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전서 13:1-13

13  내가 사람의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해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시끄러운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예언의 선물을 가지고 있고 모든 신성한 비밀과 모든 지식을+ 이해하며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졌다 해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내주어 다른 사람들을 먹이고+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준다 해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질투하지 않고,+ 뽐내지 않고, 우쭐대지 않고,+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해를 입은 것을 기억해 두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인내합니다.+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의 선물은 있다가도 없어질 것이고, 방언도 있다가 그칠 것이며, 지식도 있다가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부분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10  하지만 온전한 것이 올 때에 부분적인 것은 없어질 것입니다. 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추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른이 되었으므로 아이의 특성들을 버렸습니다. 12  지금은 우리가 금속 거울로 희미한 윤곽을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듯이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알고 있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정확하게* 아시는 것처럼 내가 정확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나 믿음, 희망, 사랑, 이 세 가지는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사랑입니다.+

각주

또는 “심벌즈”.
또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또는 “온전히”.
또는 “온전하지 않은(부분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만”.

연구 노트

요란한 징이나 시끄러운 꽹과리: 징이 울리면 시끄럽고 듣기 싫은 소리가 나며 꽹과리도 마찬가지이다. 바울은 이러한 비유를 사용하여, 방언을 하는 것과 같은 영의 선물을 받은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지나친 주의를 끌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이 아니라 거부감이 들게 하는, 시끄럽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는 놋쇠 조각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산을 옮길: 바울은 고대 사람들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다”라는 의미로 사용하던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 같다.—비슷한 표현이 믿음과 관련하여 사용된 막 11:23 비교.

자랑삼아: 그리스어 동사 카우카오마이(자랑하다)는 이 문맥에서 이기적인 의도로 자랑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만약 자신이 모든 것을 내주어 사람들을 먹이거나 진리를 증거하다가 순교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동기가 사랑이 아니라 자랑하기 위한 것이라면 자신에게 아무 유익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잠 25:27ㄴ) 일부 사본들에는 “자랑하다”가 아니라 “불사르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동사가 사용되었으며 몇몇 성경 번역판들은 그러한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가장 신뢰할 만한 사본들에는 “자랑하다”를 의미하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사랑: 사랑에 대해 묘사한 이 잘 알려진 내용 가운데서 바울은 그리스어 아가페를 사용한다. 요한도 요1 4:8-10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묘사할 때 동일한 그리스어 단어를 사용했다. 8절에서 그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여호와께서 사랑의 구현체이시라는 의미이다. (요 3:16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인 사랑을 가장 잘 정의하는 방법은 그것이 어떻게 행동으로 나타나는지를 묘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사랑은 비이기적인 태도라고도 할 수 있으며 원칙에 근거해 있다. 원칙에 근거한 사랑에 반드시 따뜻한 애정이 포함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한 사랑을 보이는 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해를 입은 것을 기억해 두지” 않음으로 그리스도인 사랑을 나타낸다. (고전 13:5) 하지만 많은 경우 그리스도인 사랑에는 따뜻함과 애정이 포함된다. 따라서 바울이 묘사한 사랑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애정과, 하느님께서 정하신 의로운 표준을 적용하겠다는 정신적 의지를 모두 가리킬 수 있다.—마 5:44; 22:37 연구 노트 참조.

사랑은 오래 참고: “오래 참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문자적으로 “영이 길다”로 옮길 수 있다. (「왕국 행간역」[Kingdom Interlinear]) 이 그리스어 동사와 이 단어의 명사형은 차분하게 인내하고 분노하기를 더디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래 참는 것 즉 참을성을 나타내는 것은 하느님의 성령의 열매의 한 부면이며 (갈 5:22) 하느님의 봉사자를 구별시켜 주는 표이다. (고후 6:4-6; 골 3:12; 살전 5:14. 부록 가2 참조) 여호와와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대하실 때 언제나 오래 참음을 나타내신다. (롬 2:4; 9:22; 딤전 1:16; 벧전 3:20; 벧후 3:9, 15. 갈 5:22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와 여호와를 본받아,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오래 참음을 나타내야 한다.—고전 11:1; 엡 5:1.

사랑은 ··· 친절합니다: “친절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크레스튜오마이는 명사 크레스토테스(친절)와 어근이 같은데, 친절은 “영의 열매”의 한 부면이다. (갈 5:22) 친절을 나타내는 것에는 다른 사람들의 복지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우호적이고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 포함된다. 또한 친절에는 다른 사람의 필요에 대해 부드럽고 우호적인 방식으로 사려 깊음과 배려를 나타내는 것도 포함된다.—골 3:12; 딛 3:4.

