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전서 7:1-40

7  이제 여러분이 써 보낸 것에 관해 말하는데,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하지만 성적 부도덕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십시오.+  남편은 아내에게 의무를 이행하고 아내도 남편에게 그와 같이 하십시오.+  아내에게는 자기 몸을 마음대로 할 권한이 없고 남편에게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에게도 자기 몸을 마음대로 할 권한이 없고 아내에게 있습니다.  서로 상대방의 요구를 물리치지 마십시오. 다만 서로 합의하여 정해진 기간 동안 기도에 시간을 바치고 다시 합하기로 한 경우는 예외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자제하지 못해서 사탄이 여러분을 유혹하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뜻이지 명령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각 사람마다 하느님께 받은 선물이+ 있어서,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과 과부들에게 말합니다. 그들은 나처럼 그냥 지내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러나 자제할 수 없다면 결혼하십시오. 정욕으로 타오르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10  결혼한 사람들에게 지시합니다. 내가 아니라 주께서 지시하시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과 헤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11  그러나 만일 헤어지게 된다면, 결혼하지 않고 그대로 지내든지 아니면 남편과 화해하십시오. 그리고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12  그 밖의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아니라 내가 하는 말입니다.+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않는 아내가 있는데 아내가 그와 함께 살고자 한다면 아내를 버리지 마십시오. 13  또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않는 남편이 있는데 남편이 그와 함께 살고자 한다면 남편을 버리지 마십시오. 14  믿지 않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않는 아내가 그 형제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자녀가 깨끗하지 못하겠지만, 이제는 그들도 거룩합니다. 15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이 떠나기로 한다면 떠나게 하십시오. 그러한 경우에 형제나 자매는 얽매일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평화롭게 살도록 부르셨습니다.+ 16  아내여, 당신이 남편을 구원할지 어떻게 압니까?+ 남편이여, 당신이 아내를 구원할지 어떻게 압니까? 17  다만 각 사람은 여호와께서 주신 자신의 몫에 따라, 하느님께서 부르셨을 때와 같이 걸으십시오.+ 나는 모든 회중에 이렇게 지시합니다. 18  부르심을 받았을 때 이미 할례받은 사람이었습니까?+ 할례받은 흔적을 없애려고 하지 마십시오.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할례받지 않은 사람이었습니까? 할례를 받지 마십시오.+ 19  할례든 무할례든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20  각 사람은 어떤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았든지 그대로 지내십시오.+ 21  당신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종이었습니까? 그런 것에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러나 자유롭게 될 수 있다면 그 기회를 이용하십시오.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종이었던 사람은 누구나 주께 속해 자유를 얻은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유인이었던 사람은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23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사셨으니,+ 더는 사람의 종이 되지 마십시오.+ 24  형제 여러분, 각 사람은 어떤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았든지 하느님 앞에서 그대로 지내십시오. 25  동정인 사람들에 관해서는 내가 주께 받은 명령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주께 자비를 받아 믿을 만한 사람이 된 자로서 의견을 제시합니다.+ 26  나는 지금의 어려움을 고려할 때, 사람이 현재대로 지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27  당신은 아내에게 매여 있습니까? 벗어나려고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아내에게서 놓였습니까? 아내를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28  그러나 당신이 결혼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동정인 사람이 결혼하더라도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결혼하는 사람에게는 육체에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아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29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하고, 30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무엇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31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것을 온전히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십시오.+ 이 세상의 장면은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2  참으로 나는 여러분에게 염려가 없기를 바랍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고 주의 일을 염려합니다. 33  그러나 결혼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고 세상의 일을 염려합니다.+ 34  그래서 그는 나뉘어 있습니다. 또한 결혼하지 않은 여자와 처녀는 자기 몸과 영을 모두 거룩하게 하려고 주의 일을 염려합니다.+ 그러나 결혼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고 세상의 일을 염려합니다. 35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지 여러분에게 제한을 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자신에게 합당한 일을 하고 헷갈림 없이 한결같이 주를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36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기가 결혼하지 않고 지내면서 적절하지 않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또 젊음의 한창때가 지났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사람은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그것은 죄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결혼하십시오.+ 37  그러나 어떤 사람이 마음이 확고하고, 필요를 느끼지 못하며, 자기의 의지를 제어할 힘이 있어서 결혼하지 않고 지내겠다고 마음속으로 결심했다면 잘하는 것입니다.+ 38  그러므로 결혼하는 사람도 잘하는 것이지만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더 잘하는 것입니다.+ 39  아내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 남편에게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어 잠들면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 안에서만 해야 합니다.+ 40  그러나 내 의견으로는, 그 여자가 그대로 지내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확실히 나도 하느님의 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주

