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5:1-26

5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자유를 주시려고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나 바울이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할례를 받는다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아무 유익이 없을 것입니다.+  할례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다시 증언하는데, 그런 사람은 율법 전체를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율법을 통해 의롭다고 인정받으려고 하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과분한 친절에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에 힘입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여겨지기를 바라며*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면, 할례나 무할례는 아무런 가치가 없고+ 사랑을 통해 작용하는 믿음만이 가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잘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여러분을 막아 진리에 계속 순종하지 못하게 했습니까?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이 그렇게 하도록 설득하신 것이 아닙니다.  적은 누룩이 반죽 전체를 발효시킵니다.+ 10  나는 주 안에 있는+ 여러분의 생각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은+ 그에 마땅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11  형제 여러분, 내가 아직도 할례를 전파하고 있다면 왜 아직도 박해를 받겠습니까? 그랬더라면 형주라는 걸림돌은+ 이미 없어졌을 것입니다. 12  여러분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사람들은 차라리 스스로 거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13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적인 욕망을 추구할 기회로 삼지 말고,+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14  사실, 율법 전체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라는 계명 하나로 완성됩니다.+ 15  그런데 여러분이 계속 서로 물어뜯고 삼킨다면+ 피차 멸망될 것이니 조심하십시오.+ 16  내가 말합니다. 계속 영을 따라 걸으십시오.+ 그러면 육적인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입니다.+ 17  육체가 원하는 것은 영을 거스르고, 영이 원하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대적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18  그러나 여러분이 영의 인도를 받고 있다면,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  육체의 일은 명백히 드러납니다. 그것은 성적 부도덕,+ 더러움, 방종,+ 20  우상 숭배, 영매술,+ 적개심, 분쟁,+ 질투,+ 격분, 불화, 분열, 분파,+ 21  시기, 술 취함,+ 흥청대는 잔치, 그리고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에 대해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경고한 것처럼, 다시 여러분에게 경고합니다. 이런 것들을 거듭 행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22  그러나 영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오래 참음, 친절, 선함,+ 믿음, 23  온화, 자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을 법은 없습니다. 24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기둥에 못 박았습니다.+ 25  우리가 영을 따라 살고 있다면, 계속해서 영을 따라 걸어갑시다.*+ 26  자기중심적이+ 되어 서로 경쟁하지 말고+ 서로 시기하지 맙시다.

각주

직역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희망을”.
또는 “질서 있게 걸어갑시다.”

연구 노트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자유를 주시려고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편지에서 “자유”와 “자유롭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들을 여러 번 사용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강조한다. (갈 2:4) 그는 이 자유를 앞 장에서 설명한 종살이와 대조한다. 이 구절의 표현은 “그리스도께서는 그 여자의 자유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그렇게 번역할 경우 자유로운 여자인 “위에 있는 예루살렘”의 자녀들만이 그러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갈 4:26.

종살이의 멍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율법은 의롭고 거룩한 것이었다. (롬 7:12) 따라서 불완전한 인간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율법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다시 종살이의 멍에를 메게’ 될 것이었다. 율법의 정죄를 받아 죄인이자 죄의 종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대속 희생을 통해 그 “멍에”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셨다.—행 15:10; 갈 5:1-6. 용어 설명 “멍에” 참조.

경주할 때 주자들이: 운동 경기는 그리스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었으므로 바울은 그러한 경기들을 자주 비유로 사용했다. (고전 9:24-27; 빌 3:14; 딤후 2:5; 4:7, 8; 히 12:1, 2)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은 고린도 근처에서 열리던 이스트미아 경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스트미아 경기는 2년에 한 번씩 열렸다. 바울은 기원 51년에 이스트미아 경기가 열렸을 때 고린도에 있었을 것이다. 이스트미아 경기는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열리는 올림픽 경기 다음으로 중요한 경기였다. 그와 같은 그리스의 경기들에서는 다양한 길이의 달리기 경주가 열렸다. 바울은 달리기 선수와 권투 선수의 비유를 들어, 자제를 나타내고 효율적으로 일하고 인내해야 할 필요성을 가르쳤다.—고전 9:26.

여러분은 잘 달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갈라디아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 행로를 잘 따르고 있었다는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 달리기 경주에 관한 비유를 사용한다. 그는 자신의 편지들에서 비슷한 비유를 여러 번 사용한다. (갈 2:2 비교. 고전 9:24 연구 노트 참조) 성경에서는 종종 걷거나 달린다는 개념을 사용하여 특정한 행로를 따르는 것을 표현한다.—창 5:22; 6:9; 엡 4:17; 5:2.

누룩: 또는 “효모”. 반죽을 발효시키기 위해 첨가하는 물질. 특히 이전에 빵을 구우면서 발효시켜 놓았던 반죽의 작은 덩어리를 가리킨다. (출 12:20) 성경에서 누룩은 죄와 부패를 상징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마 16:6 연구 노트 참조.

누룩: 또는 “효모”.—용어 설명고전 5:6 연구 노트 참조.

반죽 전체를 발효시킵니다: 또는 “반죽 전체에 퍼집니다; 반죽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발효시키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 지모오는 이 구절에 나오는 “누룩”에 해당하는 명사 지메와 어근이 같다. 바울은 고전 5:6에서도 동일한 표현(“적은 누룩이 반죽 전체를 발효시킵니다”)을 사용하는데, 이 표현은 당시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던 속담이었던 것 같다. 바울의 말의 요지는 적은 누룩이 반죽 전체를 발효시키는 것처럼, 거짓 선생들(이 경우에는 할례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가르침도 회중 전체를 부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형주: 여기서 “형주”(그리스어 스타우로스)는 예수께서 형주에 달려 죽으신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예수께서 형주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류는 죄의 종 상태에서 풀려나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자유를 주시려고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편지에서 “자유”와 “자유롭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들을 여러 번 사용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강조한다. (갈 2:4) 그는 이 자유를 앞 장에서 설명한 종살이와 대조한다. 이 구절의 표현은 “그리스도께서는 그 여자의 자유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그렇게 번역할 경우 자유로운 여자인 “위에 있는 예루살렘”의 자녀들만이 그러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갈 4:26.