사랑은 질투하지 않고: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 젤로오는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 이 구절에서는 경쟁 관계에 있다고 여기는 상대나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에 대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의미하기 때문에 “질투하다”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명사 젤로스는 주로 “질투”로 번역되는데, 질투는 갈 5:19-21에 언급된 “육체의 일”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한 질투는 이기적인 특성이며 사랑이 아니라 미움을 낳는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사랑은 다른 사람을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바라며’ 언제나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행동한다.—고전 13:4-7. 이 그리스어 동사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예를 보려면 고후 11:2 연구 노트 참조.

사랑하셔서: 요한복음에서 그리스어 동사 아가파오(“사랑하다”)는 이 구절에 처음 나온다. 아가파오와 이 단어의 명사형인 아가페(사랑)는 요한복음에 총 44회 나온다. 이것은 다른 세 복음서에 나오는 횟수를 합한 것보다 많은 수이다. 성경에서 아가파오아가페는 원칙에 근거한 혹은 원칙의 지배를 받는 비이기적인 사랑을 가리킨다. 이 구절에서 아가파오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살펴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 세상 즉 죄를 구속받아야 하는 인류 전체를 사랑하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요 1:29) 요1 4:8에서는 이 단어의 명사형인 아가페가 사용되었는데, 그 구절에서 요한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한다. 사랑(아가페)은 “영의 열매”를 이루는 특성들 중 첫 번째로 언급되며 (갈 5:22) 고전 13:4-7에서는 사랑에 대해 자세히 묘사한다. 성경에서 이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살펴보면, 사랑은 대개 다른 사람에 대해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반응을 나타내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많은 문맥에서 이 단어는 더 폭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흔히 이 사랑은 깊은 생각과 의도적인 노력을 거쳐 표현된다. (마 5:44; 엡 5:25)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길러야 하는 사랑에는 의무, 원칙, 도리를 고려하는 도덕적 감각이 포함된다. 하지만 이 사랑에 감정이 배제된 것은 아니다. 개인 간의 따뜻한 애정을 포함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벧전 1:22) 요한복음에서 이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요한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다”고 기록할 때 (요 3:35) 아가파오의 한 형태를 사용했다. 하지만 동일한 관계를 묘사하는 예수의 말씀을 기록할 때는 그리스어 동사 필레오(“애정을 가지고 있다”)의 한 형태를 사용했다.—요 5:20.

계속해서 원수를 사랑하고: 예수의 이러한 가르침은 히브리어 성경의 내용과 맥을 같이한다.—출 23:4, 5; 욥 31:29; 잠 24:17, 18; 25:21.

사랑해야 한다: 여기서 “사랑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아가파오이다. 아가파오와 이 단어의 명사형인 아가페(사랑)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250회 이상 나온다. 요1 4:8에서는 명사 아가페를 사용하여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성경은 하느님을 원칙에 근거한 비이기적인 사랑의 최고의 본으로 묘사한다. 하느님께서는 사려 깊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신다. 그분의 사랑에는 단지 감정과 느낌만이 아니라 굳은 의지와 행동이 수반된다. 사람도 하느님을 본받아 의도적인 선택에 의해 그런 사랑을 나타낼 수 있다. (엡 5:1)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예수께서 언급하신 가장 큰 두 계명에서와 같이, 사랑을 나타내라는 명령이 사람에게 주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구절에서 신 6:5을 인용하셨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랑을 가리키는 데 주로 사용되는 단어는 동사 아헤브 또는 아하브(사랑하다)와 명사 아하바(사랑)이다. 이 단어들은 앞서 언급된 그리스어 단어들의 의미를 포함한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될 경우, 이 단어들은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그분을 전적으로 섬기려는 열망이 있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사랑을 완벽하게 나타내셨다. 예수께서는 여호와에 대한 사랑에는 단순히 그분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 이상이 요구된다는 점을 보여 주셨다. 그 사랑은 삶 전체를 지배하여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요 3:16 연구 노트 참조.