연구 노트

고린도에 있는 하느님의 회중: 바울은 기원 50년경에 고린도에 회중을 설립했다. (행 18:1-11) 바울은 기원 55년경에 에베소에서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내는 영감받은 첫째 편지를 썼다. (고전 5:9 비교) 고린도의 형제들은 얼마 전에 바울에게 결혼에 관해 그리고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문제에 관해 문의하는 편지를 보낸 바 있었다. (고전 7:1; 8:1) 하지만 바울은 그 회중에 더 시급한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회중은 심각한 부도덕을 용인하고 있었다. (고전 5:1-8) 또한 회중 내에 분열이 있었다. (고전 1:11-13; 11:18; 15:12-14, 33, 34) 그에 더해, 주의 만찬을 지키는 올바른 방법에 관해 분명한 지침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고전 11:20-29) 바울은 이러한 점들에 대해 영감받은 지침을 베풀면서, 그리스도인 사랑을 나타내야 할 필요성을 특히 강조한다.—고전 13:1-13.

이제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에 관해: 기원 1세기에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우상에게 동물을 제물로 바쳤다. 동물의 여러 부위를 제단에 바친 다음 고기의 일부는 제사장들이, 일부는 신도가 받아 먹거나 축제를 벌였다. 그리고 남은 고기는 대개 “고기 시장”에서 판매되었다. (고전 10:25) 이전에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고기를 먹어도 되는지 문의하는 편지를 바울에게 보냈다. (고전 7:1ㄱ) 바울은 성령으로 영감을 받아,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을 그들이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고전 8:4) 그러면서도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상의 신전에 가서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교훈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우상의 신전에서 먹는 모습을 영적으로 약한 사람이 보게 된다면 그가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으로 잘못 생각할 수 있었다. 그처럼 약한 그리스도인들 중 일부는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좋지 않은 영향을 받아 우상을 숭배하는 의식 중에 고기를 먹기까지 할 수도 있었다. (고전 5:9, 10; 8:9, 10) 그렇게 하는 것은 행 15:28, 29에 나오는 중앙장로회의 결정 사항을 직접적으로 어기는 것이 될 것이었다.—고전 8:4; 10:25 연구 노트 참조.

의무: 또는 “당연히 받아야 할 것”. 직역하면 “빚”. 여기에 언급된 “의무”는 하느님께서 주신 결혼이라는 선물의 자연스러운 부분인 성관계를 가리킨다. 부부는 서로 합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에게서 그러한 축복을 의도적으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 (고전 7:5) 예수께서는 또 다른 예외를 허용하셨는데, 한쪽 배우자가 불충실을 저지르는 경우이다. 그럴 경우 다른 쪽 배우자는 이혼을 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마 5:32; 19:9.

