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후서 1:1-24

1  하느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바울과 우리 형제 디모데가+ 고린도에 있는 하느님의 회중과 아카이아+ 전역에 있는 모든 거룩한 자에게 편지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과분한 친절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아버지,+ 부드러운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느님은+ 찬양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온갖 시련을 겪을 때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는 위로로,+ 온갖 시련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받는 위로도 넘칩니다.  우리가 시련을 겪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고,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위로에 힘입어 여러분도 우리가 겪는 것과 같은 고난을+ 인내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희망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우리와 고난을 함께 받듯이 위로도 함께 받으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아시아 속주에서 우리가 겪은 환난에 대해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힘에 겨울 정도로 극심한 압력을 받아 생사마저 매우 불확실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일으키시는 하느님을 신뢰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0  그분은 위험한 죽음의 고비에서 우리를 구출하셨고 또 구출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앞으로도 우리를 구출해 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그분에게 두고 있습니다.+ 11  여러분도 간구의 기도로 우리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많은 사람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은혜를 두고 많은 사람이 우리 때문에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12  우리가 자랑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양심이 증언하듯이 우리는 거룩함과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성실함으로, 육적인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로 세상에서 처신해 왔습니다. 특히 여러분을 대할 때 그렇게 했습니다. 13  사실 우리는 여러분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여러분에게 써 보냅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것들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14  여러분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듯이, 우리는 여러분의 자랑거리입니다. 우리 주 예수의 날에 여러분이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5  이런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먼저 여러분에게 가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기뻐할 두 번째 기회를 갖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6  여러분에게 들러서 마케도니아로 갔다가, 마케도니아에서 다시 여러분에게 돌아와서, 여러분의 전송을 받아 유대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17  그런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이 경솔했다는 말입니까? 또는 내가 육적인 동기로 계획한 것이어서, “예, 예” 하고서 “아니요, 아니요” 한다는 말입니까? 18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은 “예” 하면서 “아니요”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하느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여러분에게 전파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이면서 “아니요”인 분이 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경우에 “예”는 “예”가 되었습니다. 20  하느님의 약속은 아무리 많더라도 그분에 의해 “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통해 하느님께 “아멘”이라고 함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21  여러분과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음을 보증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오게 될 것의 증표로 영을+ 우리 마음에 주셨습니다. 23  이제, 나는 내 목숨을 걸고 하느님을 증인으로 삼아 말하는데, 내가 아직 고린도에 가지 않은 것은 여러분을 아끼기 때문입니다. 24  우리는 여러분의 믿음의 주인이 아니라,+ 여러분의 기쁨을 위한 동료 일꾼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믿음으로 서 있기 때문입니다.

각주

연구 노트

고린도 전서: 이 편지의 원문에는 이러한 제목이 없었던 것 같다. 고대 사본들을 보면 이러한 제목이 나중에 붙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편지들을 쉽게 구분하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다. P46으로 알려진 파피루스 책자본은 서기관들이 제목을 사용해 성경 책들을 구분했음을 보여 준다. P46은 바울의 편지들이 들어 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자본으로, 여러 학자들은 이 책자본이 기원 2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책자본에는 바울의 편지 중 아홉 통이 들어 있다. 그중 고린도 전서의 시작 부분에는 프로스 코린티우스 A(“고린도 사람들에게 1”)라는 제목이 들어 있다. (미디어 갤러리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바울의 첫째 편지” 참조) 기원 4세기에 만들어진 바티칸 책자본과 시나이 책자본 같은 초기 사본들에도 동일한 제목이 들어 있다. 이 사본들에는 고린도 전서의 시작 부분과 끝부분 모두에 제목이 나온다.

고린도 후서: 이 편지의 원문에는 이러한 제목이 없었던 것 같다. 고대 사본들을 보면 이러한 제목이 나중에 붙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편지들을 쉽게 구분하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다.—고린도 전서 책명 연구 노트 참조.

