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전서 3:1-23

3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적인 사람에게+ 하듯 말할 수 없어서, 육적인 사람에게 하듯 곧 그리스도 안에서 아기 같은 사람에게+ 하듯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을 주었습니다. 여러분이 단단한 음식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지금도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질투와 분쟁이 있으니,+ 여러분이 육적이며+ 세상 사람들처럼 걷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 편이다” 하고 어떤 사람은 “나는 아볼로 편이다” 하니,+ 여러분도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아볼로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무엇입니까? 주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대로, 여러분을 신자가 되게 한 종에+ 불과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을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심는 사람과 물을 주는 사람은 하나이지만, 각 사람은 자기가 수고한 대로 자기 상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동료 일꾼입니다.+ 여러분은 경작되고 있는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10  나는 하느님께서 베푸신 과분한 친절에 따라 능숙한 건축가처럼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은 그 위에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 사람은 자기가 어떻게 그 위에 짓고 있는지 계속 살펴야 합니다. 11  아무도 이미 놓여 있는 기초 곧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습니다.+ 12  그런데 누구든지 그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귀한 돌이나 나무나 건초나 짚으로 집을 짓는다면, 13  각자가 한 일이 그대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그것이 불에 의해서 밝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불이 각자가 어떻게 집을 지었는지를 증명해 보일 것입니다. 14  누구든지 그 기초 위에 지은 것이 남아 있다면 그는 상을 받을 것입니다. 15  누구든지 자신이 일한 것이 타 버린다면 손해를 입겠지만, 그 자신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불 속에서 빠져나온 것 같을 것입니다. 16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17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 그를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여러분이 바로 그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자기가 이 세상 제도에서 지혜롭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지혜롭게 될 것입니다.+ 19  이 세상의 지혜는 하느님께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분은 지혜로운 자들을 자기 꾀에 걸려들게 하신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0  또 “여호와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이 헛되다는 것을 아신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1  그러므로 아무도 사람과 관련하여 자랑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상이나 생명이나 죽음이나 현재 있는 것이나 오게 될 것이나,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속해 있습니다. 23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고,+ 그리스도는 하느님께 속해 있습니다.

각주

또는 “분명히 보이게”.

연구 노트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을: 아기는 젖을 먹으면서 성장과 발육에 필요한 영양분을 얻는다. 그와 비슷하게, 새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도 성경의 기본 교리에서 힘을 얻어 영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게 된다. (히 5:12–6:2) 그러한 기본적인 진리는 구원에 필수적이다. (벧전 2:2) 하지만 바울은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이 “장성에 이르기 위해 힘쓰”기를 바랐으며, 나중에 예루살렘에 있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러한 권고를 했다. (히 6:1) 그렇게 함으로 그는 단단한 음식 즉 더 깊은 영적 진리를 섭취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볼로: 알렉산드리아 태생의 유대인 그리스도인. 그는 에베소에서 고린도로 가서, 신자가 된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행 18:24-28; 19:1. 행 18:24 연구 노트 참조) 아볼로는 고린도에서 바울이 심은 씨에 “물을 주었다.”—고전 3:5, 6. 고전 16:12 연구 노트 참조.

아볼로: 고전 1:12 연구 노트 참조.

섬기는 사람: 또는 “봉사자; 종”. 성경은 그리스어 디아코노스를 다른 사람을 위해 쉬지 않고 겸손하게 봉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종종 사용한다. 이 단어는 그리스도(롬 15:8), 그리스도의 봉사자나 종(고전 3:5-7; 골 1:23), 봉사의 종(빌 1:1; 딤전 3:8)뿐만 아니라, 집안 하인(요 2:5, 9), 정부 관리(롬 13:4)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된다.

봉사자: 또는 “종”. 성경은 그리스어 디아코노스를 다른 사람을 위해 겸손하게 봉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종종 사용한다. (마 20:26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에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예수께서는 인간이 되기 전에 헤아릴 수 없이 오랜 기간 동안 여호와를 섬기셨다. 하지만 그분은 침례를 받으셨을 때 새로운 봉사의 직무를 시작하셨다. 그 봉사의 직무에는 죄 많은 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 주고 심지어 그분의 생명을 대속물로 내어 주는 일까지 포함되었다. (마 20:28; 눅 4:16-21) 이 구절에서는 예수께서 하느님의 진실하심을 위해 할례받은 유대인들의 봉사자가 되셨다고 알려 준다. 그분의 봉사의 직무에 하느님께서 유대인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시키는 일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약속 가운데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즉 그의 자손을 통해 모든 민족이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도 있다. (창 22:17, 18) 따라서 예수의 봉사의 직무는 그분에게 “희망을 둘” 이방 사람들에게도 유익을 줄 것이었다.—롬 15:9-12.