이제 여러분이 써 보낸 것에 관해 말하는데: 이 구절과 고전 8:1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고린도의 형제들은 이전에 바울에게 결혼에 관해 그리고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문제에 관해 문의하는 편지를 보낸 바 있었다.—고전 1:2; 8:1 연구 노트 참조.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직역하면 “여자를 만지지 않는”. 여자와 성적 접촉을 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이해는 “만지다; 건드리다”라는 표현이 성적 접촉을 하거나 성관계를 갖는다는 의미로 사용된 성경의 다른 구절들과도 조화를 이룬다. (창 20:6, 7; 잠 6:29) 바울은 부부가 성관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이 말을 한 것이 아니다. 그가 남편과 아내가 부부 사이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권한 것을 볼 때 그 점을 알 수 있다. (고전 7:3-5. 고전 7:3 연구 노트 참조)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더 낫습니다”라는 바울의 말은 결혼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독신으로 지내라고 권하는 맥락에서 한 말이다.—고전 7:6-9. 마 19:10-12 비교.

성적 부도덕을 저지르는 자들: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명사 포르노스는 명사 포르네이아(성적 부도덕, 고전 5:1)와 동사 포르뉴오(성적 부도덕을 저지르다, 고전 6:18)와 어근이 같다. (용어 설명 “성적 부도덕” 참조) 고대부터 고린도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아프로디테 여신을 숭배한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아프로디테 숭배는 관능적인 생활 방식과 부도덕을 조장했다. (고전 7:2 연구 노트 비교) 바울은 고린도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이전에 부도덕한 생활을 했지만 행실을 변화시켜 이제는 좋은 교제를 나눌 수 있는 동료가 되었다고 알려 준다.—고전 6:11.

성적 부도덕이 널리 퍼져 있기: 이 표현은 그리스어 포르네이아의 복수형을 번역한 것이다. “성적 부도덕이 널리 퍼져 있다”는 현재의 번역 표현은 고대 고린도의 상황을 잘 묘사해 준다.—고전 5:9 연구 노트 참조.

의무: 또는 “당연히 받아야 할 것”. 직역하면 “빚”. 여기에 언급된 “의무”는 하느님께서 주신 결혼이라는 선물의 자연스러운 부분인 성관계를 가리킨다. 부부는 서로 합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에게서 그러한 축복을 의도적으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 (고전 7:5) 예수께서는 또 다른 예외를 허용하셨는데, 한쪽 배우자가 불충실을 저지르는 경우이다. 그럴 경우 다른 쪽 배우자는 이혼을 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마 5:32; 19:9.

그렇게 할 있다는 뜻이지: 바울이 고전 7:2에서 한 조언을 가리켜 한 말인 것 같다.

나와 같기를: 사도 바울은 선교 봉사를 할 당시에 독신이었다. 성경은 그가 결혼을 한 적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바울이 사용한 일부 표현들을 보면 그가 아내를 사별한 사람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전 7:8; 9:5.

하느님과 화해하게: 그리스어 동사 카탈랏소는 이 구절에 두 번 나오고 고후 5:18, 19에도 두 번 나오는데 기본적으로 “바꾸다; 교환하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적대적인 관계에서 우호적인 관계로 바뀌다”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 단어가 사람과 하느님의 관계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면, 다시 조화를 이루거나 다시 우호적인 관계를 이룬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남편과 헤어진 아내가 “남편과 화해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동사를 사용했다. (고전 7:11)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동사 디알랏소마이마 5:24에 나온다.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제단에 제물을 바치기 전에 “형제와 평화를 이루라”고 교훈하셨다. (마 5:24 연구 노트 참조) 인류가 하느님과 화해할 필요가 있는 이유는 첫 인간 아담이 불순종하여 모든 후손에게 죄와 불완전성을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류는 하느님과 멀어진 상태에 있게 되었다. 하느님의 표준으로는 범죄를 묵인하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그들은 하느님과 적대 관계에 있게 되었다.—롬 5:12; 8:7, 8.

화해하십시오: 여기서 바울은 복합어 형태의 동사 카탈랏소를 사용했는데, 카탈랏소는 기본적으로 “교환하다”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동사는 “적대적인 관계를 우호적인 관계와 교환하다” 또는 “다시 조화를 이루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여기서 바울이 결혼 관계와 관련하여 이 동사를 사용한 것은 하느님과의 적대적인 관계가 평화로운 관계로 바뀔 수 있는 것처럼 불화가 있는 부부 사이도 조화로운 관계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을 수 있다.—롬 5:10 연구 노트 참조.