사도: 그리스어 명사 아포스톨로스는 “보내다”라는 의미의 동사 아포스텔로에서 나온 단어이다. (마 10:5; 눅 11:49; 14:32) 요 13:16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에 이 단어의 기본 의미가 분명히 나타나 있는데, 그 구절에서는 이 단어가 “보냄을 받은 사람”으로 번역되어 있다. 바울은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선택에 의해 이방 사람들 즉 비유대인들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행 9:1-22; 22:6-21; 26:12-23) 바울은 자신이 부활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으며 (고전 9:1, 2) 기적을 행했다는 (고후 12:12) 점을 들어 자신의 사도직을 확증했다. 또한 침례받은 신자들에게 성령이 내려질 때 그가 통로 역할을 했다는 점 역시 그가 진정한 사도라는 증거였다. (행 19:5, 6)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는 점을 여러 번 언급했지만, 자신을 “열두 제자” 가운데 포함시킨 적은 한 번도 없다.—고전 15:5, 8-10; 롬 11:13; 갈 2:6-9; 딤후 1:1, 11.

아카이아: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아카이아는 그리스 남부에 있던 로마 속주를 가리킨다. 아카이아의 수도는 고린도였다. 기원전 27년에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는 그리스에 있는 두 개의 속주인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를 재편성했다. 그때부터 아카이아는 펠로폰네소스반도 전체와 그리스 내륙 지역 일부를 가리키게 되었다. 아카이아 속주는 로마 원로원의 관할 아래 있었으며 속주 총독(프로콘술)이 수도인 고린도에서 다스렸다. (고후 1:1)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나오는 아카이아 속주의 다른 도시들로는 아테네와 겐그레아가 있다. (행 18:1, 18; 롬 16:1) 아카이아 속주와 북쪽의 마케도니아 속주는 종종 함께 언급된다.—행 19:21; 롬 15:26; 살전 1:7, 8. 부록 나13 참조.

거룩한 자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회중들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적 형제들을 가리킬 때 “거룩한 자(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행 9:13; 26:10; 롬 12:13; 고후 1:1; 13:13) 이 표현은 “영원한 계약의 피” 즉 예수께서 흘리신 피를 통해 새 계약을 맺음으로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게 된 사람들을 가리킨다. (히 10:29; 13:20) 따라서 그들은 성별되고 깨끗해졌으며 하느님에 의해 “거룩한 자들”이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사망한 뒤부터가 아니라 지상에서 성별된 행로를 시작할 때부터 그들을 거룩하다고 여기신다. 따라서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사람들을 “거룩한 자들”(일부 성경 번역판에서는 “성도”)이라고 선언할 만한 성경적 근거는 없다.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므로 그들도 “거룩해야 한다”고 말한다. (벧전 1:15, 16; 레 20:7, 26) “거룩한 자들”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거룩한 자들”이라고 불리기 500여 년 전에, 하느님께서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으로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알려 주셨다.—단 7:13, 14, 18, 27.

사도: 롬 1:1 연구 노트 참조.

바울과 우리 형제 디모데가: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내는 이 편지를 쓴 사람은 바울이다. 하지만 바울은 편지 서두의 인사말에서 자신과 함께 디모데도 언급한다. 바울이 기원 55년경에 이 편지를 썼을 때 디모데는 그와 함께 마케도니아에 있었던 것 같다. (행 19:22) 바울과 디모데는 영적인 의미에서 형제였으므로 그는 디모데를 “우리 형제”라고 부른다.

아카이아: 행 18:12 연구 노트 참조.

거룩한 자: 롬 1:7 연구 노트 참조.

안부를 전합니다!: 그리스어 카이로의 문자적인 의미는 “기뻐하다”이다. 여기서 이 단어는 인사말로 사용되었으며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회중들에 보낸 할례 문제에 관한 이 편지의 서두 부분은 고대의 일반적인 편지 형식을 따르고 있다. 먼저 편지를 쓰는 사람이 언급되고 그다음에는 편지를 받는 사람이 언급되며 이어서 일반적인 인사말이 나온다. (행 23:26 연구 노트 참조) 1세기 중앙장로회가 보낸 이 편지에서처럼 카이로를 인사말로 사용한 편지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야고보서밖에 없다. (약 1:1) 제자 야고보는 중앙장로회가 보낸 그 편지를 작성하는 데 참여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야고보서의 필자인 야고보가 행 15장에 기록된 모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야고보와 동일한 인물이라는 점을 뒷받침한다.