종: 또는 “봉사자”. 성경은 그리스어 디아코노스를 다른 사람을 위해 쉬지 않고 겸손하게 봉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종종 사용한다. (마 20:26 연구 노트 참조) 롬 15:8에서 이 표현은 예수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고전 3:5)에서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를 고린도 사람들이 신자가 되도록 도운 종 즉 봉사자라고 표현한다. 모든 침례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수행하는 봉사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봉사에도 다른 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 주는 일이 포함되었다.—눅 4:16-21.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를 농부가 하는 일에 비한다.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함으로 고린도라는 “밭”에 왕국 소식의 씨를 심었다. 후에 아볼로가 와서 고린도 사람들에게 더 많은 점을 가르침으로 그 씨에 물을 주고 양분을 공급했다. (행 18:24; 19:1) 하지만 성령을 사용해 새로운 제자들이 영적으로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셨다. 바울이 이 비유를 통해 말하고자 한 점은 영적 성장이 어느 한 개인에게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동료 일꾼”으로 그분과 함께 일하는 봉사자들이다. (고전 3:9)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종들이 비이기적으로 연합하여 기울이는 노력을 축복하시며,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하나입니다: 또는 “일치 연합해 있습니다”. 예수의 이 말씀은 그분과 그분의 아버지가 양 같은 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인도하는 일에서 일치 연합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처럼 양을 돌보는 일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는 일이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양들에게 깊은 관심이 있으시며 아무도 자신들의 손에서 양들을 빼앗아 가도록 허용하지 않으신다. (요 10:27-29. 겔 34:23, 24 비교) 요한복음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한 뜻과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연합된 관계를 누린다는 점이 자주 언급된다. 이 구절에서 “하나”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하나의 인격체”를 가리키는 남성형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을 가리키는 중성형으로 되어 있다. 이 점은 예수와 아버지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행동하고 협력하는 면에서 “하나”임을 보여 준다. (요 5:19; 14:9, 23) 또한 예수의 이 말씀과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그분의 기도를 비교해 보면, 예수께서 자신과 아버지가 동등한 신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목적과 행동에 있어서 연합되어 있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요 10:25-29; 17:2, 9-11) 특히 유의할 만한 점으로 그분은 기도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요 17:11) 따라서 10장에 나오는 “하나”라는 표현과 17장에 나오는 “하나”라는 표현은 동일한 의미임을 알 수 있다.—요 17:11, 21; 고전 3:8 연구 노트 참조.

하나인 ··· 하나가 되게: 또는 “일치 연합해 있는 ··· 일치 연합하게”. 예수께서는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인 것처럼 자신의 참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이것은 예수와 아버지가 일치된 생각을 가지고 협력하는 것처럼, 제자들도 동일한 목적을 위해 서로 협력하게 해 달라는 의미였다. 이 기도에 표현된 사상은 요 10:30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그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주신 “양들”인 제자들을 대하는 면에서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요 10:25-30; 17:2, 9) 이 구절에서 “하나”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하나의 인격체”를 가리키는 남성형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을 가리키는 중성형으로 되어 있다.—요 10:30 연구 노트 참조.

하나가 되어: 또는 “연합되어”. 예수께서는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인 것처럼 자신의 참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이것은 예수와 아버지가 일치된 생각을 가지고 협력하는 것처럼, 제자들도 동일한 목적을 위해 함께 연합하여 일하게 해 달라는 의미였다. (요 17:22) 고전 3:6-9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봉사자들이 동료들과 함께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일하면서 누리는 그러한 연합을 묘사한다.—고전 3:8요 10:30; 17:11 연구 노트 참조.

