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후서 12:1-21

12  나는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로울 것은 없지만, 나는 이제 주의 초자연적인 환상과+ 계시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14년 전에 셋째 하늘로 이끌려 갔습니다. (몸 안에서였는지 몸 밖에서였는지 나는 모르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몸 안에서였는지 몸을 떠나서였는지 나는 모르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시는데)  그는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에 대해서라면 자랑하겠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나의 약함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설령 자랑하고 싶어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것이므로, 나는 비합리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야 어느 누구도 내게서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나를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그처럼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내가 지나치게 우쭐대지 못하도록, 나를 계속 치는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천사가 나에게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내가 지나치게 우쭐대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내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주께 세 번이나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나의 과분한 친절이 너에게 충분하다. 나의 능력은 약함 가운데서 완전해지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약함에 관해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자랑하겠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천막처럼 내 위에 머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10  나는 약함과 모욕과 궁핍한 때와 박해와 어려움을 그리스도를 위해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11  나는 비합리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억지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여러분은 나를 추천해 주어야 했습니다.+ 내가 비록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지만, 여러분의 특출한 사도들보다 어느 하나 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12  사실, 나는 크게 인내하면서+ 표징과 놀라운 일과 기적*을 통해+ 사도라는 표를 여러분에게 나타냈습니다. 13  여러분이 다른 회중들보다 호의를 덜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짐이 되지 않은 일을 빼고 말입니다.+ 이것이 잘못이라면 나를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14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가려고 세 번째로 준비하고 있지만 짐이 되지는 않겠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의 소유물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위해 재산을 모아 두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위해 모아 두는 법입니다.+ 15  나는 여러분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소비하고 나 자신도 온전히 소비하겠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이토록 많이 사랑하는데, 내가 그보다 적게 사랑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16  아무튼 나는 여러분에게 짐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내가 ‘교활’하고 여러분을 ‘속임수’로 사로잡았다고 말합니다. 17  내가 여러분에게 보낸 사람들 가운데 누구를 시켜 여러분을 이용하기라도 했습니까? 18  나는 디도에게 여러분에게 가라고 권하면서 형제 한 명을 함께 보냈습니다. 디도가 여러분을 조금이라도 이용한 일이 있었습니까?+ 우리가 같은 영으로 걷지 않았습니까? 같은 발걸음으로 걷지 않았습니까? 19  여러분은 지금까지 우리가 변명을 했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 하느님 앞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여러분을 세워 주기 위한 것입니다. 20  내가 도착할 때에, 여러분이 내 기대에 어긋나지나 않을까 또 내가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리고 분쟁, 질투, 격분, 불화, 험담, 수군거림, 교만으로 우쭐대는 일, 무질서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21  어쩌면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느님께서 여러분 앞에서 나를 부끄럽게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전에 죄를 짓고도 자기들이 행한 더러움과 성적 부도덕과 방종을 회개하지 않은 많은 사람 때문에 내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각주

또는 “강력한 일”.

연구 노트

어떤 사람: 바울은 이 초자연적인 환상을 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맥을 볼 때 그가 자기 자신을 가리켜 이 말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바울은 “특출한 사도들”과 같은 반대자들의 공격에 맞서 자신이 자격을 갖춘 사도임을 변호하면서 (고후 11:5, 23) 그 증거로 자신이 받은 “초자연적인 환상과 계시”를 언급한다. (고후 12:1) 성경에는 이와 같은 경험을 한 다른 사람에 대한 기록이 나오지 않으므로 논리적으로 볼 때 이 환상을 본 사람은 바울 자신임이 분명하다.

셋째 하늘: 성경에서 “하늘”은 물질적 하늘을 가리킬 수도 있고 여호와와 천사들이 거하는 영적 하늘을 가리킬 수도 있다. (창 11:4; 사 63:15) 하지만 이 단어는 사람이나 하느님이 다스리는 정부를 가리킬 수도 있다. (사 14:12; 단 4:25, 26) 여기서 바울은 미래에 있을 어떤 일에 관한 계시, 환상을 통해 받은 계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고후 12:1) 때때로 성경에서는 어떤 사실을 강조하거나 더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 3이라는 숫자를 사용하거나 특정한 표현을 세 번 반복한다. (사 6:3; 겔 21:27; 계 4:8) 따라서 바울이 본 “셋째 하늘”은 가장 탁월한 정부인 하느님의 메시아 왕국 즉 예수 그리스도와 14만 4000명의 공동 통치자로 이루어진 하늘 정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사 65:17; 66:22; 벧후 3:13; 계 14:1-5.