이것은 주의 말씀이 아니라 내가 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 장에서 여러 차례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과 구분하여 말한다. (또한 25, 40절 참조) 바울은 편지를 읽는 사람들에게 특정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직접 인용하여 말할 수 없다는 점을 겸손하게 일깨워 주려고 그렇게 한 것 같다. 하지만 바울은 성령이 충만한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성령은 그분의 제자들을 “모든 진리 안으로” 인도할 것이었다. (요 16:13) 따라서 바울의 조언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것이었으며, 성경의 다른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위 있고 도움이 되는 지침을 제시해 주었다.—딤후 3:16.

믿지 않는 아내: 여기서 “믿지 않는”이라는 표현은 아무런 신앙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여호와께 헌신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그런 아내는 유대인이었거나 이교 신을 믿는 사람이었을 수 있다.

믿지 않는: 여기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믿음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믿지 않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런 사람은 불결한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있지 않으며 죄의 속박에서 풀려나 있지 않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정직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지 몰라도 그들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거룩한 즉 깨끗한 상태가 아니다.—요 8:34-36; 고후 6:17; 약 4:4. 이 구절에 나오는 ~로 말미암아 거룩하게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또는 “~와 관련하여 거룩하게”. 여기서 “거룩하게 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하기아조와 그 형용사형인 하기오스(“거룩한”)는 하느님을 위해 따로 구별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거룩하게 된 것은 무엇이든 신성하고 깨끗하며 하느님께 드리는 봉사를 위해 구별된 것이다. (막 6:20; 고후 7:1; 벧전 1:15, 16. 용어 설명 “거룩함” 참조) 하느님 앞에서 누리는 이러한 깨끗한 신분은 하느님께서 아들을 통해 베푸시는 마련에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이 구절에 나오는 믿지 않는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거룩합니다: 바울은 결혼 관계로 인해 믿지 않는 배우자 자신이 “거룩”해진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믿지 않는 배우자는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불결한 습관에 빠져 있을 수 있다. 바울은 믿지 않는 배우자가 믿는 배우자로 “말미암아” 다시 말해 믿는 배우자와 “관련하여” 거룩하게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결혼 관계 즉 결합을 깨끗하고 존귀한 것으로 여기신다. 그러한 부부의 어린 자녀는 믿는 배우자로 인해 거룩하다고 여겨지고 하느님의 돌봄과 보호를 받게 되어, 부모가 둘 다 믿지 않는 가정의 자녀보다 더 나은 입장에 있게 된다.

떠나기로: 또는 “헤어지기로”.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 코리조고전 7:10, 11에서 “헤어지다”로 번역되었다.

여호와께서 주신 자신의 몫에 따라: 여호와께서 주신 “몫”이란 여호와께서 그리스도인 각자가 삶에서 처하게 하신 상황 또는 그들 각자의 삶에서 허용하신 상황을 가리킨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에게 삶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꾸는 데 지나치게 정신을 쏟지 말고 현재대로 걸으라고 즉 계속 살아가라고 권한다. 그리스어 원문을 보면 바울은 이 구절에서 “각자”를 의미하는 단어를 두 번 (“각 사람”, “자신”) 사용했는데, 아마도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대부분의 그리스어 사본들에서는 이 부분에 “주”(그리스어 키리오스)가 사용되었지만, 이 구절의 본문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할 만한 타당한 이유들이 있다.—부록 다3 소개; 고전 7:17 참조.

하느님: 초기 그리스어 사본들에는 이 부분이 “하느님”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일부 후기 사본들에서는 “주”가 사용되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일부 번역판(부록 다4에 J7, 8, 10으로 표기됨)에는 이 부분이 “여호와”로 되어 있다.