평안히 가십시오: 이 관용구는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성경에서 “당신이 잘되기를 바랍니다”라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눅 7:50; 8:48; 약 2:16. 삼상 1:17; 20:42; 25:35; 29:7; 삼하 15:9; 왕하 5:19 비교) 주로 “평화”로 번역되는 히브리어(샬롬)는 폭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 전쟁이나 소란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에 더해(삿 4:17; 삼상 7:14; 전 3:8), 건강하거나 안전하거나 잘 지낸다는 의미를 전달하기도 하며(삼상 25:6, 각주; 대하 15:5, 각주; 욥 5:24, 각주), 평안하거나(더 10:3, 각주), 우정을 누린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시 41:9).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평화”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에이레네)도 히브리어 단어처럼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분쟁이 없다는 의미에 더해 복지, 구원, 화합의 개념을 전달한다.

과분한 친절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자신이 쓴 편지들 가운데 11통의 편지에서 이러한 인사말을 사용한다. (롬 1:7; 고전 1:3; 갈 1:3; 엡 1:2; 빌 1:2; 골 1:2; 살전 1:1; 살후 1:2; 딛 1:4; 몬 3) 그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들에서도 매우 비슷한 인사말을 사용했지만 그 인사말에는 “자비”라는 특성이 함께 언급되어 있다. (딤전 1:2; 딤후 1:2) 학자들은 바울이 일반적으로 인사말로 사용되는 단어(“안부를 전합니다!”, 카이레인)가 아니라 그와 발음이 비슷한 다른 그리스어 단어(카리스)를 자주 사용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들은 바울이 그렇게 함으로 회중들이 “과분한 친절” 즉 “은혜”를 온전히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 15:23 연구 노트 참조) “평화”를 언급한 것은 유대인들이 인사할 때 일반적으로 히브리어 샬롬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막 5:34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과분한 친절과 평화”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대속을 통해 여호와 하느님과 누리게 된 관계를 강조한 것 같다. 바울은 관대한 친절과 평화의 근원으로 하느님 우리 아버지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분하여 언급한다.

격려하는 일: 또는 “권고하는 일”. 그리스어 명사 파라클레시스는 문자적으로 “곁으로 부르는 것”을 의미하며, 많은 경우 “격려”(행 13:15; 빌 2:1)나 “위로”(롬 15:4; 고후 1:3, 4; 살후 2:16)를 의미한다. 이 구절에는 파라클레시스와 그와 어근이 같은 동사 파라칼레오가 함께 사용되었는데, 대체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두 단어 모두 “권고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일부 문맥에서는 본문에 “권고”로 번역되었다. (살전 2:3; 딤전 4:13; 히 12:5) 이 그리스어 단어들이 권고, 위로, 격려라는 세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에게 권고할 때 결코 거칠거나 불친절한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려 주는 것일 수 있다.

부드러운 자비의 아버지: 여기서 “부드러운 자비”로 번역된 그리스어 명사(오익티르모스)는 다른 사람에 대한 동정심 즉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리킨다. 하느님을 부드러운 자비의 아버지 즉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동정심이 그분에게서 나오며 그분의 본성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그러한 부드러운 감정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고난을 겪는 자신의 충실한 종들을 위해 자비롭게 행동하신다.

모든 위로의 하느님: 여기서 “위로”로 번역된 그리스어 명사 파라클레시스는 문자적으로 “곁으로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거나 슬픔을 느낄 때 그의 곁에 서서 그를 돕거나 격려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롬 12:8 연구 노트 참조) 일부 학자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강조한 바울의 이 말이 사 40:1에 나오는 사상과 비슷하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그 구절은 이러하다. “‘위로하여라, 내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또한 사 51:12 참조) 또한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그리스어(파라클레토스)는 요 14:26에서 “돕는 자”로 번역되었는데 여호와의 성령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관점에서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강력한 활동력을 사용하여 위로와 도움을 베푸신다.—행 9:31; 엡 3:16.