유대인에게는 걸림돌이고: 율법에 따르면 기둥에 달린 사람은 “하느님께 저주받은” 자였다. (신 21:22, 23; 갈 3:13) 따라서 유대인들은 예수가 죽임을 당한 방식이 메시아에게 걸맞지 않는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었다.

그들은 그분 때문에 걸려 넘어졌다: 또는 “그들은 그분에게 반감을 품었다;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 문맥에서 그리스어 스칸달리조는 비유적인 의미에서 걸려 넘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반감을 품다; 못마땅하게 여기다”를 뜻한다. 이 표현은 “그들은 그분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다른 문맥에서는 이 그리스어 단어가 죄를 짓거나 다른 사람이 죄를 짓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마 5:29 연구 노트 참조.

걸림돌: 그리스어 원어 스칸달론은 원래 덫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 같다. 일부 학자들은 이 단어가 덫 안에 있는, 미끼를 놓는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점차 의미가 넓어져서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은 무엇이든 가리키게 되었다. 비유적인 의미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거나, 도덕적인 면에서 걸려 넘어지게 하거나, 죄를 짓게 하는 행동 또는 환경을 가리킨다. 마 18:8, 9에서는 스칸달론과 어근이 같은 동사 스칸달리조가 “걸려 넘어지게 하다”로 번역되었는데, 이 표현은 “올무가 되다; 죄를 짓게 하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형주: 또는 “고통의 기둥”.—고전 1:17 연구 노트 참조.

형주라는 걸림돌: 예수께서 형주에 달려 죽으심으로 율법은 폐지되었다. 바울을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희생에 믿음을 나타내는 것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소식을 전파했다. (골 2:13, 14. 갈 5:1 연구 노트 참조) 하느님의 승인을 받으려면 반드시 할례를 받고 모세 율법에 고착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유대인들에게는 그 소식이 걸림돌 즉 반감을 품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고전 1:23 연구 노트 참조.

걸림돌: 또는 “반감을 품게 하는 것”.—마 13:57; 18:7 연구 노트 참조.

스스로 거세하는: 또는 “스스로 고자가 되는”. 직역하면 “스스로 잘라 버리는”. 냉소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 강한 표현을 문자적인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과장법을 사용하여, 할례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고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이다. (용어 설명 “고자” 참조) 그렇게 된다면 그들이 그토록 받드는 율법을 지킬 자격 자체를 상실하게 될 것이었다. (신 23:1) 몇몇 주석가들은 바울이 일부 이교 숭배자들이 행하던 거세 의식을 언급함으로 할례를 옹호하는 사람들을 그러한 우상 숭배자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자유를 주시려고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편지에서 “자유”와 “자유롭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들을 여러 번 사용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강조한다. (갈 2:4) 그는 이 자유를 앞 장에서 설명한 종살이와 대조한다. 이 구절의 표현은 “그리스도께서는 그 여자의 자유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그렇게 번역할 경우 자유로운 여자인 “위에 있는 예루살렘”의 자녀들만이 그러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갈 4:26.

완성됩니다: 이 그리스어 표현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한 가지는 모세 율법이 이 계명 하나로 “실현된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모세 율법이 이 계명 하나에 “다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느 경우이든, 율법의 기초는 사랑이므로 사랑을 나타내는 사람은 율법 전체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레 19:18에 나오는 계명을 인용한다. 그는 동일한 구절을 롬 13:9에서도 인용하는데, 그 구절에서는 율법의 모든 계명이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다”고 말한다. 일부 성경 번역판에서는 이 구절(갈 5:14)의 “완성됩니다”라는 표현을 “요약됩니다”로 번역한다. 그리스어 표현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 그렇게 번역하는 것도 가능하다.

육체의 일: 앞 구절들에서 바울은 “육체”와 “영”이 서로 계속 대립한다고 말한다. (갈 5:13, 17) 19-21절에서 바울은 “육체” 즉 인간이 가진 죄로 향하는 성향과 관련이 있는 15가지 일 또는 행위를 언급한다. (마 26:41; 갈 5:13, 17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이 여기서 열거한 “일”들은 사람이 죄 많은 육체의 영향을 받을 때 하게 되는 생각과 행동의 결과이다. (롬 1:24, 28; 7:21-25) 그는 그 일들을 열거한 뒤에 “그리고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라는 표현을 덧붙인다. 따라서 그가 육체의 일에 해당하는 모든 것을 열거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갈 5:21 연구 노트 참조.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육적인 욕망 즉 죄로 향하는 욕망에 굴복한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남용하는 것이 된다고 경고한다. (갈 2:4; 4:24-31) 이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사랑에서 우러나와 겸손한 태도로 서로 섬기는 데 이 자유를 사용한다.—갈 5:1, 14 연구 노트 참조.