‘낙원’: “낙원”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paradise, 파라다이스)는 그리스어 파라데이소스에서 유래했다. 이와 비슷한 단어를 히브리어(파르데스, 느 2:8; 전 2:5; 아 4:13)와 페르시아어(파이리다에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세 단어 모두 아름다운 정원 또는 정원 같은 동산이라는 기본 개념을 전달한다. 「칠십인역」 번역자들은 창 2:8의 “에덴동산”이라는 표현에서 “동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번역할 때 그리스어 파라데이소스를 사용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몇몇 번역판(부록 다에 J17, 18, 22로 표기됨)은 눅 23:43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을 “당신은 나와 함께 에덴동산에 있을 것입니다”로 번역한다. 예수께서는 자신 옆에 달린 죄수에게, 계 2:7에 나오는 “하느님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 아니었다. 계 2:7의 약속은 “이기는 사람” 즉 하늘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될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눅 22:28-30) 이 죄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이긴 사람이 아니었으며, “물과 영에서 난” 사람도 아니었다. (요 3:5; 16:33) 이 죄수는 그리스도께서 낙원이 된 땅을 천 년 동안 다스리실 때 왕국의 지상 국민으로 부활될 “불의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행 24:15; 계 20:4, 6.

셋째 하늘: 성경에서 “하늘”은 물질적 하늘을 가리킬 수도 있고 여호와와 천사들이 거하는 영적 하늘을 가리킬 수도 있다. (창 11:4; 사 63:15) 하지만 이 단어는 사람이나 하느님이 다스리는 정부를 가리킬 수도 있다. (사 14:12; 단 4:25, 26) 여기서 바울은 미래에 있을 어떤 일에 관한 계시, 환상을 통해 받은 계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고후 12:1) 때때로 성경에서는 어떤 사실을 강조하거나 더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 3이라는 숫자를 사용하거나 특정한 표현을 세 번 반복한다. (사 6:3; 겔 21:27; 계 4:8) 따라서 바울이 본 “셋째 하늘”은 가장 탁월한 정부인 하느님의 메시아 왕국 즉 예수 그리스도와 14만 4000명의 공동 통치자로 이루어진 하늘 정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사 65:17; 66:22; 벧후 3:13; 계 14:1-5.

낙원: 그리스어 파라데이소스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세 번 나온다. (눅 23:43, 연구 노트 참조. 고후 12:4; 계 2:7) 이와 비슷한 단어를 히브리어(파르데스, 느 2:8; 전 2:5; 아 4:13)와 페르시아어(파이리다에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세 단어 모두 아름다운 정원 또는 정원 같은 동산이라는 기본 개념을 전달한다. 이 구절에서 “낙원”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를 의미할 수 있다. (고후 12:2 연구 노트 참조) (1) 앞으로 있을 문자적인 지상 낙원을 가리킬 수도 있고, (2) 신세계에서 하느님의 백성이 누리게 될 영적 상태를 가리킬 수도 있고, (3) 하늘에 존재하는 상태를 가리킬 수도 있다. 바울 시대에 그러한 것들에 관해 말해서는 안 되었던 이유는 하느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자세한 점들을 밝힐 그분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 바울은 이 초자연적인 환상을 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맥을 볼 때 그가 자기 자신을 가리켜 이 말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바울은 “특출한 사도들”과 같은 반대자들의 공격에 맞서 자신이 자격을 갖춘 사도임을 변호하면서 (고후 11:5, 23) 그 증거로 자신이 받은 “초자연적인 환상과 계시”를 언급한다. (고후 12:1) 성경에는 이와 같은 경험을 한 다른 사람에 대한 기록이 나오지 않으므로 논리적으로 볼 때 이 환상을 본 사람은 바울 자신임이 분명하다.