모든 위로의 하느님: 여기서 “위로”로 번역된 그리스어 명사 파라클레시스는 문자적으로 “곁으로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거나 슬픔을 느낄 때 그의 곁에 서서 그를 돕거나 격려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롬 12:8 연구 노트 참조) 일부 학자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강조한 바울의 이 말이 사 40:1에 나오는 사상과 비슷하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그 구절은 이러하다. “‘위로하여라, 내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또한 사 51:12 참조) 또한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그리스어(파라클레토스)는 요 14:26에서 “돕는 자”로 번역되었는데 여호와의 성령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관점에서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강력한 활동력을 사용하여 위로와 도움을 베푸신다.—행 9:31; 엡 3:16.

시련: 또는 “고난; 환난”.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기본적으로 압력이 되는 상황으로 인해 겪는 고난이나 괴로움이나 고통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박해를 받을 때 겪게 되는 고통을 가리키는 데 자주 사용된다. (마 24:9; 행 11:19; 20:23; 고후 1:8; 히 10:33; 계 1:9) 그러한 환난에는 충절을 지키다가 투옥되거나 죽임을 당하는 것이 포함될 수 있다. (계 2:10) 하지만 기근, (행 7:11) 가난, 고아와 과부가 흔히 겪는 어려움, (약 1:27) 심지어 가정생활, 결혼 생활과 같은 상황들도 그 정도는 다양하지만 “환난”을 가져올 수 있다.—고전 7:28.

위로해: 또는 “격려해”.—고후 1:3 연구 노트 참조.

시련: 또는 “고난; 환난”.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기본적으로 압력이 되는 상황으로 인해 겪는 고난이나 괴로움이나 고통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박해를 받을 때 겪게 되는 고통을 가리키는 데 자주 사용된다. (마 24:9; 행 11:19; 20:23; 고후 1:8; 히 10:33; 계 1:9) 그러한 환난에는 충절을 지키다가 투옥되거나 죽임을 당하는 것이 포함될 수 있다. (계 2:10) 하지만 기근, (행 7:11) 가난, 고아와 과부가 흔히 겪는 어려움, (약 1:27) 심지어 가정생활, 결혼 생활과 같은 상황들도 그 정도는 다양하지만 “환난”을 가져올 수 있다.—고전 7:28.

시련: 또는 “환난”.—고후 1:4 연구 노트 참조.

에베소에서 야수들과 싸웠다 하더라도: 로마인들은 흔히 범죄자들을 원형 경기장에 넣어 야수를 상대하게 했다. 학자들은 바울과 같은 로마 시민은 그러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일부 로마 시민들이 야수에게 던져지거나 야수와 싸워야 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역사적 증거가 있다. 바울이 고린도 후서에 기록한 내용이 경기장에서 문자적인 야수를 상대해야 했던 경험을 묘사한 것일 수 있다. (고후 1:8-10) 바울이 문자적인 야수에게 던져진 것이라면 그는 하느님의 개입에 의해 구출되었을 것이다. (단 6:22 비교) 이 경험은 바울이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겪은 많은 “죽을 고비” 중 하나였을 수 있다. (고후 11:23) 일부 학자들은 여기서 바울이 야수라는 표현을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이며 에베소에서 야수 같은 반대자들을 만난 일을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행 19:23-41.

아시아 속주에서 우리가 겪은 환난: 성경에서는 바울이 어떤 일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지 않는다. 그는 행 19:23-41에 나오는,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을 염두에 두었을 수 있다. 또는 고전 15:32에 언급된, “에베소에서 야수들”을 상대했던 일을 가리켜 이 말을 했을 수도 있다. (연구 노트 참조) 어떤 경우이든 바울은 그 일로 인해 목숨을 잃을 뻔했던 것 같다.—고후 1:9.

간구를 마치자: 또는 “간절히 기도하자”. 그리스어 동사 데오마이는 열렬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가리킨다. 명사형인 데에시스는 “간구”로 번역되며 “겸손하고 간절한 간청”으로 정의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데에시스는 하느님께 간청하는 경우에만 사용된다. 예수께서도 “자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에게 강한 부르짖음과 눈물로 간구와 청원을 드리셨다.” (히 5:7) 히 5:7의 그리스어 원문에는 “간구”에 해당하는 단어가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이 점을 볼 때 예수께서 여러 차례 여호와께 간청하셨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거듭거듭 간절히 기도하셨다.—마 26:36-44; 눅 22:32.