나는 하느님의 질투로 여러분을 위해 질투합니다: “나는 ··· 질투합니다”와 “질투”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들은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 이 구절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두 단어는 진실한 애정에서 우러나와 깊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바울은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그러한 합당한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그들을 한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와 약혼한 순결한 처녀에 비했다. 그들을 위해 질투하는 마음에서, 바울은 회중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위해 흠 없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그들을 영적인 해로부터 보호하려고 했다. “하느님의 질투”라는 표현에 사용된 “질투”도 이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표현을 볼 때 여호와께서 갖고 계신 사랑과 애정에는 그분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관심만이 아니라 그들을 해로부터 보호하려는 강한 열망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 그리스어 동사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예를 보려면 고전 13:4 연구 노트 참조.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고: 또는 “버릇없이 행동하지 않고”. “무례하게 행동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도덕적으로 수치스럽게 행동하는 것 또는 예의 없이 처신하고 다른 사람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해를 입은 것을 기억해 두지 않습니다: 여기서 “기억해 두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로기조마이는 고대에 회계 처리나 계산을 할 때 자주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생각하다”나 “곰곰이 생각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이 그리스어 동사가 “계속 숙고하다”로 번역된 빌 4:8 참조) 사랑이 있는 사람은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처럼 “해를 입은 것[또는 “남의 잘못”]”을 잊지 않으려고 마치 회계 장부에 기입하듯 기록해 두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곰곰이 생각하지 않는다. 고후 5:19에서도 이 그리스어 동사가 사용되었는데 그 구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대하실 때 “잘못을 묻지 않으신다”고 알려 준다.

모든 것을 참고: 이 표현을 직역하면 “모든 것을 덮고”가 된다. (「왕국 행간역」[Kingdom Interlinear])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이 동사는 “지붕”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와 어근이 같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불완전성과 단점을 비유적인 의미에서 덮어 준다. 그는 다른 사람의 불완전성과 단점을 쉽게 들추어내지 않으며, 심각한 범죄가 관련된 경우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다. 이 그리스어 동사는 “견디다; 인내하다”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고전 9:12에서는 이 동사가 “인내하고 있다”로 번역되었다.

언어: 또는 “방언”. 성경에서 그리스어 글로사는 발성 기관의 하나인 “혀”를 가리킬 수 있다. (막 7:33; 눅 1:64; 16:24) 하지만 이 단어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언어를 가리키거나 특정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계 5:9; 7:9; 13:7) 이 그리스어는 행 2:3에 나오는 “불처럼 보이는 혀들”이라는 표현에도 사용되었다. 그 “혀들”이 나타나 각 제자 위에 내려앉았으며 제자들은 여러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들에게 성령이 부어졌다는 분명한 증거였다.

여러 가지 방언: 방언의 선물 즉 언어의 선물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모르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왕국에 관한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이 선물 덕분에, 기원 33년에 그리스도인들은 오순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와 있던 많은 외국인들에게 “하느님의 장엄한 일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행 2:1-12) 후에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방언을 차례대로 하고 그 방언을 통역함으로 이 선물을 질서 있는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고전 14:4, 5, 9, 27.

지식의 말: 바울이 여기서 말한 지식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제자가 되기 위해 얻어야 할 하느님에 관한 지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요 17:3; 롬 10:14) 이 지식은 기적에 의한 것으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지식의 범위를 초월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사도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관련된 문제를 다룰 때 “지식의 말”을 사용했을 수 있다. 성령은 아나니아가 금전 문제와 관련하여 회중에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베드로에게 밝혀 주었다. 베드로는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행 5:1-5.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또는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결코 끝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분은 “영원하신 왕”이시기 때문이다. (요1 4:16; 딤전 1:17) 하느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은 사랑을 영원토록 나타낼 것이다. 또한 사랑이라는 특성에는 결코 부족한 면이나 결함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어떤 어려운 상황이든 이겨 낼 수 있다. 그리고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전 13:13.

방언: 기적에 의해 다른 언어로 말하는 것을 가리킨다.—행 2:4; 고전 12:10 연구 노트 참조.

지식: 일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작용으로 갖게 된 특별한 지식을 가리킨다. 그러한 지식이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당시에는 하느님의 말씀의 사본을 오늘날처럼 쉽게 구할 수 없었으므로, 지식의 선물을 받은 사람은 회중에 두루마리가 없더라도 이전에 읽은 성경 구절을 기억하여 적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특별한 지식은 기적에 의한 다른 영의 선물들과 마찬가지로 초기에 그리스도인 회중을 강화하기 위한 일시적인 마련이었다.—고전 12:8 연구 노트 참조.