하나이지만: 또는 “같은 목적을 위해 일하지만”.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봉사자들이 동료들과 함께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일하면서 누리는 연합을 묘사한다. (고전 3:9) 이 구절에서 “하나”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하나의 인격체”를 가리키는 남성형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을 가리키는 중성형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하나”라는 표현은 행동하고 협력하는 면에서 연합되어 있다는 의미이다.—“하나”에 해당하는 그리스어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 요 10:30; 17:11, 21 연구 노트 참조.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를 농부가 하는 일에 비한다.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함으로 고린도라는 “밭”에 왕국 소식의 씨를 심었다. 후에 아볼로가 와서 고린도 사람들에게 더 많은 점을 가르침으로 그 씨에 물을 주고 양분을 공급했다. (행 18:24; 19:1) 하지만 성령을 사용해 새로운 제자들이 영적으로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셨다. 바울이 이 비유를 통해 말하고자 한 점은 영적 성장이 어느 한 개인에게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동료 일꾼”으로 그분과 함께 일하는 봉사자들이다. (고전 3:9)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종들이 비이기적으로 연합하여 기울이는 노력을 축복하시며,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기원 49년이나 50년 초에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유대인들에게 로마를 떠나라고 명령했을 때, 이 충실한 부부도 추방되었다. 클라우디우스는 기원 54년에 사망했으며, 바울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편지를 쓴 때인 기원 56년경에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이미 로마에 돌아와 있었다. (행 18:2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그들을 자신의 동료 일꾼들로 언급한다. “동료 일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시네르고스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12번 나오며, 대부분 바울의 편지들에 나온다. (롬 16:9, 21; 빌 2:25; 4:3; 골 4:11; 몬 1, 24) 유의할 만하게도 고전 3:9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동료 일꾼입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를 농부가 하는 일에 비한다.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함으로 고린도라는 “밭”에 왕국 소식의 씨를 심었다. 후에 아볼로가 와서 고린도 사람들에게 더 많은 점을 가르침으로 그 씨에 물을 주고 양분을 공급했다. (행 18:24; 19:1) 하지만 성령을 사용해 새로운 제자들이 영적으로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셨다. 바울이 이 비유를 통해 말하고자 한 점은 영적 성장이 어느 한 개인에게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동료 일꾼”으로 그분과 함께 일하는 봉사자들이다. (고전 3:9)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종들이 비이기적으로 연합하여 기울이는 노력을 축복하시며,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이것은 성경에서 사람을 성전에 비한 여러 경우 중 하나이다. 요 2:19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성전에 비하셨으며, 성경에서는 그분이 그러한 영적 건물의 “주된 모퉁잇돌”이 되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시 118:22; 사 28:16, 17; 행 4:10, 11) 이 구절에서 “여러분은 자신이 ~이며”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2인칭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이 점을 볼 때 회중 전체가 하느님의 영이 거하는 “하느님의 성전”을 구성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조 제사장으로 섬기는 이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건물”이므로, (고전 3:9. 연구 노트 참조) 17절에서는 이 영적 성전의 거룩함을 강조하면서 그 성전을 더럽히려고 하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엡 2:20-22과 베드로가 기록한 벧전 2:6, 7에서도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에 대해 비슷한 비유를 사용한다.

하느님의 동료 일꾼: “동료 일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시네르고스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10번 이상 나오며, 대부분 바울의 편지들에 나온다. 이 표현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에 참여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롬 16:9, 21; 고후 1:24; 8:23; 빌 2:25; 4:3; 골 4:11; 몬 1, 24)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봉사자들이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동료 일꾼”으로 일하는 큰 특권으로 주의를 이끈다. (고전 3:6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고후 6:1에서도 “그분[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는 비슷한 표현을 사용한다.—고후 5:20. 롬 16:3 연구 노트 참조.

여러분은 경작되고 있는 하느님의 밭이며: 영적으로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밭의 참되고 진정한 소유자는 바울이 아니라 하느님이셨다. 하느님께서 축복하고 영을 주시지 않았다면 바울이나 아볼로가 기울인 모든 노력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고전 3:6 연구 노트 참조) ‘경작되고 있는 밭’으로 번역된 단어(그리스어 게오르기온)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에만 나온다. 고린도의 경제는 주로 무역에 의존해 있었지만, 그 지역은 땅이 비옥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바울은 농사에 관한 이 비유에 더해 이 구절에서 건축에 관한 비유도 든다. (이 구절에 나오는 하느님의 건물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건축과 농사는 고대에 사람들이 흔히 종사하던 활동이었으므로, 바울은 그 두 가지 활동을 비유로 들어 회중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호소한 것이다.