육적인 욕망을 추구할 기회: 직역하면 “육체를 위한 기회”. 이어지는 구절들에서도 “육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사르크스)가 여러 번 나온다. (갈 5:16-19) 이 구절에서는 인간이 가진 죄로 향하는 성향을 가리킨다.—갈 5:19 연구 노트 참조.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또는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십시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기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사랑에서 우러나와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라고 격려한다. “섬기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종으로 일하는 것을 가리킨다. 바울이 이 동사를 사용한 것에는 그들이 마치 종이 주인에게 하듯이, 겸손한 태도로 다른 사람을 품위 있고 존중심 있게 대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을 수 있다. “종이 되다”를 의미하는 이 동사는 “섬기다” 또는 “겸손하게 봉사하다”로도 번역할 수 있다.

완성됩니다: 이 그리스어 표현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한 가지는 모세 율법이 이 계명 하나로 “실현된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모세 율법이 이 계명 하나에 “다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느 경우이든, 율법의 기초는 사랑이므로 사랑을 나타내는 사람은 율법 전체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레 19:18에 나오는 계명을 인용한다. 그는 동일한 구절을 롬 13:9에서도 인용하는데, 그 구절에서는 율법의 모든 계명이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다”고 말한다. 일부 성경 번역판에서는 이 구절(갈 5:14)의 “완성됩니다”라는 표현을 “요약됩니다”로 번역한다. 그리스어 표현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 그렇게 번역하는 것도 가능하다.

계속 영을 따라 걸으십시오: 이 문맥에서 영을 따라 걷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구하고 그 영이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을 따르는 사람은 죄로 향하는 욕망이 생기더라도 그 욕망을 계속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즉시 물리친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 죄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롬 8:4-6; 약 1:14, 15) 바울은 그렇게 하는 것을 부적절한 육적인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것과 대조한다.

육체 … 영: 이 장에서 바울은 여러 차례 “육체”와 “영”이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육체”는 인간이 가진 죄로 향하는 성향을 가리킨다. “영”은 하느님의 성령을 가리키지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하게 하는 힘도 포함할 수 있다. (용어 설명 “” 참조) 하느님의 영은 그분의 종들이 의로운 행동을 하게 하는 힘이며, 죄 많은 육체는 항상 그 영의 영향력과 맞서 싸운다. 갈 5:19-23에서는 죄 많은 육체의 일을 성령의 열매와 대조한다.—롬 7:18-20 비교.

육신: 성경에서 이 단어는 불완전하고 죄 많은 상태에 있는 인간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종종 사용된다.

육적인 욕망을 추구할 기회: 직역하면 “육체를 위한 기회”. 이어지는 구절들에서도 “육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사르크스)가 여러 번 나온다. (갈 5:16-19) 이 구절에서는 인간이 가진 죄로 향하는 성향을 가리킨다.—갈 5:19 연구 노트 참조.

육체 … 영: 이 장에서 바울은 여러 차례 “육체”와 “영”이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육체”는 인간이 가진 죄로 향하는 성향을 가리킨다. “영”은 하느님의 성령을 가리키지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하게 하는 힘도 포함할 수 있다. (용어 설명 “” 참조) 하느님의 영은 그분의 종들이 의로운 행동을 하게 하는 힘이며, 죄 많은 육체는 항상 그 영의 영향력과 맞서 싸운다. 갈 5:19-23에서는 죄 많은 육체의 일을 성령의 열매와 대조한다.—롬 7:18-20 비교.

그리고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이 표현을 볼 때 바울이 “육체” 즉 인간이 가진 죄로 향하는 성향과 관련이 있는 일을 모두 언급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갈 5:19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딤전 1:10의 끝부분에서도 비슷한 표현을 사용한다. 갈라디아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언급한 죄가 되는 일들과 비슷한 행동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분별력”을 사용해야 했다. (히 5:14) 예를 들어 악의적인 중상은 죄 많은 육체의 일 중 하나로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갈 5:20에 나오는 “적개심, 분쟁, 질투, 격분, 불화”에는 악의적인 중상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육체의 일”로 구체적으로 언급된 일들이나 “그와 비슷한 것들”을 행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의 왕국이 가져올 축복을 받지 못할 것이다.

온갖 더러운 일: “더러운 일”(그리스어 아카타르시아)이라는 표현은 의미 폭이 넓은 단어이다. 여기서 이 단어는 온갖 종류의 불결함을 포괄하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쓰였는데, 그 가운데는 성 문제, 말과 행동, 영적인 문제 등에서의 불결함이 포함된다. (고전 7:14; 고후 6:17; 살전 2:3 비교) 이 단어는 잘못된 행동이나 상태가 갖는, 도덕적으로 불쾌감을 주는 측면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갈 5:19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사람들이 그러한 더러운 일을 탐욕으로 행했다고 말한다. “탐욕”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플레오넥시아는 더 갖고 싶어 하는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을 뜻한다. 바울은 “탐욕으로”라는 표현을 덧붙임으로, “더러운 일”에 해당하는 행동들이 그 심각성의 정도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롬 1:29 연구 노트 참조.

육체의 일: 앞 구절들에서 바울은 “육체”와 “영”이 서로 계속 대립한다고 말한다. (갈 5:13, 17) 19-21절에서 바울은 “육체” 즉 인간이 가진 죄로 향하는 성향과 관련이 있는 15가지 일 또는 행위를 언급한다. (마 26:41; 갈 5:13, 17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이 여기서 열거한 “일”들은 사람이 죄 많은 육체의 영향을 받을 때 하게 되는 생각과 행동의 결과이다. (롬 1:24, 28; 7:21-25) 그는 그 일들을 열거한 뒤에 “그리고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라는 표현을 덧붙인다. 따라서 그가 육체의 일에 해당하는 모든 것을 열거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갈 5:21 연구 노트 참조.