간구의 기도로: 또는 “간절한 기도로”. “간구의 기도”로 번역된 그리스어 명사 데에시스는 “겸손하고 간절한 간청”으로 정의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명사는 하느님께 간청하는 경우에만 사용된다. 성경의 여러 구절에서는 개인이 드리는 기도이든 여러 사람이 함께 드리는 기도이든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알려 준다. (약 5:14-20. 창 20:7, 17; 살후 3:1, 2; 히 13:18, 19 비교) 마음에서 우러나와 여호와의 뜻과 일치하게 진실한 기도를 드리면 그분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 따라 행동하신다. (시 10:17; 사 30:19; 요 9:31; 요1 5:14, 15) 하느님께 드리는 간구의 기도는 그분이 어떤 일언제 하시는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행 4:31 연구 노트 참조.

많은 사람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또는 “기도에 힘쓰는 많은 얼굴 때문에”.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를 직역하면 “많은 얼굴들에서”가 되는데, 이것은 하느님을 향해 얼굴을 들고 기도를 드리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바울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드리는 기도에 하느님께서 응답하실 때 그로 인해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이 유익을 얻는 것보다는 여호와께 영광이 돌아가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육적인 지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의 지혜를 가리킨다.—고전 3:19 비교.

읽고: 달리 번역하면 “이미 잘 알고 있고”.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나기노스코를 문자적인 의미에 가깝게 “잘 알다”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단어가 글과 관련하여 사용될 경우에는 “알아보다”를 의미하며 대부분 “읽다” 또는 “소리 내어 읽다”로 번역된다. 이 단어는 성경을 개인적으로 읽는 경우나 공개적으로 읽는 경우에 모두 사용된다.—마 12:3; 눅 4:16; 행 8:28; 13:27.

온전히: 직역하면 “끝까지”. 여기서 이 그리스어 표현은 “온전히; 완전히”를 의미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이 표현의 문자적 의미가 시간과 관련이 있다고 이해하여, 그들이 “끝까지” 이해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에게 들러서 마케도니아로 갔다가: 바울은 3차 선교 여행 중이던 기원 55년에 에베소에 있을 때, 에게해를 건너 고린도로 갔다가 그곳에서 마케도니아로 가려고 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린도 회중을 다시 방문하려고 했다. 아마도 이전에 편지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을 위한 기부금을 가져가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고전 16:3) 하지만 바울은 그러한 계획을 변경했는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후 1:17 연구 노트 참조.

그것은 여러분이 기뻐할 두 번째 기회를 갖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2차 선교 여행 중에 고린도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그때는 기원 50년이었다. 바울은 그곳에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회중을 세웠다. (행 18:9-11) 그는 3차 선교 여행 중에 에베소에 있을 때 고린도를 다시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고전 16:5; 고후 1:16, 23) 바울은 고린도를 두 번째로 방문하려던 계획을 가리켜 “기뻐할 두 번째 기회”라고 했을 수 있다. 또는 다음 구절에서 알려 주듯이, 고린도를 연이어 두 번 방문하려던 계획을 가리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고후 1:16 연구 노트 참조.

기뻐할: 여러 그리스어 사본에서는 이 부분에 “기쁨”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카라가 아니라 “과분한 친절; 은혜; 유익”을 의미하는 카리스가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구절의 뒷부분은 “두 번 유익(은혜)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여러 성경 번역판에서도 그러한 표현을 사용한다.

내가 ··· 경솔했다는 말입니까?: 바울은 고린도 전서를 기록하기 전에 쓴 편지에서 (고전 5:9 연구 노트 참조)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마케도니아로 가는 길에 그들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후에 고린도 전서에서 그는 자신이 계획을 바꾸어 먼저 마케도니아로 간 다음 고린도로 가겠다고 알려 주었다. (고전 16:5, 6) 따라서 회중의 일부 사람들, 아마도 “특출한 사도들”은 (고후 11:5) 바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했던 것 같다.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면서 자신이 “경솔했던”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여기서 “경솔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에는 변덕스럽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이 단어는 믿을 수 없고 생각을 무책임하게 바꾸는 사람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바울은 변덕스러운 사람이 아니었으며 육적인 동기로 다시 말해 이기적인 동기로 또는 불완전한 인간의 생각에 따라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방문을 미룬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고후 1:23에서 그는 그들을 “아끼기” 때문에 원래 계획을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들에게 자신이 편지에 쓴 조언에 따라 행동할 시간을 주려고 했다. 그러면 그가 나중에 그곳을 방문했을 때 서로 더 큰 격려를 받게 될 것이었다.