할례받은 흔적을 없애려고 하지 마십시오: 바울은 그리스의 운동 경기에 참가하기를 원했던 일부 유대인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행해지던 일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했을 수 있다. 그러한 경기에서 달리기를 하는 선수들은 옷을 입지 않았다. 일부 유대인들은 조롱이나 비웃음을 당하지 않으려고 포피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복원하는 수술을 받아 “할례받은 흔적을 없애려고” 했다. 당시 고린도 회중은 할례 문제에 대한 논쟁 때문에 분열되어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받은 사람이든 받지 않은 사람이든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상태를 바꾸려고 하지 말라고 권고했다.—고전 7:17-20; 히 13:17.

주께 속해 자유를 얻은 사람 ··· 자유인: 자유를 얻은 사람(그리스어 아펠류테로스)은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사람이었다. 성경에서 이 그리스어는 이 구절에만 나온다. 하지만 고린도에서는 “자유를 얻은 사람”이라는 신분이 잘 알려져 있었다. 고린도가 로마에 의해 재건될 당시 많은 수의 자유를 얻은 사람들이 그 도시에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 중 일부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노예였던 적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울은 그런 사람을 가리켜 “자유인”(그리스어 엘류테로스) 즉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두 부류의 그리스도인들 모두 하느님께서 예수의 귀중한 피라는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육적인 관점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이든 “자유인”이든,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그분들의 명령을 따를 의무가 있었다. 그리스도인 회중에서는 종이든 자유를 얻은 사람이든 자유인이든 동등한 입장에 있었다.—고전 7:23; 갈 3:28; 히 2:14, 15; 벧전 1:18, 19; 2:16. 용어 설명 “자유인; 자유를 얻은 사람” 참조.

결혼하지 않은 딸: 직역하면 “딸들 처녀들”. 성경에서 종종 “처녀”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파르테노스는 “성관계를 가진 적이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남자든 여자든 독신인 사람은 모두 가리킬 수 있다. (마 25:1-12; 눅 1:27; 고전 7:25, 36-38) 이 문맥에서는 빌립의 네 딸이 결혼한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이 아니라 내가 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 장에서 여러 차례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과 구분하여 말한다. (또한 25, 40절 참조) 바울은 편지를 읽는 사람들에게 특정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직접 인용하여 말할 수 없다는 점을 겸손하게 일깨워 주려고 그렇게 한 것 같다. 하지만 바울은 성령이 충만한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성령은 그분의 제자들을 “모든 진리 안으로” 인도할 것이었다. (요 16:13) 따라서 바울의 조언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것이었으며, 성경의 다른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위 있고 도움이 되는 지침을 제시해 주었다.—딤후 3:16.

동정인 사람들: 또는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들”. 성경에서 종종 “처녀”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파르테노스는 문자적으로 “성관계를 가진 적이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문자적인 의미로도 사용되고 비유적인 의미로도 사용되며 남자와 여자 모두를 가리킬 수 있다. (마 25:1-12; 눅 1:27; 계 14:4. 행 21:9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뒤에 나오는 구절들(고전 7:32-35)의 내용은 동정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에 결혼을 했었지만 현재는 독신인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의견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결혼과 독신에 관한 개인적인 의견을 표현한다. 그는 결혼을 정죄하거나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영감을 받아 독신으로서 주를 섬기는 것의 이점을 강조한다.—고전 7:12 연구 노트 참조.

동정인 사람들: 또는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들”. 성경에서 종종 “처녀”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파르테노스는 문자적으로 “성관계를 가진 적이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문자적인 의미로도 사용되고 비유적인 의미로도 사용되며 남자와 여자 모두를 가리킬 수 있다. (마 25:1-12; 눅 1:27; 계 14:4. 행 21:9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뒤에 나오는 구절들(고전 7:32-35)의 내용은 동정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에 결혼을 했었지만 현재는 독신인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사람: 직역하면 “육체”. 여기서 그리스어 사르크스는 인간 즉 살과 피를 가진 존재를 가리킨다.—요 3:6; 17:2 연구 노트 참조.