하느님의 건물: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회중을 건물에 비한다.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자신을 영적 건축 활동에서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건축가에 비한다. 이 영적 건축 활동은 시험을 견뎌 낼 수 있는 특성들을 갖춘 그리스도인 제자들을 만드는 것이다. (고전 3:10-15) 고전 3:16(연구 노트 참조)에서 바울은 회중을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부른다. 엡 2:21, 22에서는 회중이 하느님께서 “영으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언급되어 있다. 이 점을 볼 때 하느님께서 자신의 성령 즉 보이지 않는 활동력을 사용하셔서, 회중 성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견딜힘을 주고 그들이 영의 열매를 배양하도록 도우신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갈 5:22, 23) 사도 베드로도 비슷한 비유를 사용하여, 제자들을 “산 돌”이라고 부른다. (벧전 2:5)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건물의 기초에, 예수는 “기초 모퉁잇돌”에 비해진다.—엡 2:20.

목수의 아들: “목수”로 번역된 그리스어 텍톤은 건축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기술자를 두루 일컫는 표현이다. 나무를 다루는 사람을 가리킬 경우, 이 표현은 집 짓는 일 또는 목재로 가구나 그 밖의 물건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킬 수 있다. 기원 2세기의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예수께서 “사람들 가운데 계실 때 쟁기나 멍에를 만드는 목수 일을 하셨다”고 기록했다. 고대 언어로 된 초기 성경 번역본들도 그분이 목수이셨음을 지지한다. 예수께서는 “목수의 아들”이라고 알려지셨을 뿐 아니라 “목수”라고도 불리셨다. (막 6:3) 그분은 양아버지 요셉에게서 목수 일을 배우셨을 것이다. 그 당시 남자아이들은 흔히 12세에서 15세 사이에 일을 배우기 시작하여 여러 해 동안 기술을 익혔다.

목수: 예수께서는 “목수의 아들”이라고도 불리셨고 “목수”라고도 불리셨다. 그 점은 예수께서 열두 살에 성전에 가신 후부터 봉사의 직무를 시작하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사셨을지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마 13:55 연구 노트 참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나오는 기록들은 서로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한다.

능숙한 건축가: 또는 “지혜로운 공사 감독”. 일반적으로 “건축가”(그리스어 아르키텍톤. 문자적 의미는 “최고 기술자”)는 건축 작업의 책임자였으며 현장에서 일했다. 그는 기술자를 모집하고 그들이 하는 일을 감독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영적 건축 활동에서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건축가에 비한다. 이 영적 건축 활동은 시험을 견뎌 낼 수 있는 특성들을 갖춘 그리스도인 제자들을 만드는 것이다. (고전 3:9-16)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단어는 이 구절에만 나온다.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그리스어 텍톤은 “목수”로 번역되며, 예수와 그분의 양아버지 요셉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마 13:55; 막 6:3 연구 노트 참조.

금이나 은이나 귀한 돌이나 나무나 건초나 짚으로: 바울은 자신이 하던 일을 이어서 계속하던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제자들을 잘 가르쳐서 그들이 그리스도인 특성들을 건축해 나가게 도우라고 권했다. (고전 3:6) 그 점을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질 좋고 내구성 있는 내화 재료와 쉽게 부서지고 금세 손상되는 인화성 재료를 대조한다. 고린도처럼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부유한 도시에는 틀림없이 그 두 종류의 재료로 지은 건물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곳의 웅장한 신전들은 거대하고 값비싼 석재들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아마도 금과 은으로 장식되어 있었을 것이다. 내구성 있는 그러한 건물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목재로 대강 골조를 만들고 짚으로 지붕을 인 허름한 오두막과 가게들이 있었을 것이다. 바울이 말한 비유적인 건축 활동에서 금이나 은이나 귀한 돌은 강한 믿음, 경건한 지혜, 영적 분별력, 충성, 여호와와 그분의 법에 대한 사랑에 찬 인식과 같은 특성들을 상징한다. 그러한 특성들은 그리스도인이 여호와 하느님과 튼튼한 관계, 믿음의 시험을 이겨 낼 수 있는 관계를 갖는 데 필수적이다.