여러분에게 들러서 마케도니아로 갔다가: 바울은 3차 선교 여행 중이던 기원 55년에 에베소에 있을 때, 에게해를 건너 고린도로 갔다가 그곳에서 마케도니아로 가려고 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린도 회중을 다시 방문하려고 했다. 아마도 이전에 편지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을 위한 기부금을 가져가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고전 16:3) 하지만 바울은 그러한 계획을 변경했는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후 1:17 연구 노트 참조.

나는 편지에서 여러분에게 ··· 썼습니다: 이 말을 볼 때 바울이 고린도 전서를 쓰기 전에도 고린도 사람들에게 써 보낸 편지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 편지는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그 편지를 보존하지 않기로 결정하신 것 같다. 아마도 그 편지의 내용이 그 편지를 받은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고전 1:2 연구 노트 참조.

내가 ··· 경솔했다는 말입니까?: 바울은 고린도 전서를 기록하기 전에 쓴 편지에서 (고전 5:9 연구 노트 참조)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마케도니아로 가는 길에 그들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후에 고린도 전서에서 그는 자신이 계획을 바꾸어 먼저 마케도니아로 간 다음 고린도로 가겠다고 알려 주었다. (고전 16:5, 6) 따라서 회중의 일부 사람들, 아마도 “특출한 사도들”은 (고후 11:5) 바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했던 것 같다.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면서 자신이 “경솔했던”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여기서 “경솔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에는 변덕스럽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이 단어는 믿을 수 없고 생각을 무책임하게 바꾸는 사람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바울은 변덕스러운 사람이 아니었으며 육적인 동기로 다시 말해 이기적인 동기로 또는 불완전한 인간의 생각에 따라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방문을 미룬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고후 1:23에서 그는 그들을 “아끼기” 때문에 원래 계획을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들에게 자신이 편지에 쓴 조언에 따라 행동할 시간을 주려고 했다. 그러면 그가 나중에 그곳을 방문했을 때 서로 더 큰 격려를 받게 될 것이었다.

내가 ··· 경솔했다는 말입니까?: 바울은 고린도 전서를 기록하기 전에 쓴 편지에서 (고전 5:9 연구 노트 참조)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마케도니아로 가는 길에 그들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후에 고린도 전서에서 그는 자신이 계획을 바꾸어 먼저 마케도니아로 간 다음 고린도로 가겠다고 알려 주었다. (고전 16:5, 6) 따라서 회중의 일부 사람들, 아마도 “특출한 사도들”은 (고후 11:5) 바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했던 것 같다.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면서 자신이 “경솔했던”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여기서 “경솔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에는 변덕스럽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이 단어는 믿을 수 없고 생각을 무책임하게 바꾸는 사람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바울은 변덕스러운 사람이 아니었으며 육적인 동기로 다시 말해 이기적인 동기로 또는 불완전한 인간의 생각에 따라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방문을 미룬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고후 1:23에서 그는 그들을 “아끼기” 때문에 원래 계획을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들에게 자신이 편지에 쓴 조언에 따라 행동할 시간을 주려고 했다. 그러면 그가 나중에 그곳을 방문했을 때 서로 더 큰 격려를 받게 될 것이었다.

“예” 하면서 “아니요” 하는: 또는 “‘예’ 하고 금방 ‘아니요’ 하는”. 직역하면 “‘예’ 하고 ‘아니요’ 하는”.—고후 1:17 연구 노트 참조.

실루아노: 실루아노는 바울이 기록한 살전 1:1; 살후 1:1과 베드로가 기록한 벧전 5:12에서도 언급된다.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에서 그는 실라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사도행전을 보면 그는 예루살렘에 있던 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예언자로 일했고 바울의 2차 선교 여행에도 함께했다. 실루아노는 로마 시민이었던 것 같다. 이 구절에서 그의 로마식 이름이 사용된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행 15:22, 27, 40; 16:19, 37; 17:14; 18:5.