동정인 사람: 고전 7:25 연구 노트 참조.

육체에 환난이 있을: 대개 “환난”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는 기본적으로 압력이 되는 상황으로 인해 겪는 고난이나 괴로움이나 고통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어려움들; 문제들”로 번역될 수도 있다. “육체”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사람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롬 3:20 연구 노트 참조) 여기서 ‘육체의 환난’이라는 표현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한 몸”이 되는 부부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문제와 시련을 가리킨다. (마 19:6) 일부 번역판들에서는 “살면서 겪는 어려움들; 매일의 문제들”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결혼 생활이나 가정생활과 관련된 그러한 “환난”은 질병이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는 박해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고후 1:4 연구 노트 참조.

세상: 여기서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인류 전체를 가리킨다. 이 문맥에서 세상에 오다라는 표현은 예수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신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침례를 받아 인류 가운데로 오신 것을 주로 가리키는 것 같다. 그분은 침례를 받으신 뒤에, 자신에게 맡겨진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인류 전체에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하셨다.—요 3:17, 19; 6:14; 9:39; 10:36; 11:27; 12:46; 요1 4:9 비교.

세상이 그분을 통해 생겨났는데도: 여기서 그리스어 코스모스(“세상”)는 인류 전체를 가리킨다. 이 구절의 뒷부분에서 세상은 그분을 알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세속 문헌에서 이 그리스어는 우주와 창조물 전체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 사람들에게 연설할 때 그러한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한 것 같다. (행 17:24) 하지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인류 전체나 그 일부를 가리킨다. 예수께서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비롯해 모든 것을 만드는 데 참여하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구절은 인류가 생겨나는 데 있어서 예수께서 하신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창 1:26; 요 1:3; 골 1:15-17.

세상: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세속 그리스어 문헌에서 인류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의미로 사용되며, 특히 성경에서 그러한 의미로 사용된다. (요 1:10 연구 노트 참조) 이 문맥에서 코스모스는 구속받을 수 있는 인류 전체를 가리킨다. 요 1:29에서는 인류 전체에게 “죄” 즉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가 있다고 언급한다.

온 세상: 대개 “세상”이라고 번역되는 그리스어 코스모스의 기본 의미는 “질서” 혹은 “마련”이다. 이 단어는 세속 그리스어 문헌에서 인류 세상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며,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도 종종 그러한 의미로 사용된다. (요 1:9, 10; 3:16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코스모스가 단순히 인류의 동의어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 단어는 “질서” 혹은 “마련”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여전히 담고 있다. 인류 세상이 다양한 문화, 부족, 민족, 경제 제도로 이루어진 특정한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요1 3:17; 계 7:9; 14:6) 이 단어는 이 문맥과 그 밖의 일부 문맥에서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러 세기에 걸쳐 세계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인류의 삶과 밀접히 연관되어 그에 영향을 미치는 이 세상의 체제는 더 커지고 복잡해졌다.—요 16:21 연구 노트 참조.

세상을 이용하는: 많은 구절들에서 “세상”으로 번역된 그리스어(코스모스)는 주로 인류 전체를 가리킨다. (요 1:9, 10; 3:16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이 문맥에서 “세상”이라는 표현은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세상의 체제 즉 인간이 살아가고 인간 사회가 기능을 발휘하는 세상의 제도를 가리킨다. 여기에는 세상의 경제 제도와 관련이 있는 것들 즉 의식주와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눅 9:25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이용하는” 한 가지 방법은 자신과 가족을 물질적으로 부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온전히 이용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세상을 이용하는 일을 삶에서 최우선순위에 두지는 않는다.

이 세상의 장면은 변하고 있기: 여기서 “장면”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어떤 것의 “외형”이나 “형태”, “사물의 현재 구조”를 가리킨다. 바울은 당시의 극장을 염두에 두고, 이 세상을 장면이 계속 바뀌고 배우들도 잠깐 사이에 바뀌는 무대에 비한 것 같다. 이 표현에는 지금 있는 형태대로의 세상, 즉 그 사물의 구조나 외형대로의 세상이 “지나가고 있다”는 뜻도 담겨 있을 수 있다.—요1 2:17.