없어질 것입니다: 직역하면 “무효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기적의 능력을 사도들에게 주셨다. 그리고 사도들은 그러한 특별한 능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줄 수 있었다. 그러한 능력에는 예언의 선물, 방언을 하는 능력, 특별한 지식의 선물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적의 능력은 그리스도인 회중이 성장하여 초기 단계에서 벗어나면 사라질 것이었다. (고전 13:9-11) 그러한 기적의 능력이 주어진 목적은 그리스도인 회중이 하느님의 은혜와 후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그때가 되면 그러한 목적이 온전히 달성될 것이었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 여기서 “온전한 것”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텔레이오스는 여러 문맥에서 “성숙한; 완전한; 온전한”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1세기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기적에 의한 “예언”과 “지식”의 선물을 받았지만 하느님의 목적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고전 13:9) 이 구절에서 “온전한 것”은 성경에 밝혀져 있는 하느님의 목적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예언이 온전히 성취되고 하느님의 목적에 관한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고 나면 그 목적을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부분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기적에 의한 지식과 예언의 선물이 온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분명, 예언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예언한 것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미래에 있을 일에 대해 부분적으로 밝혀 줄 수밖에 없었다. 예언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려면 “온전한 것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고전 13:10.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당시의 영적 필요를 채워 주기에 충분한 지식은 가지고 있었다.—골 1:9,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 여기서 “온전한 것”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텔레이오스는 여러 문맥에서 “성숙한; 완전한; 온전한”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1세기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기적에 의한 “예언”과 “지식”의 선물을 받았지만 하느님의 목적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고전 13:9) 이 구절에서 “온전한 것”은 성경에 밝혀져 있는 하느님의 목적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예언이 온전히 성취되고 하느님의 목적에 관한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고 나면 그 목적을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아이 ··· 어른: 바울은 그리스도인 회중의 발전을 아이가 성장하는 것에 비한다. 아이에게는 도움이 많이 필요하지만 어른은 그렇지 않다. 그와 비슷하게,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에 예언과 방언과 지식의 선물과 같은 기적의 선물은 새로 형성된 그리스도인 회중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제는 유대 민족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회중이 하느님의 은혜를 받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주기 위해서는 한동안 그러한 선물들이 필요했다. (히 2:3, 4) 하지만 바울은 회중이 점점 성장하여 어른처럼 성숙한 상태가 될 것이며 그러면 그러한 기적의 선물이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금속 거울: 성경 시대에 거울은 일반적으로 금속을 연마해서 만들었는데, 대개 청동으로 만들었으며 주석, 구리, 은, 금으로 만들기도 했다. 고대의 거울이 유용한 도구이기는 했지만, 그런 거울로 물체를 보는 것과 물체를 직접 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바울은 거울을 예로 들어 특정한 영적 문제들, 특히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언들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이해가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때는 특정한 점들이 밝혀질 하느님의 때가 아니었으므로 그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목적의 희미한 윤곽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거울에 비친 흐릿한 모습을 보는 것과 같았다. 여기서 바울은 금속 거울로 보는 것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듯이 뚜렷하게 보는 것을 대조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 예언이 성취되어 하느님의 목적 전체를 이해하게 될 때 그처럼 뚜렷하게 보게 될 것이다.

희미한 윤곽을: 또는 “어렴풋이”.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대개 수수께끼를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세부점을 알 수 없는 불분명하고 모호한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하느님께서 나를 정확하게 아시는 것처럼: 바울은 자신이 하느님을 아는 것보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훨씬 더 잘 아신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여호와를 정확하게 알게 될 것임을, 다시 말해 하늘의 상을 받은 뒤에 그분과 그 어느 때보다도 친밀한 관계를 누리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며 그분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사랑이다. (시 90:2; 요1 4:8) 따라서 사랑은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이며, 그분을 섬기면서 그분을 본받는 사람들의 사랑도 영원토록 더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다. (엡 5:1)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믿음과 희망보다 탁월하다. 하느님의 약속과 예언이 이루어지고 나면, 그분의 종들은 더 이상 그러한 약속과 예언에 대해 믿음을 나타낼 필요가 없을 것이며, 이미 이루어진 것들에 대해 계속 희망을 가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사랑은 바울이 언급한 특성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미디어

금속 거울
금속 거울

왼쪽에 보이는 것은 기원전 3세기나 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 거울이다. 오른쪽의 삽화는 기원 1세기에 그런 거울을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하여 그린 것이다. 고린도의 장인들은 여러 가지 청동 제품을 만들었는데, 그들이 만든 거울은 품질이 뛰어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고대의 금속 거울은 오늘날의 유리 거울처럼 반사면이 매끄럽지 않았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에서 금속 거울로 보는 것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을 대조한다.—고전 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