당신이 드리는 감사에 “아멘” 하고 말하겠습니까?: 그리스어 아멘은 히브리어 아멘을 음역한 것으로 “그렇게 되소서” 또는 “확실히”를 의미한다. 여러 성경 구절을 보면 공개 기도를 듣는 사람들이 기도가 끝날 때 아멘이라고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상 16:36; 느 5:13; 8:6) 바울의 말을 볼 때, 그리스도인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도 그러한 관행에 따라 기도가 끝날 때 함께 아멘이라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바울은 사람들이 아멘이라는 말을 소리 내어 했는지 아니면 소리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지 않는다.—용어 설명 “아멘” 및 롬 1:25 연구 노트 참조.

그분에 의해 “예”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약속이 예수를 통해 확증되고 성취되고 실현되었다는 의미이다. 예수를 통해 즉 그분의 모든 가르침과 그분이 하신 일을 통해 히브리어 성경에 기록된 모든 약속이 이루어졌다. 예수께서는 지상에서 흠 없이 충절을 지키심으로 여호와의 약속들에 대한 의심의 여지를 말끔히 지워 버리셨다.

그분을 통해 하느님께 “아멘”이라고 함으로: “아멘”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그렇게 되소서” 또는 “확실히”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를 음역한 것이다. 계 3:14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아멘”이라고 하셨다. 그분이 지상에 계실 때 자신에 관한 모든 예언을 성취시키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아멘”이시라고 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분이 충실한 삶을 살다가 희생적인 죽음을 맞이하심으로 하느님의 모든 선언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보증이 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러한 보증이 되신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를 끝마칠 때 “아멘”이라고 하는 것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고전 14:16 연구 노트 참조.

인장: 성경 시대에 인장은 어떤 사실이나 소유권이나 합의를 확증하기 위한 서명으로 사용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을 통해 비유적인 인장을 찍으셨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자신의 소유이며 하늘 생명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을 확증하셨다.—엡 1:13, 14.

오게 될 것의 증표: 또는 “오게 될 것의 계약금; 오게 될 것의 보증(담보)”.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는 그리스어 아라본이 세 번 나오는데, 모두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즉 하느님의 성령 또는 활동력으로 기름부으시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고후 5:5; 엡 1:13, 14) 성령의 이러한 특별한 작용은 오게 될 것의 계약금과도 같다.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증표를 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희망에 대해 확신을 갖는다. 그들이 받을 온전한 값 즉 상에는 하늘에서 썩지 않을 몸을 입는 것이 포함된다. (고후 5:1-5) 또한 불멸성이라는 선물을 받는 것도 포함된다.—고전 15:48-54.

내 목숨: 또는 “내 영혼”.—용어 설명 “영혼” 참조.

여러분의 믿음의 주인이 아니라: 바울은 형제들이 옳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충실한 그리스도인임을 확신했다. 그들이 굳건히 서 있는 것은 바울이나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믿음 때문이었다. ‘주인이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키리유오)는 다른 사람을 압제하거나 위압적인 태도를 나타낸다는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하느님의 상속 재산인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 말라고 교훈할 때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벧전 5:2, 3)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서 어떤 권위를 갖고 있든 그 권위를 압제적인 방식으로 행사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바울이 우리는 ··· 여러분의 기쁨을 위한 동료 일꾼이라고 말한 점을 볼 때 그가 자신과 동료들을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보다 우월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자신과 동료들을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를 기쁨으로 숭배하도록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종들로 여겼다.

미디어

고린도 후서 소개 동영상
고린도 후서 소개 동영상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바울의 둘째 편지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바울의 둘째 편지

여기 보이는 것은 P46으로 알려진 파피루스 책자본의 한 페이지이다. 이 책자본은 기원 2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이 책자본에서 86개 장이 남아 있다. 이 책자본에는 바울이 영감을 받아 기록한 편지 9통이 로마서, 히브리서, 고린도 전서, 고린도 후서, 에베소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 전서의 순서로 들어 있다. 붉은 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2”라고 되어 있는 제목이다. 이 책자본은 초기부터 서기관들이 제목을 사용해 성경 책들을 구분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미디어 갤러리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바울의 첫째 편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