세상의 일: “세상”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여기서 인간의 생활 영역과 그 체제를 의미한다. “세상의 일”에는 인간의 삶에서 영적인 것과 무관한 세속적인 활동이 포함된다. 여기에는 의식주와 관련된 활동들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 문맥에서 바울은 요1 2:15-17에 언급된 것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피해야 하는 불의한 세상의 것들을 가리켜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고전 7:32 연구 노트 참조.

더는 ··· 염려하지 마십시오: 또는 “더는 ···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말씀에 쓰인 그리스어 동사의 시제는 이미 하고 있는 행동을 그만두는 것을 가리킨다. “염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사람의 정신이 나뉘게 하여 주의를 산만하게 하고 기쁨을 앗아 가는 걱정거리를 가리킬 수 있다. 같은 단어가 마 6:27, 28, 31, 34에도 나온다.

더는 ··· 염려하지 마십시오: 또는 “더는 ···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말씀에 쓰인 그리스어 동사 메림나오의 시제는 이미 하고 있는 행동을 그만두는 것을 가리킨다. “염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사람의 정신이 나뉘게 하여 주의를 산만하게 하고 기쁨을 앗아 가는 걱정거리를 가리킬 수 있다. 누가는 동일한 그리스어 단어를 눅 12:11, 25, 26에서도 사용한다. 바울은 고전 7:32-34과 빌 4:6에서 이 동사를 사용한다.—마 6:25 연구 노트 참조.

주의 일: 하느님의 아들과 그분의 아버지 여호와를 위한 모든 일을 가리킨다. 이러한 일들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생활, 숭배, 봉사의 직무와 관련이 있다.—마 4:10; 롬 14:8; 고후 2:17; 3:5, 6; 4:1. 고전 7:33 연구 노트 참조.

염려합니다: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메림나오는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이 구절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영적인 일을 하는 데 열심을 갖거나 합당한 관심을 기울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어지는 구절들에서는 배우자의 감정적, 신체적, 물질적 필요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고전 7:33, 34) 고전 12:25에서는 회중 사람들이 동료에게 나타내는 염려 즉 관심을 가리키는 데 쓰였다. 다른 구절들에서는 이 그리스어 동사가 사람의 정신이 나뉘게 하여 주의를 산만하게 하고 기쁨을 앗아 가는 걱정거리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마 6:25, 27, 28, 31, 34; 눅 12:11, 22, 25, 26. 마 6:25; 눅 12:22 연구 노트 참조.

주의 일: 하느님의 아들과 그분의 아버지 여호와를 위한 모든 일을 가리킨다. 이러한 일들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생활, 숭배, 봉사의 직무와 관련이 있다.—마 4:10; 롬 14:8; 고후 2:17; 3:5, 6; 4:1. 고전 7:33 연구 노트 참조.

세상의 일: “세상”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여기서 인간의 생활 영역과 그 체제를 의미한다. “세상의 일”에는 인간의 삶에서 영적인 것과 무관한 세속적인 활동이 포함된다. 여기에는 의식주와 관련된 활동들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 문맥에서 바울은 요1 2:15-17에 언급된 것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피해야 하는 불의한 세상의 것들을 가리켜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고전 7:32 연구 노트 참조.

제한을 가하려는: 직역하면 “올가미를 씌우려는”. 이 표현은 문자적으로 동물을 사로잡거나 동물이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게 하기 위해 목에 올가미를 씌우거나 줄을 매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또한 사람을 사로잡아 속박하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여기서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누군가에게 제한을 가하거나 누군가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을 가리킨다. 바울이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결혼 생활과 독신 생활에 관한 조언을 베푼 것은 (고전 7:25-34) 그들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라, ‘헷갈림 없이 주를’ 섬기도록 도움을 베풀려는 것이었다.