그런 사람: 달리 번역하면 “그런 것” 즉 그런 경험.—고후 12:2 연구 노트 참조.

어떤 사람: 바울은 이 초자연적인 환상을 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맥을 볼 때 그가 자기 자신을 가리켜 이 말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바울은 “특출한 사도들”과 같은 반대자들의 공격에 맞서 자신이 자격을 갖춘 사도임을 변호하면서 (고후 11:5, 23) 그 증거로 자신이 받은 “초자연적인 환상과 계시”를 언급한다. (고후 12:1) 성경에는 이와 같은 경험을 한 다른 사람에 대한 기록이 나오지 않으므로 논리적으로 볼 때 이 환상을 본 사람은 바울 자신임이 분명하다.

특출한 사도들: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표현은 “위대한 사도들” 또는 “가장 으뜸가는 사도들”로 번역할 수도 있다. 바울은 일부 교만한 사람들을 가리켜 이 비꼬는 듯한 표현을 사용한다. 그들은 예수께서 직접 임명하신 사도들보다 자신들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바울은 그들을 “거짓 사도”라고 부르는데 그들이 실제로 사탄의 봉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고후 11:13-15) 그들은 그리스도에 관해 자기들 나름대로의 좋은 소식을 가르쳤다. (고후 11:3, 4) 또한 그들은 하느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사도로서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그를 깎아내리고 중상했다.

특별한: 바울은 자신이 받은 계시가 “특별한” 즉 일반적인 것을 뛰어넘는 것이었다는 점을 묘사하기 위해 그리스어 히페르볼레를 사용한다. (고후 12:2 연구 노트 참조) 이 그리스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8번 나오는데, 모두 바울의 기록에 들어 있다.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번역되었다. 예를 들어, 고후 4:7에서는 “정상적인 것을 초월하는 능력”이라는 표현 가운데 사용되었고 고후 1:8에서는 바울과 동료들이 받은 “극심한 압력”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치는: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 동사는 문자적으로 손이나 손가락 마디나 주먹으로 치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마 26:67에서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그 구절에서는 로마 군인들이 예수를 “주먹으로” 쳤다고 알려 준다. 고전 4:11에서는 폭력을 쓰는 것을 가리키는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육체의 가시: 여기서 바울은 자신에게 계속 고통을 주는 것을 가리키는 데 이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몸에 가시가 박혀 있으면 계속 통증을 느끼게 된다. (“가시”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뾰족한 막대기나 나무, 유리 등의 조각이나 가시 같은 “뾰족한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자신이 가시로 표현한 이 고통이 신체적인 것인지 감정적인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바울의 기록에 나오는 몇몇 표현들을 볼 때 그가 시력에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 그런 문제가 있었다면 여행하거나 편지를 쓰거나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갈 4:15; 6:11. 또한 행 23:1-5 참조) 문맥을 보면 바울은 교만한 반대자들이 그를 끈질기게 공격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따라서 그러한 거짓 선생들로 인한 스트레스와 염려를 가리켜 “가시”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수 있다. (고후 11:5 연구 노트 참조) 그가 겪은 고통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바울은 그것을 사탄의 천사라고 부른다. 그는 그러한 표현을 사용함으로, 사탄이 신체적인 것이든 감정적인 것이든 하느님의 종들이 겪는 고통을 이용하여 그들을 낙담시키려고 한다는 점을 밝힌다. 그는 자신이 겪는 시련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유지하면서, 이 “가시”가 자신이 지나치게 우쭐대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다시 말해 자신이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여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마 23:12.

주: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 표현 톤 키리온(주)은 여호와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하고 예수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이 구절에서는 바울이 “기도를 들으시는 분”인 주 여호와께 세 번 간청했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다. (시 65:2) 우리가 기도를 드려야 할 대상은 그분뿐이기 때문이다. (시 145:18; 빌 4:6) 여호와께서는 바울의 기도에 대한 응답 가운데서 “과분한 친절”과 함께, 그분이 자신의 종들에게 관대하게 주시는 “능력”을 언급하셨다. (고후 12:9; 사 40:26; 눅 24:49) 일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바울이 9절에서 “그리스도의 능력”도 언급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리스도에게 세 번 간청했다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예수께서도 능력을 갖고 계시지만 그 능력은 모든 능력의 근원이신 여호와로부터 받으신 것이다.—눅 5:17.

