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전서 9:1-27

9  나에게 자유가 없습니까? 내가 사도가 아닙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를 보지 못했습니까?+ 여러분은 주 안에서 내가 한 일의 결실이 아닙니까?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도가 아닐지라도 여러분에게는 확실히 사도입니다! 여러분은 주 안에서 나의 사도직을 확증하는 인장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변론합니다.  우리에게 먹고 마실 권리*가 없습니까?  우리에게는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처럼+ 믿는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습니까?  또 바나바와+ 나에게만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가 없습니까?  어떤 군인이 자기 비용을 써 가면서 군 복무를 하겠습니까? 누가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습니까?+ 또 누가 양 떼를 치면서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습니까?  내가 인간의 관점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율법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모세의 율법에 “타작 일을 하는 소에게 부리망을 씌워서는 안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소를 걱정하신 것입니까? 10  아니면 실제로는 우리를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까? 사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쟁기질하는 사람과 타작하는 사람은 당연히 자기 몫을 받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11  우리가 여러분 가운데 영적인 것을 뿌렸다면, 여러분에게서 물질적인 지원을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겠습니까?+ 12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 대해 그러한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야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좋은 소식에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인내하고 있습니다. 13  여러분은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제단에서 섬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제단에 바친 것의 일부분을 자기 몫으로 받는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좋은 소식을 널리 알리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로 생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5  그러나 나는 그 마련들을 단 하나도 이용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 나에게 그렇게 해 달라고 이런 말을 쓴 것이 아닙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아무도 나의 자랑거리를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16  내가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해서 그것이 자랑거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나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17  내가 그 일을 기꺼이 한다면 나에게 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 뜻을 거슬러 그 일을 한다 해도, 관리인의 직무는 여전히 내게 맡겨져 있습니다.+ 18  그러면 나의 상은 무엇입니까? 좋은 소식과 관련된 나의 권위*를 남용하지 않으려고, 좋은 소식을 전할 때 대가를 받지 않고 전하는 것입니다. 19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0  내가 유대인을 얻으려고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되었고,+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21  내가 하느님과 관련해 율법 없는 사람이 아니며 그리스도와 관련해 법 아래 있지만,+ 율법 없는 사람을 얻으려고 율법 없는 사람에게는 율법 없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22  그리고 약한 사람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에게는 약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부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23  나는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려고 좋은 소식을 위해 모든 일을 합니다.+ 24  경주할 때 주자들이 모두 달리지만 한 사람만 상을 받는다는 것을 모릅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25  경기에 참가하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일에서 자제를 나타냅니다. 물론 그들은 썩어 없어질 면류관을 받으려고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썩어 없어지지 않는 면류관을 받으려고 그렇게 합니다.+ 26  그러므로 나는 목표 없이 달리지 않습니다.+ 주먹을 뻗어 허공을 치지도 않습니다.+ 27  나는 내 몸을 사정없이 쳐서+ 종처럼 부립니다. 그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에 정작 나 자신은 승인받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각주

직역하면 “권위”.
직역하면 “권위”.
또는 “권리”.
또는 “자격을 잃는”.

연구 노트

사도: 그리스어 명사 아포스톨로스는 “보내다”라는 의미의 동사 아포스텔로에서 나온 단어이다. (마 10:5; 눅 11:49; 14:32) 요 13:16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에 이 단어의 기본 의미가 분명히 나타나 있는데, 그 구절에서는 이 단어가 “보냄을 받은 사람”으로 번역되어 있다. 바울은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선택에 의해 이방 사람들 즉 비유대인들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행 9:1-22; 22:6-21; 26:12-23) 바울은 자신이 부활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으며 (고전 9:1, 2) 기적을 행했다는 (고후 12:12) 점을 들어 자신의 사도직을 확증했다. 또한 침례받은 신자들에게 성령이 내려질 때 그가 통로 역할을 했다는 점 역시 그가 진정한 사도라는 증거였다. (행 19:5, 6) 바울은 자신이 사도라는 점을 여러 번 언급했지만, 자신을 “열두 제자” 가운데 포함시킨 적은 한 번도 없다.—고전 15:5, 8-10; 롬 11:13; 갈 2:6-9; 딤후 1:1, 11.