성적 부도덕: 성경에서 그리스어 포르네이아는 하느님의 표준에 위배되는 모든 성행위를 두루 일컫는 용어이다. 한 사전에서는 포르네이아를 “매춘 행위, 음란 행위, 음행”으로 정의하면서 이 단어가 “온갖 불법적인 성교”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고 설명한다. 그러한 불법적인 행위 가운데는 매춘 행위, 간음, 미혼끼리의 성관계만이 아니라 동성애와 수간도 포함되는데 성경에서는 이러한 모든 행위를 정죄한다. (레 18:6, 22, 23; 20:15, 16; 고전 6:9. 용어 설명 참조) 예수께서는 성적 부도덕을 살인, 도둑질, 모독과 함께 언급하심으로 그것이 악한 것임을 보여 주셨다.—마 15:19, 20; 막 7:21-23.

더러움: 또는 “불결함; 타락; 음란”. 이 구절에서 “육체의 일”로 가장 먼저 언급된 세 가지 가운데 “더러움”(그리스어 아카타르시아)이 가장 의미 폭이 넓다. 그리스어 아카타르시아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10번 나온다.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더럽거나 불결한 것을 가리킨다. (마 23:27)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면 온갖 종류의 불결함을 포괄하는 단어로 쓰이는데, 그 가운데는 성 문제, 말과 행동, 그리고 거짓 신을 숭배하는 것과 같은 영적인 문제 등에서의 불결함이 포함된다. (롬 1:24; 6:19; 고후 6:17; 12:21; 엡 4:19; 5:3; 골 3:5; 살전 2:3; 4:7) 따라서 “더러움”에는 여러 종류의 잘못된 행동이 포함되며, 그러한 행동들은 더러움의 정도가 각기 다를 수 있다. (엡 4:19 연구 노트 참조) “더러움”은 잘못된 행동이나 상태가 갖는, 도덕적으로 불쾌감을 주는 측면을 강조하는 표현이다.—용어 설명 “부정함; 더러움” 참조.

방종: 또는 “자유분방함”. 성경에서 그리스어 아셀게이아는 하느님의 법을 심각하게 범하는 행위이자, 뻔뻔스럽거나 불경스럽거나 대담할 정도로 경멸적인 태도를 반영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막 7:22; 롬 13:13; 고후 12:21; 갈 5:19; 엡 4:19; 벧전 4:3; 벧후 2:2, 7, 18; 유 4) 한 사전에서는 이 단어를 “방탕함, 음탕함, 음란함 즉 도덕적으로 무절제한 태도와 행실”로 정의한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교도인 이세벨 왕비가 예루살렘에 바알을 위한 신당을 세운 일을 묘사할 때 이 그리스어 단어를 사용했다. 이것은 대중의 생각과 예의를 뻔뻔스럽게 무시한 충격적인 행동이었다.—「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 8권 13장 1항 (로브 8.318). 용어 설명 참조.

사랑은 질투하지 않고: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 젤로오는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 이 구절에서는 경쟁 관계에 있다고 여기는 상대나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에 대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의미하기 때문에 “질투하다”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명사 젤로스는 주로 “질투”로 번역되는데, 질투는 갈 5:19-21에 언급된 “육체의 일”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한 질투는 이기적인 특성이며 사랑이 아니라 미움을 낳는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사랑은 다른 사람을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바라며’ 언제나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행동한다.—고전 13:4-7. 이 그리스어 동사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예를 보려면 고후 11:2 연구 노트 참조.

나사렛파: “분파” 또는 “파”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하이레시스(이 단어에서 “이단”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헤러시[heresy]가 유래함)는 원래 “선택”이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칠십인역」레 22:18에서도 이 단어가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의 모든 선택에 따라” 바치는 제물 즉 자원 제물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사용되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단어는 특정한 사상이나 교리를 따르는 사람들의 집단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유대교의 대표적인 양대 파벌인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행 5:17; 15:5; 26:5)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은 그리스도교를 “분파” 또는 “나사렛파”라고 불렀는데, 아마도 유대교에서 떨어져 나온 집단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행 24:5, 14; 28:22) 그리스어 하이레시스는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 생겨난 분파들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으며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셨다. (요 17:21) 또한 사도들은 그리스도인 회중의 일치 연합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고전 1:10; 유 17-19) 회중 성원들 사이에 분파나 파벌이 생기면 연합이 깨지게 될 것이었다. 따라서 그리스어 하이레시스는 그러한 분열을 일으키는 집단을 가리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신앙의 불일치가 생기면 격렬한 논쟁과 분쟁이 벌어지고 심지어 서로 적대시하게 될 수 있었다. (행 23:7-10 비교) 따라서 분파는 반드시 피해야 하는 “육체의 일” 가운데 포함되었다.—갈 5:19-21; 고전 11:19; 벧후 2:1. 또한 나사렛이라는 표현에 대해 알아보려면 막 10:47 연구 노트 참조.

영매술: 또는 “주술; 마술; 신비술; 마약 사용”. 여기서 “영매술”로 번역된 그리스어 명사는 파르마키아인데 기본적으로 “마약 사용”을 가리킨다. 이 그리스어 단어가 영매술이나 주술이나 신비술과 관련이 있는 단어로 쓰이게 된 것은 마술을 행하기 위해 악귀의 힘을 빌릴 때 마약을 사용했기 때문일 수 있다. 「칠십인역」에서는 “주술”; “신비한 술법”; “마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번역할 때 그리스어 파르마키아를 사용했다. (출 7:11, 22; 8:7, 18; 사 47:9, 12) 여기서 바울은 신비술 행위를 염두에 두고 파르마키아를 사용한 것이다. 그가 우상 숭배를 언급하고 나서 바로 뒤이어 그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 그 점을 뒷받침해 주는 것 같다. (용어 설명 “우상; 우상 숭배” 참조)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명사 파르마코스계 21:8에서 “영매술을 행하는 자들”로 번역되었다.—계 22:15. 용어 설명 참조.