불 속에서 빠져나온 것 같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봉사자는 내화 재료로 건축해야 한다. 다시 말해, 연구생이 믿음의 시험을 견뎌 낼 수 있는 그리스도인 특성들을 발전시키도록 도와야 한다. (고전 3:10-14) 그리스도인이 그러한 방식으로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가 지은 비유적인 건물이 불 같은 시험을 겪을 때 “타 버릴” 수 있다. (마 28:19, 20; 롬 2:21, 22; 딤전 4:16; 딤후 2:15; 4:2) 또한 가르치는 사람도 불로 모든 것을 잃고 자신만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처럼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바울은 여기서 고대 그리스의 다른 저술가들처럼 “불”이라는 표현을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저술가들은 “불 속에서 빠져나오다”라는 표현을 시련이나 힘겨운 상황에서 간신히 빠져나온다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하느님의 건물: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회중을 건물에 비한다.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자신을 영적 건축 활동에서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건축가에 비한다. 이 영적 건축 활동은 시험을 견뎌 낼 수 있는 특성들을 갖춘 그리스도인 제자들을 만드는 것이다. (고전 3:10-15) 고전 3:16(연구 노트 참조)에서 바울은 회중을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부른다. 엡 2:21, 22에서는 회중이 하느님께서 “영으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언급되어 있다. 이 점을 볼 때 하느님께서 자신의 성령 즉 보이지 않는 활동력을 사용하셔서, 회중 성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견딜힘을 주고 그들이 영의 열매를 배양하도록 도우신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갈 5:22, 23) 사도 베드로도 비슷한 비유를 사용하여, 제자들을 “산 돌”이라고 부른다. (벧전 2:5)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건물의 기초에, 예수는 “기초 모퉁잇돌”에 비해진다.—엡 2:20.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이것은 성경에서 사람을 성전에 비한 여러 경우 중 하나이다. 요 2:19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성전에 비하셨으며, 성경에서는 그분이 그러한 영적 건물의 “주된 모퉁잇돌”이 되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시 118:22; 사 28:16, 17; 행 4:10, 11) 이 구절에서 “여러분은 자신이 ~이며”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2인칭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이 점을 볼 때 회중 전체가 하느님의 영이 거하는 “하느님의 성전”을 구성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조 제사장으로 섬기는 이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건물”이므로, (고전 3:9. 연구 노트 참조) 17절에서는 이 영적 성전의 거룩함을 강조하면서 그 성전을 더럽히려고 하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엡 2:20-22과 베드로가 기록한 벧전 2:6, 7에서도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에 대해 비슷한 비유를 사용한다.

이 세상 제도: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이온의 기본 의미는 “시대”이다. 이 단어는 특정한 기간이나 시대를 구분 짓는 상태나 특징을 가리킬 수도 있다. (용어 설명 “세상 제도(들)” 참조) 여기서 이 단어는 딤후 4:10에서 말하는 “현 세상 제도”, 즉 일반 세상의 주류를 이루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 세상 제도: 고전 1:20 연구 노트 참조.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의 말을 인용한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이야기하면서 “그분[하느님]은 지혜로운 자들을 자기 꾀에 걸려들게 하신다”는 말을 잘못 적용했다. (욥 4:1; 5:13) 바울은 엘리바스가 한 모든 말을 인정한 것이 아니었다. 엘리바스의 말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거나 잘못 적용된 것이었다. (욥 42:7) 하지만 욥 5:13에서 엘리바스가 한 말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 나오는 것과도 비슷한, 일반적인 견해를 언급한 것이었다. (시 10:2. 욥 5:17과 시 94:12 비교) 바울은 영감을 받아 그 표현을 인용하여 사람의 지혜는 결코 하느님의 지혜에 비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준다.

여호와: 이 구절에서 인용한 시 94:11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부록 다1다2 참조.

게바: 사도 시몬 베드로의 이름 중 하나. 예수께서는 시몬을 처음 만나셨을 때 그에게 게바(그리스어 케파스)라는 셈어 이름을 붙여 주셨다. 게바는 욥 30:6과 렘 4:29에 나오는 히브리어 명사 케핌(바위)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요 1:42에서 요한은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페트로스. 이 그리스어 이름 역시 “바위”를 의미한다)이다”라고 설명한다. 게바라는 이름은 요 1:42과 바울이 기록한 편지들 중 고린도 전서와 갈라디아서에만 나온다.—고전 1:12; 3:22; 9:5; 15:5; 갈 1:18; 2:9, 11, 14. 마 10:2; 요 1:42 연구 노트 참조.

게바: 고전 1:12 연구 노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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