사도: 롬 1:1 연구 노트 참조.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 성경에서 베드로의 이름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방식으로 언급된다. (1) “시므온”, 히브리어 이름을 그리스어 형태로 표기한 것이다. (2) “시몬”. 그리스어 이름. (시므온과 시몬은 둘 다 “듣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에서 나왔다.) (3) “베드로”. (“바위”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이름으로, 성경에서 그에게만 붙여진 이름이다.) (4) “게바”. 베드로라는 이름의 셈어 형태이다. (욥 30:6과 렘 4:29에 나오는 히브리어 케핌[바위]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5) 두 이름의 결합형인 “시몬 베드로”.—행 15:14; 요 1:42; 마 16:16.

게바: 사도 시몬 베드로의 이름 중 하나. 예수께서는 시몬을 처음 만나셨을 때 그에게 게바(그리스어 케파스)라는 셈어 이름을 붙여 주셨다. 게바는 욥 30:6과 렘 4:29에 나오는 히브리어 명사 케핌(바위)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요 1:42에서 요한은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페트로스. 이 그리스어 이름 역시 “바위”를 의미한다)이다”라고 설명한다. 게바라는 이름은 요 1:42과 바울이 기록한 편지들 중 고린도 전서와 갈라디아서에만 나온다.—고전 1:12; 3:22; 9:5; 15:5; 갈 1:18; 2:9, 11, 14. 마 10:2; 요 1:42 연구 노트 참조.

시몬의 장모: 게바라고도 불리는 베드로의 장모를 가리킨다. (요 1:42) 베드로의 장모에 관한 이러한 언급은 고전 9:5에서 바울이 게바를 결혼한 사람으로 언급한 것과도 조화를 이룬다. 베드로의 장모는 베드로의 집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도 그와 한집에 살았다.—막 1:29-31. 베드로의 다른 이름들에 관해 설명하는 마 10:2 연구 노트 참조.

게바: 사도 베드로의 이름 중 하나. (마 10:2; 고전 1:12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에서는 게바가 결혼한 사람이었음을 알려 준다. 복음서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베드로의 장모는 베드로의 집에서 살고 있었으며,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도 그와 한집에 살았다. (마 8:14; 막 1:29-31. 눅 4:38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에서는 베드로가 봉사의 직무를 수행할 때 때때로 그의 아내가 함께 다녔음을 알려 준다. 다른 사도들과 예수의 이부형제들도 아내와 함께 다녔다.

믿는 아내를: 또는 “자매를 아내로”. 그리스도인 아내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인 회중의 여자들은 영적인 의미에서 자매로 여겨졌다.—롬 16:1; 고전 7:15; 약 2:15.

배급받는 것: 또는 “봉급; 급료”. 이 단어는 여기서 군사 용어로 사용되어 군인이 받는 급료, 봉급 또는 보수를 가리킨다. 원래, 군인이 받는 보수에는 식량과 그 밖의 보급품들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요한에게 온 유대인 군인들은 주로 관세나 그 밖의 세금을 징수하는 일과 관련된 일종의 경찰 및 감찰 업무에 종사했을 수 있다. 요한이 이 구절에 나오는 조언을 한 이유는, 당시 대부분의 군인들에게 주어지는 보수가 충분하지 않아서 그들이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권한을 남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단어는 고전 9:7에서 “자기 비용을 써 가면서”로 번역된 표현에도 사용되었는데, 그 구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군인”이 보수를 받아 마땅하다는 점에 대해 언급한다.