질투: 그리스어 젤로스는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 여기서 바울은 “질투”를 “육체의 일” 중 하나로 언급한다. 따라서 이 문맥에서 그 단어는 경쟁 관계에 있다고 여기는 상대나 자신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에 대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의미한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질투를 품지 말라는 강력한 교훈을 받았다.—고전 3:3; 고후 12:20; 약 3:14, 16. 고전 13:4 연구 노트 참조.

격분: 또는 “화를 터뜨리는 일”. 여기서 바울은 “화; 분노”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복수형을 사용했다. 이 단어는 화를 제어하지 못하고 터뜨리는 것뿐만 아니라 끓어오르는 분노를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다가 나중에 표출하는 것도 가리킬 수 있다. 격분은 성적 부도덕, 방종, 우상 숭배, 영매술, 술 취함과 같은 혐오스러운 육체의 일 중 하나로 언급되어 있다.

분파: 행 24:5 연구 노트 참조.

흥청대는 잔치: 또는 “흥청거림”. 그리스어 코모스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세 번 나오는데, 항상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갈 5:21; 벧전 4:3) 이 단어는 “사람들이 모여 무절제하게 술을 마시고 부도덕한 행동을 하는 술잔치”로 정의된다. 고대 그리스어 문헌들에서 이 단어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또는 바쿠스) 같은 이교 신들에게 영예를 돌리는 축제 중에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노래를 부르면서 떠들썩하게 거리를 행진하는 것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한 행진과 방탕한 행동은 사도 시대에 소아시아의 도시들을 비롯한 그리스의 여러 도시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벧전 1:1) 베드로는 그러한 도시들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제어되지 않은 정욕, 과음, 흥청대는 잔치, 술판을 벌이는 일,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다”고 썼다. (벧전 4:3, 4) 바울은 “흥청대는 잔치”를 “육체의 일” 중 하나로 언급하면서 그러한 행동에 빠진 사람들은 “하느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갈 5:19-21) 바울과 베드로가 “흥청대는 잔치”라는 표현을 사용한 구절들을 보면 술 취함, 부도덕한 성관계, 성적 부도덕, 더러움, 방종한 행위, 제어되지 않은 정욕 같은 것들이 함께 언급되어 있다.

육체의 일: 앞 구절들에서 바울은 “육체”와 “영”이 서로 계속 대립한다고 말한다. (갈 5:13, 17) 19-21절에서 바울은 “육체” 즉 인간이 가진 죄로 향하는 성향과 관련이 있는 15가지 일 또는 행위를 언급한다. (마 26:41; 갈 5:13, 17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이 여기서 열거한 “일”들은 사람이 죄 많은 육체의 영향을 받을 때 하게 되는 생각과 행동의 결과이다. (롬 1:24, 28; 7:21-25) 그는 그 일들을 열거한 뒤에 “그리고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라는 표현을 덧붙인다. 따라서 그가 육체의 일에 해당하는 모든 것을 열거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갈 5:21 연구 노트 참조.

흥청대는 잔치: 롬 13:13 연구 노트 참조.

그리고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이 표현을 볼 때 바울이 “육체” 즉 인간이 가진 죄로 향하는 성향과 관련이 있는 일을 모두 언급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갈 5:19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딤전 1:10의 끝부분에서도 비슷한 표현을 사용한다. 갈라디아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언급한 죄가 되는 일들과 비슷한 행동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분별력”을 사용해야 했다. (히 5:14) 예를 들어 악의적인 중상은 죄 많은 육체의 일 중 하나로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갈 5:20에 나오는 “적개심, 분쟁, 질투, 격분, 불화”에는 악의적인 중상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육체의 일”로 구체적으로 언급된 일들이나 “그와 비슷한 것들”을 행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의 왕국이 가져올 축복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막을 법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영이 산출하는 특성들을 기르는 것을 제한하는 법은 없다. 이 특성들은 모두 모세 율법과 (레 19:18; 신 6:5) “그리스도의 법”에 (갈 6:2; 요 13:34) 들어 있는 사랑의 법과 온전히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것들”로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은 여호와의 영의 열매를 이루는 특성들이 여기 언급된 아홉 가지 특성이 전부가 아님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 성품에는 이 아홉 가지 특성을 비롯한 여러 가지 특성이 포함되며, 그 모든 특성들은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 기를 수 있는 것이다.—엡 4:24, 32; 5:9; 골 3:12-15; 약 3:17, 18.

사랑: 사랑에 대해 묘사한 이 잘 알려진 내용 가운데서 바울은 그리스어 아가페를 사용한다. 요한도 요1 4:8-10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묘사할 때 동일한 그리스어 단어를 사용했다. 8절에서 그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여호와께서 사랑의 구현체이시라는 의미이다. (요 3:16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인 사랑을 가장 잘 정의하는 방법은 그것이 어떻게 행동으로 나타나는지를 묘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사랑은 비이기적인 태도라고도 할 수 있으며 원칙에 근거해 있다. 원칙에 근거한 사랑에 반드시 따뜻한 애정이 포함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한 사랑을 보이는 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해를 입은 것을 기억해 두지” 않음으로 그리스도인 사랑을 나타낸다. (고전 13:5) 하지만 많은 경우 그리스도인 사랑에는 따뜻함과 애정이 포함된다. 따라서 바울이 묘사한 사랑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애정과, 하느님께서 정하신 의로운 표준을 적용하겠다는 정신적 의지를 모두 가리킬 수 있다.—마 5:44; 22:37 연구 노트 참조.

