+ 의를 가져오는 것은+ 더욱더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10  사실 한때 영광스럽게 되었던 것도 그보다 더 큰 영광 때문에 영광을 빼앗겼습니다.+ 11  없어질 것도 영광 중에 생겨났다면,+ 계속 남아 있을 것은 훨씬 더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12  우리는 그러한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13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없어질 것의 결과*를 주시하지 못하게 하려고 자기 얼굴을 베일로 가린 모세처럼+ 하지 않습니다. 14  이스라엘 자손들은 정신이 둔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옛 계약을 읽을 때에 그 베일이 벗겨지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벗겨지기 때문입니다.+ 15  사실,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들의 마음은 베일에 덮여 있습니다.+ 16  그러나 여호와께 돌아오면 베일은 벗겨집니다.+ 17  여호와는 영이십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18  우리 모두는 베일을 벗은 얼굴로 여호와의 영광을 거울처럼 반영하면서, 영이신 여호와께서 이루시는 그대로 점점 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각주

또는 “말의 큰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또는 “마지막”.

연구 노트

소개합니다: 또는 “추천합니다.” 바울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뵈베를 소개한 것은 그들이 뵈베를 환영하고 바울이 나타낸 것과 같은 태도를 그에게 나타내도록 격려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롬 16:2)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는 그가 고후 3:1에서 “추천서”라는 표현 가운데 사용한 그리스어와 어근이 같다. 성경 시대에는 누군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그러한 추천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겐그레아 회중의 봉사자인 뵈베가 바울이 쓴 이 편지를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달했을 것이다.

추천서: 1세기 당시에 믿을 만한 출처에서 나온 편지는 낯선 사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의 신분이나 권위를 확증하는 주된 수단이었다. (행 18:27. 롬 16:1 연구 노트 참조) 누군가를 추천하는 편지를 쓰는 것은 당시에 흔한 일이었으며, 편지 작성에 관한 안내서에는 추천서를 쓰는 일반적인 형식을 설명하는 내용도 나와 있었다. (행 28:21) 고후 3:1에서 바울이 한 말의 요지는 그가 자신이 봉사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러한 편지를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내거나 그들에게서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도왔으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바로 여러분이 우리의 추천서입니다.”—고후 3:2.

바로 여러분이 우리의 추천서입니다: 이 말은 앞 구절에서 바울이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바울은 이렇게 대답한 셈이다.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봉사자라는 것을 확증해 주는, 글로 쓰여진 증명서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우리의 살아 있는 추천서입니다.” 고린도의 그리스도인 회중은 바울이 하느님의 봉사자라는 증거였다.

우리 마음에 새겨져 있으며: 바울은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애정을 늘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는 그들이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대해 공개적으로 알리는 증인이 되도록 훈련했으며, 따라서 그들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고 또 읽고 있는 편지, 누구나 볼 수 있는 편지와도 같았다.

봉사자인 우리가 쓴 그리스도의 편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을 ‘그분의 이름을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한 “그릇”으로 선택하셨으며 (행 9:15) 그를 그러한 추천서를 쓰는 봉사자로 사용하셨다. 바울은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기 위해 고린도에서 안식일마다 전파했다. (행 18:4-11) 그러한 추천서는 바울의 힘만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나를 떠나서는 여러분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요 15:5.

육의 판 곧 마음에: 또는 “판에, 육의 마음에; 사람의 마음 판에”. 모세 율법은 돌판에 기록되었다. (출 31:18; 34:1) 이 구절에서는 율법 계약을 새 계약과 대조한다. 예레미야의 예언에서 여호와께서는 새 계약을 맺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내 법을 그들의 속에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할 것이다.” (렘 31:31-33) 하느님의 백성이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풀려날 것임을 밝힌 에스겔의 예언에서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서 “돌 같은 마음” 즉 반응을 보이지 않는 마음을 없애시고 “살 같은 마음” 즉 부드럽고 잘 순응하고 순종적인 마음, 하느님의 인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마음을 주실 것이라고 알려 준다.—겔 11:19; 36:26.

우리가 적합한 자격을 갖추는 일은 하느님에게서 나옵니다: 이 구절에서 “적합한 자격이 있다”, “적합한 자격을 갖추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들은 기본적으로 “충분한; 알맞은”을 의미한다. 이 단어들이 사람과 관련하여 사용되면 “능숙한; 유능한; 합당한”을 의미할 수 있다. (눅 22:38; 행 17:9; 고후 2:16; 3:6) “우리가 적합한 자격을 갖추는 일은 하느님에게서 나옵니다”라는 표현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도 있다. “우리가 이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칠십인역」출 4:10에 이 그리스어 중 하나가 사용되었는데, 그 구절에는 모세가 자신이 파라오 앞에 나아갈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내용이 나온다. 히브리어 본문에 따르면 모세는 “저는 말을 잘하는 사람[직역하면 “말의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칠십인역」에서는 그 표현을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번역한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모세가 그 임무를 수행할 자격을 갖추게 해 주셨다. (출 4:11, 12) 그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인 봉사자들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영”에 의해 자격을 갖추게 된다.—고후 3:3.