결혼하지 않고 지내면서: 또는 “자기의 동정에 대해”.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파르테노스는 종종 “처녀”로 번역된다. 여기서는 동정인 사람을 비롯해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동정인 상태 즉 결혼하지 않고 동정을 지키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이 구절은 바울이 독신으로 지낼 것을 권장한 앞 구절들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젊음의 한창때가 지났다면: 이 표현은 그리스어 복합어인 히페라크모스를 번역한 것이다. 히페라크모스는 “지난”을 의미하는 히페르와 “활짝 핀 것” 또는 “최고점”을 의미하는 아크메에서 나온 단어이다. 아크메는 꽃이 활짝 핀 것을 가리키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 여기서 “젊음의 한창때”는 아이를 낳을 수 있을 정도로 신체적으로 성숙하게 되는 때를 가리키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신체적 변화를 겪을 때는 강렬한 감정으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다. 바울은 이 문맥에서 독신으로 지내는 것의 이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바울이 한 조언에는 “젊음의 한창때” 즉 신체적으로는 성숙했지만 감정적으로나 영적으로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시기에 성급하게 결혼하기보다는 자제를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결혼하지 않고 지내면서: 또는 “자기의 동정에 대해”.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파르테노스는 종종 “처녀”로 번역된다. 여기서는 동정인 사람을 비롯해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동정인 상태 즉 결혼하지 않고 동정을 지키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이 구절은 바울이 독신으로 지낼 것을 권장한 앞 구절들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결혼하지 않고 지내겠다고: 또는 “자기의 동정을 지키겠다고”. 고전 7:36 연구 노트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여기서 그리스어 파르테노스는 동정인 사람을 비롯해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동정인 상태 즉 결혼하지 않고 동정을 지키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문맥을 보면 바울은 독신으로 지내는 것의 이점을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전 7:32-35.

결혼하지 않고 지내면서: 또는 “자기의 동정에 대해”.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파르테노스는 종종 “처녀”로 번역된다. 여기서는 동정인 사람을 비롯해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동정인 상태 즉 결혼하지 않고 동정을 지키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이 구절은 바울이 독신으로 지낼 것을 권장한 앞 구절들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결혼하지 않고 지내겠다고: 또는 “자기의 동정을 지키겠다고”. 고전 7:36 연구 노트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여기서 그리스어 파르테노스는 동정인 사람을 비롯해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동정인 상태 즉 결혼하지 않고 동정을 지키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문맥을 보면 바울은 독신으로 지내는 것의 이점을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전 7:32-35.

결혼하는: 또는 “자기의 동정을 결혼에 내주는”.—고전 7:36, 37 연구 노트 참조.

주: 여기서 “주”라는 칭호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도 있고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킬 수도 있다.

주 안에서만: 또는 “주를 믿는 사람과만; 주와 결합해 있는 사람과만”. 동료 그리스도인과만 결혼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영감받은 지침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된다. 바울이 동료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이 표현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롬 16:8-11에서 그가 “주 안에서”와 같은 표현을 동료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골 4:7에서 그는 이 표현을 “사랑하는 형제”, “충실한 봉사자”, “동료 종” 같은 표현들과 함께 사용한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에 나오는, 주변의 이교 나라 사람과 “통혼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경고하셨다. “그들[비이스라엘인들]은 당신의 아들이 나를 따르지 않고 돌아서서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할 것입니다.” (신 7:3, 4) 따라서 그리스도교 시대에 “주 안에서만” 결혼하라는 권고는 여호와를 숭배하고 그리스도의 제자인 사람과만 결혼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의견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결혼과 독신에 관한 개인적인 의견을 표현한다. 그는 결혼을 정죄하거나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영감을 받아 독신으로서 주를 섬기는 것의 이점을 강조한다.—고전 7:12 연구 노트 참조.

내 의견으로는: 고전 7:25 연구 노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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