사랑하셔서: 요한복음에서 그리스어 동사 아가파오(“사랑하다”)는 이 구절에 처음 나온다. 아가파오와 이 단어의 명사형인 아가페(사랑)는 요한복음에 총 44회 나온다. 이것은 다른 세 복음서에 나오는 횟수를 합한 것보다 많은 수이다. 성경에서 아가파오아가페는 원칙에 근거한 혹은 원칙의 지배를 받는 비이기적인 사랑을 가리킨다. 이 구절에서 아가파오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살펴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 세상 즉 죄를 구속받아야 하는 인류 전체를 사랑하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요 1:29) 요1 4:8에서는 이 단어의 명사형인 아가페가 사용되었는데, 그 구절에서 요한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한다. 사랑(아가페)은 “영의 열매”를 이루는 특성들 중 첫 번째로 언급되며 (갈 5:22) 고전 13:4-7에서는 사랑에 대해 자세히 묘사한다. 성경에서 이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살펴보면, 사랑은 대개 다른 사람에 대해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반응을 나타내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많은 문맥에서 이 단어는 더 폭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흔히 이 사랑은 깊은 생각과 의도적인 노력을 거쳐 표현된다. (마 5:44; 엡 5:25)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길러야 하는 사랑에는 의무, 원칙, 도리를 고려하는 도덕적 감각이 포함된다. 하지만 이 사랑에 감정이 배제된 것은 아니다. 개인 간의 따뜻한 애정을 포함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벧전 1:22) 요한복음에서 이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요한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다”고 기록할 때 (요 3:35) 아가파오의 한 형태를 사용했다. 하지만 동일한 관계를 묘사하는 예수의 말씀을 기록할 때는 그리스어 동사 필레오(“애정을 가지고 있다”)의 한 형태를 사용했다.—요 5:20.

사랑해야 한다: 여기서 “사랑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아가파오이다. 아가파오와 이 단어의 명사형인 아가페(사랑)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250회 이상 나온다. 요1 4:8에서는 명사 아가페를 사용하여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성경은 하느님을 원칙에 근거한 비이기적인 사랑의 최고의 본으로 묘사한다. 하느님께서는 사려 깊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신다. 그분의 사랑에는 단지 감정과 느낌만이 아니라 굳은 의지와 행동이 수반된다. 사람도 하느님을 본받아 의도적인 선택에 의해 그런 사랑을 나타낼 수 있다. (엡 5:1)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예수께서 언급하신 가장 큰 두 계명에서와 같이, 사랑을 나타내라는 명령이 사람에게 주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구절에서 신 6:5을 인용하셨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랑을 가리키는 데 주로 사용되는 단어는 동사 아헤브 또는 아하브(사랑하다)와 명사 아하바(사랑)이다. 이 단어들은 앞서 언급된 그리스어 단어들의 의미를 포함한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될 경우, 이 단어들은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그분을 전적으로 섬기려는 열망이 있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사랑을 완벽하게 나타내셨다. 예수께서는 여호와에 대한 사랑에는 단순히 그분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 이상이 요구된다는 점을 보여 주셨다. 그 사랑은 삶 전체를 지배하여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요 3:16 연구 노트 참조.

무질서의 하느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느님이십니다: 여기서 바울은 무질서와 평화를 대조한다. 그는 여호와를 빌 4:9; 살전 5:23; 히 13:20에서 “평화의 하느님”으로, 롬 15:33; 16:20에서는 “평화를 주시는 하느님”으로 언급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그리스도인 회중의 질서와 연합의 기초가 된다. 바울은 질서 있게 일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질서 있는 방식으로 숭배를 드림으로 “서로 세워 주는”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모임을 즐기게 되고, 그 결과 “모두가 격려를 받게” 될 것이었다. (고전 14:26-32) 숭배를 위한 모임을 질서 있게 진행하는 것은 평화의 하느님의 특성과 성품을 반영하는 것이었으며 그로 인해 그분께 영예가 돌아갈 것이었다.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심으로 여호와께서 선함의 절대적인 표준이시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결정할 최고의 권리를 가진 분이심을 인정하셨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반역적인 행동을 함으로 그러한 권리를 취하려고 했다. (창 2:17; 3:4-6) 그들과는 달리, 예수께서는 겸손하시게도 표준을 정하는 일은 아버지께서 하실 일이라고 생각하셨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에 나오는 법과 원칙을 통해 무엇이 선한 것인지 알려 주셨다.—막 10:19.