내 피에 의한 새 계약: 복음서 필자 가운데 누가만이 예수께서 이때 “새 계약”을 언급하셨다고 기록했다. 그분은 렘 31:31을 염두에 두고 그 표현을 사용하신 것이다. 여호와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새 계약은 예수의 희생을 통해 유효하게 되었다. (히 8:10) 예수께서 “계약”과 “피”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방식은 시나이산에서 이스라엘이 맺은 율법 계약이 발효될 때 중개자인 모세가 그 표현들을 사용한 방식과 비슷하다. (출 24:8; 히 9:19-21) 수소와 염소의 피가 하느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의 율법 계약을 유효하게 한 것처럼, 예수의 피는 여호와께서 영적 이스라엘과 맺으시는 새 계약을 유효하게 했다. 새 계약은 기원 33년 오순절에 발효되었다.—히 9:14, 15.

섬기는 사람: 또는 “봉사자; 종”. 성경은 그리스어 디아코노스를 다른 사람을 위해 쉬지 않고 겸손하게 봉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종종 사용한다. 이 단어는 그리스도(롬 15:8), 그리스도의 봉사자나 종(고전 3:5-7; 골 1:23), 봉사의 종(빌 1:1; 딤전 3:8)뿐만 아니라, 집안 하인(요 2:5, 9), 정부 관리(롬 13:4)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된다.

나의 봉사의 직무: 예수께서는 땅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의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라는 사명을 주셨다. (마 28:19, 20) 바울은 그 일을 “화해의 직무”라고 불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하느님과 멀어진 세상에게 “하느님과 화해하라”고 “부탁한다.” (고후 5:18-20) 바울은 이방 사람들을 위한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를 최선을 다해 수행했지만, 한편으로는 유대인들 중 얼마의 사람들이라도 마음이 움직여 구원을 위해 필요한 단계들을 밟기를 간절히 바랐다. (롬 11:14) 그리스어 디아코니아는 기본적으로 “봉사”를 의미하며,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동사는 성경에서 때때로 식탁에서 시중을 드는 것과 같은 개인적인 성격의 봉사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눅 4:39; 17:8; 요 2:5) 이 구절에서는 디아코니아가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를 가리킨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영적인 필요를 위해 섬기는 더 숭고한 봉사이다.

새 계약: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새 계약”이 율법 계약과는 다를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렘 31:31-34) 율법 계약은 여호와와 육적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것이었으며, 새 계약은 여호와와 영적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것이다. 율법 계약의 중개자는 모세였으며 새 계약의 중개자는 예수이다. (롬 2:28, 29; 갈 6:15, 16; 히 8:6, 10; 12:22-24) 율법 계약은 동물의 피에 의해 효력을 갖게 되었으며 새 계약은 예수께서 흘리신 피에 의해 효력을 갖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밤인 기원 33년 니산월 14일에 “새 계약”을 언급하면서 그 점을 밝히셨다.—눅 22:20연구 노트; 고전 11:25.

봉사자: 또는 “종”. 성경은 그리스어 디아코노스를 다른 사람을 위해 쉬지 않고 겸손하게 봉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종종 사용한다. (마 20:26 연구 노트 참조) 여기서 바울은 자신과 디모데와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새 계약의 봉사자”로 언급한다. (고후 1:1) 이것은 그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새 계약을 위해 봉사했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새 계약 안으로 들어오거나 그 혜택을 누리도록 돕기 위해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가르쳤다.—롬 11:13 연구 노트 참조.

법전의 봉사자가 아니라: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율법 계약의 봉사자가 아니다. 율법 계약의 일부는 처음에는 판에 기록되었으며 나중에는 두루마리에 필사되었다. 하지만 새 계약은 즉 하느님의 영으로 된 것이다. 율법이 기록된 법전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정죄하여 죽게 했지만, 새 계약의 봉사자들은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그 영은 그들이 충절을 지키고 영원한 상을 얻는 데 필요한 특성들을 기를 수 있게 해 준다.—고후 1:21, 22; 엡 1:13, 14; 딛 3:4-7.