좀 비합리적이더라도: 바울은 자신이 하는 자랑하는 말이 자신을 비합리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후 11:16) 하지만 그는 고린도 후서의 뒷부분에서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느꼈다. (사실 고후 11장12장에서 바울은 “비합리적인 [사람]”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아프론아프로시네를 8번[고후 11:1, 16, 17, 19, 21; 12:6, 11] 사용한다.) “특출한 사도들”은 바울과 그의 가르침에 대한 존중심을 떨어뜨림으로 회중에 많은 해를 끼치고 있었다. 그러한 거짓 선생들 때문에 바울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자랑할 수밖에 없었다. (고후 10:10; 11:5, 16. 고후 11:5 연구 노트 참조) 그러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그가 자랑한 것은 전혀 비합리적인 일이 아니었다.

비합리적인: 고후 11:1 연구 노트 참조.

놀라운 일: 또는 “전조”.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그리스어 테라스는 항상 세메이온(“표징”)과 함께 사용되며, 그 경우 두 단어 모두 복수형으로 사용된다. (마 24:24; 요 4:48; 행 7:36; 14:3; 15:12; 고후 12:12) 테라스는 기본적으로 외경심이나 경탄을 자아내는 것을 가리킨다. 이 단어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전조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한 경우에는 연구 노트에 “전조”라는 대체 표현이 나온다.

놀라운 일: 또는 “전조”.—행 2:19 연구 노트 참조.

세 번째로: 여기서 바울이 “세 번째”라고 한 것은 그가 고린도를 세 번째로 방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 세 번째로 준비한다는 의미이다. 그는 고린도를 방문하고 싶어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계획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첫 번째로 고린도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회중을 설립했다. (행 18:9-11) 그 후에 그는 두 번째로 고린도를 방문하려고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고후 1:15, 16, 23) 증거에 따르면 그는 고린도 전서를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린도 후서를 썼으므로 그 짧은 시간 사이에 고린도를 방문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사도행전에는 그가 고린도를 방문한 한 번의 경우만 언급되어 있다. (행 18:1) 하지만 바울이 이 구절과 고후 13:1, 2에서 언급한, 고린도를 세 번째로 방문하려던 계획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바울은 기원 56년경에 고린도를 방문했으며 그곳에서 로마서를 기록했다.—행 20:2, 3; 롬 16:1, 23; 고전 1:14.

여러분을 위해: 또는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 여기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을 옮긴 것이다. 그리스어 프시케는 「신세계역」 이전 번역판에서 “영혼”으로 번역되었는데, 이 문맥에서는 사람을 가리킨다. 따라서 “여러분”이라는 대명사로 번역되었다.—용어 설명 “영혼” 참조.

수군거리고: 또는 “남의 이야기를 하고”. 이 그리스어 단어는 습관적으로 해로운 남의 이야기를 하면서 어쩌면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기까지 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고후 12:20 연구 노트 참조.

수군거림: 또는 “남의 이야기”. 이 그리스어 단어는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나 소문을 비밀스럽게 퍼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에만 나온다. 하지만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단어가 롬 1:29(연구 노트 참조)에서 악한 행위 중 하나로 언급되며, “수군거리다”로 번역되었다. 또한 이 단어들의 동사형이 「칠십인역」삼하 12:19과 시 41:7(40:8, LXX)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더러움: 또는 “불결함; 타락; 음란”. 이 구절에서 “육체의 일”로 가장 먼저 언급된 세 가지 가운데 “더러움”(그리스어 아카타르시아)이 가장 의미 폭이 넓다. 그리스어 아카타르시아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10번 나온다.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더럽거나 불결한 것을 가리킨다. (마 23:27)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면 온갖 종류의 불결함을 포괄하는 단어로 쓰이는데, 그 가운데는 성 문제, 말과 행동, 그리고 거짓 신을 숭배하는 것과 같은 영적인 문제 등에서의 불결함이 포함된다. (롬 1:24; 6:19; 고후 6:17; 12:21; 엡 4:19; 5:3; 골 3:5; 살전 2:3; 4:7) 따라서 “더러움”에는 여러 종류의 잘못된 행동이 포함되며, 그러한 행동들은 더러움의 정도가 각기 다를 수 있다. (엡 4:19 연구 노트 참조) “더러움”은 잘못된 행동이나 상태가 갖는, 도덕적으로 불쾌감을 주는 측면을 강조하는 표현이다.—용어 설명 “부정함; 더러움” 참조.