그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또는 “그를 믿는”. 그리스어 동사 피스테우오(명사형인 피스티스는 일반적으로 “믿음”으로 번역됨)는 기본적으로 “믿다; 믿음을 가지다”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단어는 문맥과 문법 구조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많은 경우 이 단어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거나 인정하는 것에 더해 (약 2:19) 그 대상에 대한 믿음과 신뢰심이 순종하는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요 3:16에서 그리스어 동사 피스테우오는 전치사 에이스(직역하면 “안에”)와 함께 사용되었다. 한 학자에 따르면 동사 피스테우오와 전치사 에이스가 결합된 이 표현은 “어떤 행위, 즉 사람이 하는 행동”으로서의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신약 그리스어 초급 문법」[An Introductory Grammar of New Testament Greek], 폴 L. 코프먼, 1982년, 46면) 예수께서는 이 구절에 나오는 말씀을 하셨을 때, 믿음을 단 한 번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나타내는 것을 염두에 두셨을 것이다. 요 3:36에도 “아들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라는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데, 그 구절에서는 “아들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것과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을 대조하고 있다. 따라서 그 문맥에서 “믿음을 나타낸다”는 것은 순종을 통해 강한 신념이나 믿음을 나타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의 열매: 또는 “영이 산출하는 것”. 농사와 관련된 그리스어 카르포스(“열매”)는 성경에 자주 나온다. 여기서는 하느님의 성령 즉 활동력이 사람 속에 산출할 수 있는 특성들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갈 5:16) 나무를 잘 기르면 나무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성령의 영향력 아래 있게 하면 “영의 열매”를 맺게 된다. (시 1:1-3 비교) 그러한 특성들은 성령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느님의 성품을 반영한다. (골 3:9, 10) 바울은 이 구절들에서 그리스도인이 성령의 도움으로 기를 수 있는 특성들을 전부 열거한 것이 아니다. (갈 5:23 연구 노트 참조) 이 특성들이 어우러져 새 인간성의 바탕이 된다. (엡 4:24)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그리스어 카르포스(“열매”)는 단수 형태이다. 성경 주석가들에 따르면, 바울이 여기서 단수 형태를 사용한 것에는 이 구절들에 구체적으로 언급된 훌륭한 특성들이 하나의 열매를 구성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특성들 모두가 중요하며 다른 특성들과 별개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 그리스도인 사랑(그리스어 아가페)을 가장 잘 정의하는 방법은 그것이 어떻게 행동으로 나타나는지를 묘사하는 것이다. 바울은 고전 13:4-8에서 사랑을 그렇게 정의했다. (고전 13:4 연구 노트 참조) 요한은 요1 4:8-10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묘사할 때 동일한 그리스어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여호와께서 사랑의 구현체이시라는 의미이다. (요 3:16 연구 노트 참조) 예수께서는 가장 큰 두 계명이 하느님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2:37-39. 마 22:37 연구 노트 참조.

기쁨: 기쁨이란 좋은 것을 경험하거나 기대할 때 생기는 매우 유쾌한 감정,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상태이다. “기쁨”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특성을 가리킨다. “행복하신 하느님” 여호와는 기쁨의 근원이시며, 자신의 백성이 기뻐하기를 바라신다. (딤전 1:11) 하느님의 영의 도움을 받으면 그리스도인은 고난이나 슬픔, 박해를 겪을 때에도 기쁨을 유지할 수 있다.—골 1:11; 히 12:2; 약 1:2-4.

평화: “평화”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폭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 이 구절에서 “평화”는 “평화의 하느님”이신 여호와와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데서 오는 정신과 마음의 평온함을 가리킨다. (빌 4:9; 살전 5:23; 히 13:20. 고전 14:33 연구 노트 참조) 성경에는 “평화”가 하느님의 성령과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행 9:31; 롬 8:6; 15:13) 하느님과 평화로운 관계를 누리는 사람들은 그분의 영의 도움으로 다른 사람들과도 조화와 연합을 이루고 좋은 관계를 누릴 수 있다.—마 5:9; 고후 13:11; 약 3:18.

오래 참음: 이 그리스어는 문자적으로 “영이 긴 상태”로 옮길 수 있으며 (「왕국 행간역」[Kingdom Interlinear]) 차분하게 인내하고, 관용하고, 분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을 가리킨다.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오래 참음을 나타내는 면에서 최고의 모범이시다. (롬 2:4; 9:22; 딤전 1:16; 벧전 3:20; 벧후 3:9, 15) 바울은 오래 참음을 그리스도인 사랑의 필수적인 부면으로 언급한다.—고전 13:4.

친절: 다른 사람들의 복지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우호적이고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는 특성이나 상태를 가리킨다.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감사할 줄 모르는 악한 사람들에게도 친절을 나타내신다. (눅 6:35; 롬 2:4; 11:22; 딛 3:4, 5) “친절”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의 한 형태가 예수의 제자가 되는 사람들이 메는 그분의 “편한” 멍에, “메기 쉬운; 기쁨을 주는” 멍에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마 11:30; 각주) 이 멍에를 메는 그리스도인들은 친절을 입으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엡 4:32; 골 3:12.

선함: 선한 특성이나 상태, 도덕적 탁월함, 덕을 가리킨다. 한 사전에서는 “선함”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를 “다른 사람의 복지에 관심을 갖는 것을 주된 특징으로 하는 적극적인 도덕적 특성”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선한 행동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불완전하지만 여호와의 계명에 순종하고 그분이 다른 이들에게 나타내시는 선함과 관대함을 본받음으로 선함을 길러 나갈 수 있다. (행 9:36, 39; 16:14, 15; 롬 7:18; 엡 5:1) 여호와께서는 절대적인 의미에서 선하시다. (시 25:8; 슥 9:17; 막 10:18연구 노트) 그분은 참으로 관대하고 사려 깊은 하느님이시다.—행 14:17.