자기 비용을 써 가면서: 직역하면 “자기 봉급으로”. 바울은 여기서 군인이 “배급받는” 물질적인 것을 가리키는 그리스어를 사용한다. (눅 3:14 연구 노트 참조) 여기서는 이 단어가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열심히 일하는 그리스도인 “군인”이 기본적인 물질적 지원을 받아 마땅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하느님께서 소를 걱정하신 것입니까?: 바울은 요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이 수사적인 질문을 한 것이다. 그는 바로 앞에서 “타작 일을 하는 소에게 부리망을 씌워서는 안 된다”라는 모세 율법의 한 규정을 언급했다. (신 25:4) 일하는 소가 타작 중인 곡식을 먹을 권리가 있듯이, 영적인 것을 나누어 주는 그리스도인도 물질적 지원을 받아 마땅하다. 고전 9:10에서 바울은 신 25:4에 나오는 규정이 사실 “우리를 위해 기록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동물을 사려 깊게 대하라는 하느님께서 주신 원칙을 무시해도 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고자 한 점은 그 원칙이 일하는 동물에게 적용된다면, 일하는 사람 특히 하느님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적용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반드시 해야 할 일: 또는 “필수적인 일”. 바울은 전파하라는 임무를 받았으며 그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행 9:15-17; 갈 1:15, 16) “반드시 해야 할 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마땅히 ~해야 한다”로 번역되기도 한다. (롬 13:5) 이어서 바울은 내가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나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 경우 자신이 느낄 감정적 고통을 “화”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로 표현한다.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에 그의 생명이 달려 있었다. (겔 33:7-9, 18; 행 20:26 비교) 바울은 예레미야와 아모스가 한 말을 염두에 두었을 수 있다. (렘 20:9; 암 3:8) 하지만 그는 단지 의무감이 아니라 사랑에서 우러나와 사람들에게 전파했다.—고후 5:14, 20; 빌 1:16.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되었고: 바울은 유대인이었고 “좋은 소식을 위해 모든 일을 할” 자진성을 갖고 있었다. 그 덕분에 그는 겸손한 유대인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도록 도울 수 있었다. (고전 9:23) 예를 들어 바울은 “유대인들 때문에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베풀었다.” 할례를 받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요구 조건이 아니었는데도 바울은 그렇게 했으며, 디모데도 기꺼이 할례를 받았다.—행 16:1-3.

율법 없는 사람에게는 율법 없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율법 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모세 율법 아래 있지 않던 이방인 즉 비유대인을 가리킨다. 바울은 아테네에서 그리스 사람들에게 증거할 때, 그들의 생각을 고려하여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그리스 시인들의 말을 인용하기까지 했다.—행 17:22-34.

약한 사람에게는 약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힘 있게 말하는 사람이었지만, 회중의 일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민감한 양심을 고려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약한 사람에게는 “약하게 되었다.”—롬 14:1, 13, 19; 15:1.

좋은 소식을 위해 모든 일을 합니다: 바울의 이 말은 그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소식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어떻게 전파하는 방식을 조정했는지 잘 요약해 준다. (고전 9:19-23) 하지만 그는 사람들을 제자로 삼기 위해 결코 “하느님의 말씀에 다른 것을 섞”지 않았으며 “교활하게” 행동하지 즉 속임수를 쓰지도 않았다.—고후 4:2.

경주: “경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스타디온은 스타디움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달리기나 그 밖의 경기가 열리던 경기장을 가리킬 수도 있고 달리기 경주 자체를 가리킬 수도 있으며 특정한 길이를 가리킬 수도 있다. 바울은 여기서 달리기 경주를 가리켜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그리스어 스타디온이 길이 단위로 사용될 경우, 1스타디온의 길이는 지역마다 달랐다. 고린도에서는 1스타디온이 약 165미터였다. 1로마스타디온은 약 185미터였다.—부록 나14 참조.