죽음을 가져오는 법전: 모세 율법을 가리킨다. 율법은 범법 즉 죄를 드러나게 했다. (갈 3:19) 따라서 율법이 “사람을 정죄하여 죽게” 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고후 3:6; 갈 3:10) 율법 계약은 예레미야가 예언한 새 계약을 예시하는 것이었다. (렘 31:31-33) 바울은 새 계약을 “영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부른다. (고후 3:8) 새 계약은 율법 계약보다 우월한데, 새 계약 안에 있는 사람들이 생명의 수석 대표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 계약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가져온다.—행 3:15.

영광 중에: 고후 3:7-18에서 바울은 새 계약의 영광이 옛 계약의 영광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을 논한다. 이것이 이 부분에서 바울이 논하는 주제라는 점은 그가 “영광”이나 “영광스럽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들을 13번 사용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영광”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명사는 원래 “의견; 명성”을 의미했지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영광; 영화; 탁월함”을 의미하게 되었다.

죽음을 가져오는 법전: 모세 율법을 가리킨다. 율법은 범법 즉 죄를 드러나게 했다. (갈 3:19) 따라서 율법이 “사람을 정죄하여 죽게” 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고후 3:6; 갈 3:10) 율법 계약은 예레미야가 예언한 새 계약을 예시하는 것이었다. (렘 31:31-33) 바울은 새 계약을 “영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부른다. (고후 3:8) 새 계약은 율법 계약보다 우월한데, 새 계약 안에 있는 사람들이 생명의 수석 대표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 계약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가져온다.—행 3:15.

유죄 판결을 가져오는 법전: 여기서 바울은 다시 “사람을 정죄하여 죽게” 하는 모세 율법을 언급한다. (고후 3:6. 고후 3:7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새 계약을 의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부른다. 새 계약 안에 있는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모세 율법이 주어질 때 나타났던 문자적인 영광보다 훨씬 더 큰 영적인 영광으로 밝게 빛난다. 그들은 하느님의 특성들을 반영함으로 빛을 발한다. 새 계약을 통해 “죄를 용서”받는 일이 가능해졌으며 “왕 겸 제사장” 마련이 있게 되었다. 따라서 새 계약은 모든 인류에게 축복을 가져다준다. 그 점을 볼 때 새 계약이 의를 가져올 수 없는 율법 계약보다 훨씬 더 큰 유익을 준다고 할 수 있다.—마 26:28; 행 5:31; 벧전 2:9.

이스라엘 자손들: 또는 “이스라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용어 설명 “이스라엘” 참조.

자기 얼굴을 베일로 가린: 바울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이 육적이고 마음이 악했기 때문에 모세가 자기 얼굴을 베일로 가렸다고 설명한다. (고후 3:7, 14)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었으며,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자신에게 가까이 오기를 바라셨다. (출 19:4-6) 하지만 모세가 여호와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한 것과는 달리 (출 33:11) 그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반영한 것에 불과한 모습조차 주시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랑과 정성으로 여호와께 마음과 정신을 쏟은 것이 아니라, 비유적으로 말해 그분에게서 멀어졌다.

율법과 예언서의 공개 낭독: 기원 1세기에는 “안식일마다” 이러한 공개 낭독이 행해졌다. (행 15:21) 회당에서 드리는 숭배의 한 부분은 셰마 즉 유대교 신앙 고백문에 해당하는 것을 암송하는 일이었다. (신 6:4-9; 11:13-21) 그 고백문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이여, 잘 들으십시오[셰마]. 우리 하느님 여호와는 한 분인 여호와이십니다.” 그 구절의 첫 히브리어 단어에서 셰마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신 6:4)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토라 즉 모세 오경을 낭독하는 일이었다. 많은 회당에서는 1년 동안 율법 전체를 읽었으며, 3년에 걸쳐 읽는 회당들도 있었다. 또한 예언서의 일부를 읽고 해설하는 일도 있었다. 공개 낭독이 끝나면 강연이 있었다. 피시디아 안티오크의 회당에서 공개 낭독이 있은 뒤에 바울은 모인 사람들에게 격려의 말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눅 4:16 연구 노트 참조.

모세: 여기서 야고보가 언급한 모세의 글에는 율법의 규정들뿐 아니라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에 하느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대하신 기록과 자신의 뜻에 대해 알려 주신 내용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창세기에는 피의 사용, 간음, 우상 숭배에 관한 하느님의 견해가 분명히 나타나 있다. (창 9:3, 4; 20:2-9; 35:2, 4)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기록을 통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관계없이 모든 인류가 따라야 하는 원칙들을 밝혀 주셨다. 행 15:19, 20에 기록된 야고보의 제안대로 한다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않게 될 것이었다. 모세 율법의 많은 규정들을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제안대로 하는 것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에 따른 견해를 존중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들은 안식일마다 모세의 글이 회당에서 낭독되는 것을 오랫동안 들어 온 사람들이었다. (눅 4:16; 행 13:15 연구 노트 참조) 야고보의 제안대로 한다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연합이 강화될 것이었다.