성적 부도덕: 성경에서 그리스어 포르네이아는 하느님의 표준에 위배되는 모든 성행위를 두루 일컫는 용어이다. 한 사전에서는 포르네이아를 “매춘 행위, 음란 행위, 음행”으로 정의하면서 이 단어가 “온갖 불법적인 성교”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고 설명한다. 그러한 불법적인 행위 가운데는 매춘 행위, 간음, 미혼끼리의 성관계만이 아니라 동성애와 수간도 포함되는데 성경에서는 이러한 모든 행위를 정죄한다. (레 18:6, 22, 23; 20:15, 16; 고전 6:9. 용어 설명 참조) 예수께서는 성적 부도덕을 살인, 도둑질, 모독과 함께 언급하심으로 그것이 악한 것임을 보여 주셨다.—마 15:19, 20; 막 7:21-23.

방종: 또는 “자유분방함”. 성경에서 그리스어 아셀게이아는 하느님의 법을 심각하게 범하는 행위이자, 뻔뻔스럽거나 불경스럽거나 대담할 정도로 경멸적인 태도를 반영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막 7:22; 롬 13:13; 고후 12:21; 갈 5:19; 엡 4:19; 벧전 4:3; 벧후 2:2, 7, 18; 유 4) 한 사전에서는 이 단어를 “방탕함, 음탕함, 음란함 즉 도덕적으로 무절제한 태도와 행실”로 정의한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교도인 이세벨 왕비가 예루살렘에 바알을 위한 신당을 세운 일을 묘사할 때 이 그리스어 단어를 사용했다. 이것은 대중의 생각과 예의를 뻔뻔스럽게 무시한 충격적인 행동이었다.—「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 8권 13장 1항 (로브 8.318). 용어 설명 참조.

더러움: 이 구절에 언급된 세 가지 표현 (“더러움”, “성적 부도덕”, “방종”) 가운데 “더러움”(그리스어 아카타르시아)이 가장 의미 폭이 넓다. 이 단어의 문자적 의미는 “더러운 것; 불결한 것”이다. (마 23:27)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면 온갖 종류의 불결함을 포괄하는 단어로 쓰이는데, 그 가운데는 성 문제, 말과 행동, 영적인 문제 등에서의 불결함이 포함된다. (고전 7:14; 고후 6:17; 살전 2:3 비교) “더러움”에는 여러 종류의 잘못된 행동이 포함되며, 그러한 행동들은 더러움의 정도가 각기 다를 수 있다. (엡 4:19) “더러움”은 잘못된 행동이나 상태가 갖는, 도덕적으로 불쾌감을 주는 측면을 강조하는 표현이다.—용어 설명 “부정함; 더러움” 및 갈 5:19 연구 노트 참조.

성적 부도덕: 그리스어 포르네이아는 성경에서 불법으로 규정하는 모든 성관계를 두루 일컫는 용어이다. 여기에는 간음, 미혼끼리의 성관계, 동성애나, 성과 관련된 그 밖의 죄들이 포함된다.—용어 설명갈 5:19 연구 노트 참조.

방종: 그리스어 아셀게이아. 방종은 하느님의 법을 심각하게 범하는 행위이자, 뻔뻔스럽거나 대담할 정도로 경멸적인 태도를 반영하는 행위이다.—용어 설명갈 5:19 연구 노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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