경주할 때 주자들이: 운동 경기는 그리스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었으므로 바울은 그러한 경기들을 자주 비유로 사용했다. (고전 9:24-27; 빌 3:14; 딤후 2:5; 4:7, 8; 히 12:1, 2)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은 고린도 근처에서 열리던 이스트미아 경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스트미아 경기는 2년에 한 번씩 열렸다. 바울은 기원 51년에 이스트미아 경기가 열렸을 때 고린도에 있었을 것이다. 이스트미아 경기는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열리는 올림픽 경기 다음으로 중요한 경기였다. 그와 같은 그리스의 경기들에서는 다양한 길이의 달리기 경주가 열렸다. 바울은 달리기 선수와 권투 선수의 비유를 들어, 자제를 나타내고 효율적으로 일하고 인내해야 할 필요성을 가르쳤다.—고전 9:26.

한 사람만 상을 받는다는: 고대 그리스의 운동 경기에서 우승한 사람은 화관을 상으로 받았는데, 그런 화관은 대개 나뭇잎으로 된 것이었다. 그러한 화관은 큰 영예의 상징이었으며, 경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경기장에 전시되어 있었던 것 같다. 바울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썩어 없어질 그런 화관보다 훨씬 더 나은 것, 즉 불멸의 생명이라는 썩지 않는 면류관을 위해 힘써 노력하라고 권고했다. 그리스도인이 상을 얻으려면, 그 상에 계속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전 9:25; 15:53; 벧전 1:3, 4; 5:4.

기운을 다해 힘쓰십시오: 또는 “계속 고투하십시오”. 예수의 이러한 권고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영혼을 다해 노력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양한 참고 문헌들에 따르면 이 그리스어 표현은 문맥상 “최대한의 노력을 쏟으십시오; 모든 노력을 기울이십시오”로도 번역할 수 있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 아고니조마이는 명사 아곤에서 나온 단어인데, 아곤은 운동 경기를 가리키는 데 자주 사용된다. 히 12:1에서 이 명사는 생명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경주”를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좀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싸움”(빌 1:30; 딤전 6:12; 딤후 4:7)이나 “고투”(골 2:1)를 가리키기도 한다. 눅 13:24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의 변화형은 “경기에 참가하다”(고전 9:25), “열심히 노력하다”(골 1:29), “힘쓰다”(골 4:12; 딤전 4:10), “싸우다”(딤전 6:12)로 번역된다. 이 표현의 유래가 운동 경기에서 겨루는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울이라고 말씀하신 노력이 운동선수가 상을 받기 위해 온몸의 신경을 집중시켜 힘과 기운을 쏟아붓는 것과 같은 노력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경기에 참가하는 사람: 또는 “운동선수”.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 아고니조마이는 명사 아곤과 어근이 같은데, 아곤은 운동 경기를 가리키는 데 자주 사용된다. 히 12:1에서 이 명사는 생명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경주”를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좀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싸움”(빌 1:30; 딤전 6:12; 딤후 4:7)이나 “고투”(골 2:1)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 구절(고전 9:25)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의 변화형은 “기운을 다해 힘쓰다”(눅 13:24), “열심히 노력하다”(골 1:29), “힘쓰다”(골 4:12; 딤전 4:10), “싸우다”(딤전 6:12)로 번역된다.—눅 13:24 연구 노트 참조.

자제를 나타냅니다: 시합을 준비하는 운동선수는 자제를 나타냈다. 많은 경우 식단을 제한했으며 술을 마시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역사가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선수들은 올림픽 경기를 위해 열 달 동안 훈련을 했다고 한다. 다른 주요 경기들의 경우에도 훈련 기간이 그와 비슷했던 것 같다.

주먹을 뻗어: 여기서 바울은 자신을 권투 경기에서 이기려고 애쓰는 선수에 비한다. 잘 훈련받은 권투 선수는 허공을 쳐서 힘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제대로 가격한다. 그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인도 영원한 생명이라는 최종적인 상을 늘 목표로 삼아, 그 상을 얻을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 7:24, 25; 약 1:22) 그리스도인은 자기 내면에 있는 적을 포함하여, 상을 받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 어떤 어려움이나 장애물과도 싸워야 한다.—고전 9:27; 딤전 6:12.