정신이 둔해졌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나이산에서 여호와께 온전히 마음을 쏟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정신”은 “둔해졌다.” 또는 직역 표현에 따르면 “굳어졌다.” 하느님께서 예수를 통해 율법을 폐지하셨는데도 그것을 계속 지켰던 유대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율법이 예수의 역할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골 2:17) 바울은 베일이라는 단어를 사람들이 보는 것 즉 이해하는 것을 막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한다.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다시 말해 그분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그분에게 믿음을 나타낼 때에만, 이 베일이 벗겨져 하느님의 목적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었다.—눅 2:32.

옛 계약을 읽을 때에: 여기서 바울은 출애굽기부터 신명기까지 기록되어 있는 율법 계약 즉 히브리어 성경의 일부만을 언급한 것이다. 그는 그 계약을 “옛 계약”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이 “새 계약”으로 대치되었으며 예수께서 형주에서 죽임을 당하심으로 폐지되었기 때문이다.—렘 31:31-34; 히 8:13; 골 2:14. 행 13:15; 15:21 연구 노트 참조.

그들의 마음은 베일에 덮여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전파하신 좋은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율법을 읽을 때 그것이 자신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영감받은 성경을 읽기는 했지만, 마음가짐이 올바르지 않았으며 믿음도 없었고 겸손한 태도를 나타내지도 않았다. 그들이 ‘베일을 벗는’ 유일한 방법은 새 계약이 이미 효력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겸손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여호와께 돌아와 마음을 다해 그분께 복종하고 정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고후 3:16.

여호와께 돌아오면: 고후 3:7-18에서 바울은 모세를 중개자로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율법 계약보다 새 계약의 영광이 훨씬 더 크다는 점을 논하고 있다. 그는 출 34:34에 기록된 일을 언급하고 있다. 고후 3:16에서 “돌아오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문자적으로 “돌아오다; 돌아서다; 돌이키다”를 의미한다. (행 15:36) 이 단어가 영적인 의미에서 사용되는 경우, 잘못된 행로에서 돌아서서 하느님께 향하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행 3:19; 14:15; 15:19; 26:18, 20) 여기서 여호와께 돌아온다는 것에는 새 계약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겸손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여호와께 돌아와 마음을 다해 그분께 복종하고 정성을 나타내는 것이 포함된다. 고후 3:14에서는 상징적 베일이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벗겨진다고 알려 주므로, 여호와께 돌아오는 것에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도 포함된다.—부록 다3 소개; 고후 3:16 참조.

하느님은 영이십니다: 여기서 그리스어 프뉴마는 영적 존재를 가리킨다. (용어 설명 “” 참조) 성경은 하느님과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와 천사들이 모두 영이라고 알려 준다. (고전 15:45; 고후 3:17; 히 1:14) 영은 사람과는 매우 다른 형태의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영적 존재는 “육적인 몸”보다 훨씬 고등한 “영적인 몸”을 가지고 있다. (고전 15:44; 요 1:18) 성경에서 하느님을 얼굴, 눈, 귀, 손 등이 있는 분으로 묘사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이해하도록 돕기 위한 비유적인 표현이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인격체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계시다고 분명히 알려 준다. 또한 그분은 물질계가 아닌 영계에 존재하시며,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아버지께 간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요 16:28) 히 9:24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늘 그 자체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해 하느님 앞에 나타나 계신다”고 알려 준다.

여호와의 영: 히브리어 성경에는 “여호와의 영”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온다. (그러한 예를 보려면 삿 3:10; 6:34; 11:29; 13:25; 14:6; 15:14; 삼상 10:6; 16:13; 삼하 23:2; 왕상 18:12; 왕하 2:16; 대하 20:14; 사 11:2; 40:13; 63:14; 겔 11:5; 미 2:7; 3:8 참조) “여호와의 영”이라는 표현은 눅 4:18에도 나오는데, 이 구절은 사 61:1을 인용한 것이다. 사 61:1과 히브리어 성경의 다른 구절들의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영”에 해당하는 단어와 함께 테트라그람마톤이 사용되었다.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에서는 행 5:9의 이 부분이 “주의 영”으로 되어 있지만 「신세계역」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가 부록 다1다3 소개; 행 5:9에 설명되어 있다.

