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3일
세계 뉴스
왼쪽: 크로아티아 리예카에서 공개 증거를 하는 모습. 오른쪽(위에서 아래로): 구유고슬라비아에서 숭배를 위해 모인 형제자매들의 역사적인 사진
구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100년 동안 지속된 사랑과 연합
2025년은 여호와의 증인이 구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25년에 소규모로 전해지기 시작한 좋은 소식은 전쟁과 정치적 변화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현재 베오그라드, 캄니크, 스코페, 자그레브에 있는 사무실들에서 오늘날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전역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활동을 감독하고 있습니다.
프란츠 브란트 형제
프란츠 브란트 형제는 오스트리아에 살면서 진리를 배웠고 1925년에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해 말, 그는 지금의 세르비아로 돌아가 전파하기 시작했고 정기적인 집단 성서 연구를 조직했습니다. 그 후 그는 마리보르(현재 슬로베니아에 있음)로 이주하여 좋은 소식을 계속 전했습니다. 1927년에는 마리보르에서 처음으로 공개 강연이 마련되었고, 1930년에는 최초로 침례가 행해져 20명의 새로운 형제자매들이 진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1930년 9월 9일에 우리의 활동이 법적으로 등록된 후, 형제들은 훨씬 더 자유롭게 전파하고 집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나치의 격렬한 반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슬로베니아에 해당하는 지역에서는 활동하는 전도인 100명 중 거의 절반이 체포되었는데, 다시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가혹한 독재 정권과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집회와 전파 활동은 비밀리에 행해졌고, 많은 증인들이 중립 입장 때문에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형제들은 계속해서 서로 지원하고 여호와를 숭배했으며, 그 결과 유고슬라비아 전역에서 전도인 수가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1990년대 초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진 후 유고슬라비아는 점차 6개의 독립 국가로 나뉘었습니다. 민족적, 국가적, 종교적 편견은 또 다른 폭력과 전쟁의 시기를 초래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에게 그 일은 하느님의 왕국에 대한 충성을 증명하고 형제 사랑을 나타낼 기회였습니다. 주변의 혼란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국제 대회가 1991년에 자그레브(현재는 크로아티아에 있는 도시)에서 열렸습니다. 그 대회를 조직하는 데 참여한 드라구틴 노박 형제의 말입니다. “사방에 전쟁의 위협이 있었지만, 그 대회는 특별한 연합으로 특징을 이루었죠. 당시 사회가 점점 더 편협해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그리스도인 사랑이 증오와 분열을 이긴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1991년에 자그레브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 참석한 유고슬라비아의 형제자매들
현재는 구유고슬라비아 전역에 걸쳐 거의 1만 3000명의 전도인이 연합하여 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100년 동안 이 나라들에서 형제자매들이 인내하며, 사랑이 “완전한 연합의 띠”라는 것을 증명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골로새서 3:14.