졸라 대며 나를 못살게 굴지: 또는 “끝을 볼 때까지 나를 때리지”. 직역하면 “끝까지 아래[즉 눈 아래]를 치지”.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 히포피아조는 “얼굴을 치다; 눈을 멍들게 하다”로 정의된다. 여기서는 누군가를 계속 귀찮게 하거나 완전히 지치게 한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된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이 표현이 어떤 사람의 평판을 손상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 문맥에서 이 표현은 재판관이 느낀 감정을 묘사한다. 그는 처음에는 공정한 판결을 내려 달라는 과부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과부가 끈질기게 요청하자 결국 과부의 청을 들어주었다. (눅 18:1-4) 이 비유는 하느님께서 이 불의한 재판관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 재판관을 대조하는 것이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결국 옳은 일을 했다면,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더 그렇게 하시겠는가! 비유에 나오는 과부처럼, 여호와의 종들은 그분께 도움을 요청할 때 끈질긴 태도를 나타내야 한다. 의로우신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공의가 시행되게 하실 것이다.—눅 18:6, 7.

사정없이 쳐서: 또는 “스스로 처벌하여; 엄히 징계하여”. 여기서 “사정없이 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문자적으로 “[눈] 아래를 치다”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징계하고 자제를 나타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눈 아래를 치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할지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처럼 자신을 엄격하게 징계한다면 하느님 앞에 “승인받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눅 18:5 연구 노트 비교.

미디어

소의 부리망
소의 부리망

이 사진들은 20세기 초에 촬영된 것으로, 농부가 부리망을 씌운 소를 이용해 곡식을 타작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농부는 밀과 겨를 분리하는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수확한 곡식 위로 소가 타작 썰매를 끌고 지나가게 했다. 부리망을 씌운 소는 일하는 동안 곡식을 먹을 수 없었다. 모세 율법은 타작 일을 하는 소에게 부리망을 씌우는 것을 금했는데, 이것은 여호와께서 동물들에게 얼마나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지를 잘 보여 주는 것이었다. (신 25:4) 배가 고픈 동물에게 일을 시키면서 바로 앞에 있는 곡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은 고통을 주는 일이었다. 사도 바울은 이 명령에 담긴 원칙을 근거로, 열심히 일하는 그리스도인 봉사자들이 그에 합당한 영예와 물질적 지원을 받아도 된다고 설명했다.—고전 9:9-14; 딤전 5:17, 18.

바울이 고린도의 시장에서 전파하다
바울이 고린도의 시장에서 전파하다

고대 도시 고린도는 그리스 본토와 남쪽에 있는 펠로폰네소스반도를 연결하는 지협(좁고 잘록한 땅)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육로나 해로로 여행할 때 이 지협을 통과했다. 이 도시에는 국적과 문화적 배경이 다양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바울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각 부류의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방식으로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고전 9:22) 바울은 환상 가운데서 고린도에 제자가 될 사람이 많다는 주의 말씀을 들었다. 그래서 고린도에 1년 6개월 동안 머물렀다. (행 18:1, 9-11) 몇 년 후 에베소에 있을 때 바울은 고린도의 제자들이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들을 사랑하는 자녀로 여겼기 때문에 그들에게 교훈과 격려를 베풀기 위해 현재 고린도 전서로 알려져 있는 영감받은 편지를 썼다.—고전 4:14.

“썩어 없어질 면류관”
“썩어 없어질 면류관”

고린도 전서에서 사도 바울은 운동선수가 “썩어 없어질 면류관을 받으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에 관해 썼다. 바울은 이스트미아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운동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을 언급한 것일 수 있다. 이스트미아 경기는 고린도 근처에서 열렸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 운동선수들에게 주어지던 면류관은 솔잎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을 것이며, 야생 셀러리로 만들어진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솔잎과 야생 셀러리 둘 다 금방 썩어 없어지는 재료였다. 이러한 배경을 알면 운동선수들에게 주어지는 금방 사라지는 영광과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영속하는 영광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전 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