믿음: “믿음”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피스티스는 주로 확신, 신뢰심, 굳은 신념을 의미한다. 히 11:1에서 바울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믿음”을 정의한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믿음을 가장 잘 정의하는 방법은 그것이 어떻게 행동으로 나타나는지를 묘사하는 것이다. (약 2:18, 22. 요 3:16 연구 노트 참조)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점점 자라 가야 한다고 알려 준다. 따라서 예수의 제자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눅 17:5)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을 칭찬하면서 “여러분의 믿음이 크게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 (살후 1:3. 또한 고후 10:15 참조) 갈라디아서에는 “믿음”이라는 표현이 20여 회 나오는데, 대부분의 경우 이 구절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이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리킨다. (갈 3:6, 11) 살후 3:2에서 바울은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강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성품이 온화한: 하느님의 뜻과 인도에 기꺼이 복종하고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지 않는 내적 특성.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는 겁이 많거나 약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칠십인역」에서는 “온유한”이나 “겸손한”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를 번역할 때 이 단어를 사용했다. 이 단어는 모세(민 12:3),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시 25:9), 땅을 차지할 사람들(시 37:11), 메시아(슥 9:9; 마 21:5)를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성품이 온화하다고 즉 온유하다고 말씀하셨다.—마 11:29.

자제를 나타냅니다: 시합을 준비하는 운동선수는 자제를 나타냈다. 많은 경우 식단을 제한했으며 술을 마시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역사가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선수들은 올림픽 경기를 위해 열 달 동안 훈련을 했다고 한다. 다른 주요 경기들의 경우에도 훈련 기간이 그와 비슷했던 것 같다.

온화: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나타내는 내면의 차분함과 평온함을 가리킨다. (갈 6:1; 엡 4:1-3; 골 3:12) 온화는 하느님의 영의 열매를 이루는 특성 중 하나이므로 단순히 의지력만으로 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가까이 가고 기도로 그분의 영을 구하고 그 영의 영향력에 순응함으로 온화를 기를 수 있다. 온화한 사람은 겁쟁이나 나약한 사람이 아니다. “온화”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프라이테스는 힘을 겸비한 부드러움 또는 제어되고 있는 힘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그리스어 프라이스는 “성품이 온화하다”, “온화하다”로 번역되었다. (마 21:5; 벧전 3:4) 예수께서는 자신이 성품이 온화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마 11:29) 하지만 그분은 결코 나약한 분이 아니셨다.—마 5:5연구 노트 참조.

자제: 여기서 “자제”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네 번 나온다. (행 24:25; 벧후 1:6) 이 특성은 “자신의 감정이나 충동이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그리스어 동사가 고전 9:25에 나오는데 (연구 노트 참조) 그 구절에서 바울은 운동 경기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경기에 참가하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일에서 자제를 나타냅니다.” 이 그리스어 동사는 「칠십인역」창 43:31에서 요셉이 “자신을 진정시켰다”는 표현에도 사용되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이 표현에 사용된 동사는 사 42:14에도 나오는데, 그 구절에서 여호와께서는 “내가 … 참고 있었다”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해 즉각적인 조처를 취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악한 행로에서 돌아서서 그분의 은혜를 누릴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시간을 허용하신다.—렘 18:7-10; 벧후 3:9.

이러한 것들을 막을 법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영이 산출하는 특성들을 기르는 것을 제한하는 법은 없다. 이 특성들은 모두 모세 율법과 (레 19:18; 신 6:5) “그리스도의 법”에 (갈 6:2; 요 13:34) 들어 있는 사랑의 법과 온전히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것들”로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은 여호와의 영의 열매를 이루는 특성들이 여기 언급된 아홉 가지 특성이 전부가 아님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 성품에는 이 아홉 가지 특성을 비롯한 여러 가지 특성이 포함되며, 그 모든 특성들은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 기를 수 있는 것이다.—엡 4:24, 32; 5:9; 골 3:12-15; 약 3:17, 18.

그분과 함께 기둥에 못 박힌: 복음서에서 그리스어 동사 신스타우로오는 문자적으로 예수와 함께 처형된 사람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마 27:44; 막 15:32; 요 19:32) 바울이 자신의 편지들에서 예수께서 기둥에 달려 처형되신 일을 여러 차례 언급한 것은 사실이다. (고전 1:13, 23; 2:2; 고후 13:4) 하지만 이 구절에서 바울은 이 그리스어를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처형되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자신들의 옛 인간성을 죽였다고 설명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도 이 단어를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여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기둥에 못 박혀 있습니다”라고 썼다.—갈 2:20.

기둥에 못 박았습니다: “기둥에 못 박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 스타우로오는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형되신 일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이 동사를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롬 6:6 연구 노트 비교) 이 동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육체 즉 인간이 가진 죄로 향하는 성향을 죽이기 위해 강력하고 단호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인이 “육체”에 속한 죄가 되는 “정욕과 욕망”을 극복하고 제어하게 되면, 그러한 욕망들은 마치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된다. 더는 그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갈 5:16) 바울이 이 구절에서 한 말은 그가 앞 구절들에서 한 말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 갈 5:19-21에 언급된 “육체의 일”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기중심적이 되어: 바울은 “육체의 일”과 “영의 열매”를 대조한 후에 (갈 5:19-23) 이 구절에 나오는 권고를 덧붙인다. “자기중심적”으로 번역된 그리스어(케노독소스)는 문자적으로 “헛된 영광; 허영”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에만 나온다. 한 사전에서는 이 단어를 “자기 자신을 부풀려서 생각하는 것, 자만하는 것, 자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이 단어에는 무가치하고 헛된 이유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기를 강하게 열망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을 수 있다.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그리스어 단어가 빌 2:3에도 나온다.

서로 경쟁하지 말고: 또는 “서로 대결하려고 하지 말고”. 한 사전에서는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가 문자적으로 “누군가를 앞으로 나오도록 불러내다”를 의미하며 “많은 경우 적대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도발하다, 도전하다”를 뜻한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사전에서는 이 단어를 “누군가와 싸우거나 경쟁하려고 도전하다”로 정의한다.

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