여호와는 영이십니다: 이 표현은 예수께서 요 4:24에서 하신 말씀과 비슷하다. 그 구절에서 그분은 “하느님은 영이십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그리스어 프뉴마는 영적 존재를 가리킨다.—용어 설명 “” 및 요 4:24 연구 노트 참조. 또한 부록 다3 소개; 고후 3:17 참조.

여호와의 영: 여호와의 활동력을 가리킨다. (행 5:9 연구 노트 참조) 「신세계역」 본문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한 이유가 부록 다1다3 소개; 고후 3:17에 설명되어 있다.

여호와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진정한 자유의 근원이신 분에게로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주의를 이끈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그분만이 아무런 한계가 없는 절대적인 자유를 가지고 계신다.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여호와께 돌아와야” 다시 말해, 그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고후 3:16) “여호와의 영”이 주는 자유는 문자적인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는 것보다 훨씬 더 탁월한 자유이다. “여호와의 영”은 죄와 죽음으로부터, 거짓 숭배와 그 관습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준다. (롬 6:23; 8:2) 또한 하느님의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를 누리는 데 꼭 필요한 특성들을 기르게 함으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 준다.—갈 5:22, 23.

여호와는 영이십니다: 이 표현은 예수께서 요 4:24에서 하신 말씀과 비슷하다. 그 구절에서 그분은 “하느님은 영이십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그리스어 프뉴마는 영적 존재를 가리킨다.—용어 설명 “” 및 요 4:24 연구 노트 참조. 또한 부록 다3 소개; 고후 3:17 참조.

정신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되어: “변화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는 메타모르포오이다. (이 그리스어에서 나온 메타모르포시스[변신, metamorphosis]라는 단어가 여러 언어에서 사용된다.) 여기서 “정신”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기본적으로 사고력을 의미하지만, 사고방식이나 태도도 가리킬 수 있다. “정신을 새롭게 하다”라는 표현은 성향과 가장 깊이 자리 잡은 태도와 감정을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변화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이 구절에서 “변화되다”로 번역된 동사의 용법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동사는 마 17:2과 막 9:2에서 예수께서 “변형되신” 것을 묘사할 때에도 사용되었다. (마 17:2 연구 노트 참조) 이 변형은 단지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철저한 변화였다. 당시 예수께서 아직 “하느님의 왕국”의 왕이 아니셨는데도 “권능을 가지고 이미 온 것”으로 묘사될 정도였다. (막 9:1, 2) 이 그리스어 단어는 고후 3:18에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묘사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신을 새롭게 하라고 권고한 것은 하느님의 생각과 일치한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기 위해 계속해서 내면을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여호와의 영광: 여기서 “영광”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명사(독사)는 원래 “의견; 명성”을 의미했지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영광; 영화; 탁월함”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 그리스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카보드)는 기본적으로 “무거움”을 의미하며, 사람이나 사물을 무게 있거나 인상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따라서 하느님의 영광이라는 표현은 그분이 전능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인상적인 증거를 가리킬 수 있다. 성경에서 “영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테트라그람마톤과 함께 30회 이상 나온다. 그러한 예를 출 16:7; 레 9:6; 민 14:10; 왕상 8:11; 대하 5:14; 시 104:31; 사 35:2; 겔 1:28; 합 2:14에서 볼 수 있다.—부록 다3 소개; 고후 3:18 참조.

거울처럼 반영하면서: 고대의 손거울은 청동이나 구리 같은 금속으로 만들었으며, 사물을 또렷하게 비추도록 반사면을 잘 연마한 것이 많았다.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하느님의 영광을 거울처럼 반영한다. 그들은 여호와의 아들 예수를 통해 나타나는 여호와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간다.” (고후 4:6; 엡 5:1) 하느님께서는 성령과 성경을 통해 그들 안에 자신의 특성들을 반영하는 “새 인간성”을 창조하신다.—엡 4:24; 골 3:10.

영이신 여호와께서 이루시는: 이러한 번역 표현은 “여호와는 영이십니다”라고 알려 주는 고후 3:17 앞부분의 내용과 조화를 이룬다.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이 표현을 “여호와의 영이 이루는”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문법적으로 볼 때 두 표현 모두 가능하다.—부록 다3 소개; 고후 3:18 참조.

점점 더 영광스럽게: 직역하면 “영광에서 영광으로”.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발전해 나가면서 여호와의 영광을 점점 더 반영하게 된다. 그들은 “하느님의 형상인 그리스도”가 반영하는 하느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간다. (고후 4:4) 여기서 “변화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메타모르포오)가 바울이 로마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사용되었다는 점은 유의할 만하다.—롬 12:2 연구 노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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